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꿀렁꿀렁 화이트홀(2)
특효약을 맞으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태하는 오히려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펀치로 헬하운드를 쳐 냈다.
빠각!
-깨개에엥!
“아이! 살 것 같네!”
라이먼트는 또다시 태하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였다.
[디버프: 슈퍼 바이러스]
[강력한 위력의 디버프가 부여됩니다]
바이러스는 태하의 몸에 직접적으로 달라붙어 신체 기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허나, 스킬 ‘항체’는 바이러스가 들어오자마자 그 성분을 완벽하게 복사해서 대항하기 시작했다.
[디버프: 항체]
[슈퍼 바이러스의 항체를 만들어 냅니다]
그야말로 장군, 멍군의 연속이었다.
허나, 라이먼트의 전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흥! 그래 봤자 네놈이 인간이지!
[슈퍼 바이러스: 변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킵니다]
항체를 만들어 내자마자 변이를 일으킴으로써 태하는 바로 병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항체가 소용이 없어진 건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신체 능력과 함께 동반되는 염증 반응.
변이가 너무 급격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항체를 만들어 내도 따라가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주현은 태하를 부축하며 뒤로 빠졌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다니! 항체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빠른 변이라니!”
“닥터 리! 이제 어쩌면 좋아요?!”
비록 외과 전문의이긴 하지만 던전에 특화된 ‘레이드 닥터’ 면허를 가진 이주현은 내과에도 상당히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허나, 그런 만물박사 이주현이라고 해도 라이먼트의 바이러스 공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크르르릉……!
헬하운드는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고 태하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닥터! 대장의 상태는 어때요?! 던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태하의 스마트워치를 살피는 이주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이대로는 오래 못 버텨요! 항생제라도 주사해야겠어요!”
이주현은 주머니에서 메디킷을 꺼냈다.
메디킷에는 수많은 종류의 주사가 내장되어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 레이드 닥터는 이 중 하나를 처방해 신속하게 주사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정맥에 직접 주사를 할 수도 있어서 화급을 다투는 던전에서는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주현은 재빨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항생제를 주사했다.
허나, 태하의 상태는 그의 예상보다 더 빨리 안 좋아졌다.
[염증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삐비비비빅!
이주현은 이를 악물었다.
“패혈증입니다.”
“……허어! 그럼 어떻게 해요?!”
“이대로라면 염증 반응 때문에 죽을 수도 있어요! 어서 환자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혈액검사도 할 수 없으니…….”
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주현의 배낭에는 긴급 혈액검사 키트가 들어 있고 간이 방사선검사기도 구비되어 있다.
시간만 벌 수 있다면 충분히 태하를 살릴 수 있었다.
“딱 1분, 1분만 시간을 벌어 줘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볼게요!”
용팔은 활을 질끈 동여맨 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수호자의 방패를 들었다.
비록 크기를 조절할 수는 없어도 동료들을 화염 공격에서부터 막아 낼 수는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탱커다!”
용팔은 목숨을 걸었다.
최전방의 태하는 항상 이렇게 목숨을 내놓는다는 걸 잘 알기에, 그를 지키는 데 스스럼이 없었던 것이다.
-크르르릉!
우득!
팔이 깨물리는 바람에 용팔은 삼두의 피부가 다 까져 버렸다.
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버텨야 해요! 근딜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오케이, 최선을 다할게요!”
전방에서 동료들이 최선을 다하는 동안 이주현은 검사 키트로 태하의 정확한 상태를 살폈다.
그는 가방의 간이 방사선검사기를 통해서 태하의 상태를 살폈다.
삐비빅……!
코어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활용하여 만든 간이 검사기는 인체의 상태를 정확하게 살필 수 있는 의료 기기다.
[환자: 정태하]
[상태: 폐 손상, 패혈증, 간 손상, 기관지 폐쇄……]
“쓰으으으……!”
“젠장, 숨소리가 너무 안 좋아! 이대로는 급성 기관지염에 폐 손상으로 사망할지도 모르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심지어는 폐부종이 심해서 기도 삽관이 필요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주현은 일단 태하의 기도를 확보하고 인공 펌프를 가져다 댔다.
후욱, 후욱…….
“하아아…….”
“……일단 기도는 확보했다. 이제부터가 문제야.”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일단 위 상태에 대비할 수 있는 약품부터 처방했다.
[약물을 선택하셨습니다]
[주입 용량 및 투약 시간을 설정해주십시오]
어떤 약을 얼마나, 또한 어떻게 주입할지도 관건이다.
이주현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시간을 지정했다.
삐빅, 삐빅…….
[약물이 투여됩니다]
[총 12종의 약물이 순서대로 투약됩니다]
메디킷을 팔에 붙이고 그곳을 밴드로 꽉 묶어 두었다.
그러자 태하의 상태가 종전보다 훨씬 더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허나, 여전히 변이는 문제였다.
“……증상이 또 달라질 텐데. 빌어먹을!”
변이가 거듭될수록 치명률은 낮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태하의 상태가 죽음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태하를 계속해서 지켜보며 상태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컹컹컹!
우득!
“젠장, 이 새끼가 하필이면 허벅지를 물다니!”
“측면도 뚫렸어요!”
대열은 끝까지 유지되고 있었으나 120마리의 헬하운드는 말도 안 되는 맷집과 공격력을 갖고 있었다.
