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1화 (71/197)

071 돈 쓸 때는 시원하게!(1)

좀비 사태 당시에 아수라의 학살 현장이 되어 버렸던 아수라 컴퍼니를 찾은 태하는 빠르게 컴퍼니를 장악했다.

이제는 좀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허나, 학살로 인해 생겨난 피해까지 복구되는 데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고, 아직도 복구가 진행 중이었다.

아수라 컴퍼니의 비서실을 소집시킨 태하는 계열사 관련 문건을 전부 소집해 오라고 지시했다.

비록 3명밖에 남지 않은 비서진이지만 그들의 능력은 상당히 출중했다.

“말씀하신 계열사 관련 문건들입니다. 찾으실 것 같아서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는 것들부터 추렸습니다.”

“오호, 고맙군요.”

그들이 가지고 온 문건에는 생명과학연구소에 대한 문서뿐만 아니라 순환 출자 구조에 방산 재벌들이 어떻게 엮인 것인지도 잘 나와 있었다.

그것은 한 권의 보고서로 일축할 수 있었다.

“엠톨이라는 게 능력 증폭제라서 재능이 미천해도 S급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연구 결과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재벌들을 꾀어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레이드펀드 ‘파이어볼’입니다.”

“파이어볼이라…….”

파이어볼은 아수라 컴퍼니의 계열사 지분을 총 69.8%씩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지분들이 수십 개로 쪼개져서 관리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수라 컴퍼니라는 회사는 파이어볼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들의 자본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환 출자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것은 아수라 컴퍼니가 소량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그 우호 지분을 파이어볼이 꿰찼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아수라 컴퍼니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잔혹한 실험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쓰레기 같은 놈들! 결국, 인간 병기 만들겠다고 그 개지랄을 떤 것 아닙니까?”

“사실 이번 좀비 사태도 결국엔 아수라 길드의 파산으로 인해 생길 사회적 파장을 막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단순 살인멸구였다고요?”

“살인멸구 겸 정치 공작, 추가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치 공작이라는 말에서 태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치인? 정치가들과도 연관이 되어 있어요?”

“그렇습니다. 해서 저희 비서실에서는 아수라 길드가 중요한 정보들을 소각시키기 전에 미리 빼돌려서 문서화시켜 두었고, 누가 누구와 금전 거래를 했는지도 다 기록해 두었습니다.”

대부분의 비자금은 비서실을 통해 전달되었는데, 그들은 이 내역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서 문서로 만들어 두었다.

덕분에 태하는 레이드펀드와 관련된 정치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대선 후보인 추민우 의원.

“시장 통제가 가능해진다면 지지층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추민우의 계산이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적 아니었어요?”

“사실 이해관계만 맞는다면야 여야의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돈이란 원래 그런 것이거든요.”

“말도 안 돼…….”

“그 때문에 추민우가 정치 공작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전부 요단강 보내고 대선에 나갈 수 있었던 겁니다. 아마 뾰족한 대체재가 없다면 추민우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될 겁니다.”

“미쳤네, 미쳤어! 그럼 지금까지의 이 모든 악행 뒤에는 추민우가 있었고 증거인멸을 위해 몬스터 사태를 터뜨렸다는 건가요?”

“남산과 평창동에서 몬스터 사태가 터진 것은 다 그것 때문입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남산에 의문의 실험실이 더 존재하는 것으로 압니다. 또한, 코어 시장을 정부가 회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반대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죽이기 위함이기도 했고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용서가 안 된다.

태하는 결심했다.

이 새끼들을 깡그리 엮어서 지옥 불에 던져 버리겠노라고 말이다.

***

서울 시내에 있는 20평 이하, 1억 이하 연립주택에 대한 매입이 시작되었다.

거듭되는 몬스터의 습격으로 서울 시내의 땅값은 무려 반의반 이상 하락했는데, 이것은 과거 부동산 거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려 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총 4천 가구, 매입 금액 3,970억입니다. 여기서 서울시와 행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20%가 경감되어 794억이 빠집니다. 또한, 건설부와 재경부에서 매입에 대한 세금을 일절 받지 않겠다고 하였으므로 총 출자 금액 4,000억 중에서 824억이 남았습니다.”

임찬민은 태하의 지시로 시작된 부동산 매입에서 남은 금액에 대해 알려 주었다.

4,000억 규모로 시작된 이 사업은 추후 금액이 모자란다면 태하가 전액 부담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헌데 소식을 들은 서울시와 행정부가 사업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럼 뭐, 남은 돈은 가구 및 인테리어 비용으로 쓰죠, 뭐.”

“아아,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소식을 접한 가전 회사들이 제품을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아파트 시공사에서 무상으로 AS 및 리모델링을 해 주겠다고 했고요.”

“그럼 먹을 것이라든지 옷으로…….”

