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꿀렁꿀렁 화이트홀(1)
64층으로 올라가는 길.
태하의 곁을 지키던 몰먼족의 총총이 말했다.
“나리, 조심해야 한다요! 64층에도 꿀렁꿀렁 있다요!”
“흠……. 화이트홀 현상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만들어 두는 거지?”
64층에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곳에서는 엄청난 혈전이 벌어져야 정상이었지만, 지금은 몬스터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화이트홀과 몬스터가 사라진 사건은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65층은 어때?”
“총총이 봤을 때 65층에는 몬스터가 없었다요!”
“……65층에도 몬스터가 없어?”
라이먼트의 리젠 타이밍은 지나고도 남았다.
이쯤 되면 라이먼트는 65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어야 했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헬창스는 혼란스러웠다.
“뭐야, 도대체.”
“이 새끼들이 요 앞전에 몬스터를 싹 쓸어 갔나? 이봐, 총총. 뭐 아는 거 없어?”
유신성의 질문에 총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70층까지 인간은 없었다요!”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가만히 던전을 훑어보던 태하는 데스벳이 떠올랐다.
그는 데스벳들을 불러 모았다.
-끼익!
“던전에 인간으로 보이는 것들이 들어온 적이 있었나?”
데스벳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끼이잇.
“흠, 그럼 뭐지?”
태하의 말을 들은 데스벳 중에서 두 놈이 오른쪽 날개를 번쩍 들었다.
증언하려 거수를 한 것이다.
“말해 봐.”
-끼기이이잇!
“……몬스터가 사라져?”
데스벳의 말에 따르면 63층에서부터 65층에 있던 몬스터가 사라졌다고 했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몬스터가 사라져?”
이제 그럼 66층으로 올라가야 할 타이밍일까?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총총은 눈을 번쩍 떴다.
“히이익! 몬스터다요!”
“몬스터……?”
“저, 저기! 꿀렁꿀렁!”
총총의 앞발이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화이트홀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바닥을 진동시키는 울림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한 파티.
“일단 후퇴합시다!”
“오케이!”
지금은 홍이도 없는 상태였다.
만약 여기서 샌드위치를 당하게 되면 그대로 사망이었다.
64층으로 황급히 내려가던 태하.
허나, 총총의 한마디에 파티원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앗! 64층에도 진동이다요!”
“……젠장, 아까 그 화이트홀이 그럼 소환을 위한 것이었단 말이야?!”
진퇴양난이었다.
이대로라면 앞뒤가 꽉 막혀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메이지라도 소환할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 지금 메이지는 소환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쿠구구구궁!
이제는 발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져 왔다.
하는 수 없이 헬창스는 돌파하는 쪽을 택했다.
“……제기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죠.”
“지미럴! 그려, 해 보자고!”
헬창스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존해 왔다.
뚫을 수 없을 것 같던 곳도 근육 하나만 믿고 돌파하지 않았던가.
스트랩을 연결해 놓고 바벨을 꽉 쥐는 태하.
“후우, 준비합시다!”
“예아, 버디이이이이!”
보디빌딩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운동이듯, 지금까지 헬창스의 레이드는 그야말로 극한 그 자체였다.
그 극한을 뛰어넘는 것은 점진적 과부하 정신이다.
방패를 꽉 쥐고 64층과 65층 사이 동굴에 자리 잡은 태하.
쿵쿵쿵쿵!
“왔다!”
-크아아아앙!
순간, 태하와 눈이 마주친 몬스터.
태하는 그 몬스터의 얼굴과 눈빛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하아? 라이먼트!”
-……지옥으로 보내 주마!
하필이면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 있을 때 질병과 디버프의 제왕이 강림할 줄이야.
지이이잉!
이번에는 바닥에서 화이트홀이 발생하더니 마치 하이에나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덩치의 개떼가 쏟아져 나왔다.
철컹, 철컹.
-으르르릉!
“……뭐야, 헬하운드 아니야?!”
“이렇게 많은 헬하운드 무리는 난생처음 보는데!”
