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대회 한번 뛰어봅시다!(1)
백선이 말했던 생명연구소와 어딘지 연결되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래도 엠톨은 아수라 길드와 연관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동물에게 이 엠톨을 주사했더니 근육이 끝도 없이 성장했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는 21종의 근육 및 신경계통 이상증에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정식 발표가 있었고 말이죠.”
“그럼 멀쩡한 일반인에게 엠톨을 주사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안 좋죠. 병변이 없는데 호르몬이나 특정 단백질을 변화시키거나 억제시키는 것이니까요. 체내 유전자 정보를 건드리는 원리이고, 그렇게 해서 끝도 없이 근육을 성장시키게 되는 거죠. 원래는 이 과정에서 소실된 근육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효과가 생기는 건데, 일반인은 일종의 부작용을 겪게 되는 겁니다.”
정상적으로 유통될 경우, 엠톨은 그야말로 기적의 신약으로 불릴 만했다.
허나, 이것이 변칙적으로 유통되어 보디빌더들의 손에 들어갔을 때가 문제였다.
“그런데 이게 최근에는 가격이 너무 높아져서 못 썼던 적이 있어요. 엠톨의 원료가 A급 코어 추출물이었거든요.”
“……코어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었다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몬스터의 핵에서 추출한 걸 인간에게 주사해도 괜찮은가.”
“흐음…….”
“그나저나 그건 도대체 왜 묻는 겁니까? 제가 정말 큰 잘못이라도…….”
잔뜩 위축된 그에게 태하는 웃으며 말했다.
“청룡방에서 수사에 도움이 된다면서 내린 지시입니다. 유통망을 차단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휴우, 그렇다면야.”
그제야 한시름 놓는 박한진.
그는 마음이 편해지자, 이번에는 처제 걱정이 먼저 되었다.
“아 참, 처제! 요즘 운동한다던데. 혹시 그쪽으로 손대려는 건 아니지? 그럼 정말 곤란해. 잘못하면 없던 지병이 생겨. 죽을 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고.”
희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걸 제가 왜 써요? 그보다도 그렇게 나쁜 약이면 이제 일반인에게는 처방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큰일 나요.”
“……알아. 그래서 이젠 슬슬 끊으려고 해. 하지만 골치 아프다. 우리 병원 보증금 올려 줘야 하는데.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그래서 언니도 요즘 나랑 같이 투잡 뛰고 있어.”
“투잡을 뛴다고요? 의사가?”
“의사는 사람 아니야? 의사도 사업가야. 개원해서 경영에 차질이 생기면 밤에는 대리운전이라도 뛰어야 한다고.”
박한진은 정말 너무나도 성실한 사람이다.
다만, 요령이 별로 없다 보니 환자를 많이 받아도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았던 것이다.
“돈은 내가 해 줄게요. 대출이 얼마인데요?”
“……그건 싫어. 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 그리고 처제가 입장 바꿔서 언니라면 동생에게 도움받고 싶겠어?”
“정말, 그렇게 고집부릴 거예요?”
박한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무튼, 나는 말 끝났으니 이만 간다. 나중에 또 봐!”
“형부!”
역시, 박한진은 지나치게 올곧은 게 흠이다.
***
한 달 후.
서울 블루컨퍼런스 호텔에서 에메랄드컵 보디빌딩 클래식이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아시아의 선수 120명이 참가를 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대회 경력이 아예 없는 사람은 태하 한 사람뿐이었다.
“땡겨, 더 땡겨!”
“후욱, 후욱!”
백 스테이지의 풍경은 전반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우승 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태하.
“……헬창 헌터다.”
“쉿! 저쪽으로 가자!”
미국에서는 보디빌딩 대회를 ‘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심미성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인데, 대회 당일 펌핑감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끝이다.
괜히 위축되어서 운동도 제대로 못 하면 1년 농사가 말짱 꽝인 셈이었다.
태하도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덤벨을 들고 운동하고 있었다.
“중력 좀 더 넣어 줄까요?”
“……넵!”
겉보기에는 그냥 덤벨 같지만, 한나의 손길이 닿으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덤벨이 된다.
[중력 가중치 x 12]
무려 12배나 무거운 중량으로 덤벨 운동을 하니 5kg짜리 덤벨도 60kg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태하는 계속해서 한 번에 전신을 움직이는 순환 운동을 해 주었다.
등, 어깨, 하체, 팔, 가슴, 심지어는 복근과 척추 기립근까지 전신에 걸친 근육에 완벽하게 혈액을 밀어 넣으려는 것이었다.
용팔과 영수도 오늘 이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에 태하와 같은 무대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태하 다음에는 용팔, 그다음에는 영수가 차례대로 펌핑을 해 주었다.
한 사람은 운동하고 두 사람은 대기할 때, 대기하는 사람에게 보현 관장은 포징오일, 흔히 ‘탄’이라고 하는 것을 골고루 발라 주었다.
“오케이! 발색 좋고, 농도 좋고! 아주 잘 익은 맥반석 계란 같아. 이 정도면 됐어!”
보디빌딩은 보여주기 경쟁이다.
근육은 자고로 구릿빛에서 더욱 강렬한 모습을 보여 주기에 대회 며칠 전부터 탄을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시 후, 관계자가 영수를 불렀다.
“미들급 참가자 전원 나오실게요!”
영수가 긴장된 표정으로 섰다.
그런 그에게 손이 온통 구릿빛으로 변해 버린 보현 관장이 말했다.
“요, 베이비, 요! 할 수 있어! 영수, 다들 아주 입 떡 벌어지게 해 주고 돌아와!”
