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7화 (77/197)

077 피자가 좋아!(1)

탑의 수호자 마이트의 뒤를 이었다는 태하의 말은 헬창스의 대흉근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100층, 반드시 돌파해야겠군요!”

“그나저나 이제 곧 카이튼의 세력이 던전을 오른다고 난리를 칠 텐데, 무슨 징조는 없었나요?”

태하의 질문에 유신성이 답했다.

“얼마 전부터 코인의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긴 하더군요. 지금처럼 10층 이상 등반이 어려운 시점에서 코인이 계속 매입된다는 건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한 일이긴 하죠.”

“그렇다면 우리 말고 대규모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죠.”

이제부터는 던전이 혈투장이 될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헬창스도 마이트의 유지에 따라 뭔가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태하는 그리 생각했다.

“우리도 이제 던전 등반뿐만 아니라 적을 쳐 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청룡방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여 싸울 준비를 해야 할까요?”

길드의 택티션 윤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섣부른 선택보다는 관망을 선택한 것이었다.

“던전의 난도가 상당히 높아졌어요. 그렇다는 건 이제 10층 이상 등반을 위해서는 그만큼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우리야 클리어한 던전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나, 저들은 아니잖아요? 그럼 우리에겐 저들보다 시간이 많다는 뜻이 되죠.”

“그럼 그동안 청룡방에게…….”

“아니요, 청룡방도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어요.”

그녀의 한마디는 태하를 포함한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청룡방은 헬창스를 사실상 이끌어 준 사문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바로 희란이었다.

“맞아요. 아수라가 하필이면 우리가 62층 등반을 하고 있을 무렵, 그 타이밍에 맞춰서 치고 들어온 것부터가 좀 수상하지 않아요? 우리가 화이트홀을 추적한다고 던전을 등반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기껏해야 청룡방 특사, 혹은 관계자가 전부일 텐데 말이죠.”

“……정보가 새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어쩌면 청룡방 특사라는 조직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요.”

희란은 이연화를 골로 보내 버렸을 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뒤쫓았는지 가늠해 보았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던전 생활을 했었고 그곳에서의 암투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벌어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경험으로 미뤄 봤을 때, 이연화는 철저한 계획에 의해 뒤를 쳤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저쪽도 화이트홀을 이용해서 아주 자유롭게 던전을 드나들 수 있는 게 분명해요. 거기에 누군가의 제보로 우리가 60층대에 진입했다는 걸 알게 되었겠죠.”

“아니, 그렇다면 100층까지 시원하게 올라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들도 한계가 60층 정도인 거겠죠.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뒤가 아니라 앞뒤에서 포위하듯 기습하지 않았을까요?”

“으음……!”

“이제부터는 사방 천지 어디에서도 적이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거예요.”

만약 몰먼들이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헬창스는 그 자리에서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파티는 여기서 더 늘리지 않고 당분간 이대로 가는 것으로 하자고요. 다만, 우리도 던전에 CCTV를 달아 놓자고요.”

“CCTV?”

“그러면서 청룡방 특사를 좀 정비해 볼 필요가 있겠어요.”

***

청금타워 지하 주차장 2층.

스포츠카를 탄 태하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쿠르르릉……!

엄청난 굉음이 청금타워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태하는 주차장 한가운데 차를 세웠다.

하차 후에 전방을 주시하는 태하의 시야에 하나둘 신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들은 아주 은밀하게 태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특사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특무관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청룡방 특사는 원래 서로 연락을 한다거나 접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례적으로는 특무관, 혹은 방주의 지시에 따라서 공조수사를 하는 경우에 둘 이상이 붙어 지내기도 한다.

그런 청룡방 특사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다들 실력이 보통은 아니로군.’

귀영의 수장인 고영수가 각성하기 전의 실력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조금 더 높은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영수의 능력치가 어지간한 A급 헌터들은 가볍게 밟아 줄 정도였으니, 이들은 S급의 전투력을 지닌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태하는 자신을 중심으로 모인 특사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헬스하운드의 정태하입니다.”

“압니다. 헬창 헌터. 요즘 인터넷에서 아주 핫하더군요.”

“저를 아신다니, 영광인데요?”

“출중한 능력, 스타성, 다 갖춘 분이시죠. 다만 그것이 과연 특무관으로서의 자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의문입니다만.”

역시 특사들은 태하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무관은 이 바닥에서 20년 동안 활동했던 ‘청룡방의 그림자’ 유현택이었기 때문이다.

유현택은 특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고 청룡방의 정보원으로서 전설적인 공적을 쌓은 사람이었다.

허나, 그는 태하의 등장으로 자신의 손으로 키운 특사를 떠나 청룡방 수뇌부로 올라갔던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우두머리.

청룡방은 태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저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군요.”

“잘 아시네요.”

마치 이리 떼 안으로 1마리의 호랑이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능력으로는 태하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특사들도 잘 안다.

