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4화 (74/197)

074 귀염둥이 몰먼(2)

몰먼을 따라서 지하 갱도로 내려가는 길.

이름이 ‘총총’이라는 몰먼은 이곳 지하의 족장이라고 했다.

“……미안하다요. 속일 생각은 없었다요.”

“족장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인간의 뒤통수를 치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총총은 ‘인간’이라는 단어에 발끈했다.

“총총, 인간 싫다요!”

“인간이 싫어?”

“인간이 70층으로 올라가면서 우리 집이고 농장이고 다 때려 부숴 버렸다요!”

아무래도 아수라 길드를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총총은 이를 갈았다.

“인간들, 마을을 부수고 지하에 이무기까지 잡아다 놨다요.”

“이무기를 아수라 길드에서 잡아 놓은 거라고? 아니, 도대체 왜…….”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이무기 새끼를 잡아다 던져 놓고 우리를 지하에 가둬 버렸다요.”

일행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인성을 가졌기로서니 단순히 재미로 이렇게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태하는 그놈의 아수라 길드의 바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 그 이무기 새끼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정확히 어떻게 했다는 거야?”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하루 종일 지하 광산에서 일하라고 했다요. 반짝이는 걸 계속 채굴하라고……. 그리고 자기 몸단장도 시키고 둥지에 똥 싸면 그것도 치워 주고…….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우리 몰먼을 하루에 10명씩 잡아먹었다요. 족장으로서 총총, 너무 괴로웠다요!”

총총은 풍성한 얼굴 털이 축축하게 젖도록 울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버텨 왔던 것이다.

“……그래서 총총, 처자식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이무기를 속였다요. 인간을 잡아다가 바칠 테니까 나 좀 내보내 달라고.”

“흠, 그런데 우연히 우리와 마주친 것이고?”

총총은 태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콩!

“나리, 나리는 엄청 강해 보인다요! 총총, 보면 알 수 있다요!”

“그 빌어먹을 이무기를 없애면 이제 더 이상 괴롭게 살지 않을 수 있다, 이거지?”

“……그렇기는 한데.”

총총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태하는 뭔가 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뭐야, 누가 또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새끼 이무기의 어미가 온다요. 오늘이 그날이다요.”

“어미 이무기라. 허 참, 산 넘어 산이로군.”

“어미 이무기는 한 번에 몰먼 수백 명을 먹어 치운다요. 아마도 이번에도 몇백 명의 몰먼이 사라질 것이다요. 총총, 너무 괴롭다요…….”

희란은 아수라와 이무기의 사악함에 이를 갈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이 누나가 그 이무기인지 뭔지 다 쓸어 줄게!”

“오오, 누나 나리, 멋있다요!”

“감히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마음대로 죽이고 먹어 치우다니, 그 빌어먹을 놈들! 끝까지 쫓아가서 모가지를 따 버려야 해!”

전투력이 절로 충만해지는 상황이기는 했다.

허나, 어찌 되었건 태하는 파티를 안전하게 던전 밖으로 인도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무기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

“이무기는 자세히 어떤 능력이 있는 놈이야?”

“백색 이무기는 얼음을 쓴다요!”

“얼음?”

“지금 이 아래 지하수는 다 얼어붙어서 물도 제대로 안 나온다요. 이무기가 똬리를 틀고 있어서 그렇다요!”

“냉 속성의 몬스터라, 뭐 그런 건가?”

“그런데 불도 쓴다요!”

“……뭐, 불을 같이 써?”

“불은 불인데 닿으면 언다요! 그런데 가끔은 불도 붙는다요!”

이무기라는 생명체란 도대체 어떤 놈들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태하는 부연 설명을 듣기 위해서 레이스를 깨웠다.

반지를 문질러서 그녀를 깨우는 태하.

-……네, 주인님.

“레이스, 이무기라는 생명체에 대해서 알려 줘.”

-잠시만…….

레이스는 이번에도 검색을 하는 모양인지 잠에 빠져들었다.

-쿠울…….

“원래 귀신이 저렇게 귀차니즘이 불치병 수준으로 심각한 존재들이었던가?”

“저 귀신은 좀 정도가 심한 것 같아요.”

잠시 후, 레이스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아……!

“검색해 봤어?”

-이무기는…… 드래곤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된 용족 개체로서, 그 능력의 일부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추후에 드래곤으로 진화한 사례도 있기는 합니다만…….

“합니다만?”

-쿠울…….

레이스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정보를 캐는 건 힘들 것 같았다.

“뭐, 드래곤보다는 약하다, 이거 아닌가?”

“흠. 그래도 용족의 일종이니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총총은 공격대의 앞에 넙죽 엎드렸다.

“나리들! 살려달라요!”

“그래, 네가 그렇게 빌지 않아도 살려 줄 거야. 우리는 너희들처럼 작은 생명체들이 고통받는 걸 그냥 지나칠 정도로 냉혈한들은 아니거든.”

“……감사하다요, 정말 감사하다요!”

“대신 이무기가 어디 있는지 네가 안내해야 한다. 괜찮겠어?”

총총은 굳은 의지를 굳혔다.

“총총, 목숨 걸었다요! 처자식 살리고 우리 부족원들 앞에서 떳떳하게 족장 노릇 하겠다요!”

“좋아. 그나저나 총총이도 남자네. 자기 목숨을 걸어가며 부족을 지키겠다니 말이야.”

“헤헤, 총총은 족장이니까! 원래 족장은 이렇게 제일 먼저 죽는 거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요!”

작지만 용감한 총총과 이무기를 사냥하러 가는 길.

주변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물질들이 아주 많았다.

이것이 바로 총총이 말했던 그 반짝거리는 광물인 모양이었다.

“이무기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어?”

