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추민우의 몰락(1)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대선 주자 추민우가 언론의 공격을 받음에 따라 여당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던 것이다.
그것은 추민우를 은밀하게 밀어주던 야당들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님, 큰일입니다! 후보 사퇴는 물론이고 대검에서 우리를 수사하겠다고 영장을 발급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씨발 놈들! 내가 지금까지 먹여 놓은 돈이 얼마인데!”
“아무래도 헬창 헌터인가 하는 놈이 나라에 내어놓은 돈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3천억쯤 되는 돈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선한 영향력인가 뭔가 때문에 전경련에서는 장학 구호 재단을 설립해서 시민들 주택 지하에 각각 방공호를 지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와 아파트 단지에도 말입니다. 물론, 상가에도 들어가고요.”
“방공호 문제는 전경련과 정부의 의견 대립이 아주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지 않았던가?”
“헬창 헌터가 전경련과의 대담에서 무슨 일갈을 날렸다는데, 그것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막 대선을 앞둔 추민우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일이었다.
엠톨의 몬스터 사태를 일으킨 공범으로 추민우가 지목된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인생도 분명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었다.
허나, 그에게도 비장의 카드는 있었다.
“현영태, 그 작자에게선 연락이 없었나?”
“네, 아직 연락은 없었습니다. 다만, 한라의 근접형 딜러 수십 명이 던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있었습니다.”
“그들의 등급은?”
“최소 A급입니다.”
“……그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현영태라면 뭔가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
이제 그에게 믿을 것은 현영태뿐이다.
제아무리 언론에서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대도 결국 태하 본인이 자취를 감추면 사건은 유야무야 묻힐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이번 사건도 어물쩍 그렇게 넘어가고 말 거야. 암, 그렇고말고!”
현영태의 승리를 기원하는 추민우.
그런 그의 사무실로 대검찰청 공안부가 찾아왔다.
똑똑.
정중한 노크였지만 추민우는 이것이 폭풍 전야를 알리는 서막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공안부 부장검사 한익태와 그 부하들.
공안부의 수장이 직접 부하들을 대동하고 왔다는 것은 그만큼 대검이 큰 각오를 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한익태를 보는 추민우의 표정은 썩 좋지가 못했다.
한익태는 검찰청 내부에서도 칼 같기로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나를 체포하러 온 것인가?”
“추민우 의원님, 지금 사태가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같이 가셔서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한태익은 상당히 정중하게 추민우를 대했다.
그만큼 추민우는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거물로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추민우는 자신의 이름이 가진 힘을 조금 더 이용해 보기로 했다.
“나를 데리고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입증할 수 있어?”
“입증은 검경이 합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검찰은 진실만을 좇는 집단입니다. 만약 제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게 제가 가야 할 길이니까요.”
지금의 공안부가 과거의 공안부만큼의 힘은 없다고 해도 한태익은 굴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조직을 위해서 헌신하고 검찰의 본분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체포 진행하겠습니다. 추민우 씨, 당신을 던전관리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과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철컥.
추민우의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
대검이, 그것도 공안부의 부장이 직접 범죄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일은 전무후무했다.
그런 이유로 추민우는 한태익에게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다.
공안부장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한태익, 이 새끼가 아주 목석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런 주도면밀한 면도 있었던가?’
보통 강직한 사람들은 머리가 안 좋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대검의 부장검사라는 사람들은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추민우 정도 되는 거물을 잡아들이려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태익이 추민우를 대검찰청 앞으로 압송해 오자, 사방팔방에서 엄청난 인파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차에서 내린 한태익은 기자들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안부장 한태익입니다. 오늘은 피고 추민우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므로 별다른 대답은 못 해 드리는 점을 미리 사과드립니다. 다만, 하루에 한 번씩 조사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브리핑을 진행할 테니 기자 여러분들께서는 오늘만큼은 참아 주십시오. 아무쪼록 피고의 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시간을 드릴 테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장검사가 직접 나와서 브리핑을 한다는 것에 동조한 것일까?
한태익의 정중한 태도에 기자들은 아무런 말 없이 셔터를 터뜨릴 뿐이었다.
잠시 후, 추민우가 차량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은 추민우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보이콧, 그의 얼굴에는 이제부터 범죄자라는 주홍글씨가 낙인처럼 남을 것이었다.
추민우는 아무런 말이 없는 기자들에게 외쳤다.
“저, 추민우입니다! 대선 후보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됩니다! 여러분! 저를 믿어 주십시오!”
추민우는 그야말로 발악을 해 댔다.
허나, 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휑하니 텅텅 비어 버린 대검찰청.
추민우는 일말의 변명의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허나, 아무리 추민우가 분노를 폭발시켜도 지금 당장 그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갑시다.”
“……뭐야, 당신이 이런 거야?”
“뭘 말입니까?”
“내 발목을 잡으려고 일부러 이런 거냐고!”
“기자들이 인터뷰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언론인에게도 자유 권리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한태익은 그야말로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무뚝뚝하게 추민우를 끌고 갔다.
한편.
검찰청 너머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엠비엠의 경영진들과 한강일보의 편집부였다.
“이 정도면 추민우는 그대로 매장 각이 나오겠는데요?”
“……하지만 그 죄를 입증시키자면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감옥에 가야 합니다.”
