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이스터에그(2)
모두들 열심히 쇠질에 매진하고 있는 오후.
윤정은 홀로 앉아 스마트워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특성: 멘탈리스트]
[각성 보너스: 웨이브(액티브), 커넥팅(액티브)]
[등급 판정: C레드]
다소 애매한 특성을 가진 각성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멘탈리스트라는 능력을 과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정신 조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흠…….”
그녀는 한참을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윽고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윤정.
“어라? 윤정 씨, 어디 가요?”
“헬창 헌터씨, 나 폐관수련 하러 가요!”
“무, 무슨 수련이요?”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 그러니까 당분간 찾지 마세요!”
“……이렇게 갑자기?”
“나중에 봐요!”
그 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앞뒤 다 자르고 본론만 툭 내뱉고 떠나다니.
태하는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싶었다.
오후 훈련을 끝내고 원판을 정리하고 있던 태하.
그런 그에게 익숙한 괴성이 들려왔다.
“요 베이비, 요!”
“관장님 오셨어요?”
“태하, 인터넷이 아주 난리야!”
“인터넷이요?”
“이번에 WABBA 챔피언 먹은 친구, 누군지 알아?”
“아하! 그 독일인이라는 보디빌더 말인가요?”
“그래, 그 광배가 아주 좋은 친구! 그 친구가 이번에 IFBB로 이적을 했다지 뭐야.”
“……오호, 그래요?”
“그 친구가 자네에게 아주 제대로 광역 도발을 시전했더군!”
태하는 보현 관장의 핸드폰을 통해 SNS상에서 자신을 언급하는 란돌 피케스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을 에메랄드컵에 초대하는 바입니다.
이 짧은 한 줄은 SNS를 강타하여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작년도 미스터 올림피아인 태하를 지명하여 초청한 것은 그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것이다.
지나가다가 그걸 본 용팔은 노발대발했다.
“……이 새끼가 언플을 아주 낫 그레이트하게 하네?! 헌터님, 도발에 넘어가지 마세요!”
“흠…….”
“어차피 작년도 미스터 올림피아는 포인트에 상관없이 올림피아에 나갈 수 있잖아요? 굳이 타 대회에 나가면서 심력, 체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죠.”
아무리 평소에 다이어트 상태가 좋다고 해도 대회에 나갈 정도의 컨디션을 만드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죽어라 수분을 말리고 체지방을 0%에 최대한 가깝게 줄이는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은 어쩌면 수명을 깎아 먹는 일일지도 몰랐다.
용팔은 괜히 힘을 뺐다가 올림피아에서 굴욕을 당하느니 나가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었다.
허나, 관장의 생각은 달랐다.
“으음, 그게 아니지. 태하, 올림피아 2연패, 도전할 거야?”
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태하는 보현 관장의 꿈을 위해서 올림피아에 나갔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어도 자신의 명예욕을 제자가 채워 주었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태하가 이 업계에서 말하는 명예, 그리고 돈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아. 올림피아에서 1회만 우승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들 하거든. 헌데 태하는 미스터 올림피아가 되었어도 상금은 기부했고 PT 수업료도 그대로 받고 있지. 이런 경우는 드물어.”
“하하, 명예라. 그래요. 저는 솔직히 명예에는 별 관심 없어요. 그저 필요에 의해서 대회에 나가는 거지. 보현파의 문하생을 늘릴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묻는 거야. 굳이 나갈 이유가 없는데 다시 올림피아에 나갈 것인가?”
대사형의 오러를 위해서라면 대회에 나가는 것이 옳다.
허나, 이제는 굳이 IFBB 프로로서 챔피언을 노릴 이유까지는 없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제자는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하는 올림피아 대회에 나갈 것이고 란돌 피케스터의 도전도 받아 줄 생각이었다.
“저를 대사형으로 우러러보는 친구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으음……!”
“용팔 씨, 미안하지만 저 사람의 도발에 넘어가 줘야겠어요. 도발을 걸었는데 대사형이 되어서 뒤로 물러나면 되겠어요?”
용팔은 가만히 태하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태하는 단순히 자신과의 싸움만을 거듭하는 보디빌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케이! 갑시다, 브로! 저도 함께 갈게요! 이번에는 트레이너 겸 세컨으로요!”
“고마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브라더가 트레이너가 되어 준다면야!”
“대신 제대로 갈 겁니다. 아주 그레이트하게!”
“그럼 좋죠!”
“좋았어! 오늘부터 지옥 훈련입니다!”
보디빌딩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태하보다 용팔이 더 뛰어날 것이다.
더 오래 운동을 하고 공부한 것은 태하이지만 용팔은 오로지 한 가지, 보디빌딩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언가에 집착하고 한길만 파는 용팔은 오히려 태하보다 훨씬 집요했던 것이다.
“식단부터 운동법까지,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고마워요! 대신 우승 상금은 전부 용팔 씨 드릴게요.”
“오케이! 그럼 관장님이랑 반반 나누는 걸로 하죠 뭐.”
보현 관장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으하하하! 돈? 그런 건 다 허상에 불과하지. 난 돈 필요 없으니 너희들이 합심해서 대회를 공략하는 걸 더 보고 싶어. 힘내자고, 마이 차일드들아!”
“넵!”
***
사람들은 과연 괴물이 괴물을 트레이닝 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헌데 이건 단순히 괴물이 괴물을 트레이닝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솨아아아아……!
거칠게 쏟아붓는 빗줄기, 그리고 날이 바짝 선 바람까지.
오늘은 폭우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파워 런지!”
“후욱, 후욱……!”
“렛츠 고우, 브로!”
온몸에 납이란 납은 다 달아 놓고 중장비 타이어까지 굴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태하.
