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89화 (89/197)

089 피자가 문제야(1)

헬친컴퍼니의 FDA 승인이 떨어졌다.

-FDA 승인

*품목명: 헬창포션

*효과: 체내의 미토콘드리아의 증식 및 강화에 도움을 주며 단, 장기적 근력 및 체력 상승과 회복에 도움을 주며…….

(중략)

……이상 유의미한 신체 반응의 긍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식약 허가를 내리는 바임.

*연계 제품 및 파생 제품에 대한 판단: 단기적 체력 회복에 대한 약용 허가 가능, 근력과 지구력 등에 대한 제품 세분화 가능.

일본 후생성과 더불어 FDA는 세계적으로 공신력 높은 기관이며 허가를 받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허나, 라이프스톤에 대한 연구가 꽤나 오래 진행되었으므로 FDA조차 승인을 내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헬창스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는 이 그레이트한 물약을 들고 사냥을 갈 수 있다는 거잖아요?!”

“클리어 가능 층수도 높아지고. 이야, 우리 정 코치가 정말 이 잔머리 하나는 끝내준데니께?!”

“물약이 있으니까 클리어 시간도 줄어들 거고,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겠네요. 게다가 장기적으로 신체 능력 향상에 기여한다니, 솔직히 시제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어요.”

물약의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건 충분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몰먼이 라이프스톤의 채굴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 좋은데 원재료의 수급이 좀 어렵네요.”

“이상하네. 몰먼들은 원래 부지런한 종족 아니었어요?”

“약속한 날짜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네요. 어떻게 된 건지, 이것 참.”

몰먼은 라이프스톤을 태하에게 납품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무역을 통해서 확보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태하와 몰먼은 이제 교역 관계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공급업자가 약속을 어기니, 교역 관계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는 없었다.

“뭐여, 이거. 혹시 딴 주머니 찬 거 아니여?”

“……뭐래, 이 아저씨야. 우리 몰먼들이 딴 주머니를 찰 리가 없잖아요?”

“혹시 모르는 거 아니여. 몰먼이 오크보다 머리가 나쁘다면 몰라도 걔네들은 대구빡이 아주 팽팽 잘 돌아가잖여?”

“못 살아, 이 아저씨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몰먼을 의심해요? 우리 몰먼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그래 봤자 몬스터인디?”

이제는 심지어 몰먼 불신론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태하는 총총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 씨, 그만 싸워요. 혁수 형님도 그만하시고요.”

“험험, 싸우긴 누가 싸웠다고 그랴?”

“제가 한번 알아보고 올 테니까 운동들 하고 계세요.”

***

늦은 오후.

바벨탑으로 올라간 태하와 희란.

[몰먼의 마을: 몰먼시티]

[몰먼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요!]

몰먼시티에는 전기로 가는 지상철, 자전거로 도로가 정비되어 있었고 사각형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인간의 마을을 1/10쯤 줄여 놓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평소의 몰먼시티와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대장, 어디서 오물 냄새 안 나요?”

“어라? 나 오늘은 씻고 왔는데.”

“오늘은……? 그럼 안 씻고 다닐 때도 있다는 거예요?!”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희란의 잔소리 폭격이 두려웠던 태하는 모르는 척 몰먼시티 안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자 더욱 진한 악취가 풍겨 왔다.

“……쿨럭, 쿨럭!”

“어휴, 안쪽은 더 심하네?”

몰먼시티에는 도대체 언제부터 치우지 않은 것인지 모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음식물 찌꺼기를 제때 처리하지 않아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근면 성실의 표본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던 몰먼시티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희란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쩌면 좋아? 우리 사랑스러운 몰먼이들이 어디 아픈 건 아니겠죠?”

“흠. 무슨 전염병이라도 돌았나? 내가 알기론 주현 씨가 정기적으로 백신을 맞춰 주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설마하니 아수라 길드가?!”

주현의 슈퍼 백신을 정기적으로 맞아 주면 그 어떤 질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전염병이 돌았다고 한다면 라이먼트가 공간을 초월해서 공격해 들어왔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걱정이 태산처럼 불어 버린 태하는 희란과 함께 몰먼시티 시청을 찾아갔다.

몰먼시티의 시청에는 의회도 있고 마을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공공 기관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헌데 오늘 그 앞에는 자전거 한 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상해. 자전거가 없어요!”

“뭐야, 이거. 진짜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불안이 엄습해 왔다.

만약 몰먼이 몰살이라도 당했다면 헬창스는 적잖은 충격에 빠지고 말 것이었다.

태하는 자신의 무릎까지 오는 시청의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이봐, 안에 있어?!”

대답이 없다.

문을 열어 봤는데도 굳게 잠겨서 도통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주먹으로 부술까?”

“……그럴까?! 우리 몰먼이들,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죠?! 어쩌면 좋아? 대장, 어떡해?!”

희란은 아까부터 몰먼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전전긍긍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시청의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허억, 허억! 나리 오셨냐요!”

“총총? 너 어째 좀…… 거시기 하다?”

“거시기? 그게 뭐냐요? 아이고, 그나저나 죽겠다요! 시청에 계단을 없애든가 해야지! 너무 힘들다요!”

한 달쯤 못 본 사이에 총총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살이 쪄서 턱은 2개가 되어 있었고 배는 빵빵하게 불러서 남산만 해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녀석이 말을 할 때마다 무슨 단내 같은 것이 풍겨 오기까지 했다.

