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54화 (54/197)

054 헬창은 맞을수록 단단해진다!(2)

약점을 보완한다는 것은 가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태하는 도시락을 싸 들고 임태술을 쫓아다니면서 운동을 배웠다.

임태술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운동을 알려 주는 사람이었기에 태하가 하루에 몇 번씩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광배 하부는 말이야, 등의 길이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척도야. 자네 같은 경우엔 전형적인 브이테퍼의 체형이야. 허리가 좀 짧은 대신에 등의 넓이가 좋지.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등의 하부를 보완해 주지 못하면 자칫 등이 엉성해 보일 수가 있어.”

임태술은 태하를 하이로우 머신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근육의 타겟팅에 대해 새로운 힌트를 주었다.

“자, 봐봐. 태하 너는 지금 흉곽을 열고 등 쪽을 자극한다고 하고 있지만, 사실 어깨가 먼저 움직이잖아. 그렇지? 네거티브를 줄 때도 견갑을 늘여 준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단순히 어깨를 앞으로 쭉 빼 주는 느낌을 주고 있지. 이건 말이야, 단순하게 말하자면 노가다에 불과해.”

“아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간단해. 어깨의 개입을 줄일 수 있도록 그립을 바꿔 주는 거야. 지급은 오버그립이잖아? 그걸 언더로 바꿔 줘 보자고. 이렇게!”

임태술은 태하의 그립을 바꿔 주고 팔의 궤적을 수정해 주었다.

태하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호를 그린다는 느낌으로, 타겟팅은 최대한 아래로. 최대한 아래로 낮게 깔아 준다고 생각해.”

“엇……!”

“그 상태에서 끝까지 팔꿈치를 뒤로 쭉 빼 줘. 그렇지! 더, 더, 더……!”

임태술은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상당히 나긋나긋하고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태하의 몸을 완전히 회전시켜 버렸다.

“끝까지! 그러고 나서 빨래를 쥐어짜 준다는 느낌으로 아예 근육을 짜 버리라고. 몸통을 회전시켜서 말이야.”

“으으읏……!”

동작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자극과 동작의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태하의 몸이 크게 반응했다.

[패시브 시드 스킬 2-1이 광배 하부에 장착됩니다]

[패시브 스킬 2-1: 수 속성 저항력 증가]

[패시브 스킬 2-1에 대한 보너스: 수 속성 마법 저항력 +8% 증가]

[액티브 스킬 1-2에 대한 마이너스: 냉 속성 마법 저항력 -3.5% 저하]

지금까지는 주로 액티브 스킬이 근육에 각인되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패시브 스킬이 각인되어 태하를 조금 더 강력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로써 정체기에 있었던 태하의 전투력도 이제는 상승기류를 타게 된 셈이었다.

근육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그의 스킬도 보완된 것이었다.

***

임태술을 따라다닌 지 어언 3개월이 지났다.

이제 태하는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등 하부와 어깨 후면, 종아리, 전완 등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임태술이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앞으로도 약점을 보완하는 운동을 해. 어차피 메인 운동은 항상 해 주고 있으니까, 약점 보완을 위주로 꾸준하게 정진하라고.”

“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아 참, 3개월 전에 선배님께서 제게 보충제라도 좀 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보충제 좀 사서 보낼까 하는데, 괜찮으시죠?”

“허어, 그걸 진심으로 들었어? 이 친구, 농담이랑 진담도 구분 못 해?”

“저를 이 정도까지 가르쳐 주셨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습니까?”

“하하, 참! 아니, 정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자네 체육관에 선수들을 유학 보내면 되잖아.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말이야. 그럼 쎔쎔 아니야?”

“그건 그거고 보충제는 보충제죠.”

임태술은 태하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3일 후에 보충제를 보낼 테니까 부디 잘 받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고맙다! 잘 먹을게!”

이제 담금질은 끝났다.

담금질의 마지막으로 루비컵 대회에만 출전하고, 그다음에 곧바로 51층 돌파를 시작해 볼 참이었다.

일단 그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택티션을 구하는 것이었다.

