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수다쟁이 헬창(1)
태하는 도착 장소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앞에는 언제나 아침이면 자신을 기다리던 ‘고립관’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제 직장인데요.”
“아하! 트레이너셨구나! 어쩐지, 몸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지주 성함이…….”
“안광보 씨라고. 이 헬스장 관장님이라고 하시던데요?”
“허어!”
태하가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무렵, 체육관 밖으로 민머리의 중년인이 달려 나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요, 베이비, 요!”
“관장님!”
“태하야! 오늘 무슨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냐?”
“있었죠. 부동산 계약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뭐?”
잠시 후, 보현 관장은 태하에게서 사정을 전해 들었다.
그러자 그는 호탕하게 웃어 버렸다.
“으하하하! 그런 일이 다 있었어?! 이야, 진짜 너랑 나 사이에는 연결고립이라는 게 있나 보다. 그치?”
“아니, 그나저나 그 땅은 다 뭐예요?”
“그거? 우리 어머니가 예전에 땅을 좀 가지고 계셨거든. 거기에 동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건물을 올렸더라고.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빚을 지게 되었나 봐. 그래서 내가 그 빚을 떠안는 대신에 건물을 사들이게 된 거지.”
“아하!”
“그나저나 그 땅은 뭐 하게?”
이번에는 고상근 부녀의 사정을 세세히 전달하는 태하.
이야기를 듣고 보현 관장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난 또 뭐라고! 오케이! 쿨하게 그냥 써!”
“그냥 쓰라고요?”
“그냥 써!”
“월세는요?”
“필요 없어, 그냥 써!”
“보증금은?”
“없어! 그냥 써!”
“주차장은요?”
“에이, 몰라! 그냥 써!”
“구조변경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해! 그냥 해!”
“아니, 이렇게 아무렇게나 쓰라고 하셔도 괜찮은 거예요?”
“고상근 씨가 그만큼 네게 도움을 줬으면 됐어.”
“하지만 그 부녀 때문에 건물이 날아갔었는데도요?”
“그게 어떻게 그 애 잘못이냐. 스스로 조절이 가능했었다면 애초에 애 아빠가 그렇게 전전긍긍하지도 않았겠지.”
“아아……!”
사람들이 안광보를 괜히 ‘현자’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마음 씀씀이도 굉장히 부드러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
슥삭, 슥삭…….
아침 일찍부터 헬스장을 청소하는 태하.
삐빅!
손목에 있던 스마트워치가 ‘마감’이라는 글자를 출력했다.
태하는 스마트워치를 탁탁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마감이라니, 인마. 지금은 오픈 시간이라고.”
저번에 워낙 맹렬한 전투를 했던 터라 스마트워치가 고장 난 모양이었다.
또 새 걸 장만해야 하나 싶었다.
바로 그때, 그런 그에게 우체부가 편지를 건네 왔다.
“정 코치님! 편지 왔네요.”
“편지요?”
“한국은행에서 왔다네요.”
태하는 한국은행 로고와 ‘코어협회’의 직인이 찍혀 있는 편지 봉투를 받았다.
편지를 열어 보니 ‘회사 이관에 대한 통지’라고 적힌 서류가 들어 있었다.
생전 이런 서류를 처음 접해 보는 태하로선 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정관에 의거, 대주주 변경에 대한 사실을 통지합니다. 귀하께서는 지분율 87.7%로 대주주가 되셨음을 알려 드립니다. 주식회사법에 의거, 아수라 컴퍼니의 경영권과 회사 운영에 대한 권한이 이관되었으므로 차후 정기 이사회에서 향후 자사의 운영 방침 및 대주주의 의사 표명…….”
서면을 읽다가 너무 길어서 중간은 건너뛰었다.
어쨌거나 핵심은 태하가 대주주로 등극했다는 것이었으니까.
헬스장 오픈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에는 회사에서 사람도 찾아왔다.
