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루비컵!(2)
호텔 밖에선 비명과 함께 소방관들의 진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허나, 문제는 화재가 아니었다.
-크르르릉!
“괴, 괴물이다!”
-크아아아악!
마치 도마뱀이 사람으로 진화하다 멈춘 것 같은 모습. 한마디로 거대한 덩치의 비늘인간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신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서 놈들이 주먹을 휘두르는 족족 사람들이 곤죽이 되어 죽어 갔다.
이들은 마치 폭력의 광기에 사로잡혀 천지 분간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빠각!
-크헤에엑!
“이 새끼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마침 대회장에 용팔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족히 수백의 목숨을 앗아 갔을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 무기는 없지만, 주변에 널브러진 각목이라든지 쇠파이프 따위가 있어서 싸우는 데 지장은 없었다.
용팔이 괴물 1마리를 해치웠는데, 이번에는 옆에 있던 보현 관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태, 태하! 저 안에 태하가 있어!”
“관장님! 가만히 계세요!”
“……안 돼! 태하를 구해 와야 해!”
다른 건 몰라도 내 선수, 내 제자에 대한 애착은 정말 남다른 보현이었기에 태하가 건물 더미에 파묻혔다는 건 엄청난 충격이었다.
보현은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날뛰었다.
바로 그때, 그의 바로 앞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지, 진동?!”
“태하를 살려야 해!”
“관장님, 정신 차리세요!”
용팔은 일단 관장을 힘으로 제압하여 뒤로 끌고 나갔다.
그때쯤이었다.
건물 잔해를 뚫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으헉, 으헉!”
“헌터님!”
보디빌딩 트렁크 한 장 걸친 채, 한 손에는 피를 철철 흘리는 남자를 들고, 등에는 또 다른 남자를 업은 태하가 등장했다.
태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부상자가 있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아이고, 태하야!”
구급대원들이 부상자들을 데리고 가자마자 보현 관장은 태하부터 살폈다.
보현 관장은 마치 애지중지하는 조각상을 살피듯 이곳저곳 뜯어보았다.
“괜찮은 거지?!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지?!”
“네, 없어요!”
“……헬스 신이시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그 자리에 주저앉는 보현 관장.
태하는 관장을 부축하는 한편, 용팔에게 사정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거래요? 갑자기 폭발이라니.”
“몬스터들이요! 그놈들이 건물 안에서 날뛰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된 것 같아요!”
“……몬스터요? 화이트홀이 또 터졌나?!”
저번에는 남산에서 일이 터지더니 이번에는 북한산 인근에서 일이 벌어졌다.
이놈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이번 루비컵에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나요?”
“네, 그랬었죠. 관중도 많았고요! 그런 대회에서 헌터님이 오버롤을 한 거고요! 그레이트하게!”
“흠……. 그럼 인파를 노리는 게 분명해요.”
“사람을 죽여서 뭐 하려는 것일까요?”
“……글쎄요. 마이너스 코어라도 만들려는 건가?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보현 관장을 부축해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태하.
바로 그때였다.
-크헤에엑!
뒤통수에서 몬스터들의 사악한 괴성이 들려왔다.
“뭐지, 도대체? 이놈들,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헌터님! 저것 좀 봐요! 저놈들, 트렁크를 입고 있어요!”
덩치가 워낙 커서 잘 몰랐지만, 놈들의 사타구니에는 분명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는 트렁크가 간신히 걸려 있었다.
요즘은 트렁크에도 카본파이버와 코어 기술이 들어가기 때문에 내구성이 정말 남달랐다.
“허어, 트렁크의 질이 아주 좋네요.”
“그나저나 저놈들, 왜 저렇게 된 것일까요?”
태하는 그들의 트렁크에 달려 있는 번호표를 확인하곤 이맛살을 구겼다.
-612번
트렁크 넘버 612번은 중계진들의 혹평을 들었던 선수다.
엠톨을 복용했던 흔적이 있었던 대표적인 선수인데, 아무리 봐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괴물, 괴물 하더니 정말로 괴물이 되어 버린 건가?”
“누가요?”
“엠톨을 꽂은 사람들 말이에요. 어쩐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잖아요?”
