098 몬스터 캐네디언(2)
평소 태하의 신체는 피부조직이 상당히 얇은 편이며 체수분이 그렇게까지 높은 편이 아니다.
허나, 태하는 에메랄드컵 캐나다 쇼에 나가기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수분을 끊었다.
꼬르르륵……!
늦은 밤, 등가죽이 배에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이건 배가 고파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몸이 수분을 갈구하는 신호였다.
“……뒈질 것 같네.”
마치 새우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태하.
지금은 약간의 근 손실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조금의 수분이라도 더 빼야 한다.
식사를 하더라도 수분이 거의 없는 식단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데다 그나마 먹는 보충제도 제한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땀을 빼고도 물을 마실 수 없어서 미칠 노릇이었다.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는 태하.
쪼륵.
찔끔 나오고 만다.
수분을 극한으로 빼다 보니 오줌으로 나갈 수 있는 수분에도 한계가 오는 것이다.
“이걸 밥 먹듯이 하는 선수들을 보면 정말 경외감이 절로 드는군.”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수분을 말리지는 않기 때문에 태하는 물을 갈구하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껴 본다.
이래서 보디빌더들은 신장이 금방 망가지거나 간에 자주 손상을 입는다.
역설적으로 몸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까지 건강한 행동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세상은 보통 하나를 취하기 위해선 하나를 내어 줘야 하지 않던가.
보디빌딩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다음 날.
태하는 컨디셔닝을 위한 기본 운동을 시작했다.
그저 다리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허벅지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몸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어이, 윤 코치. 저러다가 사람 죽는 거 아니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태하를 보며 용팔에게 핀잔을 주듯 한마디씩 한다.
허나, 용팔은 그에 굴하지 않는다.
“괜찮아요.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거든요.”
“……거참, 그놈의 비장의 무기가 뭔지는 몰라도 저렇게까지 해서 대회에 나갈 바엔 차라리 안 나가고 말지.”
진성 헬창들마저도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로 대단한 태하의 집념.
물론, 용팔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다.
저런 지경에 놓인 태하를 보는 것이 마음 편할 리는 없기에 용팔도 가슴을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는 태하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
태하는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서 컨디션 관리에 들어갔다.
호텔 헬스장에서 쇠질에 매진하는 태하.
웅성, 웅성……!
너무 목이 말라서 정신이 혼미한 게 아니라면 태하의 귓전으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태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괴물들의 향연.
“으후, 으후……!”
“……도대체 허벅지가 몇 인치야?!”
“어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서양의 헬창들마저도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로 엄청난 근매스.
바로 캐나다 쇼에 출전하는 선수들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태하의 눈동자에도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어때요? 진짜 엄청나긴 하죠?”
어느새 태하의 곁으로 다가온 한 남자.
태하는 그에게서 뭔가 청량감 같은 것을 느꼈다.
순간, 태하의 감각에 익숙한 것이 걸려들었다.
‘……차갑다. 하지만 따뜻해. 이거, 어디서 많이 느껴 본 기운인데?!’
바로 마이트가 가진 그 기운과 비슷했다.
“오늘 어디 운동 하세요? 이두?”
“……아, 네.”
다짜고짜 물어 오는 그는 붙임성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와 녹색 눈동자, 이목구비가 상당히 뚜렷해서 얼굴이 참으로 입체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거대한 몸집.
“반가워요. 란돌 피케스터입니다.”
“아아, 당신이 바로?”
수척해진 태하와는 다르게 란돌 피케스터는 제법 혈색이 좋았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정태하입니다.”
“드디어 만나다니! 팬입니다. 헬창 헌터, 너무나도 인상적이라 당신이 나오는 영상은 빠지지 않고 시청합니다.”
“하하, 그래요?”
악수 이후에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도 더듬거리는 손길은 아주 거침이 없었다.
아마 처음 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목도했다면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헬창끼리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장면이었다.
마치 개가 서로의 냄새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것처럼 헬창들은 몸을 더듬거리며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어우, 광배가?”
“어깨에 대포알을 박으셨네요!”
헬창들이 서로를 더듬는 건 그들이 절대 게이이거나 변태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서로의 근육에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한 두 사람은 별안간 마음을 놓았다.
진짜 헬창이라 통하는 게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컨디셔닝이 아주 잘되어 있네요.”
“……죽을 맛입니다. 수분을 다 뺐더니 근육이랑 가죽밖에 안 남은 느낌이랄까요?”
“세퍼레이션도 잘 잡으셨는데 데피니션까지 이렇게 만들기 어렵지 않던가요?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못 하겠던데.”
“아마 내년 대회는 못 나올 것 같아요. 아니, 나와도 절대 이렇게는 나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렇죠. 사람이 어떻게 이러고 1년을 더 살아요? 그건 건강에 해로워요.”
란돌 피케스터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괜찮아 보였다.
사실 태하는 란돌이 오스트리아에서 온 사람이라 좀 깍쟁이 같을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그건 단순한 편견이었던 모양이다.
“오늘 저도 이두 하는 날인데, 같이 하시죠.”
“그럼 그럴까요?”
어쩌다 보니 나란히 서서 덤벨컬을 당기고 있는 두 사람.
헬창들의 첫 만남은 오히려 술자리보다는 이렇게 두런두런 얘기나 나누면서 운동을 조지는 게 훨씬 만족스러울 것이다.
