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62화 (62/197)

062 수상한 그녀(2)

라이먼트는 디버프의 제왕이라고 알려져 있다.

65층의 보스이며 흔히 ‘역병과 나약함’을 관장하는 최악의 중간 보스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 라이먼트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태하는 일단 스포츠카를 타고 임태술의 체육관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좀비들이 들이닥쳐 체육관이 전부 피바다가 될까 봐 걱정된 것이었다.

끼기기긱!

거칠게 차를 몰아 도착한 임태술의 체육관으로 내려간 태하는 당황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입구부터 체육관은 그야말로 피바다나 다름이 없었다.

빰빠바밤!

흥겨운 EDM 사운드가 쾅쾅 울려 퍼지는 헬스장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신음 소리들이 들려왔다.

“으으으……!”

“뭐야, 선홍 씨!”

“……도, 도망치세요!”

체육관의 트레이너 함선홍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고, 팔과 다리가 무참히 뜯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함선홍은 이내 곧 사망하고 말았다.

“아아……!”

“선홍 씨!”

태하는 그를 흔들어 보았으나 함선홍은 이미 눈이 뒤집혀 생명을 다한 상태였다.

그를 들쳐업고 관장 업무실을 찾은 태하.

“선배님! 계세요?!”

이곳을 떠날 때 임태술을 데리고 가겠노라 들어왔지만,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태하는 함선홍의 시신만이라도 수습하고자 그를 데리고 나갈 참이었다.

헌데 망자에게서 뭔가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움찔…….

“선홍 씨……?”

-끄으으으!

눈이 뒤집힌 선홍은 갑자기 눈을 뜨더니 태하를 찢어 죽이겠다는 듯 발광하기 시작했다.

-캬하아아악!

“……이런 제기랄!”

태하가 지금까지 던전에서 보았던 좀비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빨랐다.

원래 언데드는 스스로의 신체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데, 신체의 장기는 다 썩었고 근육마저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선홍은 달랐다.

-크하아아악!

우드득!

발광하는 그의 몸이 얼마나 야단법석을 떨었으면 팔과 다리의 관절이 다 빠져서 마치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처럼 되어 버렸다.

스스로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태하는 그를 좀 편하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

“좋은 곳으로 가서 성불하시길. 아멘!”

어딘가 모르게 어중간한 기도를 마무리 지은 태하는 선홍의 머리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쿠우웅!

그의 주먹은 수 톤에 달하는 압력을 낼 수 있기에 그걸 맞은 선홍의 머리는 그야말로 수박처럼 깨져 버렸다.

태하는 그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중에 다시 와서 시신을 수습해 주겠노라 다짐했다.

“……안 되겠어. 보현 관장님이 걱정이야!”

***

함선홍을 보내 주고 지상으로 나온 태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좀비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시민들을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

-캬하아아악!

“사, 살려 줘!”

사방팔방이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태하는 일단 차를 타고 덕림헬스로 내달렸다.

부아아앙!

차량의 엔진을 거의 최대출력으로 해서 달리니 주변의 풍광은 거의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막 한강의 교량을 건너려고 할 때였다.

경찰 특공대가 장갑차를 타고 진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상사태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다리를 넘어오거나 넘어가지 마시고, 그 자리에 계셔 주십시오! 비상사태입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은 이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태하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전화기를 들었다.

우선 보현 관장에게 전화를 거는 태하.

“관장님!”

-요, 베이비! 임태술은 잘 만나고 왔어?

“아니요, 그게……. 아니, 체육관에는 아무런 일도 없어요?”

-일? 무슨 일?

다행히도 체육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태하는 일단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헬스장은 열심히 운동하는 회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태하는 일단 헬스장 문부터 걸어 잠갔다.

삐빅!

저번 폭발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태하와 보현 관장은 헬스장의 문을 철문으로 만들고 그것을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무려 20억이나 투자해 두었던 것이다.

문을 잠그자 창문이 가려졌고, 회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태하는 일단 음악부터 껐다.

“자! 회원님들,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가족들에게 연락하셔서 생사부터 확인하시고요, 될 수 있는 한 이곳에 모여 계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선 여기가 가장 안전할 겁니다.”

“……뭐, 뭐라고요? 전쟁이라도 났어요?”

“지금 바깥에 언데드가 쫙 깔렸어요. 아직 한강 다리를 넘어오지는 못했는데, 강동에서 강북으로 넘어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허억!”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태하는 그런 그들에게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여기 헬스장은 헌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곳에만 계신다면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제가 장담합니다.”

“……아하! 하긴, 그건 그러네.”

“게다가 이 헬스장 지하에는 철문까지 다 달아 놓았고 골조도 손봤습니다. 미사일 요격에도 어지간하면 흔들리지 않으니까 가족들을 데리고 오실 분들은 빨리 데리고 오세요.”

“오오, 알겠어요!”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당장 집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짬이 생긴 태하에게 헬스하운드와 보현 관장이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금 강동에서 언데드 웨이브가 터졌어요. 저도 간신히 빠져나왔고요.”

“……언데드?!”

“그나마 우리가 종로 일대에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쑥대밭이 되었을 거라고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태하에게 용팔이 물었다.

“아참! 정릉동!”

“정릉동이요?”

“고상근 씨 모녀요!”

눈이 휘둥그레진 태하는 당장 헬스장을 나섰다.

