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피자가 문제야(2)
태하의 운동 처방은 이러했다.
“잘 들어. 런지, 팔굽혀펴기, 버피를 묶어서 하는 거야.”
“그게 뭐냐요?”
“잘 봐. 잘 보고 따라 해.”
광장에 모인 몰먼들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는 태하.
그는 팔굽혀펴기 10회, 런지 20걸음, 버피 10개를 쉬지 않고 수행했다.
그리고 15초를 쉬는 태하.
“자, 이렇게 한 방에 묶어서 하는 걸 서킷트레이닝이라고 해.”
“서킷!”
15초 휴식 후, 태하는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루틴으로 운동을 해 주었다.
총 7사이클을 돌려서 서킷트레이닝을 끝낸 태하.
어느새 그의 몸에는 땀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온몸은 펌핑이 되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내가 제안하는 운동 방법이야. 초보자는 2~3사이클 정도 돌려 주면 될 거고.”
“나리! 그런데 질문이 있다요! 왜 15초만 쉬는 거냐요?! 잘못하면 우리 몰먼 다 죽는다요!”
“칼로리 소모를 극대화시키려는 거야. 운동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 이즈미 타바타라는 아저씨가 있어. 그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운동을 소화하고 한정적인 10초 내외의 휴식을 갖고 재차 운동을 하면 칼로리 소모가 엄청나다고 했지. 그 아저씨가 만든 방법에 나만의 노하우를 섞은 거야.”
“아하!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거라는 건 알겠다요!”
“그래, 좋은 거야. 다 같이 한번 해 보자.”
보디빌딩을 시작하기 전에 태하는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인체에 불필요한 조직인 잉여 지방을 없애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었다.
이른바 ‘타바타’라는 운동과 ‘서킷트레이닝’은 태하가 던전 상층부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했던 일종의 정체기 돌파용 운동이었던 것이다.
몰먼들은 태하를 따라서 팔굽혀펴기를 해 보았다.
“허억, 허억! 10개가 안 된다요!”
“그럼 5개로 줄이자!”
“……으으윽!”
“자세가 안 나오잖아! 3개를 하더라도 끝까지 해 보자고! 할 수 있어!”
보디빌딩에서의 정 자세는 그야말로 목숨과 같은 불문율로 여겨지는 일종의 규율과도 같은 것이다.
그건 타바타건 서킷트레이닝이건 그 어떤 운동에도 포함이 되는 것이었다.
몰먼들의 평균 체력은 팔굽혀펴기를 3개쯤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하도 광산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아무리 운동을 오래 쉬었어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었던 것이다.
“푸시업 끝났으면 곧바로 런지! 쉬지 마! 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힘들다요! 나리, 몰먼들 다 죽는다요!”
“안 죽어. 죽을 것 같았으면 애초에 시키지도 않았어.”
런지 열 걸음, 이걸 걷는데도 다들 죽을 맛이라는 둥,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허나, 군소리를 할지언정 포기하는 몰먼은 없었다.
‘몰먼은 기본적으로 근성이 있어. 절대로 포기할 종족들은 아니지.’
만약 몰먼이 근성 없는 종족이었다면 지나가는 모험가에게 도움을 청해 생존을 도모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런지 후,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진짜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제 버피야! 버피 5개만 하자!”
“허억, 허억! 토할 것 같다요!”
“토할 것 같으면 토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토하지는 않을 거야. 나도 다 해 보고 너희들에게 시키는 거니까.”
운동 강도로 따진다면 초급자보다 약간 높은 정도랄까.
자칫 잘못하면 운동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으나, 태하의 경험상 이 정도로 사람이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버피, 시작!”
“헥, 헥, 헥……!”
그야말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하는 몰먼들을 계속해서 독려했다.
“할 수 있어! 너희들은 자랑스러운 광산의 종족이잖아!”
“으아아! 할 수 있다요!”
버피 5개를 끝낸 몰먼들은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누운 자리에는 그 모습 그대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려 흔적을 남겼다.
털이 흠뻑 젖어서 꼭 물 먹은 대걸레를 보는 느낌이었다.
허나, 몰먼들은 웃었다.
“으헤헤! 기분 좋다요!”
“의외로 운동이 체질에 맞나 봐?”
“숨이 잘 쉬어진다요! 나리, 이상하게 살 것 같다요!”
이번 한 번으로 살이 빠지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허나,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몰먼들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자, 15초 쉬었으면 어서 움직여야지?”
“……또 하는 거냐요?”
“당연하지. 오늘은 딱 2세트, 2사이클만 돌리고 끝내자. 알겠지?”
“알겠다요!”
몰먼들의 얼굴에 벌써 피곤함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푸시업 자세를 잡았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서 내려가는 팔, 후들거리긴 했어도 그들의 운동에는 최소한 거짓은 없었다.
[파생 스킬: 대사형의 오러 - 진실한 인도자]
[당신의 리더십이 멸족 직전의 몰먼을 살려 냈습니다]
[진실한 인도자: 운동으로 당신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당신의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진실한 인도자와의 시너지: 대사형의 오러]
[대사형의 오러 레벨만큼 구원받은 사람들이 점진적 과부하 효과를 일부 공유합니다]
***
이른 아침, 태하는 몰먼들에게 줄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 공장을 찾았다.
헬친연구소 산하 자회사로 등록되어 있는 헬스 장비 제작소 ‘헬창박스’의 공장장 김희수는 도면을 받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헬스를 합니까?”
“아니요. 누구 좀 주려고요. 대량생산이 가능할까요?”
“못 할 건 없죠.”
김희수에게 장비 제작을 의뢰한 태하는 동네 철공소를 찾아갔다.
이곳에서는 포항제철에서 직접 받아서 성형한 원형 파이프와 각종 부품들을 판매한다.