저녁 7시의 고립관.

“우오오오!”

“스콰아아앗!”

보현 관장이 운영한다는 것을, 지나가다 옆 돌기를 하면서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고립관은 헬스장 고인물들이 참 많이 찾아온다.

그중에는 당연히 헌터들도 상당히 많았다.

유신성은 태하의 얘기를 듣더니 약간 고민하듯 말했다.

“51층이라. 이건 뭐, 막공의 수준을 뛰어넘는 층수인데. 사실 이 정도면 이젠 정규 공격대를 구성해서 올라가야 정상이라고요.”

“그럼 택티션만 구해서 가는 건 무리일까요?”

“구하자면 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택티션 정도 되는 사람이면 사실 정규 공격대 총괄하기도 바쁠 텐데, 막공으로 뛰어 주겠어요?”

51층은 이제 고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실 대형 길드에 소속된 헌터들은 막공으로 간단히 올라가는 게 불가능하다.

고층은 그만큼의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길드 차원에서 강력하게 제재를 하기 때문이다.

유신성의 옆에 있던 임혁수가 말했다.

“아, 그럼 택티션 비스무리한 사람은 워뗘?”

“비슷한 사람이요?”

“왜, 있잖여! 그 머리 겁나게 좋은 아가씨!”

“머리 겁나게 좋은 아가씨?”

“MIT 공대 나왔다는 그 아가씨 말이여!”

“아하! 한윤정 씨요?!”

“잉! 그려, 한윤정이! 듣자 하니 그 친구가 아주 머리가 좋다더구먼? 전술 수정하는 실력도 뛰어나고. 한번 접선혀 봐. 대형 길드에서도 탐낸다고 하더만!”

“……오호, 그래요?”

안 그래도 윤정은 태하에게 레슨을 받는 PT 회원이다.

내일이면 만날 것이니 운을 떼 보기로 했다.

***

이른 아침부터 호들갑스러운 윤정.

“헬창 헌터씨!”

“윤정 박사씨!”

“어머나! 무슨 몸이 더 좋아졌네! 대회 나간다면서요?! 나도 응원 갈게요! 아자아자, 파이팅! 아자, 파이팅! 우후! 파이팅! 예아, 파이팅!”

그녀는 응원을 가 준다면서 이상한 춤사위를 보여 주었다.

나름대로 신들린 듯 추는 춤을 바라보며 태하는 실소를 흘렸다.

“하하, 역시.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아.”

“히히, 좋아요? 나도 좋아요, 헬창 헌터씨!”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푼수가 있을 수 있나.

태하는 윤정이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폼롤러로 몸을 풀어 주는 윤정.

그런 그녀에게 태하는 헬스하운드 가입을 권유했다.

“윤정 박사씨, 우리랑 같이 레이드 해 볼 생각 없어요?”

“으음? 우리 헬창 헌터씨랑?”

“51층 도전 중인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우리 길드에서 택티션 포지션을 맡아 주셨으면 좋겠는데.”

“택티션? 흐음… 택티션이라…….”

평소에는 장난기가 다분해도 진지할 땐 정말 딴사람처럼 진지한 게 한윤정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폼롤러를 굴리다가 불현듯 이렇게 말했다.

“거기, 헬스하운드 말이에요. 가끔 술도 마셔요?”

“술……은 가끔 마시죠. 레이드 끝났을 때라든지, 1년에 한 번씩 날 잡고 외식할 때라든지, 그럴 때? 하지만 아쉽게도 매일은 좀 그러네요. 우리는 운동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이라서요.”

“그럼 할게요!”

“으잉? 술 좋아서 물어보신 거 아니었어요?”

“헤헤, 나 술 못해요! 맥주 두 잔 마시면 병원에 실려 가야 할걸요?”

“하하, 그런 거였어요?”

“그럼 이제부터 나도 헬스하운드! 그래도 PT는 계속해 주셔야 해요!”

“물론이죠! 앞으로는 우리 길드원들 운동할 때 같이 하세요. 그럼 PT 받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앗싸, 그럼 나도 이제 파트너 생겼다!”

