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루비컵!(1)
미스터 올림피아로 향하는 두 번째 관문, 바로 루비컵 대회가 열렸다.
대회가 주최된 곳은 평창동의 M타워였다.
M타워는 엠비엠 그룹이 세운 컨벤션센터로서, 최근 땅값이 최고조에 이르는 평창동 내에서도 단연 압권을 자랑하는 크기였다.
웅성, 웅성……!
그런 루비컵 대회에 참가한 태하는 백 스테이지에서 아주 열심히 펌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한 그의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태하의 펌핑을 도와주는 용팔의 눈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헌터님, 이 대회도 엠비엠 그룹이 후원해 준대요! 아무래도 이 업계에서 역량을 최대한 크게 키우려는 게 아닐까요?”
“흠…… 엠톨을 보디빌더들에게 최대한 많이 팔아먹으려는 생각인가?”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보면 몸이 범상치 않아요. 그냥 보통의 약을 쓴 것 같지가 않단 말이죠.”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용팔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몇몇 선수를 지목했다.
그들은 몸이 상당히 좋았으나,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혈관이 약간 보라색인 데다 스킨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요. 그나마 수분을 상당히 많이 날려서 데피니션이 어느 정도 잡히기는 했어도 IFBB의 메인이벤트라고 하기엔 세퍼레이션이 너무 안 좋아요. 이건 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두꺼운 피부. 그래요, 그게 엠톨의 부작용인 것 같기는 했어요.”
“그리고 눈동자. 이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엠톨의 부작용 중에는 눈동자가 불그스름해지고 마치 고양이처럼 홍채가 세로로 찢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절대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태하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저 사람들 좀 보세요. 체모가 상당히 많아요.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털은 밀고 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몸에 털이 상당히 많죠.”
“허어……! 정말 그러네요?”
“게다가 손톱도 정말 두꺼워요. 거의 도마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용팔이 선수들을 관찰하는 동안 태하도 관찰했다.
태하는 엠톨의 부작용이 어쩌면 사람을 괴물에 가깝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아예 괴물 자체로 만드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흔히 던전에서 보는 머맨이나 리자드맨처럼 변해 가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어디서 많이 봤다 했어! 역시 헌터님의 눈썰미는 그레이트하네요!”
주변을 둘러보니 지금까지 용팔과 태하가 말했던 부작용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심지어는 대회의 참가 인원 1/3이 엠톨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업을 잘하는 건가? 상당히 많은 사람이 쓰고 있군.’
스테로이드나 성장호르몬 같은 불법 약물은 원래 의료 목적으로 판매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 회사끼리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러한 영업 전쟁은 의료 목적의 본질을 흐리고 거대한 몸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도록 만든다.
암흑계의 경쟁은 결국 과당경쟁을 낳게 되고, 이것은 약물의 난립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엠톨을 1/3이나 사용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의미이기도 했다.
잠시 후, 펌핑 작업은 끝이 났다.
“자, 슈퍼헤비급 선수들 들어오세요!”
태하를 포함한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번 대회는 생각보다 그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그런 그들 속에서 태하는 그야말로 빛이 났다.
-이야, 정태하 선수! 단연 군계일학입니다!
-그나저나 에메랄드컵도 그렇고, 이번 루비컵도 그렇고. 다들 세퍼레이션이 정말 형편이 없네요. 다이어트 상태도 별로 안 좋고요.
-데피니션과 세퍼레이션 확보를 위한 다이어트는 대회에 대한 예의라고들 하죠. 그런데 이건 기본예절도 제대로 못 지키는 경우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탄식이 절로 나오는 선수들이 좀 보입니다.
약물을 복용하면 팔룸보이즘이 생기게 되는데, 그걸 엠톨의 두꺼운 피부가 덮어 버리니 완전히 임산부 같은 개구리 배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복부 컨트롤을 해 줘도 복근의 쉐이프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612번 선수는 아예 대회를 포기했나요? 복근의 선명도가 거의 0에 가깝네요?
-아아……!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대회의 질이 정말 많이도 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태하의 몸은 보다 더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511번 정태하 선수는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미스터 올림피아 진출인데, 이 정도면 확정인 셈이죠!
-해설께서 보시기에 정태하 선수가 올림피아에서도 가능성이 있을까요?
-음, 우선 슈퍼헤비급으로 뛰기엔 키가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죠. 세퍼레이션이나 데피니션은 좋은데, 빈 곳이 많이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근육의 크기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고요. 하지만 한 단계 발전을 위해 참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물론, 경쟁력 자체는 약간 떨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약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겠죠?
-결국, 슈퍼헤비급은 좀 어렵겠다?
-네, 그런 셈입니다.
역시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무리 몸을 불리고 키워도 세계 무대에서 1위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고릴라가 되어 가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허나, 태하는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스터 올림피아의 공식 파트너 후원자로 엠비엠 그룹이 선정되었습니다. 아마 정태하 선수가 올림피아에서 TOP5 안에만 들어도 연봉 협상을 하려고 할 겁니다.
-아하, 엠비엠에서 선수로 계약을 맺으려 한다는 것이로군요?
-그런 셈이죠.
***
대회가 끝난 후, 태하는 보현 관장에게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관장님, 저 오버롤 했어요!”
“……크흑흑!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네가 올림피아에 나가게 될 줄이야!”
전 체급 통합 석권은 보현 관장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꿈과도 같은 얘기였다.
허나, 거기에 올림피아 출전권이라니, 이보다 더한 경사가 또 있을까?
태하는 이제 대회장 아래에 마련된 목욕탕에서 따끈한 물로 땀을 씻어 내고 회식을 위해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목욕탕으로 들어가니 이번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태하를 곁눈질하며 숙덕거렸다.