심지어 타이어는 보통 타이어도 아니었다.
타이어 속에는 납덩어리가 꽉 차 있어서 그것이 굴러갈 때마다 헬스장 앞마당이 쿵쿵 울려 댔다.
쿠웅, 쿠웅!
스킬 보너스를 다 빼고 오로지 점진적 과부하만 남겨 놓고 트레이닝을 하는 태하.
그러니까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간 후 타이어를 굴리고 다시 일어나서 반대 발로 런지를 하는 태하.
이렇게 연속 동작을 해 주면 대퇴사두는 물론이고 대퇴이두, 특히나 태하의 약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둔근을 꽉 채워 줄 수 있다.
“둔근을 최대한 이용하세요! 물론 코어도 꽉 잡아 주시고요!”
“후우, 후우!”
“코어에 힘! 힘을 줘요!”
“으으으윽!”
굳이 비가 내리는 날까지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오히려 용팔은 오늘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다.
비바람이 저항을 더해 줘서 트레이닝의 강도가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아무리 비바람을 맞아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지 않는 이상, 감기에 걸릴 일은 없다.
슈퍼 백신을 맞지 않았던가.
감기 걱정 없이 미친 듯이 타이어를 굴리고 런지를 해 대는 태하.
심지어 반대로 올 때에는 원레그 데드리프트를 섞어 주었다.
“대둔근에서도 위아래, 극상부를 타깃으로 잡으세요!”
“으윽, 으윽!”
“자극이 풀려요!”
그는 근전도 기능이 있는 팔찌와 조끼를 입혀 놓고 태하의 온몸 구석구석에 어떤 자극이 들어오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물론 용팔도 태하와 함께 비를 맞으며 독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허나, 그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연결 고립이 있는 한, 이따위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이, 윤 코치! 그러다가 사람 잡겠어!”
“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같이 하실래요?!”
“……아니, 미안해!”
체육관의 고인물 아저씨들마저도 뒷걸음질 치게 만들 정도로 용팔의 트레이닝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허나, 운동의 효과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운동이 끝난 후, 엉덩이와 하체를 보니 핏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혈관이 도드라져 있네요. 심지어 엉덩이에도요.”
“……브라더,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자, 이걸 마셔요.”
태하는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발주한 라이프스톤 보충제 ‘헬친워터’를 마셔 주었다.
헬친워터는 일반적인 보충제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회복 속도 증가와 근 손실 방지, 근 성장의 효과를 가진 만능 보충제다.
던전에서는 이것을 마시면 포션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였다.
하지만 적어도 보충제로서의 효과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체내 활성산소 포화도가 벌써 내려가네요. 허어, 코르티졸이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어요. 이거,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인데요?”
“오호, 그래요?”
코르티졸은 인간이 피로감을 느낄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물질이다.
이것은 근육 합성을 방해하고 운동 수행 능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생활의 질을 떨어뜨리고 근 손실을 초래할 수 있게 만든다.
지나친 운동, 휴식이 없는 고반복은 이 코르티졸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헬친워터 하나로 해결한 것이었다.
“……어라? 진짜 피로감이 거의 없네. 고농도 타우린을 마신 느낌이랄까?”
“그래요? 이것 참 그레이트한 발견이네요!”
“그럼 2차전 뛰러 가 볼까요?”
“당연하죠! 이제 몸 풀었으니까 본세트 들어가야죠!”
보디빌더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회복 속도와도 관련이 있다.
몸을 크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근육의 미세 손상과 회복을 통해 이뤄지는 것인데, 회복 속도가 떨어지면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 줘도 소용이 없다.
아직 근육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운동을 해 봤자 커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헬친워터에 점진적 과부하 스킬이 있는 한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2차전을 뛰는 동안 몸이 가뿐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예 운동을 새로 시작하는 것 같네?”
“오호, 좋은데요?”
“뭐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당연히 스쿼트!”
“그럼 스콰아아앗……!”
“……라고 할 줄 아셨죠? 아니요, 이번에는 선피로를 이용할 겁니다.”
“스쿼트를 치는데 선피로를 도입한다고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헌터님은 가능할 거예요.”
이미 밖에서 한 운동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선피로를 대입한다는 것일까?
선피로라는 것은 근육에 미리 피로도를 쌓아서 본운동에서의 타격치를 늘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스쿼트를 한다고 치면 그에 앞서서 레그익스텐션으로 대퇴사두에 타격을 주는 형식이다.
이렇게 선피로를 주면 같은 무게를 쳐도 그 타격치 자체가 달라진다.
“차원이 다른 타격감을 느낄 수 있을걸요?”
한편.
고립관에서 그 두 사람을 몰래 촬영하는 인간이 있었다.
SNS에 이 영상을 올리면 조회 수 대박을 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오, 저런 괴물이 다 있다니!”
이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이며 도둑 촬영은 민사, 형사상 책임까지 져야 할 수도 있는 분명한 범죄이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나였다.
“내 저걸 그냥!”
“……베이비, 그냥 냅둬.”
“우리 전략을 노출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한나를 말리는 보현 관장.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건 어쩌면 상대방이 조바심을 내게 만들어 줄지도 몰라!”
“조바심이요?”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있지. 보디빌딩은 어떤 운동이라고?”
“누가 더 미친 놈인지 겨루는 거라고 하셨죠.”
“그래! 지금 태하를 봐 봐. 같은 보디빌더인 한나가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지?”
“……흠, 확실히 그건 그렇죠.”
“저 운동 영상을 보잖아? 아마 상대편은 더 미칠 노릇일걸?”
과연, 누가 더 미친 놈인지 겨루는 자리에서 태하는 란돌이라는 미친놈을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