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돈 쓸 때는 시원하게!(2)
이른 아침이었다.
찰칵, 찰칵!
덕림헬스 앞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있었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기서 다들 뭐 하세요?”
“어?! 헬창 헌터다!”
사진기를 태하에게 들이대는 사람들, 그들의 가슴에는 언론사 취재진 신분증이 걸려 있었다.
그제야 태하는 이들이 기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태하 씨, 얼마 전에 라이먼트 시가전에서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라이먼트 시가전 종결자라는 수식어도 있던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글쎄요. 헌터가 몬스터 잡는 게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 일인가 싶기는 합니다만.”
“아,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얼마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이슈가 되었던 헬창 헌터 인성 수준에 대한 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인성 수준이요? 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아예 모르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헌터님께서 얼마 전 보디빌딩 대회에서 건물이 무너졌을 때, 잔해에 깔린 2명의 선수를 구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야…….”
“그 선수들이 신랄하게 아주 귓전에 욕을 때려 박았다고 하던데, 그걸 참고 넘기는 건 물론이고 욕한 선수들을 구해 주셨다면서요. 아닙니까?”
“흠! 사실이긴 한데 과장된 면이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럼, 사람을 구해 준 게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뭐, 다 사실이긴 해요. 하지만 뭔가 좀 미화가 되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기자들은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욕탕에서 욕 안 들으셨나요?”
“호박씨 까는 건 들었죠.”
“그리고 사람이 건물에 깔렸는데 그냥 나오셨나요?”
“아니요, 마침 트렁크를 빨아서 말려 놓은 터라 안심하고 힘 좀 썼습니다.”
“그럼 그 모든 게 사실이 맞긴 한 거네요?”
“……아니, 그렇기는 한데요.”
맞는 말만 한 건데도 태하는 묘하게 자신이 미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나, 취재진은 이런 태하의 태도 역시 아주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역시, 겸손까지! 정말 최고의 헌터, 최고의 보디빌더이십니다!”
“과찬이신데…….”
“아무튼, 국제보디빌딩연맹을 비롯한 각종 생활체육 단체에서 헌터님께 명예이사 및 홍보이사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던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태하는 금시초문인 얘기라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요?”
“……아니, 전혀요.”
“이사로 추대한다고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다.
태하는 이젠 정말 헬스장으로 들어가려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재민 구호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이재민들을 구호하는 데 수천억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쾌척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우연히 돈을 벌었는데 쓸 곳이 있어서 쓴 겁니다. 그게 다입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쓸 곳에 쓴 돈이 4천억, 정말 본받을 만한 인물이십니다! 정치권에서 스카우트 제안도 왔을 것 같은데, 정치 생각은 없으십니까?”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냥 헬스장 트레이너고, 헌터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럼 이만.”
***
인터뷰 이후 태하는 인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SNS는 폭주해서 접속조차 되지 않았고, 헬스장 회원 등록은 이미 한계를 초과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웅성, 웅성!
“자자, GX 시작합니다!”
“와아아아! 헬창 헌터다!”
엄청나게 늘어난 회원들 덕분에 태하는 대사형의 오러로 전투력이 2배 가까이 상승해 있었다.
허나, 신경은 거의 쇠약 직전으로 쓰이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GX를 끝내고 간신히 쉬는 시간을 갖는 태하.
“어휴, 힘드네.”
“그레이트하게, 멋있게! 그렇게 대응하시면 되죠! 안 그래요?”
태하 덕분에 전직 양궁 선수 용팔도 한 몸에 주목을 받았다.
항간에는 그가 다시 궁사로 돌아와 대한민국을 빛내 줄 것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허나, 용팔은 양궁의 꿈을 접은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이제 용팔이 양궁판에 나간다면 그것은 사실상 룰 위반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대신에 용팔은 자신의 신조대로 아주 ‘그레이트’하게 인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 태하는 원래 주목받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지금 상당히 곤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용팔은 그런 태하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전투력이 무려 2배 상승이라고요! 이대로라면 우리 전투력은 앞으로 얼마나 더 상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뭐, 그건 저도 마음에 듭니다.”
“그럼 뭐 걱정할 것도 없네요!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요! 그럼 우리가 100층을 찍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태하는 그제야 미소를 되찾았다.
사실, 인기가 많아진다는 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잠시 후, 트레이너 휴게실로 유시연이 찾아왔다.
“엄마야,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지? 헬스장이 폭발하겠는데요?”
“이사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일전에 특무관 옥패를 주고 가셨잖아요?”
“그 특무관과 관련된 일이에요.”
그녀는 태하의 앞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던져 놓았다.