“총총, 너 요즘 운동 안 하지? 그치?”

“운동? 그게 뭐냐요?”

태하는 아뿔싸 싶어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소리 나게 쳤다.

짜악!

“내 불찰이다. 그렇게 매일 피자를 먹어 대는데 운동까지 안 하니 살이 찔 수밖에.”

“……그래도 귀여워! 총총, 한 번만 안아 봐도 돼? 응?! 누나가 이따가 맛있는 거 해 줄게!”

물론, 저렇게 토실토실하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말랑말랑한 볼살, 오동통한 뱃살, 결정적으로 몽글몽글한 엉덩이가 정말이지 치명적이었다.

결국 희란은 참지 못하고 총총을 들어 올려서 마구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서 못 참겠어!”

“……초, 총총 죽는다!”

“누나도 귀여워서 죽어!”

몰먼족 팬들의 입장에서야 귀여워서 보는 맛이 있겠지만 파트너인 태하로선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척 봐도 총총의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총, 오늘 양치는 했냐?”

“물론이다요! 윗니 아랫니, 특히 앞니에 혓바닥까지 잘 닦았다요! 우웩, 소리 세 번이나 냈다요!”

“그런데도 냄새가 이런 건 간이 별로 안 좋다는 증거야. 에에! 소리가 날 때까지 혀 좀 내밀어 봐.”

“에에……!”

총총의 앙증맞은 혀가 앞니 아래로 쭉 내려왔다.

태하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혀에 백태가 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이 갈라지고 옆에 울퉁불퉁한 게 더 문제야. 간뿐만 아니라 갑상선까지 영향을 주는가 본데? 호르몬에 이상이 생긴 거야.”

“……시, 심각한 거냐요?!”

“심각하지. 아마 고도비만일 거다.”

“초, 총총 죽는 거냐요?!”

“이대로 1년만 더 살아 봐. 아마 죽을 수도 있겠지.”

“흑흑, 나리! 살려 달라요! 우리 몰먼족, 다 이렇게 살이 쪄서 움직일 수가 없다요! 그래서 공공직에서도 다들 사표 내고 쓰레기 치우는 사람도 없어졌다요!”

“아하, 살이 쪄서 채굴도 힘든 거구나?”

“10분만 일해도 다들 쓰러져서 못 일어난다요. 그래서 약속도 못 지켰다요!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요!”

어쩐지, 도시가 개판이다 싶었더니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이야.

태하는 몰먼들이 귀여우면서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졌다는 것에 경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몰먼족,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다이어트……?”

“살 빼서 인생 좀 개조해 보자고. 오케이?”

***

다이어터들에게는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다이어트보다 더 좋은 성형은 없다.’

그만큼 다이어트는 가장 드라마틱하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태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이번에는 그 용기와 희망을 몰먼들에게 줄 차례였다.

헌데 시작부터 영 신통치가 않았다.

태하는 몰먼들을 광장에 모아 놓고 식단을 바꿀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아주 난리가 났다.

“……불가능하다요! 피자를 끊으라니!”

“피자에 포화지방이랑 트렌스지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아? 게다가 탄수화물 함량도 높지, 염분은 또 얼마나 많아?”

“절대 안 된다요! 피자 못 먹고는 못 산다요!”

“닥터가 말하길, 너희들 중 태반이 지방간에 고혈압이래. 당뇨에 고지혈증은 기본이고.”

“그래도 안 된다요! 못 산다요!”

웅성, 웅성!

잘못하면 반정부 시위라도 일어날 판이었다.

‘탄수화물 중독이다. 음, 상태가 심각한데.’

태하가 몰먼족에게 피자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해 준 것이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몰먼들은 탄수화물과 지방에 중독되었고, 뿐만 아니라 당에도 중독되어서 콜라를 하루라도 못 마시면 스트레스를 받아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탄수화물과 당 중독이 이만큼 무서운 것이라는 소리다.

태하는 웅성거리는 몰먼들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음, 아니지. 내가 잘못 생각했다. 피자, 그래! 피자는 먹을 수 있어.”

“우하하! 피자 먹는다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

“레시피를 바꾸는 거야. 고단백 저탄수화물로.”

피자는 어쨌든 맛만 비슷하게 나도 어느 정도 감내하면서 먹을 수 있다.

다이어트 피자를 굳이 만들어서 먹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자에게 하루아침에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최소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약물이라도 처방하든지, 정 안 된다 싶으면 술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도 줘야 한다.

그래야 부작용을 겪지 않을 것 아닌가.

“아무튼 그럼 피자는 계속 먹어. 대신 만드는 방법만 바꾸는 거야.”

“알겠다요! 그럼 다이어트인가 뭔가, 그거 한다요!”

정말 어렵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식단 하나 바꾸는데도 이렇게 힘들다니.

그러나 사실 다이어트라는 게 식단을 바꾸고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다이어터들이 대체 식품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밀가루 대신에 통곡물과 프로틴 가루를 쓰는 거야. 치즈의 양은 줄이고 염분을 뺀 저염식, 저지방 치즈를 써야 할 것이고.”

“그게 다 뭐냐요? 처음 들어 보는 것들이다요!”

“음, 그래. 당장은 알려 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아무튼 내가 피자를 만들어 올 테니까 다들 그런 줄 알고 있어.”

“와아아! 피자다요! 피자, 피자, 피자!”

이놈의 아수라 길드는 하다못해 피자 하나만으로도 한 종족을 몰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태하는 이제 본격적인 운동 처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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