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95화 (95/197)

095 던전용 드론(1)

이른 아침, 던전을 오르는 태하와 헬창스.

“자, 오늘도 제대로 한 건 합시다!”

“오케이!”

운동은 운동이고 사냥은 사냥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사냥하고 오후에는 운동을 시작해서 저녁을 먹기 전에 끝내는 것이 헬창스의 하루 사이클이다.

이런 지옥과 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싶지만, 그들은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고들 말한다.

레이드에 미친 헬창들에게는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가 아니던가.

헌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헬창이 있었다.

바로 윤정이었다.

그녀의 전투 조끼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원형의 장치들이 곳곳에 달려 있었고, 등에는 마치 군장처럼 생긴 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윤정 씨, 그게 다 뭐예요?”

“후후, 폐관수련의 결과라고나 할까요?”

동료들은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택티션이 폐관수련으로 머리를 굴렸다면 보통 전략을 공부했을 텐데, 이건 공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음. 심상치 않어. 도대체 던전에서 이제까지 뭘 했던 겨?”

“그런 게 있어요.”

던전에 들어서자 1층에서부터 그들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몰먼족의 족장 총총.

“나리! 이제 오셨냐요?!”

“총총, 그건 다 뭐야……?”

만약 미래지향적인 유니폼을 맞췄다고 한다면 아마 이랬을 것이다.

총총은 윤정과 같은 구조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크기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어느새 살이 쫙 빠져서 이제는 복근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더블바이셉 자세를 잡아 보는 총총.

“총총, 이제 나리들과 함께한다요! 약속했다요!”

“그래.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사냥은 장비빨이다! 박사 나리가 그랬다요!”

마치 관절마다 파란색 패치를 붙인 것 같은 이 장비들이 던전에서 도대체 무슨 용도로 쓰인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허나, 동료들은 윤정이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흠. 비장의 무기를 만들었나 보네.”

“칼을 바짝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럼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헬창들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놀란 탄성을 듣고 다닌다.

그만큼 인생 자체가 기행이라는 뜻이다.

그런 헬창이 장비 좀 만들었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자, 그럼 렛츠고우!”

70층까지 무사통과로 올라간 헬창스.

그들은 이제 던전의 상층부 중에서도 최상층으로 취급되는 71층에 발을 내디뎠다.

휘이잉……!

다소 스산한 분위기의 71층.

하늘은 보랏빛이었고 땅은 푸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나무는 다 시들어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고 주변에는 비석들이 즐비했다.

“생명이랑은 아예 상관도 없어 보이는데.”

“몬스터도 생명인데, 여기서 생존을 할 수 있는 건가요?”

70층부터는 뚜렷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

허나, 헬창스는 일단 부딪쳐 보는 사람들이다.

“갑시다!”

방패를 들고 무작정 전진하는 태하.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헬창스의 발걸음에 어쩐지 비장함이 느껴진다.

71층은 양쪽에 경사가 완만한 언덕이 위치해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서 걸어가야 하는 지형으로 되어 있었다.

언덕은 가시덤불과 무덤의 비석으로 꽉 차 있어서 하늘을 날아서 뛰어넘지 않는 한 지나갈 수 없었다.

한마디로 일방통행, 오로지 한길로만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퇴로 확보가 힘들 것 같은데. 택티션씨! 어떻게 하면 좋아요?”

태하가 묻자, 윤정은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제부터 퇴로 확보와 후방 지원은 우리가 합니다!”

“우리?”

“나와 총총, 2명이요.”

총총은 군장에 연결된 K-1기관단총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총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팔뚝에 핏줄이 툭 불거져 나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작은 털북숭이 람보를 보는 느낌이랄까.

움직일 때마다 대흉근이 꿈틀거리는 총총은 몬스터계의 헬창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총총, 뒤를 지킨다요!”

“생각보다 든든하네. 역시 훈련의 결과가 빛을 발하는 건가?”

그렇게 푸르죽죽한 오솔길을 거의 30분 넘게 걸었다.

허나, 몬스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71층에는 원래 몬스터가 없나?”

“흠, 그러게요.”

“……너무 조용해서 더 불안한데, 이거.”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데 생명체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니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우우우우……!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보랏빛 하늘은 늑대의 울음소리와 함께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해가 뜬 거였어?”

“그런데 해가 뜨고 지는 것치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것 같지 않아요?”

마치 형광들을 켜고 끄는 것처럼 낮과 밤의 전환이 지나치게 빨랐다.

이번에는 까마귀가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까아악, 까아악……!

까마귀가 울자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그야말로 추적추적 내려 푸르죽죽한 땅을 적시는 비에 옷이 젖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비는 보통의 비와는 뭔가 촉감 자체가 달랐다.

“미끌미끌한데? 이거, 오일 비슷한 그런 물질 같은데요?”

“그럼 하늘에서 기름이 내린다는 거예요?”

어둠과 기름.

그것을 뚫고 스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흐흐흐흐……!

어딘가 습하고 축축한 여성의 목소리, 그것은 남자의 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음탕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기가 빨리는 듯한 그녀의 웃음소리에 용팔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뭐, 뭐지? 혈류가 빨리 흘러요. 그, 그레이트한데?!”

짜악!

한나는 용팔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러자 용팔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헉!”

“정신 차려요! 저게 남자를 홀리네.”

희란은 구원자의 스태프를 들었다.

그리고 땅을 내리치는 그녀.

“홀리 라이트!”

신성한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자, 어두침침했던 사방에 빛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보이는 적의 정체.

우르르르르……!