하지만 늑대가 호랑이를 우두머리로 옹립하지 않는 것처럼 특사들도 무력만으로는 태하를 우두머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태하는 이들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아마 평생 가도 어려울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에 내통자가 있습니다.”

“……뭐요?”

“툭 까놓고 얘기하죠. 아수라 길드로부터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당신이 부주의해서 뒤통수를 맞은 것을 가지고 어째서 내통자를 들먹이는 겁니까?”

잘못하면 분란을 조장할 수도 있다.

태하도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작금의 문제도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떡밥을 하나 더 던졌다.

“아수라에서 생체 실험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 원료를 수급하는 루트를 찾아서 차단하고 있던 도중에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생체 실험의 원료?”

“엠톨의 원료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원산지에 대해서 알아냈죠.”

태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아주 시원하게 공개했다.

원래 정보 조직이라는 것은 정보가 곧 생명이자 돈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카드를 함부로 오픈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기에 태하도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허나, 태하는 자신이 그 카드를 쥐고 있기보다는 공통의 적을 만들어 주고 싸울 수 있는 대의명분을 부여하려는 것이었다.

“엠톨의 원료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정보였고 그에 대한 사실은 청룡방에서만 알고 있었죠. 헌데 그 정보가 샌 겁니다.”

“그 정도 정보라면야…….”

“그래요. 청룡방 특사 정도나 되어야 알 법한 정보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청룡방 특사만큼 대단한 정보력을 가진 사람이 정보를 밖으로 퍼 나르고 있다거나.”

“으음…….”

“어쨌거나 우리는 이 정보를 가지고 아수라와 내통한 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아마 특사는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적과의 내통은 그 즉시 척살이다.

정보 조직은 한 집단을 영리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해 주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정보가 자꾸 새는 조직은 암 덩어리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태하는 그런 생리를 바탕으로 청룡방 특사들을 움직이려 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는 특사들.

그러다가 암호명 ‘암’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조직이 정부의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정부뿐만 아니라 제네시스에서도 아마 의구심을 갖게 되겠죠. 어쨌거나 내가 수사를 했다는 것과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특사 암의 한마디로 태하의 떡밥은 힘을 받게 되었다.

이제 특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건을 해결하려 들 것이다.

‘정보를 빼돌린 놈은 반드시 튀는 행동을 하게 되겠지. 자신이 튀는 행동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야. 특사란 그런 자리이니까.’

특사는 중요한 직책이며 아무에게나 내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헌터에게 있어서 상당히 명예로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일이기도 하다.

특사가 다루는 사건들은 역으로 스스로의 목덜미를 찌를 수도 있지 않던가.

“특무관으로서 지시합니다. 정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샌 것인지 수사하세요.”

***

이른 아침부터 던전을 오르는 태하와 윤정.

오늘 태하는 평소와는 다르게 1층부터 차근차근 던전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던전의 곳곳에 데스벳 둥지를 설치해 두었다.

“자, 이제부터 이곳이 너희들 기지야. 수상한 자가 들어오면 즉각 보고해야 한다. 알겠지?”

-끼릿!

데스벳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얼마 전 아수라 길드가 주인인 태하의 뒤통수를 치려 했다는 소식이 데스벳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사방 천지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차근차근 던전을 오르는 태하.

그는 윤정이 설계한 ‘이계 방사선 측정기’를 등에 짊어진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삐빅, 삐빅…….

마치 심전도계처럼 물결치는 방사선 측정기는 이곳에 공간의 일그러짐 현상이 있었는지 파악해 준다.

흔히 생각하는 물리학의 ‘블랙홀’이나 ‘화이트홀’과는 다르게 던전 안에서의 화이트홀은 상당히 특이한 패턴을 보인다.

이른바 ‘이계 방사선’이라는 것이 화이트홀을 통해서 나오는데, 이것은 블루샌드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니까 이곳 바벨탑 안에서 생겨나는 화이트홀은 이계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윤정은 그 특성을 이용해서 이계 방사선을 측정하는 장비를 만든 것이었다.

“일단 10층까지는 이상이 없어요. 하지만 은은하게 이계 방사선이 측정되고 있죠.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꽤 오래전에 이계 방사선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계 방사선을 밥 먹듯이 이용했다……?”

“네, 그런 셈이죠.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곳에 방사선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눈금은 기준치 이상을 넘어서지 않고 있었다.

당장 화이트홀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과거의 흔적이 남아 기준치 이상 부근까지 올라간다.

허나, 기준치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이 주변으로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던전을 등반했다.

50층을 넘어 60층으로 들어선 태하와 윤정.

삐비비비비……!

눈금이 기준치 이상을 가리켰다.

심지어 눈금은 터질 듯이 폭주하고 있었다.

“……이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뜻인데?”

“그럼 60층에 화이트홀이 있단 말입니까?”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앞에 몰먼들이 나타났다.

“나리!”

“총총? 여긴 어쩐 일이야?”

“나리, 63층에 꿀렁꿀렁이 일어난다요!”

“꿀렁꿀렁?”

“인간이 드나드는 그거 말이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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