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92화 (92/197)

092 균열(2)

-끼에에에엑!

귓전을 찢을 듯한 괴성, 그것을 뿜어내는 것은 사람의 얼굴에 거미의 몸통과 다리를 가진 몬스터였다.

아파트 10층 크기의 몬스터.

그것이 등장하자마자 사방으로 보라색 크림 같은 것이 퍼지더니 온 땅을 뒤덮었다.

“……독성 물질?!”

“허어! 그럼 몬스터 위에 균열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나?”

“화이트홀이 생기면 몬스터는 강력해진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그것과 가장 가까이 있는 몬스터는 어떻겠어요?”

“아수라 길드는 퇴각한 게 아니라 70층의 몬스터를 봉인하고 힘이 다 빠져서 어쩔 수 없이 탑을 내려간 겁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해치우죠?”

그나마 지금은 희란의 배리어 덕분에 버티고 있다곤 하지만, 앞으로 불과 몇 초 이후의 상황조차 예상하기 힘들었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촤라라락!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거미 알.

그것은 땅에 뿌리를 박더니 독극물을 쭉쭉 빨아들여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을 깠어?”

“아주 점입가경이군그래!”

거미의 알에서는 애벌레가 태어났다.

뿌리를 박은 지 불과 30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 기세라면 5분 이내에 천 마리도 넘는 군단이 생성될 것이 분명했다.

“퇴각 말고는 답이 없겠는데요?”

“퇴각했다가 올라오면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그 전에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잖아요.”

인간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받는다.

하늘을 나는 새도 땅을 힘차게 딛고 올라서야 날갯짓을 할 텐데, 지금은 아예 땅을 밟을 수조차 없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태하.

그런 그의 뇌리에 뭔가 번뜩이는 한 가지가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독성 물질이라는 것이 결국 내성만 갖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흠. 확실히 독이라는 건 내성이 생기면 타격을 줄 수 없죠. 이론상으로는.”

“디버프 닥터의 스킬이요! 그걸 전제로 깔고 돌격하면 내성이 생길 수 있지 않겠어요?”

“아하, 그렇지! 마침 레벨업을 해서 스킬이 많이 생겼어요. 이야, 타이밍 기가 막히네!”

이주현은 아마 오늘을 위해 각성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시기적절했다.

[디버프 닥터: 이주현]

[레벨 및 등급: Lv.32, C그린]

[스킬 및 성향: 디버프, 패시브형 버프]

[적용 버프: 대사형의 오러, 점진적 과부하, 인연의 사슬]

점진적 과부하와 인연의 사슬, 대사형의 오러는 환상의 앙상블을 보여 준다.

디버프 닥터의 시드 스킬인 ‘슈퍼 백신’에서 뻗어 나오는 막강한 패시브형 버프들이 시전되었다.

“자, 한 방씩 갑니다!”

[패시브형 버프: 내성 증가]

[특정 물질에 대한 내성을 증가시킵니다]

[독에 대한 내성: 350%]

독성 물질에 대한 내성이 3.5배 증가했다.

이제 어떤 물질이 몸을 침투하더라도 거뜬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땅에 발을 디뎌도 괜찮아요!”

“좋아, 갑시다!”

대열을 갖추고 전진하기 시작하는 헬창스.

독성 물질에 대한 내성이 생기니 자신감도 절로 붙었다.

허나, 독성 물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해도 저 엄청난 머릿수가 문제였다.

심지어는 그 자리에서 진화를 거쳐 다양한 DNA를 가진 괴물들로 분화하기까지 했다.

-쿠오오오오……!

“오우거……?”

“아니, 잠깐만. 이 자리에서 계속 진화를 할 수 있다면 DNA 샘플만 확보한다면 거의 무한으로 개체 특성이 분화된다는 거잖아요.”

“백선 어르신은 도대체 이런 괴물들을 어떻게 뚫고 80층을 넘어선 거지?”

“저기 봐요! 와이번도 있어요!”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의문점은 다른 층에 있는 몬스터의 DNA를 어떻게 채취했느냐, 바로 그것이었다.

허나, 백 마디 말보다는 일단 싸우고 보는 것이 헬창스의 스타일에 맞았다.

“에라, 모르겠다! 저놈들도 점진적 과부하를 좋아하나 보죠. 자, 갑시다!”

방패를 강하게 움켜쥔 태하가 든든히 파티의 앞을 막아섰고, 근딜들이 그 양옆을 지키면서 최전방의 전선이 탄탄하게 구축되었다.

