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헬창, IFBB로 가다!(2)
대회 보름 전.
트렁크만 입은 채 거울 앞에 선 태하가 보디체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용팔과 영수도 서 있었다.
대사형의 오러에는 용팔과 영수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들도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정도면 우승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남들은 힘들어도 너희들은 어렵지 않아. 항상 준비된 몸을 갖고 있잖아?”
아무리 약물을 사용한다고 해도 극한의 다이어트 상태를 유지하기란 죽을 만큼 힘든 일이다.
헌데 헬스하운드는 그 모든 것이 그냥 알아서 다 된다.
운동만 죽어라 한다면 굳이 약물이나 다이어트 없이도 몸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단, 평소에도 항상 닭가슴살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회는 보름 후, 서울 블루컨퍼런스 호텔에서 치러진대! 기억하고 있으라고.”
“알겠어요. 관장님.”
“오케이, 좋아! 이번에 너희들이 에메랄드컵에서 나란히 우승하면 우리 체육관에도 대기업 스폰서가 붙겠군!”
대략 세 시간 후.
한차례 운동을 끝내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태하와 일행들.
“헌터님, 편지 왔어요!”
“편지요?”
“길드 한라라고 하는데요?”
요즘 같은 시대에 우편으로 소통하는 경우는 고지서나 통지서 말고는 거의 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편지를 뜯어본 태하는 눈을 번쩍 떴다.
“……몬스터의 부검 결과가 나왔는데, 그 안에서 엠톨이라는 것이 발견되었대요.”
“엠톨이 뭔데요?”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관장이 한마디 해 주었다.
전에 없던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크음, 엠톨이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한 종류인데, 이번에 보디빌더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풀리기 시작한 신약이라고 하더군.”
“스테로이드가 몬스터의 몸에서?”
“요즘은 몬스터들도 몸 불리는 게 유행인가?”
용팔은 엠톨이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러자 포털사이트 상단에 떡하니 연관 검색어로 따라붙는 게 있었다.
바로 엠비엠이었다.
“이 엠톨이요, 엠비엠의 자회사에서 만든다는 것 같은데요?”
“……에메랄드컵의 스폰서 말입니까?”
“네, 맞아요! 이번에 우리가 나가는 그 대회의 메인 스폰서죠.”
“몬스터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뭔가 그레이트하게 구린 냄새가 나네요!”
대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영수는 헬스하운드에게 함께 정보를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건은 귀영 차원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다들 가능한 최대한 많이 정보를 모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에너지 시장이 휘청거리는 건 우리 밥줄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이니까요. 그럼, 최대 조력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보는 건 어떨까요?”
“조력자? 누구 말입니까?”
“청룡방이요.”
***
청금타워 옥상에 오르자 그곳에는 백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
“음, 자네 왔는가?”
여전히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진다.
백선은 태하를 스윽 훑어보곤 이내 미소를 지었다.
“더 강해졌군.”
“어르신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그나저나 시기적절해. 나도 자네에게 보자고 할 참이었는데 말이야.”
그는 주머니에서 흰색 봉투를 하나 꺼내어 태하에게 내밀었다.
자연적으로 봉투를 받아 그 내용물을 확인한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주식 양도증서였기 때문이다.
“이게…….”
“양도소득세는 내가 알아서 처리해 두었네. 자네는 이제 그걸 가지고 아수라 길드를 인수하면 되는 걸세.”
“……아수라 길드를요? 제가요?!”
정말 기절초풍할 만한 일이었다.
설마하니 아수라 길드를 인수하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입을 떡 벌리고 있던 태하에게 백선이 물었다.
“자네, 저번에 용광이 놈에게 못 받은 돈이 얼마였지?”
“흠? 글쎄요. 꽤 되긴 했습니다…….”
“그 돈, 회사채로 전환되어 자네에게 지급되었을 걸세.”
“예?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빚이라는 건 어디로 사라지지 않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빚은 남기 마련이지. 코어 관련 채무는 한국은행에서 관리하는데, 채무가 발생하면 한국은행에서 책임지고 그것을 회수해서 채권자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어. 시장의 약관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지.”
“아하! 솔직히 그런 내용까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연해. 통상 1조 원 규모 이상의 사건만 한국은행이 나서고 있으니까.”
태하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42조 원의 사건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정산금 2억을 남기고 탈탈 털려 버린 아수라 길드는 이제 모든 계열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빅딜’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42조 원 규모의 도산이야. 정부에서도 자네가 나서서 아수라 길드와 그 계열사를 인수해 줬으면 하고 있더군. 남은 돈이 무려 12조 원쯤 되거든.”
“하지만 저는 기업에 대해서는 영 일자무식이라…….”
“괜찮아. 자네는 주주로서 배당금만 받으면 돼. 자네가 대주주가 되면 우리 청룡방에서 자금을 동원해서 대주주 지분 인수를 진행하도록 하겠네. 3조 원 정도 세금이 발생할 텐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네.”
대주주 기준으로 주식을 양도하여 이익을 얻을 경우, 그에 대하여 22~33%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법령이 있다.
대주주의 현행 기준이 10억으로 되어 있으니 12조 원이면 당연히 대주주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그 세금이 무려 3조 원 이상이라는 것.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로군요.”
