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헬창, IFBB로 가다!(1)
여의도 코어 시장의 로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아수라다!”
“……그 아수라가 여의도를 찾아왔어?”
주변의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어떤 누구도 감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은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표독스러운 독사.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을 유혈목이가 시장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아수라 이용광!”
귀신의 왕, 이용광은 아수라라는 별명을 가진 유일무이한 딜러로 통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영령을 구속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능력을 통제하여 자신의 능력으로 사용하는 ‘귀능력자’이다.
던전에서 그와 PK(player kill)로 붙어서 살아남은 사람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잔악하고 손속이 없으며, 강력하기가 가히 악귀와 같은 사람이 바로 아수라 이용광인 것이다.
“정산하러 왔는데.”
“아, 예……!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용광에게 있어서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굴욕의 순간이 될 것이다.
무려 1,100조 원.
인간이 평생 만져 볼 수도 없을 정도의 돈이며, 설사 만질 수 있다고 해도 현물로 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돈을 한순간에 날려 알거지가 되어 버린 그가, 잔돈 2억을 받는 날이었던 것이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이용광.
바로 그때였다.
찌릿!
정수리가 따끔거렸다.
이용광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절마 누고?”
“누구 말입니까?”
“쩌어, 금성코어 주식회사 부스 앞에 앉아 있는 청년 말이다.”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청년.
저 청년 때문에 자꾸 정수리가 따가웠던 것이다.
“아, 저 청년이요? 유명하잖습니까. 게임 체인저라고.”
“게임 체인저?”
“마이너스 코어 시장을 뒤집어 버렸다고 말입니다.”
“음.”
“수완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 젊은 나이에 시장을 확 뒤집어서 천하의 아수라…….”
순간, 코어 딜러가 입을 꼭 닫아 버렸다.
잘못하면 이 자리에서 당장 영혼이 녹아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험험! 그럼 계속 진행할까요?”
“잠시만.”
딜러의 말대로라면 저 청년이 바로 아수라 길드를 엎어 버린 장본인이었다.
죽이든 살리든 얼굴이나 좀 보자 싶었던 이용광.
바로 그때였다.
부르르르!
이용광의 왼쪽 눈이 파르르 떨렸다.
‘영령? 아니, 보통의 영령이 아니다! 이건……!’
엄청난 존재감. 지금까지 이용광이 거두어들인 영혼들과는 아예 스케일부터가 다른 영령이었다.
아마 범인은 감당조차 못 할 영기.
그것은 바로 사신이었다.
‘뭐고, 사신의 숨결이 왜 이놈에게서 느껴지는 거고……?’
흔히 후원 성좌라 불리는 존재들.
가끔 골드 등급의 초월자들에게만 강림 되는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재앙급 헌터가 될 수 있다.
이용광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차피 이건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운명이다. 내가 이기면 살고, 아니면 죽는 싸움 말이다.’
그는 결심했다.
누가 죽든 결판을 내야겠다고 말이다.
‘PK, 한다. 감옥에 가든 죽든 말이데이!’
***
일행은 여의도 코어 거래소로 향했다.
“……이거야말로 진짜 그레이트하네. 설마하니 몬스터를 조련시켰을 줄은 몰랐네요.”
“조련이 아니라 협조라고 해야 할까요?”
군림이라는 특성은 지금까지 태하가 점령한 던전의 몬스터를 하수인으로 부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한마디로 차원만 넘나들 수 있다면 소환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태하는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누군가 화이트홀을 뚫어서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게 틀림이 없어요.”
“하지만 공간이동이라는 건 신목이라는 것만이 할 수 있다면서요.”
“우리 홍이랑 비슷한 뭔가가 또 있는 거겠죠.”
메피스토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게 태하의 생각이었다.
그는 메피스토의 창고를 탐험한 후, 그 뒤를 캐 볼 작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전력만으로는 60층 돌파가 힘들 것 같아요. 수련을 하든 포션을 빨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겁니다.”
“정확히 허들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영수의 질문에 태하는 간단히 답했다.
“3배.”
“……3배나 높다고요?”
“우리는 아직 메피스토와 싸워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에저드 호른이 메피스토의 가디언에 불과하다면 그 대장은 어떻겠어요?”
준보스와 보스의 차이는 대략 2~4배 차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최소 3배, 혹은 그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리다.
용팔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포기를 해야 하는 걸까요? 아무리 근육을 키워도 3배 이상의 득근은 힘들잖아요.”
“포기는 김치 담글 때나 하는 거고요.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요.”
“방법이 있어요?!”
“대사형의 오러. 그걸 사용해 봅시다.”
“아하! 우튜브에서 어그로를 확?!”
“뭐, 그런 거죠.”
“오호라!”
태하의 머릿속에는 이미 청사진이 가득했다.
물론 이건 얕은 수이지만, 절대 간단한 수는 아니었다.
“오로지 우리이기에 할 수 있는 전략인 겁니다. 다들 빡쎄게 운동하고 식단 맞춰서 잘하세요. 앞으로 한 달간 술은 금지입니다.”
“……술이 제일 빡쎄겠는데?”
코어 거래소 조선엽의 창구로 향한 일행들.
조선엽은 헬스하운드의 전속 딜러로서 아예 자리를 잡아 버렸다.
어떤 업무든 간에 헬스하운드의 업무가 우선이었다.
“아, 오셨네요! 소식은 들었습니다. 에저드 호른을 먼지 한 톨로 만들어 버렸다면서요?”
“중간에 어마무시한 과정들이 있었습니다만, 그건 그냥 묻어 두기로 할게요.”
