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이스터에그(1)
몰먼은 지하에서 산다.
그들이 살아갈 터전을 닦자면 중장비는 반드시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몰먼들은 중장비를 만들어 냈다.
부아아앙!
굉음을 내면서 달려오는 초대형 드릴.
태하와 헬창스는 그야말로 입을 떡 벌릴 수밖에는 없었다.
“……뭐냐, 저게?”
“아니, 도대체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 아니, 그보다 던전에서 장비를 굴릴 수 있는 거였나?”
총총은 중형 트럭만 한 초대형 드릴을 굴리면서 외쳤다.
“총총이 왔다요! 나리들, 갑시다요!”
“총총!”
“타시라요!”
의기양양한 총총의 표정에 이끌려 마치 홀린 듯 드릴에 올라탄 태하와 동료들은 그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윤정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듯이 물었다.
“총총, 드릴은 내연기관에 의해서 돌아가는 거야?”
“아니다요! 코어를 연료로 한다요!”
“아, 그래! 최근에는 동력 장치를 내연기관으로 만들지 않지! 아니지, 잠깐만. 보통 중장비에는 내연기관이 들어가지 않나?”
“중장비도 작은 코어로 굴릴 수 있다요!”
“……그게 가능하다고?”
코어는 그 크기에 따라서도 가격의 등락 폭이 크다.
그 때문에 덤프트럭 한 대를 굴릴 정도의 코어를 수급하자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만약 소형 코어로 중장비를 굴릴 수 있었다면 물류업계는 그야말로 앉아서 돈을 버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허나, 총총은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것이다.
우와아아앙……!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을 내면서 땅을 파 내려가는 초대형 드릴 몰먼호.
몰먼호의 여정은 던전의 바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오로지 앞으로만 저돌적으로 파고 나가는 몰먼호야말로 상남자의 표상이라 할 만했다.
“그나저나 던전 바닥이 꽤나 깊네. 이 정도로 깊은 줄은 몰랐는데.”
태하의 읊조림에 한나가 답을 주었다.
“내가 말했잖아요. 던전은 차원과 차원을 나눠 놓은 거라고. 그러니까 층간의 길이를 단지 계단의 길이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으음……! 그래서 별의별 광물이 다 있다고 했던 것이로구나.”
블루샌드는 단독 사용만으로는 성형 및 양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때문에 합금이나 시멘트 반죽에 섞어서 양생을 시키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천연자원의 양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어쩌면 자원 고갈의 문제를 여기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봐, 총총.”
“네, 나리!”
“여기서 채굴하는 자원도 리젠이 되나?”
“물론이다요! 던전의 모습은 특별한 이상이 있지 않는 이상은 계속 복구가 된다요!”
“……오호, 그래?”
정말 신선하면서도 대단한 발견이다.
이 세상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던전에서 채굴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허나, 당장은 채굴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런데 채굴은 못 하겠군. 외부로 반출시킬 방법이 없으니.”
“맞아요. 던전에 구멍을 내지 않는 이상에야.”
몰먼호는 아무리 단단한 암석이라도 쉽게 뚫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딱딱한 곳에 가로막혔다.
웨에에에엥……!
모터가 헛도는 소리가 들린다.
“몰먼호가 못 뚫는 물질이 있다요!”
“그런 물질도 있어?”
“아무래도 암석은 아닌 것 같다요!”
지층을 뚫고 들어갈 정도인데 드릴이 뚫지 못하는 것이 있다니.
저 벽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태하는 드릴에서 내려 단단한 벽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두근, 두근……!
“벽이 아니야. 이거, 가죽이나 무슨 껍질 같은데? 체온이 느껴져요.”
“……체온이 느껴진다고요?”
“뭔가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리고요. 저 안으로 혈액이나 체액이 흐르고 있다는 소리죠.”
“허어, 그럼 이게 그 몬스터?”
“대단하네. 이렇게 아래까지 내려와서 자리를 잡아 두었다니. 도대체 선인들은 어떻게 이 땅을 뚫고 아래까지 내려와 몬스터를 잡았던 거지?”
분명 청룡의 헌터들은 70층까지 밀고 올라가서 신선단을 만들어서 보급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옛날부터 선조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서 여기까지 내려왔었단 말인가?
태하는 일단 뭐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이 단단한 껍질부터 어떻게 해 볼 작정이었다.
“이것부터 어떻게 해 보자고요.”
“이걸 어떻게 하자고요? 용접으로도 안 뚫릴 텐데.”
“부수면 되죠.”
“……뭘 어쩐다고요?”
“다들 잠시 물러나 주세요.”
“허어! 정말 주먹으로 부수려고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 단단함이었다.
한나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맨손으로 뚫는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 갑니다!”
“……못 살아, 내가!”
“흐어어업!”
부우우웅……!
주먹을 내지르는 태하.
그의 주변으로 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쐐에에엥!
처음에는 헬창스도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가 점차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내지르는 그의 펀치에 의해 주변이 소용돌이칠 정도로 권풍이 몰아쳤으니, 안 될 것도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쿠우우웅!
묵직함을 넘어서는 파괴적인 펀치.
마치 미사일이 떨어져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엄청난 펀치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껍질은 깨지지 않았다.
허나, 어쩐지 모를 균열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끼기기긱…….
“방금 금 가는 소리가 들렸죠?!”
“맞아요!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게 틀림이 없어요!”
“대장! 내가 배리어를 칠게요! 치세요!”
저게 터지면 안에서 뭐가 쏟아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허나, 희란과 함께라면 문제없었다.
“간다앗!”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큰 반동과 협응근의 사용이 이뤄졌다.
스스스스……!
준비 동작만으로도 주변의 기류가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허리를 비틀어서 상체의 회전 반경을 확보하고 근육의 탄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준비 동작 이후.
