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청산절차(1)
세계 7대 코어 시장에 대혼란이 찾아왔다.
웅성, 웅성……!
아침부터 여의도 코어 시장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격이 폭등하고 있네요.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조선엽은 일전에 여의도 시장의 시가총액 15%에 달하는 스탠더드 코어를 매입했었고, 그를 바탕으로 7대 시장과 현물거래를 터서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국 시장의 코어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서 수입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일단 우리의 이번 수익이 꽤 높습니다. 무려 10조 7천억의 수익을 올렸네요.”
“……빌어먹을, 수익이 많이도 났네요.”
수익금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이제 태하는 이 돈을 최대한 이재민들과 희생자들을 위해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만간 구호 재단을 설립할까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잘 아는 법무법인이 있습니다. 그쪽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 이익 지분 10% 중에서 절반을 쾌척하겠습니다.”
“딜러님도요? 그러실 필요는…….”
“아니요.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죠. 법인을 통해서 50%, 나머지 절반은 제가 직접 어려운 이들을 도와줄 생각입니다.”
조선엽과 태하는 9:1의 지분으로 코어 수익을 나눠 갖는데, 전속 딜러의 경우 클라이언트와의 전속 계약 시에 10%의 지분을 보증금 형식으로 걸도록 되어 있다.
워낙 규모가 큰 계약이었기 때문에 조선엽은 이 10%를 레버리지 형식으로 차용해서 납입했고, 그걸 얼마 전에 다 갚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수익이라는 소리인데, 조선엽은 그걸 쾌척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제 곧 결혼하신다면서요.”
“나라 꼴이 이런데 결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 여자 친구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건 말씀드렸던가요?”
마지막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번 사태로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들이 바로 초등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엽은 이익금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재단을 꾸려 보자고 말했다.
“차례대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진행해 보자고요.”
“그럽시다.”
“그나저나 이제 레이드 시장에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 헬스하운드는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변화요?”
“이제 한국 코어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대두되면서 아무래도 외국산 코어의 유입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임도 급감할 겁니다.”
최근 태하는 코어의 판매량보다 수임을 통해 얻는 아이템에서 이익을 많이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겠으나,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수입이 급감하면 다른 곳에서 올리죠, 뭐.”
“아아, 하긴! 그래서 제가 있는 거고요.”
여전히 태하의 코어 시장 지분율은 15%였다.
이 정도 영향력이면 앞으로 대대손손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을 계속 벌어들일 것이었다.
태하는 돈보다는 다른 것이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아수라 길드가 똥을 잔뜩 싸 놔서 제네시스 한국 지사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을 겁니다. 귀영이 해체될까 봐 걱정이네요.”
“하긴,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고영수 씨가 순식간에 소속을 잃고 일반 헌터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귀영의 수장이라는 타이틀은 영수에겐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제네시스 한국 지사장이 경질되고 귀영이 해체된다면 과연 영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멘탈이 단단해져 있다고 믿어야지 뭐.’
***
대한민국은 좀비 사태로 아주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허나, 반대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태하였다.
“……이적 제안이요?”
“청룡방에서 이적하는 건 어떠냐고 미국의 피스가 제안을 해 왔어요! 이야, 이건 정말 그레이트한 일 아닌가요?! 국제 랭킹 4위라고요! 파워드 피스는 심지어 청룡방보다 랭킹이 높아요!”
파워드 피스, 북미권 랭킹 1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이른바 ‘파워 랭커’ 집단이다.
무엇보다 파워드 피스가 유명한 것은 이곳에 마공계 랭킹 1위의 로얼 샤넌이 길드장으로 있기 때문이다.
용팔은 제안서를 받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얼음마공사 로얼 샤넌의 픽업이라고요!”
“으음…….”
“왜요? 별로 내키지 않으세요?”
“일단 저는 한국에 있는 탑부터 점령할 겁니다. 다른 탑에 도전하는 것은 그 이후에 생각해보려고요.”
“아아, 한국부터……! 하긴, 점진적 과부하가 필요한 곳이긴 하죠. 이곳 던전이라는 곳은 말이에요.”
아직 한국의 던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해외의 던전을 어떻게 점령한단 말인가?
바벨탑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그 디테일이라든지 몬스터의 종류가 다 다르다.
때문에 한국에서 강력한 헌터들이라고 해도 유럽이나 북미로 이적하면 힘을 못 쓰고 돌아온다든지 사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태하는 일단 백선의 밑에서 배우며 수련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태하는 제안서를 찢어 버렸다.
촤라락!
“모르겠고, 운동이나 합시다!”
“오케이, 버디!”
헬창스는 허리케인 쌍권총, 유성환영의 여의봉, 무한의 기관단총, 그리고 의문의 PDA를 사용하기 위해 한창 담금질 중이었다.
좀비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이면 목표를 달성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의 시국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담금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날 오후.
태하는 동료들의 스텟을 측정해 보았다.
삐빅!
네 사람의 평균 스텟은 일반인을 훨씬 상회할 정도였다.
허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들 민첩이랑 체력이 문제네요.”
“……이거, 너무 탈인간적인 스텟을 요구하는 거 아닙니까?”
근육이라는 건 어느 한 곳만 털어 댄다고 무조건 비대해지는 건 아니다.