“하하, 그래요! 일단 감정부터 해 볼까요?”
요즘 조선엽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업계에서 이름이 났고, 심지어 회사에서도 잘나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헬스하운드 덕분이었다.
헬스하운드는 각자 배낭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럼 스캔하겠습니다.”
“요즘 코어 가격은 어때요?”
조선엽은 눈을 스캐너 모니터에 고정한 채 태하의 질문에 답했다.
“평이한 편입니다. 크게 오르지도 않고 많이 내려가지도 않네요. 지금처럼만 시장이 유지된다면 앞으로 에너지 경쟁의 심화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다행입니다.”
“이게 다 헬창 헌터 덕분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그렇듯 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수요 불균형과 과당경쟁이다.
수요 불균형이 일어날 땐 아수라 길드와 같은 놈들이 설칠 것이고, 과당경쟁이 일어난다면 에너지 시장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는 각종 정책과 규제를 발의하지만, 사실상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태하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조선엽은 수요 불균형과 과당경쟁으로 인해 밥줄이 끊겨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코어 시장에서의 극심한 변동은 좋지 않다는 소리다.
“자, 다 됐습니다!”
[코어 총량: 7,787개]
[FF급 코어 총량: 6,365개]
[F급 코어 총량: 2,120개]
[E급 코어 총량: 1,631개]
[C급 코어 총량: 671개]
[B급 코어 총량: 100개]
[A급 코어 총량: 12개]
[총 거래 가능 개수: 10,907개]
이 정도면 이제 거의 움직이는 벤처기업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
특히나 A급 코어의 수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요즘 A급 코어는 사실상 마이너스 코어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20층 이상 올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서 말이죠.”
“던전의 난도가 올라가면서 A급 코어의 가격이 올라간 것이군요.”
“F급은 생각보다 많이 나옵니다. 쉘터가 구축되면서 광부 알바가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헌터협회에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제는 A급 코어를 수급한다는 의뢰까지 생겨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대기업에서 말이죠.”
“흠!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잘 해결을 봐야겠지요.”
시장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러한 흐름의 변화가 뭔가 큰 사건을 만들어 내고 말 것이다.
‘이거, 메피스토 사건이나 던전의 레벨이 오른 사건과도 관련이 있을 거야. 누군가는 해결을 봐야 해!’
정산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일행들.
태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조선엽에게 금색의 네모난 큐브를 보여 주었다.
“아참, 이게 뭔지 좀 알려 주시겠어요?”
“보자……. 스캔 좀 할게요.”
스캐너에 큐브를 올려놓자, 모니터에 몇 줄의 글자가 출력되었다.
조선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성…… 무기라고 나오는데요?”
“이 상자가 무기라고요?”
“흠, 그러게 말입니다. 연금술사라는 직업에 특화되어 있다네요.”
“그런 클래스는 처음 들어 보는데.”
태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 어깨를 으쓱거린다.
동료들 역시 연금술사라는 직업은 처음 들어 보는 눈치였다.
조선엽은 모니터를 돌려서 태하에게 보여 주었다.
“자, 보이시죠? 특성은 연금술사, 등급은 UQ입니다.”
“UQ가 뭔데요?”
“유니크, 그러니까 등급으로 치면 유일 등급이라는 거죠.”
“……아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유일 등급이구나!”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연금술사라는 직업도 어쩌면 히든 클래스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히든 클래스라는 게 있어요?”
조선엽은 태하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쪽지에는 몇 가지 정보가 들어 있었는데, 코어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찌라시 같은 것들이었다.
“최근에 희귀한 포지션의 직업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하네요. 어쩌면 연금술도 그 일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바벨탑은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은 탑을 정복하고 싶어 하지만, 어쩌면 영원히 정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심해나 우주처럼 말이다.
***
60층 등반을 위한 담금질이 시작되었다.
“후우, 후우……!”
마치 미노타우로스처럼 스쿼트를 치는 태하, 그리고 그 옆에서 카운트를 하며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용팔과 영수.
굳이 급을 나눈다면 태하는 슈퍼헤비급, 용팔은 슈퍼 라이트헤비급, 영수는 미들급 정도 될 것이다.
다소 차이는 있어도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야말로 돌덩이들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창 운동에 집중하고 있는데 보현 관장이 달려왔다.
“예압, 베이비! 태하야, 시합 잡혔다!”
“오호!”
“국제보디빌딩연맹에서 주최하는 대회 말이야! 에메랄드컵이라고, 대기업 스폰서를 받아서 시작한대!”
국제보디빌딩연맹, 즉 IFBB는 보디빌딩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다.
이곳에서 발급하는 프로 자격증을 얻어야지만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에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엠비엠 그룹에서 스폰서를 한다니까 판이 2배는 더 커졌다고 봐야지! 여기서 우승하면 바로 IFBB 프로야! 내가 꿈에서도 그리던 바로 그거 말이야!”
“……기회가 왔군!”
태하의 청사진이라는 게 바로 이것이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것.
‘대사형의 오러, 이것보다 좋은 버프는 또 없지!’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면 우튜브에서도 난리가 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현파로 제자들을 유입시키는 결과가 될 테니, 구독자나 관원 숫자가 족히 몇 배는 상승할 것이 분명했다.
“……우승만이 답이다!”
“요, 베이비! 그래, 우승만이 답이다! 이번 기회에 이 관장님 진열장에 에메랄드 트로피 하나 추가해 주라!”
“물론이죠! 딱 기다리세요, 관장님! 제가 IFBB 프로가 되어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