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데스워리어 기사단(2)
만약 황당함으로 따진다면 지금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없을 것이다.
뱀파이어 나이트가 등장하자마자 블랙 나이트들은 엄청난 마이너스 에너지의 버프를 받아서 언데드 군단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가라, 암흑의 군단들이여!
-쿠오오오오!
그야말로 파죽지세! 그들의 검에 닿는 족족 언데드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태하는 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수 씨, 전장을 부탁해요! 저 빌어먹을 흡혈귀 새끼를 좀 족치고 와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긴 걱정하지 마세요!”
양쪽 팔에서 뻗어 나온 스트랩을 땅에 단단히 고정시킨 태하는 그대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윽고 그 탄성을 이용해 새총의 총알처럼 날아가는 태하.
쐐에에에엥!
태하는 저 멀리 공중에서 아군에게 버프를 보내고 있는 뱀파이어를 향해 날아갔다.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딴 건 난 잘 모르겠고, 네 송곳니부터 좀 뽑아야겠다!”
-놈, 버릇을 고쳐 주마!
머리를 마치 포마드를 발라서 넘긴 듯 아주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한 뱀파이어. 놈이 망토를 펄럭거릴 때마다 붉은 오러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저번에 봤던 뱀파이어 노블에 비해 확실히 그 힘이 더 강력했다.
사사사삭!
손을 뻗자마자 붉은 칼날이 태하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그 속도는 거의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으며 칼날에 베인 것은 여지없이 무엇이든 잘려 나갔다.
“헛!”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태하로선 칼날을 피하는 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놈이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는 점이다.
간신히 공격을 한차례 흘리고 나니 곧바로 중력이 태하를 잡아끈다.
쐐에에엥!
땅을 향해 내려가던 태하는 스트랩을 단단하고 탄력 있게 바꾸었다.
마치 차량의 서스펜션에 사용되는 용수철처럼 탄성을 자아낸 태하는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간다!”
피융!
마치 총알처럼 다시 솟아오른 태하를 보며 뱀파이어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오호? 제법이로군. 인간 중에 저렇게 황당한 능력을 지닌 녀석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그래,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다!”
태하는 스트랩을 뻗어 뱀파이어의 팔목으로 날렸다.
허나, 놀랍게도 뱀파이어는 순간이동을 해서 그것을 피해 냈다.
파앗!
“……점멸?!”
-근거리 점멸 마법은 데스워리어에게만 특화된 능력이 아니다. 뱀파이어 노블을 어떻게 먹어 치웠는지 몰라도, 나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탱커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근거리 전투가 아닌 이상에야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을 쓰는 원딜을 내가 잡아서 족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에 잠긴 태하는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렸다.
태하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간 후, 스트랩으로 용수철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분명 강력한 탄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피융!
마치 로켓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위로 쏘아져 나간다.
태하는 정확하게 뱀파이어의 목덜미를 노리며 스트랩을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멍청한 놈, 내가 그따위 공격에 당할 성싶으냐?!
뱀파이어는 칼날로 스트랩을 끊어 냈다.
태하는 그 즉시 반대쪽 스트랩을 뻗어서 뱀파이어의 다리를 노렸다.
분명 코웃음을 치고 있지만 약간의 압박을 받는 뱀파이어가 이를 갈았다.
-놈! 오만방자하구나! 이런 공격을 연거푸 뻗어 내다니!
붉은 칼날은 분명 날카롭고 위력적이지만 딜레이가 있는 듯했다.
‘만약 딜레이가 없었다면 굳이 점멸을 쓰면서 피해 낼 이유는 없었겠지. 우리는 지금 일대일로 싸우고 있는 거잖아?’
싸움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수를 모두 다 보여 주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그것을 받아칠 수 있든 없든 간에 어느 정도는 대처 방안을 마련해 뒀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에 의해 스트랩을 두 번 뻗은 태하.
뱀파이어는 태하의 공격을 피하고자 단거리 점멸을 펼쳤다.
파앗!
바로 그때였다.
태하의 동체시력이 뱀파이어를 좇았다.
‘어디 있지? 왼쪽, 오른쪽? 아니면 아래, 위?’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태하는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반짝 사라졌던 뱀파이어는 바로 태하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크하하! 이 몸이 그런 허접한 공격에…….
“잡았다!”
[스킬: 돌격]
[빠른 속도로 적의 코앞까지 돌격합니다]
[특성: 대시, 기절]
비록 엄청난 대미지를 줄 수는 없지만, 돌격 스킬에 맞으면 적이 스턴에 걸려 기절하고 만다.
태하는 뱀파이어가 점멸을 하는 그 순간을 노려 대시한 것이었다.
콰앙!
돌격은 그야말로 점멸에 가까운 속력을 가졌고, 뱀파이어는 몸을 회전시켜 대시하는 태하를 피하지 못했다.
-커흐으윽!
“이 새끼, 아까 뭐라고 했냐?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
태하는 뱀파이어의 멱살을 잡고 그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힘껏 쳐 주었다.
콰아아앙!
무려 40t이 넘는 힘을 가진 태하의 주먹에는 생명체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만약 거기에 가속도까지 붙는다면…….
-쿨럭, 쿨럭! 아, 아프다!
“당연히 아프겠지. 아프라고 때리는 거니까.”
그 주먹에 맞은 뱀파이어는 그대로 송곳니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이제 태하는 슬슬 마무리를 지을 차례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질질 끄는 건 생명체인 네게도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
-자, 잠깐……!
퍼억!
뱀파이어의 심장에 스트랩을 찔러 넣은 태하.
