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8화 (78/197)

078 피자가 좋아!(2)

다음 날.

총총을 따라서 63층으로 올라선 태하와 일행들은 던전 중간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희끄무레한 화이트홀을 발견했다.

“……진짜로 있었네?”

“총총은 이제 거짓말 안 한다요!”

“아니, 그나저나 총총, 너는 여길 어떻게 올라온 거야?”

“그냥 올라온다요. 그게 이상한 거냐요?”

“음. 보통의 몬스터는 던전의 층과 층을 드나들 수 없어.”

총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요! 우리 몰먼들은 던전을 자주 드나든다요.”

“층을 드나들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

헬창스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몰먼은 명실상부 몬스터인데 도대체 어떻게 층과 층을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일까?

“뭐, 층을 넘나들 수 있다면 몰먼이 우리의 정보원이 되어 줄 수도 있겠는데.”

“정보원? 그건 뭐냐요?”

“너희들이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거야. 그럼 우리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줄 수도 있어.”

“……좋아하는 거?”

“몰먼들은 뭘 좋아해?”

총총은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외쳤다.

“피자!”

“피자? 너희들이 피자 맛을 어떻게 알아?”

“인간들이 몰먼들 마을을 부수고 자기들 마음대로 짓밟았을 때 먹는 걸 봤다요. 배가 고파서 남은 걸 먹었는데, 진짜 꿀맛이었다요!”

“흠, 피자라. 좋아. 너희들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알려 주고 그 재료를 가져다줄게. 어때?”

“……피자를 만들 수 있는 거냐요?”

“당연하지. 만들었으니까 아수라 길드가 그걸 처먹었겠지?”

총총은 군침을 삼켰다.

“……우리 부족이 좋아하겠다요! 총총, 열심히 하겠다요!”

“하하, 그래. 너희들에게 피자를 만드는 법을 알려 줄게. 그럼 앞으로 그 좋아하는 피자를 실컷 먹을 수 있어.”

“우하하! 나리 최고다요!”

총총은 태하의 다리를 부여잡고 마구 얼굴을 비볐다.

이것은 몰먼족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 인사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성 팀원들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아, 하아! 다 좋은데 몰먼은 너무 귀여워.”

“……심장에 해로워서 자주 보면 안 돼요.”

“하지만 못 보면 보고 싶어!”

그녀들은 총총을 들곤 얼굴을 마구 비벼 댔다.

그러자 총총은 괴롭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아아……! 총총 죽는다요!”

“으윽, 귀여워!”

태하는 괴로워하는 총총을 그녀들에게서 구해 주었다.

“자, 이제 그만 좀 하자고요.”

“……히잉!”

“총총. 이제 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얻어 와.”

총총은 태하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알겠다요! 나리의 말에 따르겠다요!”

***

61층의 지하에 건설되기 시작한 몰먼의 마을.

이곳은 현대의 건축 공법을 그대로 물려받아 시공되고 있었다.

몰먼은 광부 종족답게 손기술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설계도와 건설 기술만 전수하면 알아서 건물을 뚝딱 지어냈다.

좁은 갱도 안은 그야말로 아기자기한 난쟁이의 마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아!”

“전기도 연결했으니 이젠 몰먼들이 고생할 일은 없겠네요.”

몰먼은 두더지 인간이라 암흑 속에서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생활에 필요한 동력이 없다는 건 아주 치명적인 일이었다.

윤정은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코어 발전을 설계해 주었는데, 바벨탑 안에서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회로를 구성한 것이었다.

태하는 그들에게 화덕을 만들어 주었고, 희란은 몰먼들에게 피자를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다.

“피자는 도우라는 것을 만들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는 게 첫 번째 과정이야. 그리고 그 위에 치즈와 각종 토핑을 뿌려 주면 준비 끝이야.”

“오오, 피자다요!”

몰먼의 족장과 그 측근들은 피자의 원형만 봐도 흥분했다.

과연 그 맛에 얼마나 중독된 것인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귀여워.”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요?”

“피자를 화덕에 넣고 10분 정도 구워 주면 끝이야. 어렵지 않겠지?”

희란은 요리에 관해서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피자를 만드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피자를 만드는 세세한 레시피를 전수해 주고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피자의 재료를 공수해 주기로 했다.

“우리가 일요일에 던전을 오르니까 그때 재료를 놓고 갈게.”

“감사하다요! 누나 나리, 정말 감사하다요!”

“……귀여운 것들.”

“감사하다요!”

몰먼들은 감사와 존경의 의미로 희란의 다리에 단체로 얼굴을 비벼 댔다.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애들아, 누나 심장 아파!”

한편.

태하는 마을에 화덕 설치를 마무리한 후에 족장 총총을 비롯한 탐사대를 꾸렸다.

이제부터 몰먼은 땅굴을 파는 능력을 이용해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바로 위층의 상황을 살펴 태하에게 전해 줄 것이었다.

“명심할 것은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도 안전이라는 거야. 알겠지?”

“알겠다요! 명심하겠다요!”

비록 피자를 보수로 받는다지만 그에 비해서 위험도는 터무니없이 높았다.

때문에 태하는 몇 번이고 강조했다.

“데스벳과 동행하면서 내게 연락을 취해. 절대 적에게 발각되어선 안 된다. 알겠지?”

“그건 걱정하지 말라요! 우리 몰먼, 땅 100미터를 파는 데 7초도 걸리지 않는다요!”

“그래. 반드시 피해야 해. 알겠지?”

“알겠다요!”

***

늦은 밤.

대한민국 4대 언론사인 ‘한강일보’로 한 통의 제보가 날아들었다.

조간신문을 검수하고 있던 한강일보의 총괄 편집장 강일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진짜야? 확실해?”

