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청산절차(2)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터진 좀비 사태가 비교적 진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보름 남짓이었다.
허나, 아직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생존한 좀비의 추정 숫자만 해도 수만 명은 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국민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정부의 생필품 지원으로 버티면서 생활할 수밖에는 없었다.
-크하아악!
빠각!
방진복을 입은 헌터와 군인들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좀비들을 정리해 나갔다.
물론 그 대열에는 헬창스도 있었다.
“……도대체 끝이 없네. 라이먼트가 죽으면 끝나는 문제 아니었어요?”
용팔은 언제까지 좀비들 모가지나 썰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허나, 이 바이러스라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게 박멸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역병은 진정되었지만, 숙주들이 살아남아서 계속해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대요. 우리는 그 환자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고요. 지금 감염자들의 피와 타액에서도 간간이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는데, 잘못하면 이게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대요.”
“……상상만 해도 너무나도 끔찍한 일인데, 이건.”
한창 박멸 작업을 하고 있는데 태하 일행 옆으로 선거 유세 차량이 지나갔다.
그들은 헌터들과 군인들이 작업하는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여러분! 저 추민우가 이 어지러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겠습니다! 코어 시장의 운영권을 정부가 회수하여 앞으로 에너지 평등 시대를 만들 것이고 헌터들을 국가에서 관리하여 더 이상 헌터가 던전에서 갑질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국민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저 비겁한 지금의 행정부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이겁니다!
헬창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참, 말하는 꼬락서니 봐라. 정치인 중에서 좀비 사태 터졌을 때 안 숨어 있던 놈이 어디 있다고.”
“이런 시국이니께 정권 교체를 더 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겠지. 지금이 절호의 찬스 아니것어? 안 그려?”
수도 서울이 거의 붕괴되다시피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수도 인구 1/3이 사망했고 정부 조직은 그야말로 반쪽짜리 기관들만 남게 되었다.
그 난리통에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고위 관료들은 살아남아 정부를 재건하고 있었는데, 여야는 이를 빌미로 상대방을 마구 비난하며 대권을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같은 여당, 야당끼리도 말이다.
허나, 태하는 정치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사태를 어서 빨리 마무리해서 체육관의 문을 여는 것뿐이었다.
“헬스장 문이 너무 오래 닫혀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회원들이 근 손실을 보겠죠. 그렇게 된다면 우리 헬창스는 단독 70층 돌파는 꿈도 꿀 수 없게 될 겁니다.”
“……이런 육시럴! 그럴 수는 없지! 암만! 다들 힘내서 빡세게 좀비들 조지자고!”
***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1부 부장검사 오경수는 아수라 이용광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피의자 신문이 벌써 보름째 이어지고 있었으나 이용광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이봐요, 이용광 씨. 자꾸 이러면 정말 재미없어요.”
“……재미는 지금도 충분히 없는데.”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겁니까?”
이용광에게는 마력을 억제하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귀기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용광의 눈빛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털어놔봤자 뭐 하겠어요? 안 그래요?”
흥분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오지만, 이용광은 어설프게나마 그것을 감추고자 표준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하는 모습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지금 그의 심경은 아주 평온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제 감옥에 들어가서 몇 년을 썩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오경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봐요, 이번에 감옥에 들어가면 평생 못 나와. 거기서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도 상관없어요?”
“입을 열어도 종신형, 안 열어도 종신형. 그럴 바엔 차라리 당신을 엿 먹이는 게 낫지. 안 그래요?”
“좋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대질신문합시다.”
“……대질?”
오경수는 조사실 문을 열곤 짜증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들어오시라고 그래!”
“네, 부장님!”
도대체 누굴 대질시킨다는 것일까.
이내 조사실로 한 젊은 청년이 들어왔다.
그러자 이용광이 분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새끼들이 장난하나?! 어이, 검사 양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이다 아이가?!”
“아이긴 뭐가 아이야?”
그는 바로 태하였다.
태하는 의자를 빼더니 조사실 탁자 위에 팔을 기대고 앉았다.
그런 그를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기세로 노려보는 이용광.
태하는 실소하며 말했다.
“어쭈, 한 대 치겠다? 그따위로 째려보면 뭐 어쩔 건데?”
“……으아아악! 저런 개새끼!”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좀 했으면 그럴 일 없잖아?”
검찰은 일부러 태하를 참고인으로 요청했다.
제아무리 평정심을 갖고 뻗대는 이용광이라도 자신을 검찰에 넘겨 버린 태하와 마주하면 이성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용광은 길길이 날뛰다가 이내 다시 그 성질머리를 죽였다.
“휴우…….”
“뭐야, 왜 날뛰다가 말아? 더 뛰어! 판 깔아 주니까 왜 갑자기 조용해져?”
“……마, 됐다. 아무튼, 할라면 퍼뜩 해라이.”
가까스로 화는 억누르고 있었으나 이용광은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중앙지검 부장검사씩이나 되는 오경수가 그걸 모를 리가 없지 않겠나.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증인.”
“별말씀을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 개요를 보면 피고인이 좀비 사태를 일으켰고, 지인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증인은 그 사실을 인지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피고인, 사실입니까?”