태하는 힘껏 허리의 탄성을 풀어냈다.
“허어어업!”
콰아아아앙!
펀치가 제대로 작렬하면서 드디어 단단하던 갑각이 깨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오……!
갑각이 깨지고 난 뒤에 보이는 풍경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지하에 숨겨진 이 거대한 둥지 안에는 마치 생명체로 만든 도시가 들어선 듯, 모든 장기들이 건물처럼 자리 잡아 생명체를 품고 키우며 진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의 마을쯤 되는 모양인데.”
“살아 있는 도시라니. 정말이지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네요.”
“그나저나 심장부는 어디일까요?”
어딘가에서는 심장이 혈액을 공급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 코어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헬창스가 보아 왔던 코어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임이 분명했다.
일행은 이주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닥터, 혹시 아는 거 없어요?”
“흠……. 마계화나 킬러비 네스트 같은 것들을 해부해 보면 지금과 같은 구조가 보이긴 했어요.”
“아아, 킬러비 네스트!”
“그것의 확장형으로 생각한다면…….”
이주현은 자신이 딛고 있는 바닥을 탁탁 발로 찼다.
그러자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쏠렸다.
두근, 두근……!
바닥은 잔잔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울렁임이 있을 때마다 바닥의 색이 빨개졌다가 까매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혈액을 펌핑하기 위해서 수축할 때에는 붉어졌다가 다시 확장될 때에 까매지는 겁니다.”
“그럼 이 바닥이 심장이라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이 거대한 것이 코어라는 거잖아요?”
어지간한 축구장 2개만큼은 될 법한 크기의 바닥, 그곳을 차지하고 있을 코어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과연 그걸 인간이 흡수할 수 있을까 싶었다.
허나, 태하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적당한 방법을 강구해 냈다.
그것은 바로 협력.
“홍아!”
-짜잔!
태하의 부름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오는 홍이.
이제 홍이의 모습은 중학생쯤 되는 소녀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홍이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내가 지금부터 코어를 빨아들일 거야. 이 힘을 모두에게 나눠 줄 수 있어?”
-헤헷, 나 사랑해?
“당연하지! 내가 키웠는데. 넌 내 딸이나 마찬가지야.”
-좋았어, 간다앗!
홍이는 아빠나 다름없는 태하를 위해 까미, 메이지 등 그의 권속이라 할 수 있는 모두에게 가지를 뻗어 나갔다.
[신수 스킬: 연결 고립]
[모두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서 에너지의 손실 없이 전송합니다]
스킬명이 굳이 연결 고립인 이유는 에너지의 손실이 없는 고립 전송, 그것은 연결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태하는 거침없이 스트랩을 뻗었다.
“자, 간다!”
퍼어어억!
두껍고 질긴 둥지의 바닥을 뚫고 태하의 스트랩이 들어갔다.
다이아몬드 강도의 몇 배나 되는 강철도 뚫는 스트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둥지 전체를 떠받치고 있던 코어가 태하에게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23]
[키메라 소굴의 스킬을 약탈합니다]
[두뇌와 특성을 약탈합니다]
[몬스터 도감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약탈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홍이는 그것을 태하의 동료이자 권속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에너지는 수월하게 분산되어 모두에게 잘 저장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는 다른 뭔가가 태하의 인벤토리에 저장되었다.
[아이템: ???가 인벤토리에 저장됩니다]
이번에도 이름이 물음표다.
아이템은 알의 형태인데, 그것을 잘 품으면 부화가 된다는 식인 것 같았다.
“……우리, 이긴 거예요?”
“오옷, 그런 것 같아요!”
드디어 70층을 돌파했다.
다시 초대형 드릴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헬창스와 총총.
그들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우오오오! 70층을 돌파했어! 대규모 레이드 없이!”
“헬창스, 헬창스……!”
태하는 총총을 번쩍 안아 들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총총이었기 때문이다.
“총총, 앞으로는 너도 명예 헬창스야!”
“그럼 총총도 레이드에 나갈 수 있는 거냐요?!”
“그래! 같이 가자!”
“헤헤, 총총도 레이드 간다요!”
클리어는 언제나 기분이 좋게 만들어 준다.
또한 미션을 클리어하면 빵빵한 보상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임무 완수 보상으로 Lv.70으로 레벨이 조정됩니다]
[보상으로 ‘이스터에그 부화기’가 주어집니다]
[신규 퀘스트 2개가 발생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동료들과 함께 80층을 돌파하세요]
[서브 퀘스트: 이스터에그를 부화시키세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하.
“이스터에그는 또 뭐지?”
“그게 뭔데요? 부활절 계란?”
“흠. 글쎄요.”
“계란이면 프로틴 아니에요?”
“그럼 좋은 건가?”
“그렇겠죠! 프로틴치고 나쁜 건 없잖아요?”
“하긴!”
용팔의 다소 황당한 결론에 태하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한나는 그런 둘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으이그, 이 프로틴 괴물들아! 내가 못 살아. 이스터에그는 그런 의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뭔지 알아요?”
“이스터에그는 보통 프로그램 개발자가 몰래 숨겨 놓는 거잖아요.”
“던전은 프로그램이 아닌데요?”
“프로그램과 비슷하긴 하잖아요. 원래는 이걸 병사 양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감옥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걸 설계한 사람도 있겠죠.”
“아하! 그럼 치트키, 뭐 그런 건가?”
“보통은 프로그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걸 숨겨 놓죠.”
“상관없는 것이라…….”
“정말 전혀 엉뚱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한창 이스터에그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고 있던 때였다.
끼이잉……!
“……어? 헬창 헌터씨! 이거 뭐예요?!”
“헛, 각성이다!”
환한 빛을 내뿜는 그녀.
바로 윤정의 각성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