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70화 (70/197)

070 인간 변이 프로젝트(2)

인간 변이 프로젝트, 한마디로 인간을 몬스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이러했다.

“그 유전자 가위인가 뭔가를 가지고 유전정보를 조작해서 인간을 몬스터로 만든다, 뭐 그런 건가요?”

태하는 자신이 읽은 이 보고서를 잘 이해한 것인지 윤정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헬창 헌터씨. 지금 이 보고서를 보면 몬스터와 인간의 유전자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고 나오거든요? 다만, 이 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인 코어가 있고 없고의 차이인 거죠. 해서 코어에서 인간을 돌연변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효소만 채취해서 주사로 만든 것이 엠톨이라는 물질인 거예요.”

도대체 몬스터라는 존재가 어디서 어떻게 기원한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과 몬스터는 같은 조상을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윤정은 이를 유인원과 인간의 관계로 표현했다.

“유인원과 인간은 같은 조상을 두고 서로 분화한 것으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에요. 지금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몬스터도 결국은 인간, 혹은 유인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게 아수라 생명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라는 거죠.”

“하지만 이 코어라는 것이 모든 것을 갈랐다……?”

“맞아요. 헌데 이 코어라는 것이 과연 자연적인 신체 기관으로서 진화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불분명하다는 게 결론이에요.”

“……복잡하네.”

한나는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돌연 한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그것은 바로 외부 개입설이었다.

“그렇다면 자연 진화가 아니라 어디선가 만들어진 생명체라면요?”

“창조론을 믿는 거예요?”

“아니요. 이건 좀 다른 경우죠. 창조론이 아니라 몬스터는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만들어진 실험체라는 말이에요.”

“……실험체?”

“저 화이트홀 너머에는 도대체 어떤 세상이 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동족을 잡아 실험을 했든, 키메라를 만들었든,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요?”

한나의 주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금성탑의 금기 문서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벨탑의 금기 문서라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건 금기라면서요. 잘못 걸리면 척살을 당할 수 있지 않아요?”

“……어쩐지 이 사건과 우리 엄마의 죽음이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어요. 난 엄마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있다면 목숨을 걸어도 좋아요.”

결연한 한나의 의지.

태하는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심코 자신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릎을 쳤다.

타악!

“아 참, 그렇지! 메피스토의 창고!”

“창고요?”

“왜, 얼마 전에 나 혼자 메피스토의 창고에 들어갔던 적이 있잖아요? 그때 거기서 이계의 문서 수만 권에 달하는 분량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어요.”

“……정말요?”

헬창스는 태하의 증언에 약간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양의 책을 어떻게 읽나요? 더군다나 우리는 글도 모르는데.”

“그걸 도와줄 사람, 아니, 귀신이 있죠.”

“귀신?”

“레이스라고 있어요. 자, 잘 봐요.”

태하가 반지를 만지작거리자, 그 안에서 귀신이 튀어나왔다.

레이스는 여전히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부르셨어요?

“귀, 귀신이다!”

“허어! 정말이었네?!”

깜짝 놀라는 일행들, 태하는 씨익 웃으며 레이스에게 말했다.

“레이스! 내가 부탁이 있어. 원하는 정보를 좀 검색해 주겠어?”

-물론이죠…….

“몬스터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몬스터의 기원…….

레이스는 그렇게 읊조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러곤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쿠울…….

“내가 못 살아! 뭐야, 저 귀신. 어쩐지 힘이 하나도 없더라니. 그냥 잠만 잘 줄 아는 거 아니에요?”

“이상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잠을 잔 적은…….”

바로 그때였다.

파앗!

눈을 뜨는 레이스.

-아아……! 찾았습니다.

“차, 찾았어?”

-다만, 아직 주인님의 스킬 레벨이 부족해서 검색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점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스킬 레벨?”

[스킬: Lv.1 검색]

[메피스토의 서고에서 원하는 지식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Lv.1: 검색 범위와 용량이 90% 제한됩니다]

[Lv.2로 업그레이드 시 검색 범위와 용량 제한이 80%로 하향됩니다]

역시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몇 줄의 정보는 건질 수 있었다.

-제한적인 정보라도 읽어 드릴까요……?

“오케이!”

-……인류학자 켈라우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금기의 마법을 바탕으로 몬스터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마왕 카이튼을 숭배하는 세력으로, 비취 석판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전해집니다…….

헬창스는 한나의 이론이 어느 정도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더 이상의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게 끝……?”

-……주인님의 인텔리전스 및 위즈덤 수치가 상당히 낮아서 더 이상의 검색과 출력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내가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 거라고?”

-스텟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 검색 기능과 출력 기능은 번역을 거쳐야 해서…….

“끄응.”

지금까지 신체 능력만 키울 줄 알았지 인텔리전스나 위즈덤처럼 마력을 강화시키는 지성 부분 스텟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태하는 뭔가 뒤통수를 아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젠장,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인텔리전스나 위즈덤 스텟은 점진적 과부하로는 올릴 수가 없잖아.”

-가능합니다……. 점진적 과부하는 전방위적인 패시브이기 때문에…….

“흠.”

-만약 그게 힘드시다면…… 비취 석판의 ‘알 익시르’를 찾아서 복용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알 익시르?”

-……흔히 엘릭서라고 하죠.