“그럴 것 없어. 돈이라는 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니까.”
“그, 그렇군요.”
“아무튼, 그렇게 해 주겠나?”
“네, 물론입니다. 아수라 길드를 청산하는 건 코어 시장의 관점에서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고맙네. 역시 생각이 깊군. 이번 일로 자네는 가문 대대로 평생 먹고 놀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었을 걸세. 축하하네.”
돈이라는 건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절대 지표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까지 큰 감흥은 없는 태하는 오히려 화제를 금방 바꾸었다.
“그나저나 소식 들으셨습니까? 이번 남산 사태에서 나온 몬스터의 시신을 부검했더니 엠톨이라는 스테로이드가 나왔다고 하지 뭡니까?”
“……흠, 그래. 듣기는 했지.”
“이 사태에 대해서 귀영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저희 헬스하운드도 전적으로 나서기로 했고요.”
“이 일에 자네까지 나서기로 했나? 자네는 참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인가 보군.”
“제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오지랖이 넓죠.”
지금의 헬스하운드는 태하의 오지랖 때문에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간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우리 청룡방에서 아수라의 뒷조사와 함께 남산 사태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이었네. 그런데 우연히 청룡방에서 입자가속기를 만드는 회사와 생명연구소에 대해서 알아내게 되었지.”
“생명연구소요?”
“뭔가 생체 실험을 하는 모양인데, 자세한 건 자네가 회사를 인수한 후에나 알 수 있을 거야.”
“음, 그렇군요…….”
“우리는 이번 사건을 생명연구소와 연관해서 보고 있다네. 아무래도 이 엠톨이라는 것도 거기서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말이야.”
“생명 연구와 관련된 일이라니.”
“아무쪼록 앞으로 몸조심하게나. 아수라 길드와 그 일당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걸 받게나.”
백선은 태하에게 최고급 청금석과 티타늄으로 만든 카드를 건네주었다.
카드에는 ‘청룡방 특사’라고 적혀 있었다.
“자네만 괜찮다면 방주와 직결된 특사로 일해 줬으면 하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제, 제가요? 하지만 청룡방 특사는 바벨탑 관리기구와 헌터협회와도 연관이 있는 직위인데…….”
“솔직히 말하겠네. 청룡방에서는 자네를 좀 크게 키워 볼 생각이야.”
백선은 태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상과 대망을 가슴에 품기로 했었잖나. 높은 이상을 품고 제대로 된 일을 해 주었으면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청룡방 특사는 각가지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바벨탑 관리기구와 헌터협회와 협조하여 직접적인 수사 권한을 갖는 직위다.
심지어는 정부와도 연계되어 독립된 수사권을 부여받게 되는데, 일종의 일인 수사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사건 사고가 터지면 일일이 수사를 해 줘야 하기에 귀찮은 면이 있으나, 오지라퍼 태하에겐 아주 제격인 직위가 아니겠는가.
‘오오, 특사! 내가 특사라니!’
***
을지로의 식당가.
희란의 형부 박한진은 거대한 덩치의 태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친구는…….”
“얘기 들었을걸요? 우리 길드 대장이라고.”
“아아! 헬창 헌터! 이야, 내가 헬창 헌터를 다 만나게 될 줄이야!”
태하는 박한진에게 정중히 악수를 건넸다.
“정태하입니다.”
“그래요, 박한진입니다!”
두 사람은 명함을 교환하였는데, 태하는 그에게 청룡방의 특사 명함을 건네주었다.
박한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태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 젊은 나이에 무려 특사라니……!”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청룡방 특사는 흡사 암행어사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해서 일반인들은 가끔 억울한 일이 생기면 ‘어디서 청룡방 특사 안 나타나나?’라고 말하곤 했다.
태하는 박한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엠톨, 취급하고 계시죠?”
“……뭐, 뭐라고요?”
“다 알고 왔습니다.”
박한진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희란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부가 엠톨을 처방해 주고 있잖아요.”
“처, 처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 병원 간호사로 일했으니 알죠. 하루에도 몇 명씩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갔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료 행위가 까발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박한진은 아주 사색이 되어 버렸다.
“곤란하네, 이거…….”
“그 엠톨이라는 거, 정확하게 어떤 효능이 있는 거예요?”
박한진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현대판 암행어사가 바로 앞에 있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허나, 여기서 입을 닫아 버린다면 희란이 먼저 날뛸 게 분명했다.
처제 희란은 상당히 저돌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희란의 성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박한진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체포를 당하는 건 아니죠?”
“제가 보증합니다. 이번 일은 그냥 덮고 넘어갈게요. 그리고 엠톨 불법 유통에 대한 수사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불법 유통은 제 관할이 아닙니다.”
청룡방 특사는 수임한 수사만 진행할 수 있으며, 그 이외의 사건은 수사 요청서를 통해 인가를 받아야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설명을 들은 박한진은 안심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흠! 좋아요. 그럼 편하게 알려 드릴게요. 그 엠톨이라는 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입니다. 원래는 무슨 동물실험용으로 개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동물?”
“카더라가 많았죠. 항간에는 무슨 몬스터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네, 키메라를 만드네,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돌았거든요.”
순간, 태하의 눈이 반짝거렸다.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