엠비엠의 부회장 안성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엠비엠의 수뇌부가 동시에 손을 들었다.
“당분간 감옥에서 신변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밖에서 괜히 피를 보느니 감옥에서 지내는 것이 낫죠.”
“감옥도 돈만 있으면 지내는 데 그렇게 큰 문제는 없답니다. 물론 교정 시설에서 뭐 얼마나 신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감옥이 습격을 받지 않는 이상 엠비엠의 수뇌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걸어서 대검찰청 정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에서는 이 행렬을 붙잡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자수하려고요.”
“……자수요?”
“네, 엠비엠의 경영진들입니다. 대검찰청에 직접 자수를 하러 왔으니 최대한 빨리 저희를 좀 데려가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
추민우의 조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론에서는 그의 죄목과 상관없이 후보는 자동 사퇴가 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대검찰청 공안부 조사실에 앉은 추민우는 검사들의 질문에 묵묵히 고갯짓만 하고 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추민우 씨. 엠비엠과 아수라 길드를 방위산업체에 연결해 주고 커미션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
“그렇다면 아수라 길드에 청부해서 두 번의 몬스터 사태를 일으킨 바가 있습니까?”
이용광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추민우의 범죄를 직접적으로 입증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엠비엠이 증인으로 나섰으나 돈이 오갔다는 정황만 있을 뿐이지 몬스터 사태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게 묵비권을 행사하면 이번 사건이 도대체 몇 년이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계속 구치소에서 썩을 생각입니까?”
“…….”
“흐음, 진짜 아예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로군.”
검찰은 이미 증인까지 확보해 놓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었다.
일단 돈을 받아먹은 것까지는 입증했지만 몬스터 사태에 대한 직접증거가 모자랐던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추민우는 앞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얼마 후, 재판이 잡혔다.
공판이 열린 시기치고는 상당히 빨랐다.
추민우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변호를 맡은 H&A 로펌의 변호사 리처드 킴에게 상황을 묻는 추민우.
“공판이 벌써 잡힐 수가 있는 건가?”
“일단 증거가 확보되었고 검찰 측에서도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재판부도 공판을 인정했을지도 모르지요.”
대검찰청에서 추민우의 기소를 결정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공판은 열린다.
허나, 문제는 그 짧은 시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는 점.
일주일 후, 공판이 열렸다.
찰칵, 찰칵!
엄청난 인파의 기자들이 대검찰청 앞을 찾았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피켓을 든 시민들도 운집해 있었다.
“……추민우,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어!”
“흑흑, 제발 추민우를 벌해 주세요!”
“추민우에게 엄벌을 내려라!”
“엄벌하라, 엄벌하라!”
두 번의 몬스터 사태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수백만에 이른다.
만약 추민우가 이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다면 감옥에서 나온다고 해도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잠시 후, 공판이 시작되었다.
순서대로 재판은 진행되었고 검사는 피고 추민우를 심문했다.
“피고에게 묻겠습니다. 피고는 엠비엠과 아수라 길드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는 동시에 엠톨을 해외에 판매하는 총판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배후로 지목되었는데,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사전 수사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했었는데 이번에는 대답을 하시는군요. 뭔가 이유가 있는 행동입니까?”
“…….”
“그렇게 침묵한다는 것은 피고가 더 이상 변론할 마음이 없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피고 측 변호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원고는 인과관계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도 않은 억측으로 피고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흠! 그건 그렇군요. 피고, 정확히 확인된 사실만 가지고 심문하세요.”
검찰 측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추민우는 이맛살을 구겼다.
‘……이 새끼 뭐야?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검찰은 뚜렷한 증거가 없이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죄를 줄여 보자는 게 추민우의 전략이었으니, 아마 그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 것이었다.
단, 재판이 이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원고는 추민우에게 다시 물었다.
“뭐,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피고와 직접 관계를 맺고 아수라 길드와 속칭 ‘파이어볼’을 이어 준 인물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받은 증거와 진술을 가져온다면 죄를 인정하시겠습니까?”
“……뭐, 뭐요?”
“재판장님, 새로운 증인과 증거를 제출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재판정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재판장은 검사를 불러들였다.
“원고, 이쪽으로…….”
“네, 재판장님.”
판사를 마주한 검사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마를 부여잡은 판사가 물었다.
“……니네 지금 뭐 하는 거냐? 갑자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증거를 들이밀면 어쩌자는 거야? 이거, 대선이 걸린 일이라는 걸 몰라?”
“선배님, 저희가 입증할 수 있습니다. 확실한 증인과 증거입니다. 이거 한 방이면 상황 정리됩니다. 정말입니다.”
재판부 라인업은 공안부장의 5기수 선배로서 서로 얼굴도 잘 아는 사이다.
물론 공판 검사 역시 재판부의 인원들에게는 후배이기 때문에 곤란한 돌발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공안부는 기어이 일을 벌이고 말았다.
“좋아……. 대신 진짜 재판에 꼭 필요한 증거여야 한다. 알았나?”
“넵!”
“그럼 시작하지.”
재판부는 기소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증인과 증거를 수렴하였다.
“기소 측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증인과 증거자료 제출하세요.”
“새로운 증인으로는 길드 한라의 수장 현영태, 증거자료로는 피고가 지금까지 각 세력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장부를 제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