엘릭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파티 전원이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흔히 불사의 영약이라 불리는 이 엘릭서는 헌터들 사이에서 그저 구전처럼 전해지는 허구의 물약으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마시면 어떠한 인간이라도 불사의 몸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엘릭서가 진짜로 존재해?”

-……물론입니다. 다만…….

“다만……?”

-쿠울…….

레이스는 다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순간, 길드원들의 눈빛이 서로 첨예하게 교차했다.

“……엘릭서?”

“못 살아, 절대 안 돼요! 괜히 금기의 물약을 건드렸다가 다 망하는 수가 있어요. 차라리 태하 씨를 빡세게 공부시키는 게 낫죠.”

“하지만 알고도 그냥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대립하는 유신성과 한나.

허나, 이들이 대립한다고 해도 어차피 결정은 태하가 내리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겁니까?”

“생각 좀 해 보고요.”

“좌우지간에 당신이 결정해요.”

태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 엘릭서라는 것을 마시기만 한다면 정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심지어는 이계의 것까지 말이다.

“정보를 조금 더 모아 보죠. 그러고 난 다음에 엘릭서를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흠.”

“일단 이 유전자 가위 기술과 인간 변이 프로젝트는 폐기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뭐,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야.”

아직 엘릭서에 대한 신뢰는 할 수 없다.

괜히 이것으로 분란을 만들 바엔 차라리 공통의 적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게 태하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분열보다 더 값진 일이 많지 않던가.

‘이렇게 우리끼리 탁상공론이나 할 때가 아니야. 조질 놈들이 너무 많아.’

혼을 내줘야 할 빌어먹을 놈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태하는 지체할 시간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사건으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그동안 희생당한 사람도 많고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그 잔당까지 찾아내서 족쳐 버리자고요. 어때요?”

“……그래요! 그건 못 참죠!”

방금까지만 해도 분열 기미를 보였던 공격대는 하나로 의견을 모았다.

공통의 적이 생긴 것이다.

***

USB 안의 내용을 통해 대한민국 행정부에 지원요청을 한 태하는 행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아수라 생명과학연구소 생체 실험장을 찾아갔다.

태하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실험용 케이지 안에 사람을 가둬 놓고 이상한 주사와 투약 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말이다.

“……진짜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딱 이렇지 않을까요?”

“너무 비인간적이라서 화도 못 내겠네요.”

헬창스와 동행한 고상근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거요? 시작에 불과해요. 아카이브의 만행은 정말 끝이 없다고요.”

“개자식들!”

케이지 안에는 ‘배설물 및 분비물을 치우지 마시오.’라는 문구와 ‘실험체 폐사 시, 보름간 지켜볼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문구 때문인지 케이지 안은 온통 오물 천지였고 아이들은 초점이 죽은 채로 태하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몰골, 그리고 영혼을 잃은 것 같은 표정까지, 이건 도저히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이용광 이 개새끼!”

“일단 이 사람들을 꺼내는 것이 급선무 아닐까요?”

행정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선 이곳의 청결을 먼저 확보한 후, 이곳에서 임시 보호를 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임시 보호요? 사람이 이렇게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데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평정심을 잃은 태하.

그런 그에게 정부 관계자들은 조리 있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일단 약물검사를 통해 신체 기관에 이상은 없는지, 그리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는지 우선 살펴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밖에선 좀비 사태가 터지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그런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빌어먹을.”

“그리고 이곳에서 나와도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사람들을 수용할 병원과 숙소도 마땅치 않습니다. 우선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당장의 최선은 다하겠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용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기에 더 화가 난다.

“……젠장.”

“조금 더 기다려 주시죠. 저희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태하가 나직이 물었다.

“정확히 인원이 몇 명이라고 하셨죠?”

“3,351명입니다.”

“알겠어요. 그 사람들 머물 집을 제가 마련하도록 하죠.”

정부에서 힘들다면 태하가 직접 하면 된다.

마침 아수라 컴퍼니의 지분 39.7%를 매각함으로써 태하는 이제 아수라 컴퍼니의 공동 주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돈이 무려 수십 조에 이르니 돈은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집은 얼마든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전에 태하에게 도움을 주었던 공인중개사 임찬민을 찾아갔다.

임찬민는 태하의 전후 사정을 차근차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복비 안 받고 도와 드릴 수 있죠.”

“허어! 정말이십니까?”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마침 좀비 사태로 다가구주택의 공실률이 많이 발생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도에서 지방으로 역 이촌향도 현상이 도드라지는 추세이고요. 그런 걸 감안한다면 아파트와 빌라 등을 한꺼번에 구매해서 매입 가격도 낮추고 물량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임찬민은 평소에도 불우이웃을 정기 후원하고 직접 연탄이나 쌀자루를 짊어지고 남몰래 사람을 돕곤 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연구소 사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허나, 임찬민은 태하에게 한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제가 복비를 안 받는 대신에 다른 걸 좀 주셨으면 합니다.”

“보수를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도 소정의 보수는 받아야 해서 말입니다.”

“흠, 뭐, 그렇게 하시죠.”

다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긴 했다.

허나, 곧이어 그가 꺼낸 서류를 보고 태하의 생각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그것은 바로 좀비 사태 구호 재단 설립이었다.

“이번 사태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고아나 무주택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죠. 괜찮으시다면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주택을 설립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걸 보수로 받고 싶으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단 한 채라도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말입니다.”

수십조 원의 자산가인 태하라면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임찬민의 생각이었다.

태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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