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58화 (58/197)
  • 058 쉽지 않은 메피스토(2)

    거대한 철문으로 만들어진 창고.

    “……도어락 시스템이라니.”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몬스터가 무슨 도어락으로 창고 문을 만든단 말인가.

    [도어락이 해제되면 창고의 주인 이외에는 소각됩니다]

    [유의하세요]

    아이템을 얻은 사람이 태하이니 나머지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다녀와요.”

    “……혼자 가자니 많이 찝찝한데.”

    태하가 손을 가져다 대자 그 문은 열렸다.

    삐비빅!

    도어락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그러자 그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거…… 시골 촌집에나 있을 법한 창고 아니야?”

    흔히 시골에서 ‘광’이라고 부르는 창고와 비슷했다.

    생긴 건 멀끔한 귀족처럼 생겨선 취향이 참 컨트리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도어락 시스템이 바로 문을 잠가 버렸다.

    쿠웅!

    삐비빅!

    잠금장치가 무려 21중으로 되어 있는 데다 핵폭탄은 물론이거니와 메테오를 하루 종일 두들겨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한 철문이었다.

    이런 철문 안에 사방팔방 거미줄이 쳐진 허름한 창고를 두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창고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바닥에서 뭔가 희미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스스스스!

    -……주인님, 오셨어요?

    연기는 이내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졌는데,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발이 없는 모양인지 공중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가디언, 뭐 그런 건가?”

    -창고지기이자 비서예요…….

    “비서?”

    -앞으로 제가 주인님을 죽을 때까지 모실게요…….

    이상하게 뒤가 축축 처지는 것이, 어쩐지 같이 있으면 기가 쭉쭉 빨리는 느낌이 든다.

    “뭐, 아무튼 이름이 어떻게 되나?”

    -레이스……라고 불러 주시면 돼요.

    “그래, 레이스. 이곳이 바로 비밀의 방인가?”

    -네…… 메피스토의 비밀의 방. 흔히 창고라고 부르기도 하죠…….

    “창고라.”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그래. 안내해 줘.”

    바닥에는 황토가 깔려 있었고 집기를 놓는 선반은 빨간색 칠이 된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먼지가 풀풀 올라와 콧구멍을 간질였고, 여기저기 거미줄이 나풀거렸다.

    “아니, 도대체 이런 곳에 뭐가 있다는 거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겉보기완 다른 법이죠…….

    대략 1,600평 남짓한 거대한 창고이지만 죄다 골동품밖에 없어서 이걸 도대체 어디에 쓰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눈이 가는 건 서적과 두루마리, 족자 정도 된다고 할까?

    “책이 몇 권이나 되지?”

    -책은 36,000권…… 두루마리와 족자는 120,000개입니다…….

    “……그렇게나 많아?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레이스는 서책 중에서 한 권을 꺼내어 태하에게 건네주었다.

    누렇게 뜬 표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생김새가 동아시아에서 옛날에 사용했던 양식과 비슷했다.

    “이거…… 사극에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잡으시죠.

    레이스의 말처럼 책을 잡은 태하.

    그러자 그의 머릿속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슈가가각!

    [email protected]$#%$#%^ㅆ$%6

    “허, 허억!”

    순간적으로 책에서 손을 뗀 태하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져 보았다.

    혹시나 터지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고, 공포 시뮬레이션이야, 뭐야?”

    -이곳에는 총 1,650권 분량의 메모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검색해서 정보를 찾을 수도 있죠…….

    “우와, 그런 엄청난 기능이 다 있어? 이 정도면 그냥 데이터 기록 장치 아니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번에는 태하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는 레이스.

    태하는 일단 겁부터 났지만, 궁금함이 조심성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렸다.

    두루마리를 잡자, 태하의 뇌리에 엄청난 양의 영상과 사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허, 허억! 이건 또 뭐야?”

    -마법사, 학자 등 저명한 지식인들의 뇌를 본떠서 만든 영상이에요……. 보통 두루마리 하나에 120명분의 기억이 들어 있죠…….

    “……뭐야?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메피스토는 지옥에서 살았어요. 원래는 인간이었는데 마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바람에 지옥으로 떨어졌죠……. 그 지옥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망자의 기억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게 된 거예요.

    “흠.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이제 마지막으로 족자를 건네준다.

    태하는 이를 악물고 족자를 잡았다.

    끼이이잉!

    이번에는 마치 파노라마처럼 어떤 기억과 기록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의 것이 아닌 정령들의 기억입니다. 고대 신들에게 있었던 일까지 어느 정도 기록하고 있죠……. 물론, 너무 방대해서 손대는 건 그리 추천드리지 않아요. 차라리 검색을 하세요.

    “오호, 그래? 신들의 기억이라. 그런 것도 가능한가?”

    -네……. 가능해요.

    정말이지 겉으로는 판단이 안 되는 창고다.

    이번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가득한 선반으로 향했다.

    만년필, 머리띠, 오래된 신발, 심지어는 녹이 슨 가위도 있었다.

    “이걸 왜 모아 놓은 거래?”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아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물건들이거든요.

    “이게 유용하게 쓰인다고?”

    태하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방금 본 그런 현상들이 있었기에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태하는 가위를 들고 그것으로 가위질을 해 보았다.

    싹둑, 싹둑…….

    약간 삐거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일순간 주변을 타고 흐르던 공기의 흐름이 끊어져 버렸다.

    -……그 어떤 것이든 가위질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공기도 가위질해 버릴 수 있죠.