그는 순식간에 뱀파이어 나이트의 코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8]
[뱀파이어 나이트를 약탈합니다]
[뱀파이어 노블의 코어와 합체합니다]
[유의 사항: 합체로 인해 많은 용량의 기억이 한꺼번에 유입됩니다. 주의하세요]
[스킬, 특성, 특수 능력이 정상적으로 흡수되었습니다]
[특성 스킬: 디버프, 버프를 획득했습니다]
[비행, 점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약탈 직후, 태하는 생전 처음으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끼이이잉!
“크허어억!”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더니, 이내 그 안으로 엄청난 양의 기억이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안의 자아를 태하가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누군가의 전생이 태하의 기억으로 흡수되어 당시의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과 생각까지도 끌어안은 것이었다.
무려 3천 년, 그 억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기억이 태하의 뇌하수체에 자리 잡았다.
“허억, 허억!”
다만, 기억은 자리 잡았으나 약간의 기억상실처럼 당장에 모든 것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마치 술 마신 다음 날 필름이 끊긴 것처럼 말이다.
허나, 필름이 끊어진 그 자리를 메워 주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억의 각성이었다.
-와아아아!
-돌격!
양측이 치열하게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자, 끊어졌던 필름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뱀파이어 나이트, 그러니까 이 새끼는 누군가의 수호기사였어. 그래, 수호기사였어!”
***
뱀파이어 나이트가 사라지자, 데스워리어 진영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태하의 버프가 언데드들을 강화시키고 블랙 나이트는 약화시켰기 때문이었다.
“가자! 짓밟아 버리는 거다!!!”
-끄워어어어어!
이지를 잃어버린 언데드들은 공포감을 상실한 채 블랙 나이트에 달려갔다.
그들은 태하의 버프를 받아 특성 스킬을 얻었는데, 바로 돌격이었다.
대시 효과와 함께 상대방을 기절시키는 이 스킬이야말로 다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는 발군의 성능을 낼 수 있었다.
퍼억!
-으헤에엑!
상대방이 스킬에 맞아 기절해 버리면 후속타로 머리를 날려 버리니, 천하의 블랙 나이트 군단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전세는 역전되어 태하는 적의 내성문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곳을 뚫고 들어가면 50층에서의 싸움도 마무리될 것이었다.
“간다, 순식간에 뚫어 버리자!”
-끄어어어어!
골렘들은 아이언 골렘을 공성 망치처럼 양쪽에서 짊어지곤 힘껏 내성문을 두드렸다.
쿠우웅!
건물 전체는 물론이고 발밑의 지반까지 울릴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 전해졌다.
골렘들은 내성문이 열릴 때까지 타격에 박차를 가했다.
쿵, 쿵, 쿵!
콰앙!
드디어 내성문이 열렸다.
내성문 내부에는 마치 교회처럼 생긴 예배당과 제단이 놓여 있었는데, 제단 위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유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뭐야, 이게?”
“사망한 헌터들의 유골이 아닐까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더 이상 말을 잇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태하는 왜 굳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파앗!
바로 그때, 육중한 몸집을 가진 데스워리어가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알아서 죽을 자리를 찾아서 왔군.
“아가리 털 시간 있으면 얼른 덤벼. 우리도 제법 바쁜 사람들이야.”
-……크하하, 죽여 주마!
데스워리어는 순간, 점멸을 사용하여 태하에게 달려들었다.
파앗!
그리고 가속도를 붙여 불꽃의 검을 휘두르는 순간…….
[스킬: 캔슬레이션]
[적의 스킬보다 시전자의 스킬이 높습니다]
[특성 스킬이 적용됩니다]
[특성 스킬: 스턴, 경직]
데스워리어는 그 자리에 스턴이 된 채로 굳어 버렸다.
-컥!
“쯧, 멍청한 놈. 저번에 그렇게 당해 놓고도 여전히 같은 실수를 하냐? 뭐, 하긴. 그때 당한 건 네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을 테니.”
빳빳하게 굳어 버린 데스워리어는 눈만 끔뻑끔뻑할 뿐이었다.
태하는 가볍게 스트랩을 뻗었다.
바로 그때, 태하의 뇌리에 뱀파이어의 기억이 각성되었다.
-가드! 폐하를 보필하라!
“……이놈, 근위대장이었어?”
“근위대장이라니요?”
“모르겠어요. 어떤…… 황제의 근위대장이었던 것 같아요. 헌데 그게 누군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한나는 근위대장, 그리고 황제라는 단어를 듣고 1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그는 바로 마왕.
“……마왕! 그래요, 마왕! 이놈, 마왕의 근위대장이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마왕이라……. 그런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어서 죽여요. 이놈이 다시 설치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질 게 분명하잖아요?”
태하는 한나의 말처럼 일단 데스워리어의 코어를 순식간에 흡입해 버렸다.
슈가가각!
그러자 완성되는 특성 무기.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8]
[데스워리어를 흡수합니다]
[스킬과 패시브가 완성되었습니다]
[특성 무기를 완성했습니다]
[특성 무기: 지옥의 대검]
[특성: 블랙 나이트 기사단을 지휘할 수 있는 대검]
어쩌다 보니 블랙 나이트 기사단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곳은 이제 태하의 쉼터이자 쉘터가 되었다.
“성을 얻었나 봐요.”
“오오, 축하드려요! 아주 그레이트한 업적 아닌가요?!”
드디어 50층까지 태하의 영역이 되었다.
이제 태하가 향할 곳은 60층이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60층으로 가시죠. 비취 석판도 좀 찾을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