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죽어라, 이 악랄한 놈들아!(1)
라이먼트를 사냥하기 위한 공격대가 조직되었다.
백선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직접 공격대를 이끌기로 했다.
“헬스하운드는 어쩌고 있나?”
“이용광을 쫓겠다면서 출발했습니다.”
“음, 그래. 그쪽에서 아수라를 추격해 준다면야, 우리로선 안심이지.”
그의 제자이자, 길드 ‘백두’의 수장 조현준은 불안한 듯 백선에게 물었다.
“하지만 사부님, 과연 그 청년이 사형…… 아니, 이용광을 제압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 만약 용광이에게 지더라도 정태하 군은 뭔가 크게 깨달음을 얻게 될 거야. 헌터로 살아가는 데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겠지.”
백선은 태하를 크게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던전의 대세로 만들어서 바벨탑의 질서를 바로잡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백선은 백색 두루마기를 걸쳤다.
“자, 그럼 가 보자!”
“예, 사부님!”
백선의 뒤를 따르는 대한민국 10대 길드의 수장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길드원들은 중무장을 한 채 현장으로 향했다.
***
여전히 라이먼트는 서울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고 대한민국 수도방위사령부는 놈을 공격하느라 벌써 수천억의 돈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휘리리릭!
액체와 같은 라이먼트는 자신의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서 마치 소용돌이, 혹은 회오리바람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쐐에에엥!
놈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역병과 파괴만이 남을 뿐이었고, 수도방위사령부는 시민들을 방공호로 대피시키느라 엄청난 병력 손실을 보고 있었다.
“쿨럭, 쿨럭!”
“의무병! 여기 부상자가 생겼다!”
지금 이 전장에서는 의무병이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특히나 의무부사관들은 그야말로 목에서 피 맛이 올라올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런 현장에 백선이 등장했다.
끼이이잉……!
순백색의 오러가 전장을 압도했다.
촤락!
합죽선을 펼친 백선은 라이먼트에게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날카로운 흰색 칼날이 쏘아져 나가 라이먼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악……!
마치 수천 개의 칼날이 춤을 추듯 라이먼트를 무자비하게 베어나갔던 것이다.
현영태는 사부의 엄청난 위용에 식은땀을 흘렸다.
‘……저런 엄청난 힘을 가진 사부님의 뜻을 거역하다니. 사형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겁이라는 걸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일까?’
백선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아수라 이용광은 이 세상에 하직 인사를 찍었을 것이다.
허나, 백선은 그를 직접 죽이지 않았다.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제자를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용광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청룡방의 뜻을 거역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만약 백선이 제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이용광은 진즉에 죽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쿠오오오오……!
이번에는 라이먼트가 백선에게 역병이 잔뜩 담긴 액체 덩어리를 발사했다.
퉤엣!
백선은 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단숨에 멸해 버렸다.
“놈!”
쐐에에엥!
백선은 빛과 바람을 다루는 능력자다.
각성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2개의 특성이 있으며,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흔히 ‘재앙급’ 헌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백선에게는 그저 하룻강아지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내 백선은 바람을 일으켜 자신을 그 기세에 태웠다.
휘이이잉!
“……버릇을 고쳐 주마!”
라이먼트에게도 심장이 존재하며 코어를 뽑는 순간, 놈은 한 컵의 썩은 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백선은 돌개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었다.
마치 드릴이 돌아가듯 사정없이 라이먼트의 가슴을 공략하는 백선.
끼이이잉!
라이먼트는 무섭게 회전하는 드릴을 피해서 가슴에 구멍을 만들어 냈다.
꿀렁!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라이먼트는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쉽사리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백선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제자들과 그 부하들이 효율적인 레이드를 위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조현준은 저런 사람의 제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역시 사부님이셔!”
백선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던 가운데, 저 멀리서 한 길드원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은 누군가 공격을 당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데, 데스워리어다!”
“……데스워리어?”
현영태는 직접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 했다.
허나, 벼락같은 백선의 호통이 떨어졌다.
“놈! 사냥 중에는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일렀느냐!”
“하지만 데스워리어가…….”
“그건 네 제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너는 이곳에서 저놈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최대한의 집중, 기억해라.”
“……예, 사부님!”
비록 제자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현영태는 자신의 경거망동이 너무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사형이 이걸 못 견뎌서 떠나고 말았지.’
한때 이용광은 청룡방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허나, 백선은 제자들을 키울 때 일개 헌터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길러낸다.
그렇기에 항상 완벽을 기해야 하고, 언제나 신중해야 하며, 끝도 없이 수련하고 공부해야만 한다고 다그쳤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했고, 심지어는 지천명이 다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하지만…….’
백선은 사부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현영태는 자신이 사부가 되어 보니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백선은 현영태와 제자들에게 전형적인 65층 보스 공략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놈을 잡는다! 포위 진형을 짜고 전자펄스 그물을 준비해라!”
“예, 사부님!”
진형을 짜면서 현영태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부가 왜 그렇게도 제자에게 목을 매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그 헬창 헌터라는 놈, 그놈을 무조건 밀어준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말이야.’
최고의 헌터를 사냥하기 위해 보낸 사람이 애송이 헬창이라니.
