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수다쟁이 헬창(2)
며칠 후.
헬스하운드의 60층 등반이 다시 시작되었다.
솨아아아!
거꾸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배를 띄운 헬스하운드.
51층부터 60층까지는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저 멀리에는 폭포가 거꾸로 흐르는 모습도 보인다.
이름하여 ‘역천’의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신기하네요. 배가 거꾸로 흘러가다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한동안 잠잠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허나, 문제는 폭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때 생겨났다.
직각으로 거슬러 오르는 폭포에서 버티자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하는데, 그 상태로 몬스터들이 치고 들어왔던 것이다.
-……물방울!
“마법 공격?!”
역천을 지배하는 ‘머맨’과 ‘머메이드’는 수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데, 그 캐스팅 속도가 인간의 2배 이상이었다.
주문을 걸고 마법을 발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사람이 손을 뻗는 시간보다 빠를 정도였다.
마법의 물방울에 맞으면 라이프 수치가 감소하고 행동이 굼떠진다.
“내가 막을게요!”
희란의 마법이 일행을 감쌌다.
[스킬: 홀리 가드]
[방어 가능 대미지: 힘 스텟 X 3,600]
[지속 시간: 25초]
[방어 범위: 직경 5m]
허나, 허무하게도 거품 마법은 홀리 가드를 뚫고 들어왔다.
촤락!
“크헉!”
“……어, 어떻게 된 거지?!”
가드가 듣지를 않는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도 막아 냈던 홀리 가드가 뚫렸다는 건 파티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허나, 충격에서 어서 벗어나야만 했다.
90도로 꺾인 폭포 구간은 무려 3km나 되는데, 그동안 머맨들의 마법을 맞아 가면서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방울에 맞으면 라이프 수치가 감소하는데 가드는 불가능하다? 이를 어쩌면 좋나?”
“머맨이 나타나는 즉시 그레이트하게 공격을 해서 해치우면 될 것 같기도 한데요!”
“흠, 그럼 한번 해 봅시다!”
이제부터는 모든 공격을 궁딜인 용팔과 시너지 딜러인 한나에게 맡길 수밖에는 없었다.
활시위에 활을 건 용팔이 사격을 시작했다.
“자, 간다!”
“가속 마법을 걸게요!”
[스킬: 중력 제어]
[대상 ‘용팔’에게 -1,200%의 중력 제어를 버프합니다]
화살을 쏘면 12배의 강력함을 갖게 된다.
그야말로 초음속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이었다.
허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스킬 발동 실패]
[실패 요건: 중력 없음]
한나의 얼굴에 충격이 내려앉았다.
“……중력이 아예 없다고?”
“그래서 물이 거꾸로 흐를 수도 있고, 폭포를 거꾸로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런 제기랄!”
중력을 제어하는 일도 중력 자체가 존재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테면 진공상태에서는 제아무리 한나의 힘이 강력해도 중력 제어를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용팔이 활을 쏘는 속도보다 머맨이 마법을 쓰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활이 아예 맞지도 않아요. 저놈들, 너무 빠른데요?”
활을 쏠 때는 장전, 조준, 발사의 삼박자가 연계되는 일련의 발사 과정이 필요한데, 머맨이 사용하는 마법은 그런 과정 자체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본다, 쏜다, 라는 간단한 과정만이 필요했기 때문에 용팔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영수가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그림자로 공격합시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지!”
단숨에 그림자를 찾아서 스킬을 전개하는 영수.
끼이잉!
그는 어둠의 기운을 찾아서 마력을 운용하게 되는데, 그림자가 있는 곳에서라면 무궁무진한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허나, 문제는 이곳에는 그림자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림자가 없어요.”
“그림자가 없다고요?!”
“이곳은 중력이 왜곡되는 것 같아요. 그림자는 중력의 제어를 받지 않지만, 빛은 중력에 의해 굴절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림자를 제대로 찾아 쓸 수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간 헬스하운드는 중력이라는 엄청난 이점을 살려서 여기까지 왔다.
헌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것이 사라지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나, 그래도 포기란 없다.
