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3화 (73/197)

073 귀염둥이 몰먼(1)

바벨탑의 기원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언제부터 지구에 뿌리를 박고 있었는지조차도 말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직 바벨탑은 그저 작은 싱크홀 정도로만 생각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아예 그 실체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던 동네의 괴담쯤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고, 조금 더 과거의 기록을 뒤져 보면 ‘형상이 괴이한 범’이 자주 출몰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전 세계에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대한민국은 지하에 잠들어 있던 바벨탑을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풍족해져 가는 재화를 이용해서 이곳 바벨탑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바벨탑의 존재 정도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대사회에서부터 이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단체까지 있었을 정도였죠. 5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혹시 냉전 때문인가요?”

냉전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가 듣기론 당시에는 미소 냉전이 본격화되고 있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기에 게임 체인저로 엠톨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완벽 상용화가 되지 못했군요.”

“그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겠죠. 변이를 원하는 쪽은 성공, 능력 증폭이나 약효 발현만 원하는 쪽은 실패이고요.”

“그렇군요…….”

“미국의 방위산업체가 파이어볼과 같은 레이드펀드를 조직한 건 50년대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괴물화에 돈을 걸기도 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국방성이나 FDA가 승인을 안 해 줬을 것 같은데.”

“그래서 엠톨이라는 약이 나온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약은 원래 개발 자체에 대한 찬반이 분분했습니다. 괴물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돈을 투자하긴 했어도 분명 반대로 괴물화를 원하지 않는 쪽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괴물화를 원하지 않는 쪽, 정확히는 정부 기관을 설득하기 위해서 엠톨을 안정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50년대 초반, 이른바 ‘괴음굴’을 수호하던 단체 ‘청룡’이 투입되었지요.”

“……청룡?”

“네, 그렇습니다. 청룡방의 기원이 바로 이 청룡이라는 단체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상당히 오래되었지요.”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다.

사실은 청룡방의 수장이 꽤 오래전부터 바벨탑을 통제해 왔다니 말이다.

“청룡은 입구의 전면 개방만은 안 된다면서 실험에 필요한 원자재만 수급해 주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려 70층까지 도달한 청룡은 그곳에서 엠톨 안정화의 핵심 물질인 라이프스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대에는 이걸 ‘생사환’이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청룡에게만 전수되는 제약법에도 이 생사환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하고요.”

“그 효능이 괴물화의 억제였던 건가요?”

“생명 연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생명 연장이요?”

“영생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중병을 다스리고 광증을 치료하는 데 특효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해서 그것을 엠톨과 섞어서 투약했더니 기적의 신약이 되었던 것이죠.”

“허어!”

“아수라 길드는 이 70층에 화이트홀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생사환을 가져다 나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를 위해서 입자가속기를 만들고 화이트홀을 사방 도처에 뿌려 놓고 실험을 했던 것이죠.”

“흠, 그래서…….”

“다만, 화이트홀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중력과 자기장 등 여러 가지가 불안정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걸 안정화할 수 있는 물질을 이용광이 발견해 낸 겁니다.”

“마이너스 코어 말입니까?”

“맞아요. 이용광은 마이너스 코어를 통해 강해졌고, 그를 바탕으로 S급 헌터가 될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이용광은 이것이 화이트홀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이용광이 마이너스 코어를 상당히 깊게 연구했던 모양이죠?”

“아니요. 마이너스 코어에 대한 지식은 원래 청룡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던전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이용광은 어려서부터 귀신을 보고 귀기에 억눌려 거의 반미치광이로 살아왔습니다. 그 힘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힘을 짓눌러서 밸런스를 맞춰 준 곳이 바로 청룡, 지금의 청룡방인 겁니다.”

“……그럼 뭐야, 이놈은 사문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한 거네요?”

“그렇습니다. 청룡은 하나의 금기가 있습니다. 괴음굴의 훼손과 파괴. 화이트홀은 던전에 계속 타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용광은 파이어볼을 등에 업으려고 무리를 한 거죠.”

태하가 최연화와 마주했을 때, 그녀는 화이트홀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통해 도망쳤다.

만약 그렇다면 태하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아수라는 이미 화이트홀을 완성했군요……?”

“다소 제한적이긴 합니다만, 아마 그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던전과 던전을 드나들 수도 있게 되었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70층에서 원료를 빼 올 수 있다면 엠톨의 상용화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수라는 항상 100층 돌파를 입버릇처럼 지껄였던 것일까?

“그럼, 100층 돌파는 이제 파이어볼에 의미가 없어진 건가요?”

“아니요. 100층을 뚫어야 바벨탑이 무너진다고 하더군요.”

“……바벨탑이 무너져요?”

“저희도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100층을 돌파하면 던전을 파괴하든 복구하든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누가 먼저 던전 100층을 돌파하느냐, 그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엠비엠은 어째서 태하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우리는 던전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우리 엠비엠을 아수라 컴퍼니에서 인수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인수?”

“앞으로 우리는 며칠 후에 엠톨에 대한 폭로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엠비엠의 주가는 미친 듯이 폭락할 것이고, 우리는 곧 법정 관리에 들어가겠죠. 그때, 파이어볼이 엠비엠에서 발을 빼면 당신이 우리 회사를 인수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남는 게 뭔데요?”

“목숨이요.”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이들은 아수라 컴퍼니 사태를 통해 그걸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시 시작된 던전 등반.