“천연 스테로이드라고 하던데, 솔직히 저건 반칙 아니야?”
“저걸로 헌터질 해 가면서 먹고사는데, 굳이 보디빌딩 대회까지 나갈 필요가 있나?”
“양민 학살이 취미인가 보지.”
“하긴, 오버롤 한 번 하면 자기 뽕에 아주 거하게 취할 수 있지.”
운동하는 사람들이라서 확실히 거칠긴 했다.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데도 이렇게까지 얘기할 정도라니, 역시 수컷들의 세계는 장난이 아니었다.
태하는 그들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슥삭, 슥삭.
아무리 닦아도 탄이 묻어날 테니 그냥 땀만 짜낸다는 식으로 목욕을 했다.
목욕을 하며 쌓인 피로를 몰아내니 좀 살 것 같았다.
“……좀 살겠네.”
잠시 누워서 쉬다가 돌연 일어난 태하는 대회용 트렁크를 비누로 대충 비벼 빨았다.
땀과 섞인 구릿빛 오일로 떡이 져서 이걸 어떻게 집에 가지고 가나 싶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선수들은 시시덕거리기 바쁘다.
“큭큭! 저게 뭐냐? 겨우 트렁크 하나 가지고 쩨쩨하긴.”
“원래 있는 놈이 더하다고 하잖냐.”
“인생을 참 꼬질꼬질하게 사는 사람이네.”
태하는 그들의 비아냥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맥반석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은 여기서 계란을 굽기도 하는데, 그만큼 건식 사우나에선 빨래가 잘 마르기 때문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배고픈 광부 알바 시절, 그는 몬스터의 피로 얼룩진 속옷을 대충 빨아서 이렇게 널어놓았다가 다시 입곤 했다.
때론 집도 절도 없었던 적이 있었기에 겉옷은 세차장에서, 속옷은 사우나에서 빨아 가면서 버틴 것이다.
‘……고생의 고 자도 모르는 것들이.’
저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태하의 인생은 저들이 욕을 할 만큼 평탄치 않았다는 것이다.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잠시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태하.
그렇게 한 10분쯤 곤히 누워 있는데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졌다.
쿵……!
“……뭐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태하는 일단 트렁크부터 챙겼다.
그러자 목욕탕 안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비상사태래요! 어서들 나오세요!”
“……비상사태? 전쟁이라도 났습니까?”
“호텔 안에 몬스터들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10마리나요!”
“모, 몬스터?!”
사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욕탕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혼비백산, 바로 옆 사람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탕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쿠우웅!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더니 목욕탕 탈의실 천장이 무너져 버렸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사방으로 분진이 날렸고 락커룸의 풍경은 포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태하는 일단 손에 쥐고 있던 트렁크부터 입었다.
“……그나마 팬티 비슷한 것이라도 챙겨 입은 게 어디야?”
흔히 목욕탕에서 불이 나 맨몸으로 빠져나올 때, 위를 가려야 하나 아래를 가려야 하나, 라는 둥의 밸런스 게임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태하는 무조건 아래를 가려야 한다.
이런 몸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어차피 정체는 100% 탄로 난다.
욕탕 문을 열고 락커룸으로 나간 태하는 수건으로 입을 가려 방진에 대비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자!’
지하 주차장에는 카본파이버로 만들어진 스포츠카가 주차되어 있어서 그의 말 한마디면 반드시 마중을 나올 것이다.
욕탕을 지나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으으으윽! 다리가 부러졌나 봐!”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이 깔렸어요!”
태하는 나가다가 말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까 태하를 욕하던 보디빌더들이 잔해에 깔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흠?”
“헤, 헬창 헌터?!”
아마 자기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제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주었는데, 이제 와서 구조를 바란다는 것은 사실 너무 몰염치한 일이 아닌가.
허나, 태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구조해주었다.
“허어어업!”
무려 3~4t은 나갈 법한 잔햇더미를 두 손으로 들어서 옮긴다.
그런 태하의 모습에 보디빌더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쿠우웅!
거대한 잔햇더미를 치우자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하반신이 보였다.
아무래도 잔해가 떨어져 내리면서 하반신이 그대로 곤죽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개방성 골절이네. 이대로 두면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 텐데.”
“사, 사망이요?!”
사망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 양아치 같았던 보디빌더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태하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뼈를 맞춰 줄게요. 제 경험상, 이대로 두면 십중팔구 사망합니다. 정말 죽을 만큼 아프지만, 살을 뚫고 나온 뼈를 안으로 집어넣어서 맞춰 줘야 해요.”
“……뼈, 뼈를 만진다고요?”
“이대로 죽을래요, 맞출래요?”
“마, 맞출게요!”
그나마 다른 1명은 내상을 입어서 겉으로 보이는 출혈은 없었다.
운 좋게 근육이 뼈를 지켜 준 모양이었다.
“둘이 친구예요?”
“네, 넵…….”
“그럼 친구가 아픈 친구 두 팔을 잡아 줘요.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알겠어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태하는 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서 직접 사람의 뼈를 맞춰 본 적도 있었다.
그 경험을 살리는 태하.
“갑니다!”
살을 뚫고 나온 뼈를 정확하게 맞추는 태하.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잡아요! 출혈 부위를 압박해야 해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의 다리를 잡고 지혈까지 마친 태하는 환자를 안아 들었다.
“팔로 내 목을 꽉 잡아요. 당신은 업히고.”
“……우리는 90kg이 넘어요. 그런데 들고 업겠다고요?”
“죽고 싶지 않으면 붙어요.”
그야말로 슈퍼맨이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