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55화 (55/197)
  • 055 천재 택티션(1)

    이른 아침의 덕림헬스.

    콰앙!

    거의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정 코치! 이제 된 겨!”

    “임 씨 아저씨?”

    “백선 어르신께서 헌터 관련법을 수정해 주셨다니께?!”

    “……네? 법안을 수정해요?”

    “내가 직접 찾아뵙고 길드 간 인적 교류를 할 수 있게끔 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해 주신 거여!”

    임혁수의 말은 태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저 막공이나 같이 뛰면서 동네 형처럼 생각했었는데, 임혁수가 그런 태하를 위해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아저씨!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는 줄은 몰랐어요.”

    “이래서 사람이 평소에도 주변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이지. 안 그려?”

    “넵! 그렇지요!”

    태하야말로 대사형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두루 인복이 따라올 수 있을 만한 행동들을 많이 했었고, 실제로 주변에서 덕망도 높았다.

    그런 태하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며칠 후, 헬스하운드의 임시 공격대 ‘헬창스’가 구성되었다.

    헬창스는 기존의 헬스하운드 멤버에 신입 멤버 한윤정, 임시 공격 멤버 유신성, 임혁수, 이주현이 증편되었다.

    이제 태하는 9인 파티로 구성된, 가장 완벽한 파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헬창스의 목표는 51층 돌파이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팀의 택티션을 맡은 윤정은 속도가 아닌 효율에 중점을 둔 전술을 짰다.

    “지금까지 헬스하운드는 5인 파티에서 메인 탱커, 서브 탱커를 앞세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실, 이런 전술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공수 전환에서 메인과 서브가 번갈아 가면서 탱킹을 받아 줄 수 있으나, 그만큼 공격력이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죠. 게다가 미들 라인을 방어할 수 없어서 궁수가 사실상의 제2 서브 탱커 역할을 해 줍니다. 이런 포지션은 헬스하운드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앞으로 인원이 늘어나면 자칫 개인의 역량을 뛰어넘는 한계점이 드러날 수 있어요.”

    윤정은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텐션이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오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던전에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유신성은 그런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그럼 전술을 어떤 식으로 바꾸겠다는 겁니까?”

    “원 탱커 체제로 갑니다.”

    “……원 탱커? 그럼 후방은?”

    “어차피 지금도 후방은 딱히 신경을 안 쓰지 않나요? 힐러가 몸빵이 되는데, 굳이 후방까지 신경을 써야 할까요?”

    “흠……. 그건 그렇죠. 이 파티의 서포터와 힐러가 워낙 괴물 같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 이유는 없겠지요.”

    “다만, 원 탱커라는 게 혼자서 모든 전투의 공격을 다 막아 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최전방의 근딜 고영수 씨를 시작으로 측면의 정찰, 정글러 유신성 씨가 어그로를 분산시켜서 탱커의 부담을 줄여 주는 거죠. 또한, 이런 식으로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어서 원딜 및 서포터의 공격 범위 내로 몬스터를 몰아줘서 몰이사냥을 하는 겁니다.”

    “음! 그러니까 광역기에 최적화된 메타로 가는 것이로군요!”

    “보통 51층부터는 보스가 하나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보스와 준보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전이 없다면 절대 클리어가 불가능하겠죠.”

    “하긴, 그건 그러네요.”

    윤정은 파티원들에게 두툼한 서류 뭉치를 각각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파티원들의 능력치를 바탕으로 만든 공격 메타 및 포지셔닝 스케줄러였다.

    “제가 택티션들이 공부하는 전공 서적을 보름 동안 달달 외워서 만든 겁니다.”

    “……보름 만에 전공 서적을 독파했다고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원래 3개월 정도 공부했었어요. 보름은 그 실전 전략을 구사하는 데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공부한 시간이고요.”

    “허어!”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일이었다.

    택티션은 상위 0.1%의 수재들도 5년 이상 미친 듯이 공부해야 간신히 그 이론이나마 뗄 정도로 엄청난 진입 장벽을 가진 직업군이다.