물론, 한 곳을 매일 집중 공략한다면 그 부위가 좋아질 수는 있겠으나 확실한 근 비대가 일어나기는 상당히 힘든 게 사실이다.
확실한 근 비대는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운동법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다 보면 알아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요.”
“그려! 공대장 말이 맞지!”
이주현은 동료들의 말을 듣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아직 각성하지도 못했고 실질적으로 전투에 나서서 싸우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문제지. 의사라고 싸우지도 못해, 그렇다고 우리가 도핑을 하면서 싸우는 길드도 아니고.”
“지금은 아이템 착용에 대한 제한 사항을 논하는 중이잖아요. 그런 자책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태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다독여 주었다.
“다 같이 힘을 내야죠! 우리의 목표는 어디예요?”
“100층……!”
“그래요! 앞으로 갈 길이 그렇게도 먼데 벌써부터 스스로를 자책하면 되겠어요?”
이주현의 얼굴에는 어쩐지 조급함이 보인다.
태하는 그의 멘탈을 좀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짝짝!
주위를 환기시킨 태하는 오늘의 운동 스케줄에 대해서 설명했다.
“오늘은 하체를 조질 겁니다. 전 세트 후반부에 드롭 세트를 진행할 건데, 매 순간 하체를 극한으로 털어 버린다는 생각으로 조지는 겁니다. 할 수 있겠어요?”
“……이야, 벌써부터 하체가 후달리는디?!”
10회 가능한 무게로 운동을 해 준 다음, 무게를 10~20%씩 덜어내면서 볼륨을 높이는 운동 방법이 바로 드롭세트다.
이를 잘만 이용하면 정체기를 극복할 수도 있고 정말 극한의 근 비대를 얻어 낼 수도 있다.
더욱이 근질을 높이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태하는 오늘 이주현과 짝을 이뤄서 파트너 운동을 진행했다.
대퇴사두, 내측광근과 외측광근을 주로 털어 주는 레그익스텐션과 레그프레스가 주요 운동 종목이었다.
900kg이 훌쩍 넘어가는 무게로 레그프레스를 시키는 태하.
“라잇 웨잇! 이지, 버디!”
“……후우, 후우!”
“렛츠 고우!”
보현 관장식 고퀄리티 마인드 스테로이드가 주입되자, 이주현은 괴물처럼 레그프레스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의사인지 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허나, 이렇게 엄청나게 운동을 해 대도 퀘스트 아이템은 쉽게 착용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사실이 이주현을 괴롭게 했고, 태하는 운동으로 그것을 털어내 주려는 것이었다.
‘괴로울 새도 없이 조지는 거다!’
[패시브: 대사형의 오러]
[대사형의 마음으로 사제를 탈탈 털어 주는 것은 진정한 미덕입니다]
[사제가 털리는 만큼 대사형은 득근합니다]
[득근 보너스: 사제의 근육 미세 손상 수치 x 2]
태하의 눈이 번쩍 떠진다.
“하나 더!”
“……엇? 벌써 12개인데?!”
“원 모어어어어얼!”
자신도 모르게 그만 득근에 눈이 돌아가 버린 태하.
이주현은 영문도 모른 채 레그프레스를 밀어 버리고 말았다.
“으으으으억!”
“컴온, 브로!”
“허억, 허억! 엄마야, 대체 이게 무슨 일이다니!”
이주현의 다리가 후덜덜 떨려 왔다.
허나, 태하는 멈추지 않는다.
“드롭세트, 베이베!”
“……자, 잠깐! 여기서 드롭세트를 한다고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전 세트 드롭세트라니까요?”
“엄마야!”
“예압! 라잇, 웨잇 버디!”
마치 주문과도 같은 태하의 보현식 고농도 스테로이드 마인드 주입은 이주현의 걱정을 깡그리 날려 버렸다.
“렛츠 꼬우우우!”
“으어어어억!”
그야말로 곡소리가 절로 울려 퍼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드롭세트까지 마무리된 후, 이주현은 다리가 아주 탈탈 털려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다리를 무식하게 조져 놨으면 걷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이었다.
“아이고, 나 죽는다!”
바닥에 널브러진 이주현.
허나, 그는 이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허 참, 내가 아까는 무슨 개소리를 했던 거지?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지, 낙심부터 하다니.”
“맞아요! 그래야지 헬창스죠. 안 그래요?”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일어나는 이주현.
그는 bcaa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후우, 갑시다!”
“오케이, 버디! 렛츠 꼬우우우우!”
다시 시작되는 무식한 훈련.
이런 훈련을 정말 너무나도 좋아하는 성좌가 있었다.
[파생 스킬: 헬창계의 연금술사 - 열정의 전도사]
[열정이 넘치는 전도사를 보는 탑의 수호자가 아주 흡족하게 웃습니다]
[앞으로 ‘대사형’이 직접 제조하는 보충제를 먹을 시, 점진적 과부하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열정의 전도사’에 대한 특성 스킬을 획득하였으므로 사냥 시에 ‘헬창계의 연금술사’ 스킬로 만든 포션 효과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탑의 수호자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것일까?
‘울끈불끈 근육몬 아니야?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만약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한 가지는 반드시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루틴은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