그 뒤를 이어서 원딜들이 공격을 날려 댔다.

핑핑핑……!

-크웨에엑!

“다행이에요, 헌터님! 아직 진화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갑각이 얇아요! 약점도 많고요!”

“오호, 그래요?”

“게다가 행동 패턴도 아주 단순하고요.”

용팔은 궁딜 생활을 계속하면서 전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행동 패턴을 추적,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피융!

화살을 날려서 최후방의 몬스터를 공격하는 용팔.

“자, 보세요. 한 놈이 자극을 받으면…….”

-크아아아아……!

“일렬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내려오죠.”

마치 강력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의 무조건반사처럼 몬스터들은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태하는 파훼법을 찾아냈다.

“썩은 슬라임!”

-으하하! 대장, 드디어 내가 필요해진 거야?! 어떤 놈들이야?! 어떤 놈들이 감히 우리 대장을 괴롭혀?!

“저 괴물딱지들 보이지?”

-그럼! 아주 잘 보이지!

“저 괴물들을 말려 죽일 살충제를 만들 수 있겠어?”

-살충제? 그건 내 전문이 아닌데.

“……빌어먹을, 그럼 네 전문이 뭔데?”

-질병이잖아, 질병!

“질병……?”

-잘 봐, 예를 들어서…….

스스스스!

라이먼트는 아까부터 날카로운 칼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는 변형 오우거의 몸통에 병원균을 쏟아 냈다.

그러자 오우거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우으으으으…….

라이먼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흐흐흐! 봐, 이런 거지!

“오호, 그럼 광역기로 이걸 시전할 수도 있는 건가?”

-당근빠따 아니야?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긴 해.

“문제가 뭔데?”

-저 거미 괴물, 저게 문제야. 저놈은 나보다 레벨이 높거든. 그래서 스킬을 쓸 수 없을 거야.

“레벨이 낮아서 안 통한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태하.

그러다가 그의 눈이 저절로 향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디버프 닥터 이주현이었다.

“닥터! 썩은 슬라임이랑 협업 좀 하실래요?”

“썩은 슬라임……? 라이먼트 말이에요?”

“디버프 닥터의 주요 스킬이 역병이잖아요. 라이먼트와 결합하면 시너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데.”

“아아! 좋아요! 해 볼게요!”

태하는 이주현에게 라이먼트를 토스했다.

“받아요!”

-……내가 물건이야?! 왜 하필이면 의사에게 역병 전문가를?!

터억!

이주현의 팔에 달라붙은 라이먼트.

헌데 막상 둘이 붙으니 느낌이 제법 괜찮은 모양이었다.

-오호, 좋아, 이거!

“엄마야, 이게 무슨 일이람! 스킬 증폭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 이게 진짜지!”

[패시브: 환상의 짝꿍]

[동료와 찰떡궁합인 몬스터를 매칭시키면 각자의 스킬 레벨에 상응하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역병에 대한 시너지 스킬: 라이먼트의 역병, 라이먼트의 질병, 라이먼트의 나약함, 라이먼트의 쇠약]

[역병 Lv.85]

레벨 85의 역병이면 70층의 몬스터쯤은 그 자리에서 몸살을 앓다가 사망하고 만다.

한마디로 85층까지는 무사 안전 프리패스라는 소리다.

-우웨에에엑……!

“몬스터들이 구역질을 하네요. 열도 좀 나는 것 같고.”

“후후, 전형적인 독감 바이러스에 노로 바이러스의 특성을 섞었어요. 아마 싸울 힘은커녕 서 있을 힘도 없을걸요?”

의사가 역병을 만드는 만큼 그 디테일함은 이루 말할 필요도 없이 완벽했다.

만약 이걸 PK에 쓴다면 어떻게 될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쿠헥, 쿠헥!

사방팔방에서 몬스터들이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남은 것은 보스 몬스터인 거미 괴물을 해치우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저놈은 어떻게 해치울까요?”

“방법이 있죠.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홀딩기를 쓰는 겁니다.”

“그게 뭔데요?”

“우울증이죠.”

“……우울증?!”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이 극대화되는 우울증.

라이먼트의 특기 중에 하나인 나약함이라는 스킬에 정신과 질병인 우울증을 섞어 주면 몬스터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흐에에에…….

“눈을 감았네?”

“중증 우울증이네요. 무기력감과 좌절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겠죠.”

“……무서운 병이네요.”

