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61화 (61/197)

061 수상한 그녀(1)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회원 데이터를 정리하는 태하에게 한창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던 성미연이 다가왔다.

“코치님! 운동 좀 알려 주세요!”

“운동을 알려 달라고요? 코치가 코치에게 운동을 알려 달라니?”

의외였다.

성미연은 나름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라 운동의 방법론이나 기타 이론 및 실기에 대해선 아주 빠삭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왜, 윤 코치님이나 김 코치님한테는 알려 주시잖아요?”

“흠! 그건 관장님께 같이 배우는 입장이라 그런 건데.”

“아무튼요!”

태하는 하는 수 없이 정리하던 것을 멈추고 성미연을 따라갔다.

그녀는 태하를 프리웨이트존까지 데리고 왔다.

거울로 된 벽면 앞에 선 태하는 성미연에게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요?”

“스쿼트를 하는데 엉덩이가 잘 안 먹어요.”

“그야 타겟 지점이 대퇴사두이니 그렇겠죠. 중심을 뒤로 좀 옮기세요. 엉덩이를 뒤로 조금 더 빼시든지요.”

“어떻게 옮기는 건데요?”

태하는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다.

보통의 스쿼트에 비해 엉덩이가 뒤로 쭉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 이렇게 뒤로 쭉…… 엉덩이를 뻗어 준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골반 드라이브, 힙 힌지, 고관절의 회전을 잘 느끼면서 내려가세요.”

“이렇게요?”

“아니, 엉덩이를 뒤로 조금 더…….”

“좀 집어 주시면 안 될까요?”

태하는 회원들의 데이터가 적힌 종이를 돌돌 만 다음, 그것을 가지고 부위를 직접 집어 주었다.

“자, 여기! 여기 느낌이 나도록.”

“손으로 눌러 주시면 안 될까요?”

“흠……. 알겠어요.”

태하가 그녀의 뒤로 다가가 자극 부위를 터치하려던 그때였다.

성미연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그녀가 뒤로 넘어지려는 듯 휘청거렸다.

“어머……!”

아마 이대로라면 태하의 하체와 그녀의 하체가 나란히 겹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런, 넘어질 뻔했네?”

“……김 코치님?”

“운동을 배우려거든 같은 여자한테 알려 달라고 하시지, 왜 바쁜 우리 대장님을 부르셨어요?”

“쳇.”

“그럼 계속 배우시겠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할게요.”

이내 사라지는 성미연.

한나는 팔짱까지 끼고선 태하를 찌릿 흘겨보았다.

“못 살아, 진짜! 저런 여시때기한테 홀려 가지고 침이나 질질 흘리는 꼴이라니!”

“……그냥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 준 건데요.”

“바보예요?! 한국체대를 나왔다잖아요! 저런 수재가 미쳤다고 우리 같은 이론 제로 실전파한테 굳이 운동을 배우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흠.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저 여자 조심해요. 알았어요?”

“왜요?”

“수상하잖아요!”

“수상해요? 예쁘면 다 수상한 건가?”

“……누가 예뻐서 수상하대요? 그럼 희란 씨는 간첩이게?”

희란이 아주 단아한 한국적인 미인이라고 한다면, 성미연은 도시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미인이다.

정반대이긴 해도 둘 다 흔치 않은 미인인 건 확실했다.

한나는 태하에게 누차 경고했다.

“하여간 조심해요! 내가 지켜볼 거예요!”

“허 참,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그녀가 돌아간 후, 태하는 계속해서 회원 데이터를 정리했다.

레이드를 다녀도 어쨌건 헬스장 일은 태하에게 있어선 상당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사형으로서 사문을 관리한다고나 할까.

실제로 헬스장은 이제 태하 없이는 돌아가지도 않는다.

회원 데이터를 정리하다 보니 정오, 오후, 저녁 GX 회원이 너무 많이 늘어서 같이 해 줄 사람이 필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그럼 직원들 스케줄을 좀 알아볼까나?”

지금 헬스장에는 헬스하운드로 이뤄진 선수 코치와 6명의 비선수 코치로 나누어져 있다.

비선수 코치들은 박학다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회원들을 가르치는데, 이들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허나, 다들 너무 바빠서 막상 GX를 시킬 만한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하나를 더 뽑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던 태하.

그러다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성미연이었다.

“성미연 씨가 비교적 스케줄도 널널하고 개인 PT도 없네. 뭐, 이 정도면야.”

트레이너는 기본급을 깔고 그 위에 PT 비용을 얹어서 수입을 결정짓는다.

그런데 성미연은 PT가 별로 없어서 급여가 적은 대신에 헬스장에서 하는 일도 그리 많지가 않았다.

태하는 성미연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녀를 GX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음, 그럼 GX를 하니까 급여도 다시 책정해 볼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태하.

헬스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전속 회계사가 알아서 해 주지만, 급여를 조금 더 챙겨 주자면 살림꾼 태하가 신경을 써 줘야 한다.

그녀에게 지금까지 들어갔던 급여를 보고 평균치보다 약간 더 올려서 주려는 생각이었다.

헌데, 엑셀에서 성미연이라는 이름으로는 검색이 안 되었다.

-검색 결과: 일치하는 이름 없음

태하는 전속 회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계사는 다름 아닌 유신성이었다.

“회계사님.”

-오호, 정 코치! 이 저녁에 어쩐 일이에요? 한잔하려고요?

“아니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헬스장 일이요.”

-음, 그래요? 말씀하세요.

유신성은 한라 소속의 헌터이지만 회계사를 겸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덕림헬스의 살림도 그가 맡아 주고 있었다.

