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인간이 제일 무서워(2)
현영태는 백선의 제자 중에서도 그 자질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벨탑의 전설, 백선의 애정을 충만히 받았던 그는 역시 전투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흐업!”
콰아아앙!
주먹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마치 메테오 마법을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태하는 현영태의 주먹을 막아 낼 때마다 뼈가 시려 오는 것을 느꼈다.
‘……완전 괴물이잖아? 백선 어르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괴물을 키워 낸 거지?’
비록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영태는 충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헬창스가 강력해졌다고 해도 현영태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태하에게 현영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잡념, 사념, 이런 것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부스스해지지. 그럼 자네는 필시 요단강을 건너게 될 걸세.”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꼴이로군.”
“이런. 예의는 바른 청년인 줄 알았는데, 어른에게 말 버르장머리가 썩 좋지가 못하군!”
파앗!
단거리 점멸을 시도하는 태하.
헌데 그 뒤를 따르는 현영태가 조금 더 빨랐다.
파바밧!
태하는 스킬로 점멸을 한 것이지만, 현영태에게서는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신체 능력 자체가 점멸보다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빠각!
헌영태의 주먹은 마치 뱀처럼 휘어들어 와 태하의 턱을 날려 버렸다.
“크허억!”
“잡념을 털어 내지 않는 한, 자네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켁켁! 빌어먹을, 잡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마치 거대한 절벽 앞에서 혼자 주먹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태하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몬스터, 인간들을 통틀어 현영태는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것이다.
현영태는 몸을 웅크리고 있던 태하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부웅!
발차기를 하는데 무슨 해머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태하는 그 소리에 맞춰서 몸을 뒤로 살짝 뺐다.
“호오, 이제야 좀 집중을 하는군. 맞는 것도 기술이라는 걸 깨달은 건가?”
복싱 선수들은 난타전을 벌이는 도중에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흘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일반인은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생각에 사로잡혀 흔히 개싸움을 하지만, 복싱 선수들은 프로 의식을 갖고 최대한 덜 맞으면서 상대를 쓰러뜨릴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건 선수의 정신력, 그리고 집중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현영태는 그것을 역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새끼는 모든 걸 복싱이랑 엮어 버리네. 혹시 예전에 권투 선수를 했었나?’
바로 그때였다.
[서판 조각: 시간]
[인간의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특성 스킬 - ‘주마등’을 얻었습니다]
[상대방의 인생이 당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서판 조각 ‘죽음’이 인간의 수명을 알려 주는 것처럼 서판 조각 ‘시간’은 인간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던 것이다.
태하는 그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한때 전국체전을 뛸 정도로 복싱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던 현영태는 권투에 대한 열망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허나,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로 방황을 했고, 우연히 백선의 눈에 들어 헌터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날아드는 상대의 주먹을 팔꿈치로 찍어 버렸군. 그리고 자신은 엘보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고 말이야.’
전국체전 타이틀을 얻어 내긴 했으나 현영태는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를 했고, 심지어는 추후 판정 번복으로 타이틀까지 반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현영태는 자신이 일인자가 되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었고, 청룡방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 것이었다.
허나, 그는 결국 후계자로 지목되지 못했다.
‘백선 어르신의 눈에 들었으나, 몸에 밴 습관을 고치지 못했던 모양이로군. 지적을 받아도 고쳐지지 않는 게 많은 사람을 방주로 선출할 수는 없었겠지.’
현영태에게 복싱을 베이스로 하되, 던전에서 싸우는 데 특화된 동작을 가르쳤던 백선.
허나, 현영태는 복싱이 백선의 무술을 침범하는 우를 자주 범하였다.
때문에 백선은 현영태를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영태는 이미 후계자 자리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태하는 그가 어떤 짓까지 불사했는지 주마등을 통해 똑똑히 목격했다.
‘허어……! 설마하니 아수라를 저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현영태였다고?!’
귀기의 폭주를 이겨 내기 힘들어 방황하던 사형 이용광에게 마이너스 코어를 가져다준 사람은 현영태였고, 그가 화이트홀을 안정화시킬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도 현영태였다.
심지어 현영태는 아수라와 파이어볼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까지 해 주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용광을 뒤에서 조종하며 그를 악의 세력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얻어맞더라도 끝까지 상태의 품으로 파고들어 이해득실에서 내가 이득을 챙길 수 있도록 해야지. 안 그러면 자네는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할 거야.”
“복싱을 했다더니, 모든 것을 복싱으로 귀결시키는군.”
“뭐……?”
전투의 실마리를 찾은 태하는 이 기회를 놓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걸 써 보자!’
[스킬: 싱크로 멘탈리즘 - 도발]
[상대를 효과적으로 도발합니다]
[‘도발 지점’을 선택하세요]
태하는 현영태의 과거를 도발 지점으로 선택했다.
바닥에 침을 소리 나게 뱉은 태하가 으르렁거렸다.
“퉤! 더러운 놈! 당신 때문에 주먹이 망가진 그 청년은 복싱계의 불구가 되어 버렸어.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사형까지 이용해 먹어?”
“……그, 그걸 어떻게?”
“이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 그 죄를 도대체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태하의 도발에 현영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이 방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스스스스!
분노로 가득 찬 현영태는 이미 이성을 반쯤 잃어버렸다.
‘걸렸다!’
도발 스킬에 넘어간 것이다.
현영태는 방금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죽여 주마, 이 애송아!”
파바바밧!
복싱의 전진 스텝, 현영태가 사용하는 전진법은 바로 복싱에서 온 것이었다.
그제야 현영태를 조금 알 것 같아진 태하가 대응했다.