“아아! 그래, 엠톨! 허어, 그럼 저놈들이 엠톨을 주사해서 괴물이 되었다는 건가요?”
태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엠톨을 복용했던 선수들도 구급대의 보호를 받아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쯧쯧, 그러게 식약처 허가도 안 받은 약물을 오남용하니, 사람이 저렇게 망가질 수밖에요.”
괴물들은 태하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흉수 같았다.
-……프로틴!
“허어, 사람을 단백질 보충원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야말로 헬스에 미쳤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보디빌더라니, 태하는 어쩐지 회의감까지 들었다.
“내가 이런 미치광이들과 겨루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해요?! 죽여야 할까요?!”
“일단 기절시키는 쪽으로 합시다. 그것도 안 된다면 죽이는 수밖에요.”
보현 관장을 부축하고 있던 태하를 대신해서 용팔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비록 태하보다는 파괴력 면에서 떨어지긴 할 테지만, 용팔의 속도는 가히 초음속 전투기 수준이었다.
쐐에에엥!
“이거나 먹어라!”
서걱!
그의 주먹 한 방에 몬스터의 목덜미가 잘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무리 그가 헬창이라서 힘 스텟이 높다곤 해도 용팔은 분명 궁수였기에 민첩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니 주먹을 쳐도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드는 묵직한 펀치가 아니라 송곳이나 칼날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펀치가 나오는 것이었다.
푸하아아악!
사방으로 핏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몬스터들이 도망치려 눈치를 살폈다.
-크르릉…….
“……안 돼. 쫄지 마. 너희들이 도망치면 내 골치가 아파져.”
원래 인간이었던 몬스터가 야생의 몬스터처럼 저돌적으로 변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살아온 환경이 엄연히 다르지 않던가.
파바밧!
무려 여덟 갈래로 갈라지는 몬스터들.
용팔은 비명을 질렀다.
“오마이갓!”
저것들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트리게 될까?
그런 걱정이 용팔의 뇌리에 남았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
그림자 8개가 몬스터의 앞에 구렁텅이를 만들어 냈다.
꿀렁!
“……영수 씨?!”
“대회 우승, 축하드립니다!”
***
이른바 ‘루비컵 사태’가 마무리된 지 3일쯤 되었을 때였다.
덕림헬스의 문이 열리며 2명의 남자가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그들은 태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뭐, 뭐 하시는 겁니까? 회원님들도 계신데…….”
“저희의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진짜 영웅도 못 알아보고! 정말 죄송합니다!”
태하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은 이른 아침이라서 회원들도 많았고 이제 곧 아침 GX도 시작해야 하는데, 굳이 왜 지금 이러나 싶었던 것이다.
허나, 이들이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침 회진 때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도망 왔습니다. 형님께 사죄드리고 싶어서요!”
“허어!”
“병원에서 꼼짝없이 한 달이나 입원해야 한다는데, 그때쯤이면 형님께서 이미 저희를 잊어버릴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인 태하를 대놓고 험담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지, 그들은 일단 되는대로 무릎부터 꿇은 것이다.
물론, 그냥 용서해 줄 생각은 없다.
그건 단지 억하심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친구들도 이 기회를 통해 뭔가 배우게 되겠지. 그래야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 아니야?’
태하는 아예 성격 자체가 대사형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 특성이 아마도 태하의 특성 스킬로 분화되었을 것이다.
[스킬: 대사형의 오러 - 정도]
[사제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세요]
[마법 저항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태하는 그들을 일단 일으켜 세웠다.
“우선 일어나세요. 헬스장 입구에서 이러시면 민폐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세요. 일단 그곳에서 치료부터 받고 돌아오세요. 그럼 그때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하죠.”
저들의 나이는 많아 봐야 20대 중반이었다.
만약 지금부터 인생을 다시 배운다고 한다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태하의 진심이 전해졌던 모양인지 두 덩치는 태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치료 열심히 받아서 반드시 형님께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이만 돌아가세요.”
“예, 형님! 그동안 무탈하시고 득근하십쇼!”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었지만,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한 달 후에는 사과를 받아 줄 마음도 있었다.
잠시 후, 보현 관장이 출근했다.
“요, 베이비, 요! 태하, 벌써 나왔네?”