“네, 그렇답니다!”

“엠비엠이 자사의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겠다? 이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뿐만 아닙니다. 엠톨과 관련된 정치인과 헌터협회 관계자들까지 싹 다 엮어서 한 방 크게 터뜨려 달랍니다.”

“……정계 인물?”

“대선 후보 추민우 말입니다.”

“뭐?!”

강일수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추민우는 현재 한강일보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그는 공정위, 국세청을 이용해서 주기적으로 한강일보를 들쑤셔 주었고 거기서 생기는 정치자금이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돌아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들은 추민우가 상납하는 돈에 현혹되어 한강일보를 아주 때만 되면 족치느라 여념이 없을 정도였다.

“……추민우를 잘못 치면 우리는 다 죽는다.”

“압니다. 하지만 추민우를 몰아내면 그와 엮인 줄줄이 소시지들을 한 방에 엮어 저승으로 보낼 수도 있겠죠.”

“젠장……. 미끼치고는 너무 왕거니라서 이걸 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군.”

강일수의 말처럼 이건 너무나도 완벽한 미끼였다.

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본부장님?”

“……잠깐,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좀 하게.”

강일수는 이 일에 과연 누구를 엮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일수가 막강한 언론의 수장이라고 해도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실상 한강일보를 지배하는 뒷배를 갈아 치우는 일이 아니던가.

“이 정보를 보내온 정보통과 한번 얘기를 해 보시겠습니까?”

“정보통이 누군데?”

“헬창 헌터라고 하더군요.”

“……누, 누구?”

***

다음 날.

강일수는 떨리는 마음으로 덕림헬스를 찾았다.

“예아, 버디이이이!”

“꼬우우우!”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오는 헬스장은 그야말로 남성호르몬이 폭발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강일수는 그런 헬스장 구석에서 회원들을 가르치고 있던 태하를 발견했다.

“정태하 씨!”

“누구십니까?”

“한강일보의 편집장 강일수입니다.”

“음,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강일수는 태하의 손에 이끌려 덕림헬스의 지하에 있는 트레이너 휴게실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음식 냄새가 지상까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보통 트레이너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강일수는 태하가 건네는 단백질 음료를 받았다.

“딸기 맛입니다. 그럭저럭 드실 만할 겁니다.”

“……아, 예.”

강일수는 태하가 준 음료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손도 대지 않았다.

굳이 단백질을 음료수로까지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보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랬었지요.”

“대선 주자 추민우를 묻어 버릴 수도 있는 제보입니다. 그 뒷일은 생각하고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뒷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가요?”

“아무래도 추민우 정도 되는 인물을 상대하는 것이라서…….”

태하는 강일수에게 옥패를 건넸다.

특무관 옥패를 받은 강일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청룡방 특사?”

“그래요. 이 사건은 이미 청룡방이 엮여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청룡방 특사는 방주와 헌터협회, 제네시스에 의해 움직입니다. 추민우가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언젠가는 정리될 인물, 그 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닌가요?”

비록 코어 거래소의 국유화를 두고 여야의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나,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청룡방과 같은 초대형 길드에서 코어의 공급을 끊어 버리면 대한민국은 3년 안에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민우와 같은 정치인들이 설치는 이유는 모두 표심을 위한 일이다.

“에너지의 평등을 주장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코어 시장이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만큼 돌아가는 겁니다. 에너지의 평등은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죠. 그들의 목적은 따로 있잖습니까?”

“흠, 그래요. 그건 그렇죠.”

“안 그래도 지금쯤 청룡방과 제네시스에서는 칼을 갈고 있을 겁니다. 추민우? 그 정도의 인물은 사실상 살생부의 맨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 있다는 소리죠.”

제네시스는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기관이기도 하다.

그런 제네시스를 만든 청룡방, 그리고 그 조직의 수장이 움직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감히 그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백선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국가의 정책에 따르는 것은 질서를 위한 일이라고요. 만약 저쪽에서 질서를 깨면…….”

“음…….”

“그 뒤의 일은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강일수는 확신했다.

이 정태하라는 청년, 지식이 깊다거나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인물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이다.

‘……단순히 그냥 헬창은 아닌 것 같은데?’

흔히 태하를 두고 ‘게임 체인저’라고들 많이 부른다.

강일수는 이제 그 이유가 절로 이해가 되었다.

태하는 시장을 뒤엎을 수 있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최고의 스타 정태하를 등에 업기로 했다.

“그럼 저는 당신만 믿고 일을 벌여도 되겠습니까?”

“나를 믿지 말고 청룡방과 제네시스를 믿으세요.”

“……좋습니다.”

“풀액셀 한번 밟아 봐요. 쫄 것 없잖아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으음!”

강일수는 그길로 헬스장을 나와 신문사로 향했다.

그는 평생 이 순간만을 꿈꾸며 살아왔다.

당장 신문사의 편집부를 소집시킨 그는 폭탄선언을 했다.

“추민우를 저격하는 기사를 쫙 뿌려.”

“……기사를 쫙 뿌리라고요? 우리만 단독으로 내는 게 아니고요?”

“우리의 목적은 특종이 아니야. 추민우를 묻어 버리는 거지.”

지금까지 추민우 때문에 뜯긴 돈만 모아도 한강일보 같은 신문사 수십 개는 세웠을 것이다.

그만큼 추민우는 악독하게 돈을 갈취해 갔던 것이다.

강일수는 이번에야말로 추민우를 요단강에 수장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한강일보는 4대 신문사는 물론이고 수많은 언론사에 추민우의 엠톨 스캔들을 폭로했다.

그러자 조간신문은 물론이고 SNS를 통해 이 소식이 미친 듯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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