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인간 변이 프로젝트(1)
좀비 사태로 서울은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 그때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라잇 웨잇! 이지, 베이비!”
“컴온! 스콰아아아앗!”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괴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덕림헬스 고립관.
그야말로 근육 덩어리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근육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쪽 구석에서는 아주 신성한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닭가슴살과 보충제를 가지런히 모셔 놓고 뭔가 읊조리는 선수들.
“조상님, 부디 봉 무게 좀 들어 주시고 헬스의 신께서 보우하사 1RM을 갱신할 수 있게 도와주십쇼!”
헬창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는 바로 1RM, 즉 최대 중량을 측정하는 날이다.
자신이 들 수 있는 최대 중량 1회를 목표로 측정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다.
곧바로 용팔의 차례가 되었다.
데드리프트를 기준으로 용팔의 최대 중량은 650kg이었다.
헬스장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도 3 대 500을 넘기기 힘든데 용팔은 운동 하나로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었다.
스트랩을 감고 무게를 들기 시작하는 용팔.
-GO-RIP
그의 스트랩에 수놓아진 글귀였다.
600kg에서부터 시작한다.
“리프트으으!”
“으으읍!”
“오케이! 이지, 보이!”
전설적인 보디빌더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몸 만드는 것에 살짝 미쳐 있다.’
아무리 힘이 좋다고 해도 도대체 어떤 미친 사람이 600kg이 넘는 중량으로 고반복 운동을 하겠는가?
그걸 하는 인간들이 바로 보디빌더인 것이다.
용팔은 660kg을 끼웠다.
긴장하는 용팔,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동료들도 긴장했다.
대사형 태하는 직접 원판을 끼워 준 후, 스트랩을 점검해 주었다.
“오케이, 브로! 갑시다!”
“호우우우! 렛츠 고우우우!”
보현 관장이 항상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마인드 세팅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과정이라고 할까.
이게 없이는 1RM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흐어업!”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볍게!”
1RM이 이렇게 크게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문으로 유입된 제자들과 우튜브의 구독자들이 늘었다는 소리였다.
태하는 아주 흐뭇하게 웃었다.
‘후후, 아주 순조롭군!’
아무래도 국제보디빌딩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간 것은 아주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1분 휴식 후, 용팔은 670kg에 도전했다.
“자, 갑시다!”
“렛츠고, 베이베에에에!”
어쩐지 힘주는 모습에서 보현 관장이 얼핏 보이는 용팔이다.
용팔은 이번에도 아주 가볍게 무게를 들었다.
“그냥 한 방에 700kg으로 넘어갈까요?”
“오케이!”
고립관에는 최대 4t까지 버틸 수 있는 봉이 마련되어 있다.
봉 무게만 거의 120kg에 달하는 이 무식한 봉은 일반인은 들라고 해도 절대 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갑시다!”
“오케이! 렛츠 고우우!”
용팔은 코어에 힘을 꽉 주고 들어 올렸다.
덜덜 떨려 오는 그의 코어.
태하는 용팔의 귓전에 대고 외쳤다.
“이지, 브로오오!”
“으아아아아!”
“됐다!”
“으쌰!”
얼굴에서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용팔은 결국 700kg을 성공했다.
더 이상 무게를 들 수 없었으므로 이제 용팔의 데드리프트 1RM은 700kg이 되는 것이었다.
용팔의 1RM 측정이 마무리된 후, 태하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아예 압축 합금 원판을 끼워서 측정을 하는데, 시작부터 3t이다.
“오케이, 브로!”
“자, 시작합시다!”
보현 관장은 ‘보디빌딩은 누가 더 미친놈인지 대결하는 운동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한마디로 무식한 놈이 결국에는 우승하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과연 태하를 이길 만한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으아아아아!”
태하의 데드리프트 1RM은 3.5t이다.
인간이 3.5t의 무게를 바닥에서부터 허리까지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아직 태하가 운동 경력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향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남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1RM 측정이 3.8t에서 마무리되었다.
“역시, 각성 헌터라서 그런지 힘이 정말 장사구나!”
“……아니, 난 각성해도 저렇게 절대 못 할 거야. 저걸 인간이 어떻게 들어?”
“저번에 보니까 시동을 끈 미니버스를 허리에 매달고 런지를 하더라니까?”
“으으, 괴물이야, 괴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저마다 태하가 괴물이라며 너스레를 떠는데, 태하는 오히려 그게 듣기 좋았다.
괴물, 헬창에게는 최고의 찬사다.
근육의 부피에 집착하는 그에게 이보다 더 기쁜 별명이 또 있을까?
오전 운동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헬창스.
바로 그때, 고립관의 문이 열렸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유시연.
“……체취 자체가 아주 스테로이드네.”
“유시연 씨가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잠깐 시간 좀 내줘요. 얘기할 게 좀 있어서 말이에요.”
“그러시죠.”
태하는 보충제를 마시며 유시연과 휴게실로 향했다.
태하는 유시연에게 프로틴 음료수를 건넸다.
“여기 있는 게 프로틴뿐이라서 말입니다. 바나나 맛이에요.”
“흠. 바나나우유라고 생각할게요.”
일반인은 헬창을 이해하지 못한다.
허나, 유시연은 누군가를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프로틴을 한 모금 마시곤 옆으로 스윽 치워 놓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론부터 얘기할게요. 정태하 씨, 청룡방 특무관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생각 있으세요?”
“……특무관?! 특사를 총괄하는 직책 아닌가요?”