덕림헬스 고립관의 기구들은 모두 이곳에서 주문 제작된 부품들을 용접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장님, 파워렉 만들려고 하는데 이대로 주문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렇게 쥐꼬리만 하게 만들어서 누굴 운동시키려고?”
“키가 작은 친구들이 좀 있어요. 가능하겠어요?”
“못 할 것도 없지. 다른 건 필요 없고?”
“바벨이랑 덤벨, 원판도 필요하죠. 각종 그립도 좀 필요하고요.”
“나흘이면 될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나흘 후면 몰먼들이 태하의 지도에 따라서 보디빌딩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비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단순한 의도였지만 건강이라는 건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법이다.
태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철공소를 나서려 발을 내디뎠다.
헌데 철공소 입구에 엄청난 근육을 가진 남자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다.
[WABBA 무제한급 챔피언 란돌 피케스터]
[독일의 괴물, WABBA를 휩쓸다!]
브로마이드에 나온 몸은 지금까지 태하가 보았던 그 어떤 인간보다 거대하고 강렬했다.
심지어 광배근과 삼각근의 크기는 태하를 압도할 정도였다.
“……저게 누구예요? 실제로 보면 아주 지리겠는데.”
“아아, 저 사람? 란돌 피케스터라고, 이번에 우리 파워렉 협력사에서 홍보 좀 해 달라고 놓고 간 거야. 뭐라더라, 이번에 IFBB로 진출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흠, 그래요?”
“저 친구가 요즘 유럽에서 그렇게 핫하대. 으음…… 무슨 최고의 장점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아무튼 이대로만 간다면 자네랑 올림피아에서 붙어 볼 수도 있겠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나흘 후. 헬창스는 몰먼시티로 헬스 장비들을 전달해 주었다.
불과 나흘 만에 몰라지게 홀쭉해진 총총이 헬창스를 반겼다.
“오오, 신기한 물건이다요!”
“재료만 구해 주면 똑같이 만들 수 있어?”
“물론이다요! 지금 당장도 만들 수 있다요! 여기 있는 광물을 가공하면 된다요.”
“……광물을 가공해? 그런 것도 가능한 거였어?”
“나리가 책을 줬다요. 그래서 광물 가공법을 익혔다요!”
“오호, 그래?”
역시 몰먼은 뭔가를 만들고 조합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고난 종족이다.
태하는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몰먼시티를 찾아와 운동을 알려 주고 자세들을 봐 주기로 했다.
“PT는 주 1회야. 알고 있지?”
“안다요! 총총, 열심히 하겠다요! 몰먼들도 열심히 할 거다요!”
“그래, 믿고 있어.”
“그런데 나리, 신기하다요! 피자만 먹는데 살이 빠진다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요!”
“후후, 궁금해?”
“궁금하다요!”
“뭐랄까, 눈속임이랄까. 피자랑 만드는 방식은 비슷한데 성분은 완전히 달라. 이를테면 햄에 고기와 지방 대신에 콩과 감자를 넣어서 만든다든지, 토마토소스에 기름이랑 설탕을 뺀다든지, 뭐 그런 것들 있잖아.”
“……나리는 대단하다요! 그런 것도 책에 나오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 있잖아, 총총. 다이어트를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은 자연스레 뭘 어떻게 먹어야 몸에 좋은지 깨닫게 되어 있어.”
“오오……!”
“앞으로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생길 영양 결핍에 대비해서 영양제도 가져다줄게. 그걸 먹으면서 열심히 운동하라고. 아 참, 그리고 물 많이 먹고. 물은 미지근한 게 좋아. 찬 건 별로 안 좋거든.”
“알겠다요!”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원자재 생산에 들어갈 수 있겠지?”
“헤헤, 물론이다요! 아 참, 그리고 이거 받으라요!”
총총은 태하에게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상자는 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무게는 엄청나게 가벼웠다.
“이게 뭐야?”
“몰먼족이 지하 광물로 만든 거다요! 던전에는 신기한 광물이 많다요!”
“아하, 그래?”
상자를 열어 보니 그물처럼 생긴 보디 슈트가 들어 있었는데, 그 질감이 마치 사슬을 만지는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질감 자체는 사슬 같은 쇠로 되어 있었지만 그걸 손으로 잡아당기니 고무처럼 쭉 늘어났다는 점이다.
“……뭐야, 이거 철 아니었어?”
“철은 철인데 고무처럼 늘어난다요! 칼도 안 들어간다요! 완벽한 속옷이다요!”
“이걸 뭘로 만들었는데?”
“짜잔! 이거다요!”
총총은 태하에게 은색 광물을 내밀었다.
스릉!
빛을 받으면 은청색으로 빛나는 이 은색 광물은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던전을 그렇게 오래 드나들었어도 이런 광물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태하는 그저 입을 떡 벌릴 뿐이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헤헤, 마음에 드시냐요?!”
“응. 마음에 들고말고.”
“더 필요하면 말씀해 달라요! 더 제작할 수 있다요. 이런 광물, 사방 천지에 널렸다요!”
“그래……?”
던전에서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몰먼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수라 길드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던전은 아주 남아나지를 않았겠군그래.’
어쩌면 라이프스톤보다 이 은청색 광물의 발견이 더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든다.
“그럼 우리 팀원들 숫자만큼만 만들어 줄래?”
“사이즈를 측정해서 만들어 드리겠다요! 한 달쯤 걸리는데 괜찮냐요?”
“한 달? 그렇게 오래 걸려?”
“한 벌을 만드는 데 나흘이 걸렸다요. 실패하면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다 만드는 데 한 달은 걸릴 거다요.”
“음, 그래! 그래도 그게 어디야? 고맙다, 총총!”
“아니다요! 우리 몰먼족을 구해 줘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