그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받았으므로 검색을 해 줄 의무가 있었다.

-성미연……. 아아, 성미연 씨! 저번에 혁수가 세금 신고할 때 봐서 알 텐데? 그쪽으로 연락해 보시죠. 그게 빠를 겁니다.

“네, 알겠어요. 내일 아침에 뵐게요!”

-오케이!

임혁수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덕림헬스의 세무를 담당하고 있는 세무사다.

이 업계가 원래 투잡을 뛰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바닥부터 시작해서 올라온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직업 하나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게 비각성 헌터이기 때문이다.

-어이, 정 코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여?

“성미연 씨라고 아시죠?”

-알지! 헬스장 코치인데 모를 리가 있나.

“그 사람, 왜 급여 내역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죠?”

-아하, 그거! 뭐라더라, 무슨 사정이 있다고 사촌 동생 통장을 쓰고 있는 것 같던디?

“사촌 동생?”

-몰러, 나도 잘은. 주현이가 그러는데, 원래는 자기 병원 인턴이었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

“……한국체대 출신인데 인턴까지 밟았다고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이 병원 인턴 생활을 하다가 체대에 들어가 졸업 과정까지 밟았다는 건 물리적으로 매치가 안 되는 일이 아닌가.

‘학력 위조인가?’

***

성미연의 뒷얘기를 전해 들은 보현 관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베리베리, 배드야. 다른 건 몰라도 학력 위조는 좀 그런데. 안 그래?”

“제 생각도 그래요. 아예 처음부터 의대 출신에 인턴 생활하다가 나왔는데, 운동이 너무 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어째, 자를 거야?”

“그건 관장님이 결정하셔야 할 문제인데.”

보현 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호, 베이비! 네가 대사형이잖아. 당연히 네가 알아서 처리해야지.”

“흠, 그렇다면…….”

“오늘 안으로 결정해서 처리해. 그럼 이 관장님은 운동하러 간다. 라잇, 웨잇! 이지, 베이비!”

보현은 언뜻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그가 태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한번 알아볼까?’

이 바닥에서 학력 위조는 정말 흔하디흔한 일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 사람을 헬스장에 들여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하는 임태술을 찾아갔다.

그는 헬스에 관해선 정말 대단한 인맥을 갖춘 사람이기에, 그야말로 조사하면 다 나올 것이다.

마침 그의 헬스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너가 한국체대 출신이었다.

“흠? 그런 사람은 없다는데?”

“……그래요?”

“학력 위조는 확실하니까 자네가 알아서 잘 처리해. 경찰에 신고를 하든지, 민사소송을 하든지. 아니면 조용히 처리해 버리든지.”

임태술도 학력 위조에 많이 당한 적이 있어서 그 얘기만 들어도 짜증이 확 올라오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참에 아주 본때를 보여 주라고 조언한 것이었다.

임태술의 헬스장을 나오는 태하는 평소처럼 스포츠카를 헬스장 앞으로 불러 놓았다.

차를 타고 돌아가려는데 AI가 태하에게 물었다.

-주인님, 동행이 있으십니까?

“동행?”

-아까부터 누가 제 주변을 기웃거리더니, 심지어는 주인님이 운전하시는 동안 계속 따라오고 있네요.

태하는 룸미러 대신에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랬더니 빨간색 소형차가 태하를 은근슬쩍 따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미행인가?”

-AI의 소견에 따르자면 미행일 확률이 거의 90% 이상입니다.

“그럼 나머지 10%는 뭐야?”

-9.9%는 스토킹, 나머지 0.1%는 그냥 차가 좋아서 따라오는 겁니다.

“한마디로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거네?”

일반서민인 태하가 미행을 당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태하를 억압해야 할 이유가 있다거나, 무슨 사고를 친다거나 할 때다.

쿠우웅……!

-진동 경고입니다!

“어디서 온 진동이야?”

-땅입니다.

“땅……?”

쿵, 쿵, 쿵……!

진동은 계속해서 울렸다.

그러다가 돌연 태하의 스포츠가 옆으로 덤프트럭이 달려왔다.

-경고, 경고! 측면에서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이런 젠장!”

핸들을 비틀어 피해 내는 태하.

끼기기긱!

스포츠카는 알아서 최적의 각도로 핸들을 조향해 주는 한편, 카본파이버 충격 대비 시스템을 가동했다.

-충격에 대비합니다. 임시 캡슐이 생성됩니다.

부우욱!

차량 겉면에 몬스터의 ‘스킨 가드’가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제 그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방어막이 가동된 것이었다.

스킨 가드가 발동된 태하의 스포츠카는 가로수에 막혀 다행히도 주변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을 수 있었다.

카본파이버 스포츠카는 기본적으로 그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사고가 날 경우엔 본인이 아니라 주변이 더 다칠 수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스포츠카는 알아서 스킨 가드를 펼친 것이었다.

“……살았네.”

-주인님, 주변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듭니다.

“인파?”

차창 너머로 보이는 인파의 행렬.

태하는 그것을 보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크하아아악……!

눈동자가 뒤집힌 사람,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심지어는 팔이 잘렸는데도 달리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이런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의 PTSD를 자극하는 존재들.

“뭐야, 좀비?!”

깜짝 놀란 태하는 곧바로 방송을 켰다.

치이이이익……!

이미 지역 방송국의 라디오나 TV 수신은 먹통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112로 전화를 걸었다.

-모든 회선이 통화 중입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112라는 긴급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니 말이다.

태하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러자 이런 문구가 포털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었다.

-검색어 1위: 라이먼트

2위: 좀비

3위: 좀비 대피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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