“예, 관장님!”
착착, 차아악!
보현 관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손바닥 스테로이드를 먹여 주었다.
“레츠, 고우우우!”
“허업, 갑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무대로 나아가는 영수.
그런 그를 뒤로한 채 태하와 용팔의 몸에 끊임없이 탄을 칠하는 보현 관장.
그는 마치 필생의 역작을 만지는 듯 아주 정성스럽게 두 제자의 몸을 쓰다듬고 톡톡 두드려 주었다.
“오케이! 얘들아, 오늘은 너희들의 날이다! 제대로 한번 해 보는 거야!”
“넵!”
각 체급의 심사는 한 번에 이뤄지고 1차 심사가 끝나면 TOP10이 남아서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긴장된 표정으로 계속 탄을 바르고 있던 보현 관장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관장님, 영수 씨가 TOP10이랍니다!”
“……오케이! 좋았어, 베이비!”
지금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미들급 경기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슈퍼 라이트헤비급 심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용팔 차례였다.
보현 관장은 용팔의 온몸을 손으로 자꾸 때려 주었다.
착착착착!
“용팔아! 보나 마나 네가 우승이야!”
“네!”
“그레이트하게 한 방 보여 주고 들어와!”
“우오오오오! 레츠 기릿!”
용팔까지 나가고 나자, 태하도 전에 없던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데 긴장이 되네.’
대회에 안 나왔으면 몰라도, 막상 나오고 보니 승부욕이 발동한다.
승부욕은 적당한 긴장감을 주기에 이런 승부처에선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잠시 후, 용팔의 1차 심사 결과가 나왔다.
“TOP10이랍니다!”
“오호! 그래, 그래! 헬스 신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나 보다!”
이제 남은 건 태하 차례였다.
라이트헤비급 순서가 지나가고 슈퍼헤비급 차례가 되었다.
육중한 선수들 사이에 선 태하.
관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태하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어!”
“넵!”
보디빌딩의 꽃, 무제한 체급으로 불리는 슈퍼헤비급의 경기는 그야말로 불꽃처럼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호텔 컨퍼런스 룸인데도 불구하고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태하는 가슴을 쫙 펴고 선수들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선수들, 라인업!
광배근을 쫙 펴고 똑바로 선 자세, 기본 규정 포즈인 ‘라인업’ 자세를 잡는 태하.
바로 그때였다.
끼이잉!
뇌가 약간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뭐지, 이건?’
태하의 시선이 절로 한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부녀가 앉아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저 새끼는?!’
그는 어렴풋이 직감했다.
저번에 폭발을 일으켰던 그 부녀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대회 끝나면 얘기합시다. 도망치지 않을 테니.
“……!”
***
단숨에 TOP10에 오른 태하는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자유 포징에 나섰다.
빰빰, 빠바밤!
장엄한 음악과 함께 무대로 나선 태하는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연달아 취해 보였다.
“우와아아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엄청난 크기에 압도된 것이었다.
해설자들도 연신 찬사를 쏟아 냈다.
“쫙쫙 갈라진 근육과 어마어마한 크기. 게다가 수분기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엄청난 컨디션까지. 완벽하네요!”
“맞습니다. 아무리 의학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저 사람처럼은 될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정태하 선수는 약물 사용자에게서는 흔히 나타나는 ‘팔룸보이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미성마저 뛰어난 것이죠.”
팔룸보이즘은 장기의 비대, 복압 상승 등으로 마치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 튀어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아무리 다이어트를 잘해도 약물 사용자는 복부를 컨트롤하지 않으면 올챙이처럼 배불뚝이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허나, 태하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영장류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엄청난 크기와 분리도를 보여 주는 코어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는 클래식 피지크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얇고 멋있죠. 한마디로 잘빠졌다,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뭐, 오늘의 우승은 떼 놓은 당상이겠군요?”
태하는 하체와 가슴, 팔을 보여 주는 사이드체스트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자 중계진들은 한껏 흥분했다.
“……보세요! 하체의 압도적인 세퍼레이션! 마치 빗살무늬토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런 근질의 근육은 축복받은 유전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장과도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정태하 선수는 신체 어느 곳이건 간에 다 좋습니다. 심지어 키가 180cm 이상인데도 불구하고 빈 곳이 하나도 없어요. 솔직히 이건 반칙이라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정태하 선수, 존재 자체가 반칙이로군요!”
슈퍼헤비급에서 큰 키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키가 크면 몸이 길어 보이기 때문에 신체 어느 한 부위라도 크기가 작아 보이거나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수가 있다.
허나, 태하는 살고자 몸부림치는 동안 그 모든 것을 채워 냈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은 몸인 것이다.
곧이어 태하의 다음 차례 선수들이 1명씩 들어와 포즈를 취하였다.
중계진들은 영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트렁크 넘버 321번 토리야마 슌스케 선수, 아쉽군요. 확실히 메스는 정말 많이 좋아졌는데 스킨이 너무 두껍습니다.”
“맞습니다. 근육의 선명도가 너무 떨어진 나머지, 백 포지션에서의 세퍼레이션이 거의 구분이 안 갈 정도입니다.”
“오늘 전체적으로 다들 선명도와 세퍼레이션이 부족한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유독 피부가 두꺼워 보이는 게, 정말 아쉽군요.”
“이상하게 키도 좀 커진 것 같죠? 미묘하게 빈 곳이 많아 보이는데요.”
“자세히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잠시 후, 심사위원들의 TOP3 발표가 있었다.
TOP3에서 가장 먼저 태하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트렁크 넘버 411번 정태하 선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