    헌데 그걸 3개월 만에 독파하여 메타 구성은 물론이고 포지셔닝 케어까지 한다는 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뭐, 제가 만든 포지셔닝 스케줄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51층부터는 상당히 빈번한 포지셔닝 스위칭이 발생합니다. 공수의 전환이 빠르고, 특히 최전방 원딜들의 클리어 난이도가 극악으로 올라가죠. 그래서 포지셔닝 스케줄을 최대한 달달 외워 선공 몬스터에 대해 숙지하는 것이 좋겠죠?”

    그녀가 만든 포지셔닝 스케줄러에는 어느 타이밍에서 어떻게 적을 공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었다.

    윤정은 파티에 한 가지를 약속했다.

    “처음부터 던전 공략이 성공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절대 실패하지 않아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거든요.”

    “……멋있다.”

    “자, 그럼 이 스케줄 그대로 갑니다. 대장님, 출격은 언제쯤 하실 건가요?”

    태하는 자연스럽게 윤정에게서 공을 넘겨받았다.

    그는 오래 미룰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흘 후로 출격 일자를 잡았다.

    “나흘 후, 51층으로 출격합니다. 준비 단단히들 하자고요.”

    “오케이!”

    ***

    나흘 후.

    헬창스는 청룡무고에서 다시 만났다.

    윤정은 무고 안의 무기들을 보곤 크게 놀란 눈치였다.

    “우와, 이게 다 뭐야?! 헬창 헌터씨! 무슨 재벌이라도 되는 거예요?”

    “선물로 받은 겁니다. 백선 어르신께서 보수로 주신 거죠.”

    “……백선 할아버지 짱이네.”

    “아무튼, 이게 전술 구성에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친절하게도 장비 옆에 사용 설명서까지 나와 있잖아요. 메타 구성에 도움이 안 될 리가 없죠!”

    그녀는 장비들의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런 후, 한 번에 한 층씩만 공략하는 다소 느린 메타를 구성했다.

    “이제부턴 한 번에 한 층 상승을 목표로 합시다. 어차피 던전을 한 층 공략하면 그다음부터는 다시 싸우면서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요?”

    “네, 그렇지요.”

    “그렇다면 굳이 던전에서 먹고 자면서 기다릴 필요는 없죠. 리젠을 걱정할 것도 없고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굳이 던전에서 오래 버틸 이유가 없네요!”

    현재 9명이 50층 이상을 올라갈 수 있는 코인은 대략 3~4천만 원 정도 한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이게 상당히 부담될 수도 있는 가격이나, 51층에서 통상적으로 떨어지는 아이템의 가치를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에 한 층씩 밀어내자고요. 그렇게 밀다 보면 100층도 별거 아닐걸요?”

    “그럼 한 번 트라이할 때마다 장비를 교체하면 되겠네요?”

    “그런 셈이죠. 단, 한 층을 클리어한 후에는 반드시 다음 층에 올라가긴 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 전술을 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아하! 그러니까 던전의 분위기나 몬스터들의 실제 전투력을 경험한 후에 퇴각하는 것이로군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택티션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적당히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점.

    윤정은 각 파티원의 스텟과 스킬에 따라서 장비를 다르게 지급했다.

    “보니까 능력치 증폭 스텟과 스킬 증폭 스텟으로 장비가 갈려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스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대장님 같은 경우엔 스킬 증폭으로 가고, 공격치가 스텟에 따라 달라지는 영수 씨 같은 경우에는 능력치 증폭으로 가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부가 옵션을 조금씩 조절해서 장비를 선택한 것이고요.”

    “역시, 분석력이 남다르시네요!”

    “이래서 택티션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골드 드래고닉 세트]

    [전체 스킬 증폭 +2]

    [방어력 +2,100]

    [패시프 계열 증폭 +4]

    태하가 받은 아이템 세트의 경우엔 세트 보너스로 패시브 계열 증폭이 걸려 있었다.

    만약 이걸 원딜이 입는다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전체 스킬 증폭이 붙어 있기는 해도 패시브 계열은 보통 공격력을 올려 주는 효과는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허나, 태하는 공격력보다는 맷집에 최적화된 탱커이기에 골드 드래고닉 세트가 딱이었다.