***

언데드 웨이브는 점점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역병의 라이먼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먼트는 원래 질병 마법을 부여해서 상대방에게 디버프를 거는 전형적인 시너지 딜러인데, 던전에서는 언데드를 소환해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돌파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언데드는 던전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이먼트는 역병을 이용해서 언데드를 만들기 때문에 막상 던전에서 좀비가 생겨나도 헌터들에게 칼질 몇 번이면 정리가 되었다.

허나, 던전 밖은 헌터들에 비해 일반인이 거의 99% 차이로 많지 않던가.

-끄에에에엑!

라이먼트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리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당해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곧바로 변이하여 좀비 바이러스로 돌변해 버렸다.

-캬하아아악!

“사람 살려!”

“제기랄, 살려 줘!”

보통의 언데드 웨이브와 라이먼트의 언데드가 다른 점은 시체의 신선도(?)였다.

원래 언데드는 사령술에 의해 상당히 오래 죽어 있다가 일어나기 때문에 백골, 혹은 백골 직전의 시신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라이먼트는 이제 막 죽은 신선한(?) 시체를 부활시키기 때문에 그 완력이나 스피드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났던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에 당한 시신들은 조금 더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다.

때문에 일반인은 마치 광견병에 걸린 사람처럼 달려드는 미친놈을 상대하기 어렵다.

사이코패스가 묻지마 살인을 할 때 사상자가 많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태하는 그 주변을 지나 정릉의 카센터로 향했다.

-끄어어어어!

카센터 주변까지 이미 언데드가 창궐해 있었다.

차에서 내린 태하는 데스워리어의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성불하세요!”

촤라라락!

그야말로 붉은 꽃이 피어나듯 사방팔방에 선혈이 가득했다.

태하로서는 좀비가 되어 이지를 잃어버린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태하는 카센터 주변을 에워싼 언데드들을 베어 낸 후 정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계세요?! 고상근 씨! 계세요?!”

잠시 후, 가게의 경리를 담당하는 이정화가 창문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태하 씨?!”

몇 번인가 이 집을 찾아왔을 때 친해졌던 이정화다.

그녀는 싱글맘이지만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기에 태하는 그녀를 자주 도와주곤 했었다.

“정화 누님! 사장님은 어디 계세요?!”

“은하 데리러 갔어!”

“그렇군요! 학교로 가면 되는 거죠?”

“……가는 김에 우리 애들도 좀 구해 주면 안 돼?”

“그럴게요! 문 잠그고 조금만 계세요. 제가 금방 구하러 올게요!”

“알겠어……! 기다릴게!”

비록 엄마 홀로 키우지만 너무나도 착하고 반듯한 아이들이다.

태하는 그 아이들까지 구해서 안전한 장소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는 차고에 스포츠카를 놔두고 도보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는 날아서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촤라라락!

스트랩을 뻗어서 가로수와 가로등을 타고 타잔처럼 이동하는 태하.

덕분에 걸어서 5분 걸릴 거리를 단 1분 만에 주파했다.

-끄어어어!

쿵쿵쿵!

은하가 다니는 한림초등학교의 교문 앞에는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이 있었다.

태하는 그 언데드들을 대검으로 깡그리 베어 버렸다.

“허업!”

좌에서 우로, 더러는 아래에서 위로, 심지어는 대검을 들고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부우우우웅!

마치 믹서처럼 인근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태하의 무력은 그야말로 살인 기계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좀비를 정리했다.

엄청난 숫자라곤 해도 인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좀비 따위, 태하가 검으로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정말 손바닥 구부리기보다 쉬웠으니 말이다.

태하는 교문을 뛰어넘어 교정으로 들어갔다.

[자립, 단정, 독행]

교정의 중앙 정문에 떡하니 박힌 간판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젠장, 별로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부터 아이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흑흑, 살려 주세요!”

천천히 다가가서 보니 웬 복면을 쓴 사람들이 학생과 교사들을 교실에 몰아넣고 협박하고 있었다.

태하는 스킬창을 열었다.

그러곤 레이스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부르셨어요……?

“지금 이 순간에 쓰기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을 좀 추천해 줘.”

-……데스워리어의 스킬을 얻으셨잖아요?

태하는 속으로 무릎을 쳤다.

단거리 점멸이라면 저들을 거의 동시에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고마워!”

-또 불러 주세요…….

힘겨운 목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레이스.

태하는 대검을 한 손으로 꼬나 쥔 후, 놈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교사의 목덜미에 칼을 들이미는 놈 하나, 아이들을 위협하는 놈 하나, 그리고 무전기를 든 놈이 하나였다.

우선 태하는 무전기부터 탈취하기로 했다.

“흡!”

[스킬: 점멸]

[단거리를 빠르게 이동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없음]

[제한 거리: 5m]

점멸의 사용 거리는 그다지 길지는 않았으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없는 데다 잘하면 돌격 스킬과 연계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 전에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어.’

태하는 까미를 소환했다.

-크르릉…….

‘까미야,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거야. 앞으로 눈앞에서 펼쳐질 장면, 못 본 걸로 만들어 줄 수 있어?’

-크릉!

까미는 마계화다.

정신 지배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아이들이 큰 타격을 받지 않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간다!’

태하는 일단 무전기를 손에 쥔 놈의 목부터 날렸다.

파앗!

“엇……?”

서걱!

놈의 목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스킬: 정신 지배]

[기억을 왜곡시킵니다]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으나, 까미의 정신 지배 마법으로 인해 오늘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윽고 태하는 다시 점멸을 펼쳤다.

파앗!

그야말로 0.1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복면인들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서걱!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가지가 달아나 버렸다.

태하는 정말 찰나의 순간에 선생의 얼굴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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