같이 올라가는 덤벨컬에 두 사람의 사이도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다.
“저 건강에 해로운 것들을 매일같이 먹다니. 저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뭐가요?”
“슈퍼 엠톨이요.”
순간, 태하가 란돌 피케스터를 스윽 쳐다보았다.
그러자 란돌은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이유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캐나다는 지금 슈퍼 엠톨 천국입니다. 헬파이어의 돈줄이 되어 주고 있죠.”
“헬파이어라니요?”
“파이어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서로 같은 계열의 단체인 것은 분명한 것 같더라고요.”
헬파이어, 태하도 어디선가 얼핏 들어 본 것 같기도 했다.
허나, 외국에서 활동하는 단체라서 그는 이미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파이어볼과 같은 레이드펀드이고 약물 제조 공장도 가지고 있죠. 아마도 엠톨에 대한 정보를 파이어볼과 공유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연구해 온 것 같아요.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보이는 저것들입니다.”
“으음……!”
란돌은 슈퍼 엠톨과 헬파이어에 대해서 생각보다 잘 아는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란돌 역시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케스터 씨도 혹시 슈퍼 엠톨에 대한 조사차 대회에 참가하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청룡방 쪽에서 수사를 한다고 해서요. 그래서 미뤘다가 이제야 대회에 나오게 되었네요.”
말투가 딱 길드에서 나온 사람 티가 팍팍 났다.
태하는 그의 행적이 다소 복잡하고 범상치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관에 소속되어 수사를 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소속된 건 아니고 그냥 의뢰를 받아서 일합니다. 말하자면 프리랜서죠?”
“프리랜서 조사관이라.”
“제가 이 슈퍼 엠톨을 조사하려고 3년 전부터 약물을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약물이요?”
“엠톨 계열 약물은 아니고요, 통상적으로 보디빌더들이 하는 스텍을 돌린 거죠.”
“그랬군요.”
모두가 슈퍼 엠톨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란돌의 몸은 상당히 좋았다.
헌데 저걸 일반 약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약이 잘 받는 체질이신가 보군요. 이런 몸은 솔직히 약으로 어떻게 될 게 아닌데.”
“하하, 맞아요. 보통 약물로는 이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기질이나 체질이 타고나야 하는 것 같고 체형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더군요.”
천생 무골이 존재하듯 헬스도 축복받은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유전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약물을 맞아 봤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허나, 란돌에게는 한 가지 비기가 더 있었다.
“물론, 저도 체질을 타고나지는 않았어요.”
“방금은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까요. 체질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저는 체질 반, 그리고 비장의 무기 반으로 이걸 만들어 냈습니다.”
“아아, 혹시……?”
태하는 스킬이나 각성의 특성을 생각해 냈다.
방금 전 란돌에게서 마이트 특유의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허나, 란돌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내저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미친놈들만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랄까요?”
“……미친놈들이요?”
“혹시, 유전자 박스라고 들어 보셨나요?”
“아니요. 전혀.”
란돌은 덤벨컬을 하는 도중에 태하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헬파이어와 엠톨에 대해 조사하다가 연구실을 하나 털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유전자 박스라는 것을 말입니까?”
“네. 그걸 우연히 주웠어요. 그 박스를 여는데 하필이면 연구소의 경비들과 싸우다가 생긴 상처에서 피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랬더니 상자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하더군요.”
“얼어붙어요?”
“제가 이중 속성을 가진 헌터인데, 하나는 목 속성이고 하나는 냉 속성입니다.”
피가 떨어졌는데 박스가 얼어붙었다.
DNA 박스라는 이름과 어쩐지 매치가 잘되는 느낌이었다.
“당신의 유전자 정보를 흡수한 건가요?”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 같았어요.”
“……헬파이어인지 뭔지 하는 놈들. 정말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었군요. 유전자 풀을 만들어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아무튼 간에 그 덕분에 한시적으로나마 근육 증가를 이뤄 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약물 옵션을 조금 추가한 것뿐이로군요?”
란돌 피케스터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보디빌딩 관련 약물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100% 모든 게 다 불법이라는 것도 아니지만요. 그런데 엠톨이 하도 막대한 부작용을 갖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의 과오는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네요. 아이러니하죠?”
“대의를 위해 저지른 과오라면 오히려 훈장 아닙니까?”
“훈장이라……. 한계를 뛰어넘은 덕분에 저는 지금 엄청난 부작용을 앓고 있어요. 신장도 기능이 많이 떨어졌고 간에도 이상이 생겼죠. 노 페인 노 게인이라는 말, 절대 틀리지 않았어요.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게 값진 법입니다.”
“흠…….”
“아무튼 간에 제가 당신을 이곳에 초대한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란돌 피케스터는 태하에게 금색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그 명함에는 ‘미국연방수사국 특수범죄수사대 제11부’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특수범죄수사대 11부면…….”
“그렇죠. 바벨탑과 관련된 수사를 하는 곳입니다. 프리랜서 조사관으로서, 또한 FBI의 수사대원으로서 협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역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태하에게 다시 악수를 건넸다.
그러자 뭔가 청량한 기운이 감돌더니 이내 손과 손이 전기로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찌릿!
역시 란돌 피케스터는 보통의 헌터가 아니었다.
“……설마, 당신이?”
“네, 맞습니다. 제3바벨탑의 수호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