그 안에는 아수라 길드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
“이 사람들 중에서 거의 1/3이 살아남아서 돌아다니고 있대요.”
“……끈질기네요.”
“헌데 문제는 이놈들이 사설 연구 시설과 사모펀드를 가지고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것이죠.”
애초에 아수라 길드가 뒷돈을 안 빼돌렸다면 지금과 같은 덩치는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어디에선가 독버섯처럼 점점 자라나 또다시 이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특무관께서 이 사람들을 좀 잡아서 족쳐 주셨으면 하네요.”
태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아 참, 그리고 또, 고순도 엠톨이 대량으로 운송된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것도 아수라 잔당과 엮어서 조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고순도 엠톨이요?”
“이건 방주께서 직접 의뢰하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소요돼도 좋으니 확실하게 조사해 주셨으면 해요.”
아직도 그 끔찍한 엠톨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태하는 반드시 이 사건을 종결시키겠노라 다짐했다.
***
미스터 올림피아가 열리는 미국 시애틀의 ‘골드버그 호텔’ 컨벤션 센터.
오늘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에는 요즘 한창 보디빌딩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태하도 출전했다.
-오늘 대회에서는 전대미문의 도심 몬스터 웨이브를 두 차례나 막아 낸 우리 보디빌딩계의 샛별, 정태하 선수에게 명예이사 위촉이 있겠습니다.
사회자가 태하의 이름을 언급하자, 사람들이 기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디빌딩의 팬으로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태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태하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우오오오오!”
“정태하, 정태하!”
그의 근육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져 있었다.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보디빌딩 팬들이 태하의 영상을 보고 보현파로 전향했다.
태하는 무대에서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줄 생각이었다.
짝짝짝짝!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위촉패를 받은 태하.
태하는 그와 함께 라인업 포즈를 취하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팬들은 더욱 크게 환호하였다.
-자, 그럼 이제 미스터 올림피아를 시작하겠습니다!
단출한 위촉식이 마무리되자,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역시 이번에도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
중계진은 이번 대회를 ‘왕을 위한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정태하 선수, 역시 압도적인 크기와 분리도를 보여 줍니다.
-심지어는 약점으로 거론되어 왔던 근육들의 크기와 강도도 남다르게 커졌습니다. 이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왕을 위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태하 선수, 명실상부한 보디빌딩계의 왕입니다!
무대 위의 왕으로 군림하는 태하.
그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TOP5의 호명이 있었다.
당연히 태하도 그 안에 들어갔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4인, 3인, 2인 호명에서도 태하의 이름이 계속 불렸다.
그리고 남은 2인의 대결.
-마이클 가드너 선수, 역시 엄청난 몸집입니다!
-아아! 하지만 역시 정태하 선수에게는 안 됩니다. 엠톨이 대회에서 퇴출당하면서 사실상 저 선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봅니다. 약물에도 역시 한계라는 건 명확하게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호르몬 계열 주사 중에서도 대회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약물은 얼마든지 있다.
허나, 그걸 맞아도 태하만큼 빠르고 강하게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태하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최강자인 셈이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자는 바로…….
두구두구두구!
심사위원들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팬들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트렁크 넘버 811번 정태하!
“와아아아!”
***
대회가 끝난 후.
태하는 주최 측과 그 후원사인 엠비엠과의 미팅을 가졌다.
엠비엠에서는 태하를 홍보이사로 발탁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그 전에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묻고 싶은 것이라니요?”
“네, 말씀하시지요.”
“홍보이사 직함, 좋지요. 하지만 엠톨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습니다만.”
“……엠톨이요?”
지금 당장이야 좀비 사태 때문에 크게 이슈는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태하는 자신의 바로 앞에서 엠톨을 주사한 인간이 몬스터로 변하는 걸 목격했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특무관은 수사권이 있습니다. 또한, 수사를 지금부터 기획할 수도 있죠. 엠비엠을 치려고 마음먹었다면 얼마든 칠 수 있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엠비엠의 관계자들은 진심으로 당황한 눈치였다.
허나, 그들도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진짜 우두머리는 따로 있죠.”
“혹시 파이어볼입니까?”
태하가 파이어볼에 대해 묻자, 엠비엠 측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때론 침묵은 가장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고순도 엠톨 사건도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청룡방 특무관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미온한 태도와 침묵이 뒤섞여 있기는 했어도 이들은 분명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을 내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고순도 엠톨에 대한 얘기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엠톨은 꽤나 오래전부터 통용되던 물건입니다.”
“꽤 오래전부터요? 언제부터 말입니까?”
“제가 알기론 바벨탑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였으니까, 적어도 60~70년쯤은 지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