솔직히 현영태는 백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놈에게 청룡무고를 물려주신 게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청룡무고는 백선을 상징하는 곳이다.
혹시 그렇다면, 백선이 헬창 헌터를 후계자로 키우려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현영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이 점점 사악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들었다.
***
아수라 길드는 한때 자신들의 계열사였던 회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차례대로 부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생명과학연구소는 파괴 대상 1순위였다.
스릉!
이른바 ‘공허의 영검’이라 불리는 이용광의 검.
검은 검인데 그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며 때로는 안개처럼 흩어질 때도 있는 것이 영검의 특징이었다.
이용광은 연구소장 이화란에게 물었다.
“데이터는 삭제해 두었나?”
“……물론입니다. 아카이브에서 보내 준 것들도 전부 삭제했습니다.”
“흠, 그래? 그렇다면 연구진들은 싸그리 죽여도 되겠네?”
이화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살인멸구. 더 이상 지울 것도 없는데 너그들을 살려 둬야 할 이유가 있나?”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당신이 시키는 대로…….”
“자, 묵으라!”
영검은 피와 영혼을 끝도 없이 갈구하는 마검이다.
이른바 ‘에고소드’로 불리는 이 영검은 사용하는 자의 성심에 따라서 그 성향이 결정된다.
이용광은 자신이 영검을 처음 받았을 때와 지금의 모습은 차이가 많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그때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우드드득!
마치 마수의 아가리처럼 입을 쩍 벌렸던 마검은 이화란을 통째로 씹어 먹어 버렸다.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어 다녔고, 심지어 산 채로 죽는 그녀의 숨결과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허나, 이용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연구소의 개발이사 토마스 마셜에게 검을 들이댔다.
“아무래도 인마가 낫겠데이. 이봐, 토마스. 데이터는 참말로 다 날렸드나?”
“……무, 물론입니다.”
“뭐, 이놈이고 저놈이고 칼만 들이대면 다 예스라고 해 뿌니, 내사 믿음이 가야 말이지.”
“생각해 보세요, 미스터 리. 우리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정보를 빼돌린단 말입니까?”
“이제 이 회사의 대주주가 바뀌었으니 그리되어야 하는 거 아이가?”
이용광의 시각에선 직원이 대주주에게 충성하는 건 당연했다.
아무리 외부 세력이 무서워도 대주주가 열 받으면 이 회사의 일원들은 순식간에 실직자가 될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는 연구소의 수뇌부를 하나씩 잡아먹으면서 진실을 캐내고 있었던 것이다.
“암만 생각해 봐도 인마도 죽어야겠다.”
“……사, 살려 주십시오!”
바로 그때였다.
끼이잉…….
에고소드가 연신 검신을 떨어 댔다.
“뭐고……?”
파앗!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나타난 태하의 신영.
“뭐긴 뭐야. 육시럴 놈 데려가는 저승사자지!”
태하의 주먹이 이용광의 검과 부딪쳤다.
까앙!
그 울림은 이용광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오호? 이놈이 제법인데?”
“제법이지. 네 모가지 따러 왔는데, 설마 실력도 안 키우고 왔을까 봐?”
“……언젠가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지. 안 그러나?”
“아가리 그만 털고 얼른 시작하자.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말이야.”
“얼라가 입이 짧네. 어른한테 반말하라고 누가 그러드노?”
“몰라, 이 새끼야!”
태하는 스트랩을 뻗어 이용광의 팔목을 잡았다.
휘릭!
그러자 이용광은 그 안으로 엄청난 양의 영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인마야, 감당할 수 있겠나?!”
-끄아아아아악……!
그 원한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원기가 태하를 잡아먹을 듯이 일렁거렸다.
허나, 그것은 정말이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흩어져 갔다.
[사신의 숨결]
[그 어떤 영혼도 사신의 앞에선 그저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태하의 뒤에 버티고 있던 영령이 순간 각성하며 사신으로서의 숨결을 내뿜었다.
그러자 영혼들은 순식간에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신이다!
새까맣게 물들어 갔던 태하의 스트랩은 다시 푸른색을 찾았다.
이용광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사신이라……. 설마하니 후원 성좌가 사신이었을 줄은 몰랐다.”
“후원 성좌라니?”
“맞다, 맞다. 인마는 햇병아리라서 후원 성좌가 뭔지도 모르재? 하긴, 알았다면 성좌 비위 맞추느라 똥꼬 빠져라 뛰어다니지 않았겠나?”
이용광이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몰라도, 일단 태하는 이곳에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태하의 얼굴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네 똥꼬는 내가 빼 줄게. 지옥에 가서 비데나 잘하셔.”
“……겁대가리를 아주 빵 사 먹었네?”
“허업!”
태하는 곧장 이용광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이용광은 아주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해 내며 한 발짝 물러섰다.
이용광은 영검에 마이너스 에너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영검은 마이너스 에너지를 마시자마자 미친 듯이 공명하며 피를 갈구했다.
-끼에에에엑!
“……검이야, 몬스터야?”
“그야 죽으면 알게 될 끼라!”
이용광이 검을 휘두르자 태하의 앞으로 검은색 구체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 구체는 스파크를 일으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구체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야말로 파괴와 공허만이 남아 있었다.
‘이래서 공허의 영검이라 불렸던 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