***

청금타워의 옥상.

청룡방의 일원은 방주와 독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물론, 그 권리를 남발하면 곤란하지만, 백선은 어지간해선 그 독대를 다 들어주는 편이다.

헌데 그를 찾아온 사람은 청룡방의 일원이 아니라 전 길드원인 임혁수였다.

“예외 규정?”

“네, 방주님. 방주님께서 예외 규정 좀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유?”

임혁수는 청룡방 소속으로 일하다가 백선의 제자 현영태가 길드 한라를 창설해서 분가할 때에 따라갔던 인물이다.

그렇기에 임혁수는 백선의 됨됨이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와의 독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백선을 만난 것은 공격대 규정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소속 길드가 달라도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인스턴트 파티를 구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유?”

“흠! 그건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지금도 막공은 얼마든지 뛰잖아?”

“그건 그렇지만서두 50층 이상은 길드의 규정상 막공은 못 뛴다고 되어 있잖어유?”

“50층?”

사실 50층은 막공으로 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기에 백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러다가 불현듯 한 사람을 떠올렸다.

슬며시 미소를 짓는 백선.

“그래서, 자네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는데 같이 등반을 못 하니 그게 불만이었던 겐가?”

“산하기관이나 계보 길드가 아니고서야 길드 간의 이직은 솔직히 불문율 아니어유? 그래서 길드를 옮기지도 못하는데, 교류까지 막히면 좀 그렇지 않나 해서리…….”

대한민국의 이름 있는 길드 중에서 백선의 손을 타지 않은 길드는 거의 없다.

한라, 백두, 현무단, 심지어는 아수라 길드까지 말이다.

백선은 헌터협회의 상임이사이며 제네시스의 창설을 주도한 창립단원이기도 하다.

그런 백선의 입지라면 길드의 교류는 충분히 조정해 줄 수 있었다.

허나, 그 룰은 백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내 제자들이라지만 함부로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안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유. 송구하구먼유! 저는 그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사냥하면 어떨까 싶어서 그랬슈!”

고개를 숙이는 임혁수. 그런 그에게 백선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예외 규정이라는 건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일전에 남산에서 한라 길드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임시 공격대처럼 말이야.”

백선은 길드업계가 만들어 놓은 질서를 뭉개 버릴 정도로 꼰대는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젊은 헌터들이 합심하여 더 나은 환경을 만든다는데 반대할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길드장 회의를 소집하겠네.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니 기다리고 있게나.”

“……감사하구먼유! 참말로 감사하구먼유!”

임혁수는 뛸 듯이 기뻐하며 돌아갔다.

***

나흘 후.

백선의 주도로 열린 길드장 회의에는 대한민국 10대 길드는 물론이고 길드장 회의에 가입된 30개의 길드도 참석했다.

그는 길드장 회의에서 임시 공격대 편성에 대한 예외 규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길드장 상호 간에 합의가 되었을 경우, 가능한 여건에 한해서 50층 이상의 임시 공격대 편성을 허가해 주는 건 어떻겠나?”

“……어르신,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러다가 다들 딴생각에 빠져서 길드가 난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변의 길드장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허나, 백선의 세 번째 제자인 현영태는 달랐다.

“여기 있는 길드 중에서 스승님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거나 원래 청룡방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사람 있나?”

“……뭐요? 갑자기 여기서 청룡방 얘기가 왜 나옵니까?”

“우리도 처음에는 영 못 미더운, 그저 던전의 똘마니에 불과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다들 그렇지 않아? 아니, 심지어 지금도 스승님께서 보실 땐 그저 코찔찔이 꼬맹이에 불과할 것 같은데 말이야. 안 그렇습니까, 스승님?”

백선은 슬그머니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길드장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현영태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누구나 올챙이 적 시절은 있는 거죠…….”

“그래, 사실 여기서 갑론을박을 하는 건 아마 자네 제자들에게 좋은 모습이 아닐 거야. 스승에게 대드는 제자라니. 좀 그렇지 않나?”

“끄응.”

결국, 중년의 길드장들은 노년의 스승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이런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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