‘복싱이라면 나도 좀 해 봤지. 그리고 다른 것도!’
운동이라면 어지간한 것에는 다 소질이 있었던 태하는 복싱에서도 상당히 인정을 받았다.
비록 선수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현영태는 과거에 사로잡힌 나머지, 백선이 지적했던 실수를 아주 대놓고 범하고 있었다.
복싱의 전진법은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한다거나 복싱의 틀에서 벗어난 싸움을 하는 실전에서는 통하지 않기 마련이다.
“하앗!”
태하는 전진하는 현영태에게 태권도의 돌려차기를 먹여 주었다.
콰아앙!
흔히 태권도는 실전에서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 발차기의 위력만 놓고 본다면 태권도는 모든 무술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파워를 낸다.
게다가 속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다.
ITF 태권도 4단인 태하는 철저히 실전에 특화된 태권도로 현영태의 턱을 박살 내 버렸다.
“커허억!”
“격투기를 해 보니 알겠더군. 격투기는 거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
만약 태하가 복싱을 배우지 않고 태권도만으로 현영태를 상대했다면 벅찼을지도 모른다.
허나, 격투기란 격투기는 다 배운 태하가 복싱만 배운 현영태를 상대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현영태는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다시 돌진해 왔다.
슈우우욱!
이번에는 조금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전진 도중에 위빙으로 태하의 타점에 혼선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
태하는 골반을 살짝 비틀어서 발차기 자세를 잡았다.
“……놈, 걸렸구나!”
현영태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여 보디블로를 노렸다.
그러나 그건 현영태의 가장 큰 패착이었다.
쉭!
“이크!”
빠각!
“쿨럭, 쿨럭!”
“당황스러울 거다. 택견은 처음이지?”
택견의 스피드는 오히려 태권도보다 빠르다.
이 번개와도 같은 스피드가 다른 격투기와 섞이면 이종격투기를 전문으로 배운 선수들조차도 당황하게 만든다.
게다가 택견은 발차기가 변칙적이라서 알아도 못 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턱을 두 번이나 얻어맞은 현영태는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
“……이 내가 흥분해서 자제력을 잃게 될 줄이야.”
“그러니 멘탈 관리를 잘했어야지.”
도발 스킬에 넘어가 눈이 돌아갔던 현영태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승패가 기울어져 있었다.
다리는 풀려서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시야는 흐릿해져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었지만, 옆에서 손가락으로 툭 밀면 쓰러질 정도였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죽여야 하나, 살려서 백선께 데리고 가야 하나?”
“……죽여라.”
“으음, 생각해보니 죽이는 건 좀 너무했어.”
태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동료들도 살수들을 막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주변부터 좀 정리해 볼게.”
싱크로 멘탈리즘의 특성 스킬 ‘광대역’은 이 도발을 광대역으로 시전할 수 있었다.
스스스스……!
100명이 넘는 살수들이 태하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저 새끼를 죽여야겠다!”
“잡아! 오늘 이 새끼를 찢어 죽이겠어!”
도발이 아주 자연스럽게 걸려들었다.
이 정도라면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에도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놈들의 뒤통수에 공격을 퍼부어요!”
택티션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윤정은 동료들을 이끌고 적의 뒤통수에 마구잡이로 딜을 꽂아 넣었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살수들은 흥분한 나머지 공격을 예측하지 못해 줄줄이 사망하고 말았다.
피융, 퍼억!
“크허어억!”
“……이런 빌어먹을, 아주 줄초상이 나 버렸군.”
현영태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는 없었다.
자신이 애써 이끌고 온 공격대가 사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끝났어. 당신, 이제 청룡방의 심판을 받을 때만 기다리면 되는 거야.”
“……후후, 과연 그럴까?”
“뭐?”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태하는 현영태를 데리고 던전을 나가기로 했다.
***
서울지검 형사 제3부는 청룡방의 본부 청금타워를 찾아갔다.
우르르 몰려든 조사관들을 바라보며 백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뭔가 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려는 모양이로군.”
서울지검 형사부는 던전관리법 및 국가내란죄로 청룡방에 압수수색을 펼치겠다며 난리 치고 있었다.
“마이너스 코어에 대한 실험을 이곳 청룡방에서 지시하고 화이트홀 형성의 청탁까지 했던 것을 알고 왔습니다. 순순히 같이 가시죠.”
“영장은? 영장은 가져왔어요?”
“당연하죠.”
서울지검에서는 서울남부지법에서 내린 영장을 펼쳐 보였다.
유시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형사부를 쳐다보았다.
“이거, 선 넘는 행동이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범죄자를 잡는 데 선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혹은 당신들이 입증할 수 없다면 그대로 역풍을 맞을 겁니다. 그래도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그거야 직접 청으로 가서 따져 보면 될 것이고요.”
유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저씨들이 뭘 믿고 이렇게 나대실까?”
제아무리 청룡방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사법부가 행정부와의 조율 없이 이렇게 날뛰는 건 불문율을 깨는 행위였다.
헌터들이 법령을 따라 주는 건 사회의 질서를 위함이지, 힘이 약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청금타워 입구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대검찰청 감찰부였다.
“서울지검 양정수 부장님.”
“……뭡니까?”
“감찰부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좀 가시죠.”
“가, 감찰부?”
감찰부는 ‘검찰총장 대행’이라는 법무부 장관 서명을 들이밀었다.
“다행히도 법무부 장관직은 공석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영장을 받았으므로 지금은 공무집행 중입니다.”
“아아, 그 영장 말입니다. 이미 말소되었습니다. 법무부에서 번복 신청을 해서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