62층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지하 동굴의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천장에서는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그것에 반사된 지하 광물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상당히 아름다운 광경이다.

허나, 이곳에 몬스터라고 할 만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몬스터가 아주 씨가 말랐는데요?”

“흠, 잠시만요.”

태하는 레이스를 불러냈다.

반지를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레이스가 등장했다.

-……네, 주인님.

“62층에는 어떤 몬스터가 살고 있지?”

-이곳은…… 위협적인 몬스터는 살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사는데?”

-몰먼이라는 지하 종족이 살고 있죠…….

“그렇군. 그럼,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가도 되겠는데?”

-네, 그럼…….

레이스는 정말 귀차니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도대체 인간이었을 때엔 어떻게 살았을지 절로 궁금해지는 귀신이다.

태하 일행이 던전 입구를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작은 갱도 안에서 온몸에 털이 부숭부숭하게 난 대형 설치류가 튀어나왔다.

-끽끽……!

“……귀여워! 뭐지, 저 조막만 하고 부들부들하게 생긴 생명체는?!”

여자들은 귀여운 걸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우르르 달려들어서 설치류를 쓰다듬는 그녀들.

그러자 설치류로 생각되었던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배를 쭉 내밀고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리는 게 아닌가.

“우이씨! 나는 동물이 아니다요!”

“마, 말을 해?”

“몰먼, 나는 지하 종족 몰먼이다요!”

전체적으로 통통한 몸통에 두더지 갈고리처럼 생긴 팔, 그리고 돼지 코처럼 생긴 주둥이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두더지의 의인화 그 자체였다.

그녀들은 몰먼이 말을 하니 더욱 난리를 쳤다.

“미쳤어…….”

“귀여워!”

“데려다가 키워야겠어!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

몰먼을 얼굴에 비비고 껴안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녀석은 가까스로 그녀들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태하에게 말했다.

“으으, 나리! 살려주라요!”

“우리 앞에 다짜고짜 나타난 네 잘못이지. 몬스터라고 다짜고짜 죽이는 것보다는 낫잖아?”

“……저, 저는 처자식을 살려야 하는 몸이다요!”

“처자식? 가족이 있어?”

그제야 그녀들은 몰먼을 손에서 놓아주었다.

그러자 몰먼은 태하의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나리! 제 가족들을 좀 살려주라요!”

***

몰먼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 약탈자가 있다고 했다.

“아니 그러니까, 금붙이라면 환장하는 어떤 또라이 새끼가 약탈을 자행하고 다닌다는 거야?”

“네, 나리! 그것 때문에 우리가 아주 죽을 맛이다요!”

태하는 무릎을 꿇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몰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찌릿……!

[서판 조각: 윤회]

[진실의 눈이 말합니다]

[거짓, 그 안에 진실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기는 한데 그 안에는 간절한 진심이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가족이 잡혀 있다는 것은 진실일 것이고 약탈을 자행한다는 것도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다만, 몰먼이 이렇게 나타난 것은 아마도 단순히 처자식을 살리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수법이로군.’

약탈자는 아마 자신에게 유리한 곳으로 태하 일행을 끌어들여 살해하거나 어떠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그놈에게 일방적으로 당해 줄 이유는 없었다.

“아니, 우리는 이만 바빠서…….”

“……귀여워! 처자식이라니!”

깜빡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귀여운 것이라면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정도로 흥분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새끼, 일부러 모성 본능을 자극하고 있어. 여자들은 귀엽고 불쌍한 것에 잘 넘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거야.’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말발이 좋으면 심안을 가진 한나까지 껌뻑 넘어갈 정도일까.

“대장! 가요, 우리! 가서 이 아이의 처자식을 구해 주자요!”

“그러자요!”

어느새 몰먼의 말투를 따라 하는 그녀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약탈자라는 새끼들을 조져 버리고 62층으로 넘어갈 수밖에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놈이 일행을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야, 너.”

“네, 나리!”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지하에 폭포가 있다요! 그 앞에 몸이 은색으로 반짝이는 도롱뇽이 살고 있다요!”

“도롱뇽이라.”

“도롱뇽, 약하다요! 몰먼이 작고 힘이 없어서 그렇지, 나리에 비한다면 별것도 아니다요!”

적어도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었다.

다만 그놈이 과연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태하는 스트랩을 잡았다.

“너, 몬스터지?”

“말하자면 그렇다요! 그런데 그건 왜…….”

“그럼 코어도 가지고 있겠네?”

“……코, 코어 말이냐요?”

이놈의 코어를 먹어 치우면 그 기억을 읽어 도롱뇽인지 뭔지를 잡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그건 그녀들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못 살아! 안 돼요! 이 아이를 죽이려고요?! 그럼 처자식은 어쩌고?!”

“그렇다고 그 도롱뇽인지 뭔지를 깡으로 잡아 죽일 수는 없잖아요?”

“내가 기억을 읽을게요! 심안으로! 그럼 되잖아요?!”

그녀는 몰먼의 팔을 잡고 살며시 안았다.

그러자 그녀의 뇌리에 몰먼의 사념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몰먼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조금 더, 조금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뚜둑!

“모, 몰먼 죽는다요! 켁켁!”

“하, 한나 씨!”

한나는 그제야 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 아래, 은색 이무기가 살고 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크고 강력한.”

“이무기?!”

“이놈, 우리를 이무기에게 조공으로 바칠 생각이었던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