    “고, 공기를 가위질한다고?”

    -흐르는 바람에 가위질을 하면 그 부분에 한해선 바람이 불지 않게 되죠.

    “그럼 마력의 흐름도?”

    -물론입니다…….

    “뭐야, 그럼 엄청 대단한 물건이잖아?!”

    역시 겉과 속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었다.

    잡동사니까지 구경하고 나니, 이번에는 창고 가운데 있는 작은 단독 선반으로 눈길이 갔다.

    “저건 또 뭐야?”

    -……이건 현자의 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아우르는 신묘한 돌이죠.

    순간, 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현자의 돌이라고?!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사연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기 있었죠…….

    “허 참.”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레이스는 태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구경은 다 하셨습니까……?

    “그래.”

    -……앞으로 하명하실 일이 있으시다면 이 반지를 문지르십시오.

    그녀는 태하의 손에 붉은색 루비가 박힌 알반지를 끼워 주었다.

    반지의 크기는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3배만 한 크기였는데, 그것을 끼자 순식간에 크기가 태하의 손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슈우우욱……!

    “……이건 또 무슨 기능이야?”

    -저는 이제 앞으로 영원히 주인님의 종입니다……. 굳이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어요…….

    “허어, 그렇구나.”

    -필요하시면 반지를 문지르세요…….

    이 말을 끝으로 레이스는 잠들어 버렸다.

    이제 창고를 나서려던 태하.

    그러다가 불현듯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슥슥.

    손가락으로 반지를 문지르자, 레이스가 즉각 대답 했다.

    -……네, 주인님. 부르셨나요?

    “카이튼이 누구야?”

    -카, 카이튼이요?

    카이튼이라는 소리에 그 느릿느릿했던 레이스의 말이 일순간에 빨라졌다.

    역시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알려 줄 수 있나?”

    -……알려 드릴 수는 있죠.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순간, 주인님은 새로운 자들의 표적이 됩니다…….

    “새로운 자들이라니?”

    -카이튼의 추종자, 그중에서도 이곳 지구에 머물면서 그 강림을 돕고 있죠…….

    “마왕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지구에 있다는 소리네?”

    -……그렇습니다. 카이튼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주인님을 쫓을 겁니다.

    “괜찮아. 인생 뭐 있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반지에서 약간의 충격이 느껴졌다.

    콰직.

    그러자 태하의 머릿속으로 ‘부활’이라는 두 글자가 각인되었다.

    그러면서 몇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게 누구야?”

    -부활……의 조력자들입니다.

    ***

    던전을 내려와서 카이튼에 대해 설명해 주는 태하로 인해 다들 황당해하였다.

    “……그러니까, 이게 이계의 신화라는 거잖아요?”

    “그런 셈이죠. 이곳이 아니라 아트란이라는 대륙의 신화예요. 하지만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 그로 인해 전쟁도 많이 일어났죠.”

    지하의 신이었던 아벨타르는 천계를 장악할 야욕을 품었고, 그를 위해서 지하의 대군을 이끌고 중간계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천계의 군사들과 지하의 대군이 격돌하였고 ‘운명의 서판’을 들고 있던 천족은 압도적인 힘으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바하무트의 신하들과 군사들은 지하 감옥에 갇혔고, 먼 훗날에 그걸 해방시킨 사람이 카이튼이라는 황제였던 겁니다.”

    “그리고 카이튼은 바하무트의 그릇이 되어서 전쟁을 일으켰고, 다시 한번 패배해서 그 군사들이 바벨탑에 갇혀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는 거고요?”

    “네, 그런 셈이죠.”

    “허어, 그럼 고블린이고 드레이크고, 죄다 지옥의 군대였다는 소리네요?”

    “어쩐지 좀 괴상망측하게 생겼다 싶더라니.”

    “……정말 그렇긴 하네요.”

    이것이 단순히 이계의 신화, 혹은 남의 세상 얘기였다면 아, 재미있었다로 끝나면 될 일이다.

    허나, 문제는 이 바벨탑의 몬스터를 밖으로 끌어내 이 땅에 카이튼을 강림시키려는 미치광이들이 설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이튼의 과거를 아는 자는 그 이름이 놈의 영혼에 각인된답니다. 비록 그의 행방이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카이튼의 이름을 알았다는 것만큼은 적들도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영혼에 낙인을 찍을 생각을 하다니, 머리가 생각보다 좋은데요?”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미치광이들입니다. 어쩌면 아수라도 저들과 관련되어 있는지도 몰라요.”

    한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설마하니 금성탑이 악을 숭배하는 집단으로 변모했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마, 그렇다면 우리 엄마도……?”

    “자세한 건 아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금성탑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심벌이 발견되었다면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요.”

    “……썩을 놈들!”

    한나의 눈동자가 분노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태하는 꾸준히 던전을 오르면서 명성을 드높이고 금성탑과 최대한 관계를 깊게 맺어 보기로 했다.

    “조력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금성탑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당신의 복수를 하는 거죠.”

    “……썩은 부분을 도려낸다. 좋은 생각이긴 하네요. 하지만 굳이 태하 씨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잖아요?”

    “저도 놈들에게 한 번은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복수의 대상을 찾다 보니 그 뿌리가 계속 깊어지네요. 그러니 어째요? 한 번쯤은 아주 제대로 복수를 해 줘야지.”

    “제대로 된 복수……!”

    “나도 당하고는 못 살아요. 나를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갈 길이 너무 멀지 않아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내가 범인 몇 명을 알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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