“아침 운동 하고 GX를 슬슬 시작할까 싶어서요.”
“역시, 부지런한 건 태하를 못 따라와!”
보현 관장은 태하의 앞에 미스터 올림피아의 스케줄러를 올려놓았다.
미스터 올림피아는 앞으로 넉 달 후,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넉 달이면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야. 보통의 보디빌더라면 회복 기간을 충분히 갖고 또다시 바짝 몸을 만들어서 올림피아에 도전할 텐데, 그러자면 넉 달로는 시간이 부족하거든. 하지만 태하 너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선을 다할게요!”
“오케이! 그럼 GX부터 시작해 보자!”
GX는 그룹별로 나뉘어서 하는 운동인데, 태하는 아침에 다이어트 복싱을 가르친다.
맨몸으로 던전을 오르다 보니 태하는 세상에 있는 어지간한 운동은 다 해 봤다.
때문에 운동 경험을 살려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동작을 간간이 섞어서 헬스와 접합시킨 것이었다.
다이어트 복싱을 가르치기 위해서 미트를 챙기는 태하.
그런 태하에게 한창 상담 중인 신입 트레이너 성미연이 보인다.
그녀는 PT 상담을 받으면서 아주 난감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 살은 빼고 싶은데 유산소를 안 하시겠다니. 솔직히 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아니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한다고요.”
“디스크가 있으세요?”
“없어요.”
“그럼 혹시 인공관절을 달았다거나 심장부전이 있으세요?”
“……없다니까요?”
“흠, 그렇다면 체계적인 체중 관리를 못 해 드려요. 유산소는 체중 감소의 기본 중 기본인데, 그걸 못 하겠다고 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나름 체육대학을 나왔고 이쪽에서 운동을 좀 해 봤다는 성미연은 트레이닝에 대한 프라이드가 제법 대단한 신입이다.
다만, 요령과 노하우가 좀 부족하달까.
태하는 성미연과 여성 회원의 중간에 앉았다.
“PT 받으시려고요?”
“……그렇긴 한데, 살은 못 뺀다고 하시니까요.”
“특별히 뛸 수 없는 사정이 있으신 거죠? 자전거도 못 타시고요.”
“네, 맞아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는 아주 깔끔하게 정의를 내려 주었다.
“그럼 근력 운동이랑 식단 조절만 해서 관리하시죠. 스케줄은 제가 짜 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운동이라는 건, 사람에 맞춰서 하는 겁니다. 사람을 운동에 맞추려고 하면 오히려 병이 날 수도 있죠.”
“역시……!”
“그럼 일단 트레밀에서 좀 가볍게 걸으시죠. 친구랑 통화하면서 걸을 수 있을 정도, 그것보다 약간 더 천천히 걸으세요. 하복부에 자극이 오지 않도록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회원은 상당히 감동한 듯했다.
그녀는 태하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하하, 별말씀을요.”
이윽고 태하는 신입 성미연을 데리고 헬스장 구석으로 향했다.
그는 성미연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는 뛸 수 없는 사람도 있어요.”
“……겉보기에는 아주 멀쩡한데요?”
“그럴 수도 있죠. 괄약근이 약할 수도 있고 요실금이 있을 수도 있고.”
성미연은 화들짝 놀라서 되물었다.
“요실……!”
“쉿! 회원님들의 사정은 절대 비밀입니다. 입 밖으로 절대 꺼내선 안 되는 거라고요.”
“……아아!”
“생각보다 요실금은 많은 이유로 찾아와요. 그리 드문 병도 아니고요. 이렇게 말로 하기 힘든 사정이 있는 사람에게 무작정 뛰라고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비록 태하는 헬스에 입문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운동을 해 봤고 사람도 많이 겪어 봤다.
그는 사람에게 운동을 맞추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저 회원님께는 모른 척, 요실금에 맞춰서 운동 스케줄을 짜 보세요.”
“……감사합니다. 솔직히 좀 멋있네요.”
“하하, 그랬나요?”
성미연은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뭔가를 하나 꺼내어 태하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하트 모양 사탕이었다.
“이거…….”
“어라? 저 주시는 거예요?”
“제 마음이에요. 헷!”
부끄러운지 후다닥 달려 나가는 그녀.
태하는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