“맞아요. 국가와 제네시스, 그리고 헌터협회 공동 이슈라면 어떤 문제든 수사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특사들을 편성해서 수사를 지시할 수도 있죠.”
“이런 영예를 주시다니!”
“이번에 당신이 아주 큰 활약을 해줬잖아요. 그래서 헌터협회 만장일치로 당신을 특무관으로 임명하기로 한 거죠. 어때요? 할 생각 있어요?”
“물론입니다!”
특무관은 헌터에게 있어선 거의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태하의 옥패를 바꿔 주었다.
다이아몬드와 청금석으로 된 옥패에는 승천하는 용이 각인되어 있었다.
“특무관 영전을 축하드려요, 태하 씨. 이걸로 체육관의 관원이 더 늘어나겠네요. 듣자 하니 헌터들도 태하 씨의 구독자로 상당히 많이 유입되었다고 하던데, 그 수익도 만만찮겠어요?”
어쩐지 1RM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
태하의 특무관 취임을 축하하는 소소한 잔치가 벌어졌다.
고상근이 운영하는 ‘은하카센터’의 주차장에서 고기도 굽고 새우와 조개도 구워 먹는 바비큐 파티였다.
“자자, 다들 모여서 드세요!”
비록 대회 직전이라서 술은 못 마셔도 분위기만큼은 충분히 즐거웠다.
덕분에 체육관 사람들까지 다들 포식을 했다.
“킹크랩에 랍스터에 소고기, 흑돼지까지, 아주 오늘 날을 잡으셨네요!”
“기쁜 날이니까요. 그리고 마침 좀비 사태도 마무리되었고 해서요.”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다 모인 자리였기에 동네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다.
“무슨 날이에요?”
“아, 네! 모여서 같이 드시죠!”
“아이고, 그럼 저희야 좋죠!”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태하가 한창 고기를 굽고 있는데 그 곁으로 은하가 다가왔다.
“은하도 많이 먹어!”
“응, 많이 먹을게. 그런데 있잖아.”
“무슨 할 말 있어?”
“사실은…….”
뭔가 많이 망설이는 듯한 은하.
태하는 용팔에게 불판을 맡기고 은하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무슨 일 있어?”
“예전에 실장 아저씨가 말이야…….”
“실장?”
“나를 지켜 줬던…….”
“박윤호 실장님 말이야?”
“……응.”
어린 은하에게는 박윤호의 존재감이 컸던 것일까?
태하는 쓰게 웃었다.
“은하가 박 실장님께 많이 고마웠던 모양이구나.”
“응……. 그런데 그 아저씨가 이걸 줬어.”
은하는 태하에게 USB를 내밀었다.
그걸 받은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데?”
“……태하 아저씨한테 꼭 주래.”
“나한테?”
“그리고 이거…….”
다른 하나의 USB를 보여 주는 은하.
그 표정에는 어쩐지 모를 슬픔과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
“우리 이모를 구해 달래. 그 아저씨가.”
“이모?”
생전 처음 듣는 얘기인지라 태하는 고상근만 살짝 불러냈다.
전후 사정을 들은 고상근은 입술을 짓깨물었다.
“……이모, 그래 이모가 있긴 했었지.”
“그게 누군데요?”
“아이 엄마가 쌍둥이였거든요.”
“허어! 그랬나요? 그럼 같이 실험실에 있었습니까?”
“……그렇긴 한데. 아이의 이모가 실험실 선임 연구원이었어요.”
“네?!”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자매가 자기 손으로 핏줄을 연구소에 가두고 혹독한 실험을 자행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모를 구해 달라고 했던 건 이제 그만 그 악의 구렁텅이에서 그녀를 꺼내 달라는 뜻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만.”
“박윤호 실장과 무슨 관계가 있었던 건가요?”
“그건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요.”
“흠…….”
“아무튼, 오늘은 잔칫날이니까 맛있게 먹을 거 먹고 USB는 내일 열어 봅시다. 괜찮죠?”
태하는 어쩐지 좀 찝찝하긴 했으나 일단 잔치는 끝내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
다음 날.
헬창스는 태하의 아파트에 모여 USB 안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USB는 2TB 용량의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 있었다.
“코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양자 보안 USB네요. 죽을 때까지 이걸 간직하고 있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정보라는 뜻이겠죠?”
컴퓨터 책상에 앉은 윤정은 이것이 양자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USB이며, 아마도 박윤호가 평소에 지니고 다녔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안의 내용을 펼쳐 보니 과연 그럴 만한 정보들이었다.
“회사의 재무 상황, 계열사들의 연구 상황, 심지어는 순환 출자 구조까지……?”
“이걸 USB에 다 담아 두고 다녔다는 건 박윤호 실장이 어쩌면 아수라 컴퍼니에 염증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셈이죠. 허 참, 박윤호 실장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태하는 일전에 박윤호 실장이 청룡방과의 계약 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을 찾아왔던 것을 기억해 냈다.
비록 아직 지분 정리가 덜 끝나서 태하가 대주주로 있기는 하나, 박윤호는 청룡방에 아수라 컴퍼니를 넘겨서 정의를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USB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었다.
“……재무제표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한 곳이 있어요.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 방위산업체 그린버드와 한국의 한성그룹이 손을 잡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밀어준 것 같아요.”
“방위산업체? 그럼 이 사람들이 레이드펀드에 투자해서 뭔가 대단한 걸 얻으려 했다는 소리가 되는 건가요?”
“그건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연구 자료 파일은 그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인간 변이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