“……맞다요. 이걸 잔뜩 캐서 가져다주면 어미 이무기가 와서 그걸 가지고 갔다요.”

“도대체 이게 뭔데?”

“총총이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먹어 봤는데, 짭짤하고 맛이 괜찮았다요!”

“뭐야, 암염 비슷한 건가?”

유신성은 암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살짝 찍어서 맛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건 암염이 아닌데요.”

“그럼 맛이 왜 짠 건가요?”

“글쎄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요.”

이럴 땐 자고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자를 불러내야 한다.

태하는 다시 반지를 문질렀다.

그러자 레이스가 잠이 든 채로 소환되었다.

-쿠울…….

“레이스!”

-어엇! 주인님…….

“물어볼 게 있어. 저거, 맛이 짭짤하다는데 정체가 뭘까?”

-……라이프스톤이네요.

“라이프스톤! 저게 바로 라이프스톤이었어?! 아니,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보자마자 알아?”

-워낙 유명하니까요. 아무튼, 저는 이만…….

더 이상 졸려서 버틸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반지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말을 들은 태하와 일행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라이프스톤이라! 그렇다면 이무기라는 그놈, 설마…….”

“아수라 길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요!”

***

라이프스톤이 마치 석순처럼 자라나는 신비한 동굴의 끝.

이곳에는 엄청난 냉기를 뿜어내는 이무기가 잠들어 있었다.

-쉬이이이익……!

멀리에서부터 이무기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태하는 숨소리로 미뤄 봤을 때, 분명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가 많이 큰데요?”

“흠. 우리만으로도 과연 클리어가 가능할까요?”

“던전 안에서는 소환이 더 쉬워요. 게다가 얼마 전에 라이먼트까지 해치웠으니, 큰 걱정은 없을 겁니다.”

라이먼트의 스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상대방을 각종 상태이상으로 몰아넣는 ‘질병’이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적도 태하의 앞에서는 그 능력을 100% 발휘하기 힘들어진다는 뜻이었다.

태하 일행은 똬리를 틀고 잠을 자고 있는 이무기의 앞에 섰다.

그러자 놈이 거대한 눈을 떴다.

마치 설화에 나오는 천 년 묵은 백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쉬이이익!

“이야, 이걸로 뱀술을 담그면 아주 죽이겠는데요?”

“하하, 그럼 나는 일타로 맛볼게! 내가 뱀술은 또 전문가 아니여? 우리 조부께서 땅꾼이었다니께?”

이무기는 인간들을 발견하자, 그 간사한 입을 옆으로 쭉 찢으며 웃었다.

-쉬이익, 인간이다!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건가?”

-마침 잘되었군! 배가 많이 고픈 참이었는데 말이야!

이무기는 분명 새끼라고 했는데 그 굵기가 가히 직경 5m는 되는 것 같았고, 그 길이로 따진다면 거의 100m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몸집.

허나, 이렇게 좁은 갱도에서 지나치게 큰 몸집을 가졌다는 것은 그렇게까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크하아아아!

놈이 입을 벌리자, 지독한 냉기와 함께 푸른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허나, 놈의 스킬은 태하의 캔슬레이션에 의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압되었다.

[스킬: 캔슬레이션]

[상대방의 스킬보다 시전자의 스킬 레벨이 더 높습니다]

[특성: 스턴, 경직]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던 새끼 이무기는 그 자리에 딱딱한 돌이 된 듯 굳어 버렸다.

콰지지직!

-케에에엑!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그렇게 지독한 짓을?!”

태하는 이무기 새끼의 미간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억!

그러자 이무기의 코에서 피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 피가 바닥에 닿자, 바닥은 그대로 빙판이 되어 버렸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우리 엄마가 너희들을 다 씹어 먹을 거다!

“이무기가 자식 교육을 아주 엉망으로 시켜 놨네. 좀 착하게 굴면 데리고 놀다가 죽일 생각도 있었는데, 그건 안 되겠어.”

어린 이무기가 이렇게 큰데 과연 그 어미는 얼마만 하다는 것일까?

만약 이 상태에서 어미까지 등장하면 골치가 아파질 테니 태하는 이무기를 그냥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놈의 미간에 스트랩을 찔러 넣었다.

까앙!

헌데 놈의 비늘이 워낙 단단해서 스트랩이 잘 박히지 않는다.

-흥! 그따위 천 쪼가리로는 나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

“아주 단단하네. 하지만 뭐, 이걸 떼어 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태하는 있는 힘껏 비늘을 잡아서 뒤로 당겼다.

거대한 비늘이 들리면서 이무기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크에에에엑!

“거참, 어지간히 발작하네.”

태하는 캔슬레이션으로 놈을 경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콰지지지직!

그러자 이무기는 눈물을 머금은 채 가만히 멈추어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이윽고 태하는 놈이 더 이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미간을 스트랩으로 뚫어 버렸다.

퍼어어억!

약탈로 이무기의 코어를 먹어 치우자, 놈의 눈은 그대로 빛을 잃어버렸다.

“생각보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생명체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나저나 저놈의 어미는 얼마나 거대하대요? 기억을 읽을 수 있지 않아요?”

“아 참, 그래. 한번 볼게요.”

태하는 이무기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이무기는 알에서 태어나 150년간 어미의 보호 아래 있다가 얼마 전 이곳으로 왔다.

어미는 한 달에 한 번씩 자식을 돌봐 주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엄청나게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태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억!”

“왜 그러세요?”

“……이놈의 어미, 진화를 한 것 같아요.”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어딘가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린 이무기는 이제 아이템 덩어리가 되어 태하의 가방으로 들어갔고, 놈은 앙상한 가죽과 뼈만 남게 되었다.

딱 거기에 맞춰서 드래곤의 포효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앙!

“어미가 새끼를 죽였다고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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