“식품 회사에서 피해 주민들의 자생 기간을 고려하여 도시락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의류와 잡화 브랜드에서 피해 주민들에게 옷가지며 생활용품을 제공하겠다고 했고요.”

“흠, 그럼 자동차를…….”

“대한민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동차는 물론이고 유류비까지 지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분명 태하는 혼자서 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느새 주변에서 따뜻한 손길이 모여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추가로 생길 이재민들을 돕는 사업을 시작하죠, 뭐.”

“그에 대해서는 대기업 총수들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상의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대기업 총수요?”

“전경련이라고 들어 보셨죠?”

“아하, 전경련!”

“그쪽에서 이번에 개인적으로 헌터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고 어떻게든 보은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생각 있으십니까?”

“전경련까지 나선다…….”

“평창동과 서울 동부 지역을 지켜 주셨잖습니까. 그 덕분에 한남동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요.”

“그랬던가요?”

헌터협회와 청룡방 등 굵직굵직한 코어 업계의 거목들은 강동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바람에 아수라의 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길드의 본부가 강동 지구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최근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바벨탑에서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안전한 지역을 골라 이주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강동 지구였던 것이다.

거길 태하가 지켜 냈으니, 당연히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이미 거물이 되어 버린 태하와 연줄을 잇겠다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 말이다.

태하는 그들의 생각이 어찌 되었건 간에 좋은 일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뭐, 그럼 그렇게 하시죠.”

***

며칠 후, 태하와 전경련이 만났다.

전경련은 태하에게 단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가정은 물론이고 우리 임직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말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됐습니다. 이재민들 돕는 데 동참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아예 이재민들을 위한 지하 방공 시설을 제작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만.”

“지하 방공 시설이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각종 지하 주차장을 전시 대피 시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 대피 시설의 관리가 솔직히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서 저희의 생각은 서울 인근에 최소 30개의 방공 단지를 조성하고 그곳으로 구호물자 등을 보급해 놓음으로써 이번 같은 만일의 사태에 때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어떠한가 싶습니다만.”

“나쁘지는 않은 계획이네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무한한 돈은 없습니다만.”

“돈은 저희가 대겠습니다. 헌터님께서는 정부와의 협상에서 목소리만 내어 주시면 됩니다.”

“협상이요? 방공 시설을 짓는데 무슨 협상을 합니까?”

“부지도 구매해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이 시설을 국가 소유로 지정하고 싶어 합니다. 해서 사업비를 어떻게든 뻥튀기하려고 하고 있죠.”

태하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공 시설을 짓는데 어째서 민관 간의 불협화음이 생긴다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부동산에 있었다.

“정말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번화가 아래, 혹은 아파트 단지 아래에 방공호를 짓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업 기반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방공호를 지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부는 이 방공호를 국가 주요 시설 아래로 위치시켜서 정부의 외형을 유지하는 데 치중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방공 시설을 짓는데 상업과 행정이라는 두 가지 안전성에 대하여 견해가 갈린다, 이 말이네요?”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태하는 실소했다.

말이 조금 다를 뿐이지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어떻게 말입니까?”

“초등학교 지하에 방공 시설을 지으세요. 그럼 아이들도 안전하고 학교 주변에는 민가도 밀집되어 있으니까 아주 좋을 것 아닙니까?”

“……초등학교요?”

“학교에서 집이 먼 사람들의 경우에만 따로 방공호를 지어 주는 겁니다. 동사무소라든지 아파트 지하에 말입니다. 뭐 그렇게 된다면 찬성해 볼 용의는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권력 유지와 돈의 싸움이라는 소리다.

태하가 그런 역겨운 장단에 맞춰 줄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님, 정부에서 이 사업권까지 가지고 가면 앞으로 부동산 가격은 정부의 마음대로 오르고 내릴 겁니다.”

“그러니까 땅값 안 오르게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초등학교 지하에 짓자고요.”

“으음…….”

“아아, 그것도 아니라면 동네마다 작은 방공 시설 하나씩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안 그래요?”

도대체 이놈의 세상은 돈 아니면 권력, 이 두 가지 말고는 논할 게 없는 것일까?

태하는 전경련과의 만남을 후회했다.

“내가 이 자리에 나오는 게 아닌데. 아무튼, 그만 가 보겠습니다.”

“허, 헌터님!”

다급하게 태하를 붙잡는 전경련의 회장들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후우! 이것 참, 난감하기 그지없네요. 정부는 국가를 통제하려고만 들지, 전경련을 탈탈 털어서 돈줄로 쓰려고 하지. 그러니 저희가 살자고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국민들 목숨을 담보로 땅값을 올려요?”

“……죄송합니다. 방금 저희의 생각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정부에게 더 이상 주도권을 빼앗긴다면 사업가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태하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사업가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차선책을 제시해 주시는 겁니까?”

“당신들이 돈은 벌되 시민들한테 욕 안 먹고 올바르게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세요. 그럼 제가 적극 찬성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