총 12명의 남녀가 그의 앞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회장님을 보필하게 된 박윤호입니다. 현재까지 비서실장으로서 회사의 실무를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회장님의 지침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회장이 되어 버리다니.
태하는 그저 얼떨떨한 표정으로 빗자루를 잡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지침을 구하러 왔습니다. 청룡방에서 귀사에 대한 매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에 응하시겠습니까?”
“……네? 뭐라고요?”
“청룡방의 백선께서 귀사를 매수하기를 원하십니다. 수락하신다면 아수라 컴퍼니는 청룡방의 자회사가 됩니다. 그럼 이사회의 정관에 따라서 회장님께서는 2대 주주로서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게 되시는 겁니다.”
뭔가 상당히 복잡한 얘기이지만 핵심만 간추리자면 청룡방이 아수라 컴퍼니를 매입하겠다는 것이었다.
박윤호는 그 점을 짚어 주었다.
“사전에 백선 어르신과 협의가 된 것으로 압니다. 그대로 진행하면 되는지 여쭈러 온 겁니다.”
“아아, 그거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내일 계약서를 작성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때 순환 출자 구조라든지 자금 이동 등을 다시 상의하시죠.”
그는 지침을 메모한 후 태하에게 핸드폰을 하나 건네주었다.
핸드폰에는 ‘회장 전용’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제 번호는 물론이고 회사 내 모든 부서의 전화번호가 다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냥 전화 한 통만 하시면 됩니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전화는 꼭 받아 주십시오.”
“네, 그럴게요.”
“그럼…….”
박윤호는 이내 돌아섰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대걸레를 든 용팔이 물었다.
“누구예요?”
“아수라 컴퍼니의 비서실장이래요.”
“아하! 저번에 헌터님께서 인수를 하셨다고 했죠. 아주 그레이트하게요!”
“맞아요. 어서 인수가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복잡한 건 딱 질색이거든요.”
“하긴, 그건 그래요. 원래 경영이라는 게 문자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잖아요?”
순식간에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진 억만장자가 된 태하이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헬스장을 쓸고 닦으며 레슨을 준비했다.
그에게 있어 이곳 덕림헬스는 단순한 직장을 넘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아침 청소가 끝나 갈 무렵에 ‘고립관’의 문이 열렸다.
“안녕, 헬창 헌터씨!”
“아, 윤정 박사씨!”
“헬창 헌터씨!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톡도 안 받고!”
“음, 그랬어요?”
스마트워치의 알림 기능이 작동되지 않은 모양이다.
태하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미안해요. 아침에 레슨이 있었던가요?”
“네네, 아침 7시잖아요!”
“음, 그랬나? 아무튼, 그럼 옷 갈아입고 시작합시다.”
윤정은 텐션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다.
만약 비타민이 의인화된다면 윤정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MIT 공대를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석사까지 따고 한국으로 왔다는데, 미국에서도 이렇게 말이 많았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온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나온 윤정은 스트레칭을 하며 태하를 졸졸 따라다녔다.
“있잖아요, 헬창 헌터씨! 글쎄, 어제는 말이죠, 내가 지하철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요! 그 아주머니가 글쎄, 나한테 ‘아이고, 뼈밖에 없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팔이 너무 말라서 해골 같네, 그래서 아기는 낳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아줌마는 얼굴에 주름이 하도 많아서 말린 대추가 친구 하자고 하겠어요, 라고 했어요! 어때요? 나 잘했죠! 응?! 나 잘했지?!”
“그러네요. 하지만 말린 대추는 너무했네.”
“쿡쿡! 그럼 어떻게 해요?! 생긴 게 딱 말린 대추 같은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잖아요! 나이만 많으면 단가? 아니, 나도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모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초면에, 내가 빼빼 말랐다느니, 살이 하나도 없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다.
뭐, 그래도 같이 있으면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았다.
외로울 틈을 주지 않는 스타일이랄까?
“자, 그럼 준비운동부터 시작해 볼까요?”