저 멀리에서부터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불에 타서 화상을 입으며 죽어 간 지옥의 망자들과 같았고, 입에서는 유황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끄에에에엑!

“……뭐, 뭐야, 이거?!”

기이하게 뒤틀린 온몸, 그리고 일관성 없이 꺾여 버린 팔과 다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다.

아마 유황 지옥이 있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공격 시작!”

태하의 신호에 따라서 근딜이 탱커의 좌우 라인을 잡아 주었다.

서걱!

파멸자의 대검이 지옥의 망자들을 베어 냈다.

그러자 유황불이 일어나더니 파티를 덮쳐 왔다.

화르르륵!

“……제기랄!”

“홀리 가드!”

시기적절하게 신성한 방어막이 파티를 지켜 주었다.

만약 홀리 가드가 없었다면 그대로 화마를 뒤집어썼을지도 모른다.

“저 망자들 속에는 불길이 끓어오르고 있어요! 인두겁이 잘려 나가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유황이 터져 나오는 거죠!”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내리고 있는 이 기름비가 문제예요. 잘못하면 저놈들이 쏟아 내는 유황불에 우리까지 당할 수 있잖아요.”

마음껏 공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전투를 치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원딜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화공을 쓸 수 없다면 대량 살상 부문에서 다소 힘이 빠질 수도 있었다.

“일단 냉 속성으로 저놈들을 정리해 보자고요!”

“그럼 시범부터 좀 해 볼끄나?”

임혁수는 냉동탄을 적에게 쏘았다.

허나, 냉동탄은 적에게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적지 않게 당황하는 임혁수.

“뭐, 뭐여……?”

“이거 어쩐지 디버프 같은데요?”

“……디버프? 누가 디버프를 쓴다는 겨?”

이주현은 디버프를 주로 쓰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어디인지 알 수는 없으나, 누군가 광역 디버프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 근원지는 굳이 찾을 필요조차 없었다.

-우흐흐흐, 오늘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겠군!

-……저 남자들, 맛있어 보이잖아? 오늘은 정기로 파티를 벌일 수 있겠어!

중요 부위만 아주 살짝 가린 패션에 육감적인 몸매.

박쥐의 날개를 가졌으나 이 세상 미모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었다.

아주 남자를 잡아먹겠다고 작정한 듯한 그녀들.

“서큐버스……?!”

“서큐버스는 원래 꿈에서 정기를 빨아먹는 괴물 아니었어요?”

“아니, 잠깐만! 저 괴물들, 어쩌면 서큐버스가 정기를 뽑아먹어서 저렇게 된 거 아닐까요?”

“……허어! 저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도대체 몽마 서큐버스가 이렇게 막강한 군단을 꾸릴 수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허나, 지금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보다 이 상황을 돌파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스아아아아……!

발밑에서부터 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농밀하게 남성들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여자들의 손길과도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중앙일두근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남자들.

“……어, 어어……?!”

“못 살아! 정신 안 차려요?!”

“이, 이건 불가항력적인 거라고요! 그나저나 느낌이 진짜 그레이트하네!”

짜악!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한나와 희란.

그녀들이 한 대 치면 부풀어 올랐던 중앙일두근의 텐트가 수그러들었다.

“……뭐야, 이건 이거 나름대로 기분이 나쁜데?”

“허, 험험!”

다소 딱딱해진(?) 상태로 최전방의 몽마의 희생양들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버거울 지경인데 그 숫자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놈들을 쳐 죽일 때마다 불꽃이 일어서 희란의 정신력 고갈이 극심했다.

태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까미!”

-크르릉!

“정신 계열 마법에는 마계화가 최고지!”

까미는 이제 시베리아 호랑이를 압도할 정도의 덩치를 갖게 되었다.

아마 현존하는 고양잇과 생명체 중에서 까미보다 큰 동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만큼 레벨이 많이 오른 까미.

“서큐버스와의 정신력 대결이야. 할 수 있겠어?”

-크릉!

[Lv.70 마계화]

[친밀도: max - 완벽한 신뢰]

만약 자식 농사를 지었다고 친다면 까미는 그야말로 집안의 기둥뿌리를 통째로 새로 세울 정도로의 개천용이었다.

녀석의 등장만으로도 파티의 정신력이 회복되었다.

[패시브: 정신력의 오러]

[파티의 마력과 정신력을 빠르게 회복합니다]

까미는 최전방에서 자리를 옮겨서 희란의 옆으로 폴짝 뛰어갔다.

녀석은 희란의 볼에 자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그르르릉……!

“귀여운 것! 덩치가 커도 여전히 아깽이라니까!”

희란과의 친밀도가 특히나 높았던 까미는 그녀를 어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패시브: 환상의 짝꿍]

[‘희란’과 ‘마계화 까미’의 조합은 환상적입니다]

[마계화 스킬 레벨에 +20의 시너지가 더해집니다]

[희란의 스킬 레벨에 +20의 시너지가 더해집니다]

마계화의 정신 계열 마법에 스킬 레벨 +20이 더해지니 서큐버스의 정신 공격이 흐릿해진다.

끼기기기긱……!

서큐버스가 레벨 1의 몬스터라고 친다면 까미는 보스 몬스터 마계화를 70레벨까지 키운 것이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밀리다니?

-괜찮아.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아.

서큐버스들은 정신 공격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허나, 그 대신에 남은 마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기습이었다.

쿠르르르……!

후방과 측면에서 돌연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괴물들.

-끄에에에에에!

“기습입니다! 후방과 측면이요!”

“제기랄!”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

허나, 이 순간에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다.

“후후, 드디어 우리가 나설 차례인가!”

“가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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