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97화 (97/197)

097 몬스터 캐네디언(1)

오후 5시, 칼같이 루틴을 지켜 가며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헬창스.

그들은 요즘 태하의 보조자 역할과 함께 파트너 운동을 병행하느라 하루 종일 헬스장 귀신 신세다.

그런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정태하 씨?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경찰이요?”

헬스장에 경찰이 찾아올 일이 뭐 얼마나 될까 싶지만, 태하의 또 다른 직업은 청룡방 조사관이다.

그것도 무려 특사들을 총괄하는 특무관이 아니던가.

회원들은 그러려니 하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태하는 대충 운동을 정리하고 자신을 찾아온 경찰들을 맞이했다.

“경찰서에서 어쩐 일이십니까?”

“서가 아니라 청이요. 경찰청 본청 제9특수수사과 말입니다.”

특수수사과 중에서도 9과는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다른 곳이다.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본능적인 직감이 드는 이름.

태하는 그들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회원들 없는 곳에서 말씀하시죠.”

“그러는 게 좋겠죠?”

형사 4명은 태하를 따라서 고립관 지하 휴게실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와중에 형사들이 태하에게 물었다.

“최근에 아수라 길드 관련된 소식은 접하지 못하셨죠?”

“안 그래도 지금 최선을 다해서 추격 중입니다만, 도무지 꼬리가 잡히지 않네요.”

“아직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만…….”

한 장의 사진을 건네는 형사들.

그 사진 안에는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는 아수라 이용광의 모습이었다.

“……던전의 마귀?”

“잘 아실 겁니다. 특무관께서 직접 때려잡아서 저희 경찰에 인계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네, 그랬죠. 그런데 왜 이 사람이 피를 토하며 죽어 있어요?”

“저희들도 지금 그게 궁금해서 찾아온 겁니다.”

“흐음……!”

제아무리 이용광이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고 해도 그를 독살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눈치가 백단인 사람이 아니던가.

“부검 결과, 바실리스크의 독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실리스크면 한국에는 살지 않는데요. 그건 미국의 던전에 서식하는 놈 아닙니까?”

“그렇죠. 미국 로키산맥에 있는 북미 던전에 주로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꽤나 고층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아는데, 그 독을 추출해서 한국까지 들고 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한국 세관은 생각보다 검사 절차가 까다롭다.

과거에는 뒷돈 받아 가면서 짝퉁이고 마약이고 퍼다 날랐다고 해도, 이제는 그렇게 했다간 큰 사달이 나고야 만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번 사건은 보통의 밀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의 루트는 아닙니다. 어쩌면 각성자가 개입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요.”

“저희들의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특무관께서 보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수라 길드를 포함해서 태하의 머릿속에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2명 정도였다.

아수라의 잔당은 아직 화이트홀을 사용할 것이고 한라의 살수들도 화이트홀을 사용할 줄 안다.

“아수라와 한라 정도?”

“흠……. 혹시 다른 인물은 없으시고요?”

“다른 인물이라?”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태하의 뇌리로 한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무한의 소환술사였다.

“1명 있기는 한데, 그 정체는 잘 모릅니다.”

“……심증이 가는 인물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무한의 소환술사라고, 저번에 샌드타워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무한의 소환술사라? 그게 누군데요?”

“저도 정체는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군요……. 마주치긴 했는데 얼굴이나 뭐, 다른 건 모른다?”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요. 저도 멀리서 희미하게 신영만 봤거든요.”

경찰은 태하에게 명함 몇 장을 건네주었다.

으레 그러하듯 사건에 대해 생각나는 게 있다거나 새로 아는 게 생기면 연락을 달라는 것 말이다.

허나, 이번에는 조금 더 단도직입적이었다.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네, 그러죠.”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해도 되겠습니까?”

특무관은 경찰의 의뢰를 받으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한번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특수 9과에서 새로운 사건을 맡았는데, 이것 또한 조사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태하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전해 주었다.

그 겉면에는 ‘슈퍼 엠톨’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슈퍼 엠톨?”

***

태하가 올림피아 2연패에 도전해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훈련 후에 태하의 근육을 마사지로 풀어 주던 용팔은 그 이유를 듣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슈퍼 엠톨이라니요?”

“부작용을 없앤 신제품이랍니다.”

“엠비엠을 헌터님이 인수했는데 어떻게 엠톨이 또 나와요?”

“엠톨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발되었던 약물입니다. 그에 대한 정보는 파이어볼 정도면 충분히 취할 수 있었겠죠.”

“……하여간 범죄자들 대가리는 아주 그레이트하다니까. 이런 잔머리를 좋은 곳에 쓰면 얼마나 좋아?”

“허 참, 그러게나 말입니다.”

경찰의 조사에 의하면 국제보디빌딩연맹과 국제피트니스연맹 등에서 슈퍼 엠톨을 유통하거나, 이를 이용한 혼합 약물을 밀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완벽히 그 배후를 잡아낸다거나 용의자를 특정하기는 힘들겠으나, 범죄 자체는 상당히 명확했다.

슈퍼 엠톨의 샘플 일부를 경찰이 확보했던 것이다.

“캐나다에서 특히나 많이 돈다네요.”

“왜 하필 캐나다에서요?”

“캐나다는 운동 관련 약물이 불법은 아니거든요. 호주처럼요.”

“아하! 호르몬 요법을 통해 근육을 증량하는 게 합법인 것이군요!”

“일부 약물은 불법일 수도 있는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자체는 불법이 아니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주의 법령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요.”

“흠……. 그럼 지금 캐나다에서는 이 슈퍼 엠톨로 인해서 보디빌딩계가 아주 약판이겠네요?”

“그런 셈이죠.”

“허 참.”