태하는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정말로 중력이 왜곡된다면 우리가 이 땅바닥에 붙어 있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돌파할 수 있는 파훼법은 반드시 있어!’
마법으로 인해 라이프 수치가 계속 깎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피(血)가 말라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하의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고통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인연의 사슬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는 정말 골수 변태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해괴망측한 스킬이다.
허나, 이 해괴망측한 스킬 덕분에 태하는 신경 물질 전달이 원활해져서 마치 주변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순간, 태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저 새끼들은 뭐야? 어떻게 해서 물 밖으로 튀어 올라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폭포를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것만 봐도, 사실 이곳의 현상은 전부 말이 안 되긴 한다.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되는 건 머맨들이다.
머맨들은 이곳에서 애초에 중력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듯이 굴고 있지 않던가.
태하는 홍이를 잠깐 불러냈다.
“홍이야!”
-짜잔!
“50층에서 데스벳을 불러와 줄 수 있어?”
-헤헷. 사랑해, 라고 하면!
“응, 사랑해!”
-으으으응……!
홍이는 태하의 손에 데스벳을 소환해 주었다.
퍼엉!
분홍색 안개와 함께 등장한 데스벳.
태하는 홍이를 도로 들어가도록 해 놓고 데스벳을 풀어놓았다.
“데스벳, 마력의 흐름을 읽어!”
-끼리리릿!
데스벳은 더듬이처럼 생긴 안테나를 돌려서 마력의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데스벳은 태하의 손에 살포시 앉더니 작은 촉수를 손에 찔러 넣었다.
춉!
그러자 순간적으로 그의 눈가에 마치 홀로그램처럼 푸른색 아지랑이가 투영되었다.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머맨술사들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 그러나 그 마력은 공격에만 사용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이 주변을 작은 돔처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저 머맨술사 때문에 우리가 지금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래도 중력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캔슬레이션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캔슬레이션……?!”
그러고 보면 태하의 패시브 중에서 지금 당장 말을 듣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외부에 대한 충격을 줄여 주는 저항력이라는 패시브마저도 듣지 않았고, 자체 캔슬레이션 능력도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저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레벨이 태하의 캔슬레이션을 뛰어넘는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강력한 놈들이네요. 어쩌죠?”
“일단 육탄전으로 끌고 가는 게 좋겠어요. 이제는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머맨이 물 밖으로 튀어나와 공격하는 그 순간을 노리는 거죠.”
지금 태하의 파티가 쓸 수 있는 원거리 공격 수단은 용팔의 활, 태하의 스트랩뿐이다.
이 2개를 사용한다면 원거리 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이지!”
-크헬헬!
태하의 부름에 메이지가 화답하여 등장했다.
이마에 박힌 보석의 색은 전보다 진해졌고 그 크기도 대략 10cm 정도 더 커진 것 같았다.
“골렘을 소환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녀석으로.”
-크헬!
메이지의 머리에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더니 태하의 통통배 옆으로 2마리의 골렘이 소환되었다.
녀석들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던졌다가 회수할 능력이 있는 ‘마그네틱 골렘’이었다.
레벨 7의 마그네틱 골렘은 지금 이 상황에서 태하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거리 딜러일 것이다.
태하는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스스스……!
“올라온다!”
마치 낚시를 하듯 머맨술사들이 튀어 오르는 순간을 낚아챈 태하는 마그네틱 골렘의 주먹을 날렸다.
부웅!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자, 머맨술사가 당황한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끄엑!
푸하아아악!
결국, 골렘의 주먹에 맞아 저만치 날아가 사라져 버린 머맨술사.
그 주변으로는 머맨의 파란색 피가 낭자해 있었다.
태하와 일행들은 쾌재를 불렀다.
“오오! 된다!”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정도면 3km의 길고 긴 폭포를 지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었다.
이제 태하는 마력의 흐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으으음……!”
눈에 하도 힘을 줘서 미간에 주름이 생길 지경이었다.
허나, 3km의 폭포가 끝나 가도록 몬스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동료들은 여기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인가 싶었다.
“휴우, 살았네!”