“우울증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생명체라면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니 문제겠죠?”

태하는 거미 괴물의 중심부에 스트랩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놈의 코어가 태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22]

[키메라: 스파이더 퀸의 스킬을 약탈합니다]

[두뇌와 특성을 약탈합니다]

“키메라……?”

“이놈이 키메라였다고요?”

“어쩐지. 온갖 몬스터가 죄다 짬뽕되었다 했더니. 키메라 중에서도 최악의 키메라였네요.”

이제 드디어 70층을 클리어했나 싶었다.

허나, 71층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임무 완수에 대한 보상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클리어 조건은 달성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뭐지? 클리어된 거 아니었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있듯, 어디엔가 놈들의 뿌리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윤정은 어렴풋이 놈들의 본거지가 지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둥지, 둥지가 있을 거예요. 아마 그건 깊숙한 지하일 거고요.”

“지하……?”

“우리가 처음 놈과 맞닥뜨렸을 때를 생각해 봐요. 지하에서 산이 솟아났잖아요?”

“아아! 그랬었죠!”

“그리고 군락을 이루는 놈들의 특성상 둥지는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짓기 마련이에요. 전장 한복판이 아니라요.”

“젠장……. 일이 어렵게 되어 버렸네요. 언데드 군단을 동원해서 삽질이라도 해야 할까요?”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우헤헤헤! 몰먼호다요!”

“……총총?”

***

서울 남부구치소 안.

형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사건을 조사 중이다.

그곳을 찾은 경찰청 본청 제9특수수사과장 박찬수 총경은 천천히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본청 제9특수수사과는 몬스터 및 헌터 관련 범죄를 수사하는 특별 팀으로서 헌터 출신 형사들이 많은 특이한 집단이다.

“……무슨 독?”

“바실리스크라고요. 바벨탑에 사는 몬스터입니다.”

“알아. 바실리스크.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한국에 살지 않잖아?”

과학수사대는 이용광이 바실리스크의 독에 의해 사망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찬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박찬수 총경은 사법연수원 출신에 과거 헌터로 활동했던 이력도 있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기에 바실리스크의 독은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독극물을 밀반입시킨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됩니다.”

“젠장, 그래서. 타살이야, 자살이야?”

“그게…….”

침입의 흔적은 당연히 없었고 CCTV의 영상 역시 깨끗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살이건 타살이건 범행에 사용된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독을 주입한 흔적 또한 찾을 수 없었다.

“현재로선 타살도, 자살도 아닙니다. 단정 지을 수 있는 단서가 아무것도 없어요.”

“뭐야, 이거. CCTV 영상이 깨끗하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한번 보지.”

스마트폰으로 CCTV 화면을 끌어와서 시청하기 시작한 박찬수 총경.

영상 속 이용광은 혼자 밥을 먹다가 일어나더니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곤 시작되는 발작과 각혈.

“……뭐야,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가 죽었다는 거잖아?”

“지금으로선 음독자살이라든지, 독살을 의심해 볼 수 있는데 증거가 아예 하나도 없습니다.”

“음식물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어?”

“깨끗합니다.”

“젠장…….”

“다만 현장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잠깐 이쪽으로…….”

박찬수는 형사들을 따라서 현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신이 누워 있던 곳 바로 옆에는 피로 새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다잉 메시지?”

“죽는 그 순간에 그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습니다.”

박찬수는 머릿속으로 그림의 나머지 반쪽을 끼워 맞춰 보았다.

삼각형을 그리다 만 흔적.

마치 별을 그리다가 손을 멈춘 것 같았다.

“엇?!”

한 가지 심벌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마치 별을 반쪽만 그린 것 같은 심벌, 그것을 두 개 나란히 합친다면 꼭 별과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헬파이어.”

“헬파이어요?”

“미국 쪽 암살자 집단 말이야.”

“아아, 암살자 헌터들 말입니까?”

“이거, 그 새끼들 심벌이잖아. 내가 검찰에 있을 때 봤어. 확실해, 이거 헬파이어의 짓이야.”

다잉 메시지 하나로 사건의 방향은 빠르게 전환되었다.

“이걸 어디에 전해야 처리가 빠르려나?”

“뭘 어쩌시려고요?”

“수입 루트를 확인해야지.”

“음, 그렇다면 수입 세관이나 청룡방 특무관에게 의뢰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겁니다만.”

“현 특무관이 누구지?”

“정태하 씨입니다.”

“지금 당장 연락해. 부재중이면 메시지라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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