“그런데 이번에 란돌 피케스터라는 선수가 초대한 대회가 바로 이 에메랄드 캐나다 쇼예요.”

“……하필이면?”

“그러게요. 하필이면 캐나다에서 나를 지목하다니?”

“뭔가 좀 이상하네요. 란돌 피케스터, 뭐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조사를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특사들에게 부탁을 해 놨어요. 이제 곧 정보가 도착을 때가 되었는데.”

이제 왼쪽 대퇴사두와 대둔근, 중둔근, 소둔근을 마사지한 후, 용팔은 장요근을 풀어 주었다.

장요근이 뭉치면 보통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꽉 뭉쳐 버리면 요통은 물론이고 운동 시에 가동 범위마저 줄어들게 된다.

특히 평소에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이 장요근이 뭉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하체 운동을 하거나 등 운동을 할 때에는 부상 방지를 위해 이 장요근을 반드시 풀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파앗!

장요근을 풀어 주던 용팔은 깜짝 놀라서 태하의 몸에서 손을 뗐다.

“허, 허억!”

허공에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린 것이다.

깜짝 놀란 용팔이 전투 자세를 잡았다.

“뭐, 뭐야?! 귀, 귀신이야?!”

“아니요. 사람이에요. 우리는 이 사람들을 청룡방 특사라고 부르죠.”

“……특사는 다들 이렇게 순간이동을 해요?!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순간이동이 아니라, 그냥…… 취미라고 생각하세요.”

“그, 그냥 취미가 뭐 저래요?”

“사람은 저마다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특사 ‘류’는 대낮에도 음달로만 다니고 멀쩡한 길을 놔두고 환풍구나 지하 수로를 통해 돌아다닌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데도 류는 이게 좋다면서 어둠 속을 거닐곤 한다.

그는 말없이 태하에게 몇 장의 A4 용지를 툭 던지더니 이내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A4 용지에는 란돌 피케스터에 대한 신상 정보가 나와 있었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고 오스트리아의 군대에 입대해서 4년간 장기 복무를 했네요. 그러고 난 뒤에는…… 종적이 묘연한데요?”

“종적이 묘연해요? 아니, 그보다도 뉴욕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어째서 굳이 장기 복무를 했데요?”

“흠, 그러게요. 그리고 또 다른 특이점은 이 사람도 헌터네요?”

“……헌터라고요?”

“얼마 전부터 제3던전에서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는데요.”

흔히 ‘냉혹의 던전’이라고 불리는 노르웨이의 제3바벨탑은 초급 몬스터부터 보스 몬스터까지 전 층의 몬스터가 냉 속성의 던전이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레이드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며 80층 이상은 영하 80도의 절대 혹한 지대라서 S급의 헌터 집단도 상성이 맞지 않으면 얼어 죽기 십상인 곳이다.

그런 냉혹의 던전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을 왜 우리는 몰랐죠?”

“이제 막 신성처럼 떠올랐다네요.”

“허어. 이 사람은 모든 게 다 제멋대로네. 뉴욕에서 군대로, 그리고 종적을 감췄다가 갑자기 던전으로? 심지어 이번에는 몸을 키워서 WABBA에서 IFBB로 전향했잖아요?”

“용팔 씨 말처럼 아주 노루뜀을 할 팔자가 아닌가 싶네요.”

“……악셀을 아주 갈지자로 밟는데요?”

한창 마사지를 받고 있던 태하에게 보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을 다다다 달려오는 보현.

“태하아아아아!”

“관장님?”

“큰일이야! 캐나다 대회 대진표 좀 봐!”

“대진표가 왜요?”

“작년에 자네한테 졌던 올림피안들이 다들 약 꽂고 대회에 다시 나왔어!”

약을 꽂는다는 것 자체가 헬스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구로 이용되는 옵션이 바로 약물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보현이 말하는 약은 그런 약이 아니었다.

“크기를 좀 봐! 이게 사람이야?!”

“……뭐야, 이게?”

태하의 1.5배는 될 법했다.

팔룸보이즘이 약간 보이기는 했어도 그것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온몸을 대포알로 도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운동으로는 절대 못 따라갈 정도의 경지인데요?”

“……젠장. 이번 대회에 괜히 나가라고 했나 봐! 요 베이비, 태하! 그냥 기권할까?”

“그럴 수는 없죠. 우리도 자존심이 있는데.”

“그래도 불법 약물을 저렇게 맥질하는데 우리가 굳이 나갈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저것들이 올림피아에 나온다고 생각해 봐. 너나 할 것 없이 저 슈퍼 엠톨을 꽂을걸?”

엠톨은 이제 IFBB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불법 약물이다.

만약 도핑테스트에서 약물을 사용하다가 적발되면 그대로 영구 제명은 물론이고 법적인 책임까지 져야 한다.

허나, 슈퍼 엠톨은 이름만 바꿔서 교묘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단속이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불법 약물이 판치는 무대라는 소리다.

그렇지만 태하는 이 대회에 나가 보기라도 해야 한다.

“잠입 수사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어요. 제가 캐나다 대회에서 패배해도 올림피아에는 나갈 수 있죠?”

“그렇기는 한데…….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낮아.”

평균 몸무게 160kg 이상, 이건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경지였다.

태하의 시즌 몸무게가 130kg 정도 된다는 것을 가정하면, 저들과 근육으로만 30kg 이상 차이가 난다는 소리였다.

절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나, 태하는 그래도 대회에 나갈 것이다.

단 한 가지, 그에게 유리한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엠톨은 아직도 약간의 부작용이 남아 있어요. 바로 데피니션과 세퍼레이션이요.”

“……데피니션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그럴 수밖에요.”

“지금도 수분 함량이 낮아. 더 뺐다간 무대에서 설 수도 없을걸?”

“괜찮아요. 제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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