오경수가 대답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
“흠, 그럼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합니다. 피고는 이 과정에서 초등학생 수백 명을 학살하고 과거 자회사였던 연구소 직원들까지 도륙했습니다. 증인은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하셨죠?”
태하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저는 지인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무력을 행사하여 무장한 헌터들을 사살했습니다.”
“그래요. 법원에서도 이는 정당방위 및 구호 행위로 인정했습니다. 청룡방 특사이시기도 하고요.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피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중에서 더 보강한다거나 가감할 부분이 있으십니까?”
이용광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열지 않았다.
검사는 그런 그에게 더욱 집요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공범, 혹은 정범이 있었는지 묻겠습니다. 있었습니까?”
“…….”
“그게 아니라면 청부 및 청탁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
“이번에는 증인에게 묻죠. 그런 의혹이 있는 것 같습니까?”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무슨 근거에 의해서 그렇지요?”
“청룡방 특사의 자격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수라 길드는 레이드펀드의 관계자들과 결탁하여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은 이것이 단순 의혹이라서 증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그럼 그냥 의혹에 지나지 않네요?”
“……그런 셈이죠.”
“좋습니다. 그럼 보강 조사를 위해서 피고는 구치소로 보내고 계속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일본 오키나와의 한 고급 료칸.
쾅!
거칠게 다다미 바닥을 내리치는 주먹이 있었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원 추민우.
“……내가 이렇게 오키나와로 도망을 오면서까지 살아야겠습니까? 일 처리를 하려거든 똑바로 하든지, 아니면 수습이라도 좀 빨리하든지. 이게 뭡니까? 남산에서 증거인멸도 안 돼, 평창동이랑 한남동 재벌들 정리도 안 돼. 대체 어쩌자는 건데요?”
추민우와 마주 앉은 남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추민우는 그야말로 게거품을 물듯 계속해서 역정을 쏟아 냈다.
“아아, 그래! 꼬맹이들 학살한다고 아주 재미있으셨겠어요? 그래서, 재벌 집 아들딸들은 좀 잡으셨나요?”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죠. 어쨌든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렸으니까요.”
“허 참! 토끼를 잡는 데 도끼를 쓴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니, 처음부터 우리의 요청은 안중에도 없었잖습니까. 안 그래요?”
추민우와 마주 앉은 남자는 정말이지 얼굴에서 광채가 날 정도로 잘생긴 미남이었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기생오라비도 아니었고 정말 선이 굵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아주 쾌남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쩌면 추민우는 그런 그에게 콤플렉스를 쏟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는 추민우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한 잔 받으세요.”
“크흠!”
텅텅 비었던 잔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추민우는 그런 그에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 어깃장을 놓았다.
“내가 말이야! 대통령이 될 사람인데 이렇게 대우를 해서야…….”
잔은 이제 꽉 찼다.
허나, 남자는 술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술이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술을 따라 냈다.
쪼르르르…….
“어, 어어?! 이 양반이 미쳤나?! 왜…….”
“그릇이 이리도 작은데 술을 넘치게 따라 댔으니, 사람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뭐, 뭐요?!”
순간, 잔에 담긴 술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추민우는 손이 빨갛게 데어서 화들짝 놀라 물수건으로 손을 덮을 수밖에는 없었다.
치이이익!
“으으으윽!”
“깜냥도 모른 채, 분수에 맞지도 않는 각설이타령을 하고 다니는 거야 당신 마음이지. 하지만 그렇게 흘린 술은 절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나?”
“끄응…….”
추민우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잘못하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본능적인 공포감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남자는 다시 술 주전자를 들었다.
“잔 드세요.”
“……으, 으으.”
이번에는 술이 절반만 채워졌다.
“넘치는 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죠. 어차피 먹지도 못할 술, 그렇게 아등바등 받아서 뭐 하겠다는 겁니까? 안 그래요?”
“…….”
“다시 한번 내 앞에서 주둥이 함부로 놀렸다간 그 썩어 빠진 골통을 아주 찜통으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아시겠어요?”
“…….”
“대답 안 하세요?”
추민우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대권 지키고 싶으면 알아서 잘 협조하세요.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남자가 일어섰다.
그러자 추민우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그, 그래도 헬창 헌터는 처리해 주실 거죠?”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청룡방에서 힘을 실어 줘 문제가 복잡해질 텐데…….”
“청룡방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안 그래도 백선이 제자 농사를 잘못 지어 놔서 문제가 많잖습니까.”
“아아……!”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 줘야 합니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할지 고민해 볼 테니 당신은 당신 일이나 똑바로 하세요. 아시겠어요?”
“네…….”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복창하세요.”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꼭 기억하세요.”
남자는 료칸을 나섰다.
추민우는 30분 동안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추민우가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씨발, 나도 모르겠다! 여자! 여자 불러와!”
“네, 의원님!”
“아 참, 그리고 보좌관들! 앞으로 한 달 안에 정태하 잡아 와. 안 그러면 다 뒈질 줄 알아. 알겠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