“다들 라이프를 좀 회복하고 가자고요.”
희란은 파티원들의 라이프를 회복시켜 주었다.
비록 정신력까지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 당장 공격을 당해 쓰러지거나 죽지 않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한차례 재정비 후, 태하는 배에서 내렸다.
이제 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대로 정체하여 체류하고 있었다.
“물길은 여기서 끝이네요.”
“하지만 이 거대한 강은 던전의 끝까지 이어지는 모양인데요?”
“흠……. 강이 있다는 건 머맨도 계속 나온다는 뜻이겠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넓은 강에서 머맨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촤라라락!
이번에는 삼지창을 든 건장한 수컷들과 스태프를 든 암컷들이 진형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골렘에게 한 대 맞고 죽은 술사들의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죽여라!
“온다! 다들 긴장하세요!”
육탄전과 마력전에 대비하여 태하는 방패를 단단하게 쥐고 동료들의 앞에 섰다.
머맨 수컷들은 덩치가 태하의 4배는 되었는데, 팔뚝의 굵기만 놓고 본다면 태하의 허벅지의 2배는 될 법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근메스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엄청난 근메스가 무색하게도 머맨 수컷들은 삼지창으로 매직볼트를 쏴 댔다.
치지지직!
“……뭐야, 돌격병이 아니었어?”
“마법이 무더기로 날아와요!”
“젠장!”
머맨들은 공통적으로 캐스팅 속도가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빨랐다.
만약 총을 들고 상대방을 쏜다고 해도 과연 이렇게나 연사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손가락을 뻗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이 재빨리 시전되는 마법, 그것은 태하를 당황하게 했다.
콰지지지직!
“……으으으윽, 젠장!”
태하도 마력 저항이라는 패시브가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좀 많이 달랐다.
마력 저항과는 뭔가 미묘하게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젠장, 도대체 뭐가 모자란 거지?’
마법을 쏘면 그냥 맞을 수밖에는 없었다.
허나, 이렇게 계속 맞다 보면 결판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골렘, 반격해!”
-쿠오오오!
마그네틱 골렘들은 태하의 신호에 맞춰서 돌을 던졌다.
허나, 머맨들은 상당히 날렵했고, 묵직한 마그네틱 골렘의 공격을 아주 쉽게 피해 냈다.
그러곤 이내 다시 마법을 날리는 머맨들.
콰지지지직!
“크으윽, 젠장!”
“대장! 돌격해야 해요!”
“……알아!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 서포트는 아직도 불가능한 거야?”
“보호막을 쓰고 싶어도 계속 저놈들이 방해해서 쓸 수가 없어요!”
만약 희란의 배리어나 한나의 중력 마법만 있었어도 저들은 이미 태하의 손에 곤죽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었다.
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별수 없지! 돌격해서 잡읍시다! 우리도 근접전에는 다들 일가견이 있잖아요!”
“오케이! 가요!”
원딜, 서포터, 심지어는 힐러까지 육탄전이 가능한 길드가 바로 헬스하운드다.
그들이 가는 길에 불가능이란 없었다.
“근육에 핏줄 바짝 세우고! 돌겨어어어어억!”
“와아아아!”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한다는 느낌으로 돌격하는 태하와 동료들.
그들은 머맨을 향해 달렸다.
허나, 문제가 있었다.
머맨들은 후퇴하면서도 마법을 쏠 수 있었던 것이다.
콰지지지직!
“……이런 빌어먹을! 캐스트 무빙?!”
“저건 마법 계열 능력자 중에서도 S급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인데?!”
“제기랄! 뭐 어쩌라는 거지?”
이러면 아무리 태하라고 해도 51층은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아예 싸울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젠장, 그래도 간다!’
태하는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여기서 후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허나, 인생은 과유불급의 논리를 벗어나면 안 되는 법이다.
쿠우웅……!
“허억!”
캐스트 무빙으로 태하를 괴롭히던 머맨의 마법이 태하의 경추를 타격한 것이다.
치명타가 터졌다.
흔히 말하는 ‘마법 크리티컬’이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