전투마보다 큰 키, 황소와도 같은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헬하운드는 걸어 다닐 때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입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며 이빨과 발톱은 뜨겁게 달궈진 용암과도 같아서 한 번 물리면 그대로 사지 육신이 불타거나 신체 일부가 불에 타서 사라진다는 무지막지한 몬스터다.
원래는 63층과 64층의 준보스급 몬스터로, 이것이 떼를 지어서 다닐 때는 보통 12마리 정도로 무리가 구성된다.
헌데 지금은 무려 120마리나 되는 헬하운드 무리가 떼를 지어 으르렁대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헬하운드가 이렇게 많이 모일 수 있지?”
“개떼가 연합이라도 했나?”
희란은 몇 개의 화이트홀이 발생되었던 것을 상기하고는 한 가지 가설을 내놓았다.
“화이트홀로 몬스터를 빼내서 저장하는 거 아닐까요?”
“몬스터를 저장해?”
“몬스터는 리젠이 되니까 그걸 포획해서 가져다 놓았다가 한꺼번에 풀어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하, 그러네?! 서울 시내에 나타났던 몬스터가 죽었는데도 이곳 던전에는 다시 몬스터가 리젠되었잖아요. 그런 원리를 이용한 건가?!”
몬스터를 포획했다가 풀어놓는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아이디어다.
하지만 저런 미친 지옥 개들을 도대체 어디에 가둬 놓고 있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65층 보스마저도 가둬 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 아니에요?”
“……얘기가 그렇게 되나?”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허나, 그러는 동안에도 몬스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오고 있었다.
윤정은 자신의 전술에 대한 확신이 점점 떨어져 갔다.
“이길 수 있을까요?”
“……윤정 박사씨,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죠?”
“헬창!”
“이 세상에서 근육이 이기지 못하는 건 없어요.”
“오오, 헬창 헌터씨 멋있어! 짱짱! 반할 것 같아!”
“자, 그럼 갑시다! 헬창 포에버!”
태하는 선봉에 서서 헬하운드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맨주먹으로 헬하운드 무리의 선봉에 선 놈의 미간을 후려갈겼다.
빠각!
-깨갱!
“하나요!”
비록 한 놈은 맞아서 기절했지만, 그 기세는 죽지 않았다.
-크르르릉!
놈들은 태하의 팔과 다리를 물어 버렸다.
그러자 그의 피부가 다 타 버릴 듯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크으으윽!”
“헬창 헌터씨!”
“……괜찮아요! 내가 몸빵 칠 테니까 길을 뚫어요! 택티션씨, 할 수 있죠?!”
윤정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요, 헬창 헌터씨! 할 수 있어요! 아니, 반드시 해낼게요!”
공격대장은 파티를 보호하고 그들의 인화단결을 끌어내는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이지만, 파티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택티션이다.
윤정은 재빨리 속성을 하나로 정했다.
“명 속성! 명 속성으로 공격합시다!”
“헬하운드면 화 속성 아닙니까?”
“맞아요! 그렇지만 화 속성 레벨이 높은 데다 그 온도가 너무 높아서 얼음으로는 둔화를 조금 걸어 주는 것이 고작이에요! 허나, 이놈은 속성이 2개죠. 바로 암 속성이요.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만, 이 상성을 레이드에서 이용하려면 상성 간의 레벨 차이라든지 미묘한 스킬 효과 상성 이팩트 등을 잘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스킬 효과는 각 상성이 부딪칠 때 그 특성과 타이밍에 따라서 대미지가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이것이 바로 스킬 효과 상성 이팩트다.
“명 속성으로 전환해요!”
“오케이!”
“용팔 씨는 속성 옵션을 폭발로 바꿔 주세요! 그리고 혁수 아저씨는 일격필살로 보스를 노려 주세요!”
“어이, 알것어! 아니, 그런데 나는 왜 아저씨여? 나도 오빠라고 불러 달란 말이여!”