“……오늘 아침에는 또 오는 길에 어떤 개 키우는 아줌마가 ‘우리 애는 안 물어요.’ 이러면서 나보다도 더 큰 도베르만에 입마개도 안 한 거 있죠?! 개념이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도베르만 같은 맹견에 입마개도 안 하고 다닐 수 있어요? 아 참, 그리고 그 아줌마네 개는 똥도 엄청 싸요! 그런 개가 똥을 싸면 ‘아이고, 응가 했어?’라면서 그냥 가는 거 있죠?! 자기 개는 예뻐도 똥은 안 예쁜가 봐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그랬냐면…….”
“웜업으로는 케이블 스트레이트 암풀다운입니다. 저번에 해 보셨죠?”
“……네! 해 봤죠! 이것부터 하면 되는 거예요?”
“처음부터 렛풀다운이나 어시스트 풀업 머신을 타면 경관절에도 무리가 올 것이고 등 근육이 잘 이완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나저나 나도 개 한 마리 키울까? 코치님은 개 좋아해요? 어떤 개 좋아해요? 의외로 덩치가 큰 사람들이 작은 개를 선호한다던데, 정말로 그래요? 꺄악, 그런 덩치에 치와와 같은 거 키우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어쩌면 좋아?!”
정말 입이 아프지 않나 싶을 정도다.
허나, 그래도 운동을 시키면 열정적으로 잘하기 때문에 가르칠 맛이 난다.
1시간 20분 동안 등 운동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음, 좋네요. 이 정도면 잘되었어요. 유산소 30분 하고 마무리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알겠어요! 그보다 스마트워치 줘 봐요. 제가 고쳐 줄게요.”
“이걸 고쳐 준다고요?”
“한번 볼게요.”
코어 기술에 있어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냈다던 그녀는 무엇이든 뚝딱뚝딱 고쳐 내곤 한다.
심지어는 스마트워치까지 고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분해해서 회로 쪽을 살펴보았다.
“음, 회로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던 것 같은데요?”
“고칠 수 있나요?”
“물론이죠! 납땜인두 있어요?”
“아마 창고에 있을 겁니다. 잠시만요!”
헬스장을 운영하고 보수하다 보면 별의별 게 다 말썽이라서 창고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녀는 인두를 가지고 회로를 고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집중할 때에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윽고 회로를 손보고 코어 MPU를 살펴보는 그녀.
“코어는 아주 특이한 물질이에요. 전도체, 반도체로 사용할 수 있고 신호 수신도 빠른 편이죠. 이게 바로 코어 테크놀로지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흠, 그렇군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코어는 몬스터들에게 있어선 일종의 수신 장치가 아니었을까 추론하기도 한답니다.”
“수신 장치요? 안테나 같은 거요?”
“비슷한 개념이죠. 보스 몬스터나 준보스 몬스터가 엄청난 양의 몬스터를 거느리는데, 그들은 전자 장비 하나 없이도 소통을 하잖아요.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그걸 연구하다 보니 신호 수신에 필요한 것이 바로 코어라는 걸 알아낸 거죠. 다만,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폭발이라든지 전자펄스 등을 만들어 낸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걸 막아 주는 게 바로 이 특수 회로고요.”
“오호! 그런 지식은 또 처음 접해 보네요. 역시, 박사는 달라도 다르네요!”
“별거 아니에요. 아무튼, 다 됐어요!”
그야말로 뚝딱 고쳐 내는 모습이 진짜 공학박사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녀는 헬스장을 나서다가 ‘연결고립’ 게시판 앞에 멈추어 섰다.
“헬창 헌터씨! 이거, 막공 모집하는 게시판 맞죠?”
“네, 맞습니다. 왜요? 관심 있어요?”
“아아! 나도 이제 알바 좀 뛰어 볼까 싶어서요.”
공학박사가 도대체 던전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요즘에는 의사들도 취미로 광부 알바를 한다니 그러려니 했다.
“붙여 놓고 가세요. 매칭이 성사되면 연결고립 SNS로 연락이 갈 겁니다.”
“앗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