놈들은 비록 미사일처럼 강력한 폭발력은 없었으나 불길이 닿는 즉시 피부가 타격을 받기 때문에 탱커가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이주현은 결심했다.
“……내가 업고 내려갈게요! 여러분들은 이곳을 탈출하세요!”
“그러다가 둘 다 죽어요!”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고요.”
“그럼 당신은…….”
“환자를 버리는 의사도 있어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했을 때부터 이주현은 한 번도 환자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이곳 던전에서도 말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자기 목숨을 던져서라도 말이죠!”
환자를 지키겠다는 의지, 혹은 그의 신념이 동료들의 가슴을 울렸다.
바로 그때였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의사 -> 퍼펙트서전]
[특성: 재생, 만병통치, 슈퍼 백신]
놀랍게도 밝은 빛과 함께 이주현이 각성을 한 것이었다.
그는 각성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태하에게 만병통치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태하의 신체가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흐어어어……!”
“돼, 됐다!”
“……닥터 리? 어떻게 된 겁니까?”
이주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헬스의 신이 보우하셨어요!”
“……다행이네요.”
치료제를 맞긴 했으나 아직도 기력은 회복하지 못했다.
이주현은 재생 스킬을 통해 태하의 망가진 장기를 회복시키고 그의 혈액을 재생시켜 주었다.
그러자 태하는 씻은 듯이 살아났다.
“……어라? 아무렇지도 않네?”
“됐어요! 이제 동료들을 구해 주세요!”
태하가 살아날 때쯤, 이번에는 용팔이 라이먼트의 디버프를 받아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가 풀려서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쿨럭, 쿨럭!”
“용팔 씨! 저 왔어요!”
“……헌터님! 그레이트하게 살아나셨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용팔 씨가 죽어 가네요. 이런 제기랄!”
이주현은 용팔에게도 만병통치를 시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파티에 슈퍼 백신 스킬을 시전해 주었다.
[스킬: 슈퍼 백신]
[한시적으로 모든 질병에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만독불침의 몸이 되어 각종 독극물에서 신체를 방어합니다]
한마디로 무적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엄청난 신체를 얻은 헬창스는 이제 웃으며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그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요?”
“공대장! 저놈이랑 맞짱 뜨고 싶으면 떠! 우리가 밀어줄 테니께!”
“오케이!”
태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전방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파앗!
점멸을 통해 빠르게 헬하운드를 따돌리며 나아갔고, 순식간에 라이먼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놈은 태하가 점멸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인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점멸? 멍청한 놈이로군. 그런 스킬을 쓰면서도 지금까지 버텼단 말인가?
“리더란 동료들을 버리지 않는 법이지. 그런 깡다구 없이 던전에서 버틸 수 있겠어?”
-죽어라……!
라이먼트는 몸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태하를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태하는 거기에 맞춰서 좌측으로 점멸해서 공격을 피해 냈다.
파앗!
점멸과 동시에 들어간 돌격.
콰앙!
라이먼트는 특성에 의해 그대로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태하는 라이먼트의 눈에 스트랩을 찔러 넣었다.
퍼억!
“잘 가라, 대형 슬라임 같은 새끼야!”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13]
[라이먼트를 흡수합니다]
[스킬과 신체 능력을 카피합니다]
[이제 라이먼트의 모든 특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라이먼트의 코어를 흡수함으로써 이제 태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돌아서자마자 헬하운드에게 역병을 창궐시켰다.
[스킬: 역병]
[헬하운드에 특화된 질병을 부여합니다]
사납게 짖어 대던 헬하운드들이 갑자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었다.
-켁켁, 켁켁……!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촉촉했던 코는 메말라서 이제 더 이상 그 빛을 낼 수 없을 정도로 푸석푸석해져 있었다.
한마디로 헬하운드는 중병을 얻어 걸을 수도 없게 된 것이었다.
“오오, 디버프! 그레이트한데요?!”
“조금 잔인한 스킬이긴 해도 이보다 더 확실한 디버프는 또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드디어 전투에서 승리했다.
싸움에서 승리한 태하에게 마이트는 한 가지 특전을 내려 주었다.
[패시브: 대사형의 오러 - 내리사랑]
[대사형의 내리사랑은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기도 합니다]
[최근에 습득한 스킬 목록 중 하나를 사문의 동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리사랑에 대한 보너스: 스킬을 나눠 준 만큼 자신의 주요 스킬이 상승합니다]
스킬을 전이해 주면 그 대가로 주요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게다가 이 스킬은 동료에게 전해짐으로써 사냥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었다.
태하는 디버프 스킬을 이주현에게 주었다.
[스킬이 전이됩니다]
[퍼펙트서전의 스킬 목록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이주현’이 전직합니다]
[퍼펙트서전 -> 디버프 닥터]
만병통치라는 스킬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역병이라는 디버프는 이주현이 다소 이중적인 힘을 얻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생명을 경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던전을 올라야 하는 의사 이주현에게는 아주 잘 어울리는 특성이었다.
“오오, 이게 웬일이다니! 고마워요, 대사형!”
“의형제 아닙니까. 브로?”
태하도 스킬 전이로 이득을 톡톡히 보았다.
[특성 및 연계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킬: 싱크로 멘탈리즘]
[특성 ‘광대역’을 획득하셨습니다]
[연계 스킬 - ‘도발’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로써 파티는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허나, 고비는 이제 시작이었다.
스스스스……!
화이트홀이 열리며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복면을 쓰고 있었으며 풍겨 오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쳐라!”
“이런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