[스킬: 애로우 레인]
[범위: 직경 30미터]
[지속 시간: 25초]
[속성: 명]
[속성 옵션을 선택해 주세요]
[폭발]
[명 속성 옵션 특성: 감전 효과]
스킬 레벨이 일정 수준을 벗어나 생겨난 옵션 특성은 대단한 효과를 냈다.
콰지지지직!
헬하운드는 스킬에 닿자마자 1초간 경직되며 5초간 행동이 느려져 스피드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덕분에 근딜들은 앞에서 헬하운드를 상대하는 데 훨씬 더 수월해졌다.
빠각!
-깨갱!
“손맛 좋고!”
“윤 코치님, 레벨을 올리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정글과 근딜이 수월하게 사냥을 해 주니 파티는 예상보다 빠르게 돌파가 가능했다.
허나, 그러는 동안 라이먼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디버프: 로우 레지스터]
[대상의 저항력을 감소시킵니다]
최전방의 근딜들이 디버프를 받자, 대미지가 3배로 들어왔다.
화르르륵!
“……이런 젠장!”
팔 둘레가 증가하면서 태하의 저항력도 상당히 많이 올라갔건만, 헬하운드의 불길에 닿자마자 물집이 올라왔다.
화 속성 저항력이 내려가서 2도 화상을 입은 것이다.
“이런 불길에 2도 화상이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용암과도 같다는 헬하운드의 불길에 닿았는데 수포 좀 올라오고 만 정도면 분명 희소식이긴 했다.
허나, 저항력의 상승으로 불길에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았던 태하에게 상처가 났다는 건 전투에서는 심각한 페널티였다.
이런 페널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휘리리릭!
스트랩을 뻗은 태하는 헬하운드의 목덜미에 줄을 돌돌 감았다.
그러곤 이내 힘을 주어 스파이x맨처럼 날아올랐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지!”
플라이파운딩으로 헬하운드의 이빨을 아예 아작내 버린 태하.
빠각!
헬하운드들은 흥분해서 태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릉!
놈들의 불길이 태하의 온몸에 화상을 남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마구잡이식으로 주먹을 날려 댔다.
퍽퍽퍽!
-깨갱!
헬하운드 무리가 태하의 기세에 크게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라이먼트는 또다시 디버프를 시전했다.
[디버프: 위큰]
[공격력을 크게 감소시킵니다]
태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식은땀이 삐질 났고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띵!
“허엇?!”
라이먼트는 단순한 마법으로 상대방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새로운 질병이나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서 침투시키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강력한 탱커라고 해도 위큰과 같은 디버프에 걸리면 맥을 못 추게 되는 것이다.
-크르르릉……!
헬하운드가 태하의 팔을 물어뜯자, 그 고통이 몇 배가 되어 돌아왔다.
“……젠장!”
퍼억!
헬하운드의 턱을 주먹으로 후렸지만, 놈은 멀쩡했다.
펀치의 위력이 아까보다 훨씬 더 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허억, 허억……!”
“헬창 헌터씨! 괜찮아요?!”
“……몸살 비슷한 게 걸린 것 같은데요?”
“희란 씨!”
얘기를 들은 희란은 즉시 조치를 취했다.
“알겠어요! 대장, 조금만 참아요!”
희란은 태하에게 순백의 신성을 시전했다.
[스킬: 순백의 신성]
[독성 마법 및 디버프 효과 제거]
[지속 시간: 15분]
디버프를 제거하는 마법이 시전되었다.
허나, 디버프의 레벨이 높아서 순백의 신성과 디버프가 상충을 일으켰다.
“……순백의 신성이 금방 사라져요! 치료도 되기 전에 없어져서 효과가 없나 봐요!”
“큰일이네!”
이대로라면 병이 깊어져 이 자리에서 쓰러질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킬: 인연의 사슬]
[‘약탈’로 확보한 스킬에서 파생 스킬이 만들어집니다]
[디버프 - 항체]
[신체로 들어온 세균, 바이러스, 진균 등이 일으키는 질병에 대한 항체를 생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