    잠시 후, 아이템을 갖춘 동료들이 청룡무고 앞으로 모였다.

    “이 정도면 풀템인가요?”

    “이야, 중갑을 입었는데도 몸이 가볍네! 역시 백선 어르신의 창고가 정말 끝내주긴 하네요! 우리 한라에서도 이렇게 아이템을 지급해 주면 얼마나 좋아?”

    유신성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 냈다.

    지금까지는 대열의 중간을 휘젓고 다니며 몬스터의 시선을 분산시키느라 경갑을 입고 싸웠는데, 그 때문에 유신성은 던전을 한 번만 올라도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허나, 이제는 달랐다.

    중갑임에도 불구하고 디크리즈 마법이 부여되어 있어서 무게가 거의 가죽 갑옷과 비슷했던 것이다.

    태하는 이제 공격 준비를 끝냈다고 판단했다.

    “자, 그럼 던전으로 갑시다!”

    ***

    아이템을 맞추고 전력을 강화한 태하의 파티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화력도 화력이지만 전술적 유기성이 좋아졌다.

    스스스스……!

    -물방울!

    물방울 공격이 사방 천지에서 쏟아졌지만, 마법이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마력을 중화시키는 머맨술사의 디버프를 태하가 중화시켰기 때문이다.

    [스킬: 캔슬레이션]

    [적의 스킬 레벨이 시전자의 스킬과 동률입니다]

    캔슬레이션의 싸움은 동률이었다.

    허나, 헬창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윤정의 ‘펄스 수류탄’이었다.

    콰지지직!

    EEE급 코어, 그러니까 산업 현장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무등급 코어로 제작된 이 수류탄은 코어의 불완전성을 토대로 공격성을 만든다.

    아예 대놓고 코어의 안정을 위한 특수 회로를 빼놓고 펄스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다.

    -……크헤엑!

    [스킬: 캔슬레이션]

    [적의 스킬보다 시전자의 스킬이 높습니다]

    [특성 스킬 ‘경직’이 적용됩니다]

    윤정은 이른바 ‘코어펄스’라는 현상을 가지고 적의 마법까지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이야, 신기하네!”

    “코어펄스라고, 던전 밖에서는 가장 심각한 이상 현상이죠. 작은 시계에 들어 있던 코어가 터지면서 반경 3m 안에 있는 전자 기기란 기기는 죄다 먹통으로 만드니까요. 심지어는 코어 간의 전력 소통도 차단하게 되는데, 이걸 마법에 써 보니 효과가 직빵이더라고요.”

    “……허어, 천재는 천재네요.”

    “별거 아니에요.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대형 길드에서 윤정을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윤정의 활약으로 머맨술사들은 바보가 되어 버렸고 특유의 치고 빠지기 전술도 먹히지 않게 되어 버렸다.

    치는 족족 캔슬레이션이 되기 때문이었다.

    -……위험하다! 도망쳐!

    “도망은 무슨. 그냥 뒈져라!”

    측면을 담당하는 정글러 유신성은 적의 퇴로에서 미리 자리 잡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기습을 펼쳤다.

    이에 당황한 머맨술사들은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쪽이 아니다! 저쪽으로 도망쳐!

    “멍청하군. 그러다가 죽는 거야.”

    -……이번에는 또 뭐야?!

    전방에서 적진을 휘젓고 다니던 영수는 적의 퇴로가 되는 전방을 압박해 주었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게 머맨이 한자리로 몰리게 되었다.

    한나는 그 자리에 중력 마법을 걸었다.

    [스킬: 그레비티 그라운드]

    [범위: 직경 15m]

    [지속 시간: 30초]

    [중력 (가중치): X 15]

    중력 가중치가 15배나 되면 제아무리 괴물이라도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다.

    더군다나 물속에서 더 빠른 양서류라면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모, 몸이 안 움직인다!

    “안 움직이면 죽어야지 뭐!”

    용팔과 임혁수의 집중사격이 이어지면서 머맨들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야말로 대량 살상의 진수를 보여 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51층 클리어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되었다.

    머맨의 왕 칼라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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