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근육으로 씹어 먹다(1)
쿠웅!
-끄에에엑…….
이블아이가 축 늘어지며 흉측한 몰골이 되어 버렸다.
“허억, 허억!”
현영태는 폐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겨우 1마리의 준보스를 잡는 데 이렇게까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면 이제 자신도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자네들이 더 고생했지.”
근딜 40명이 달려들어 무지막지하게 이블아이를 두들겨 팼고, 그 과정에서 무려 절반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
산을 내려가서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되겠지만, 일부는 후유증을 얻게 될 수도 있었다.
현영태는 계속해서 진격했다.
“간다! 전방의 상황은 어떠한가?”
“아직 무전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선발대는 몰살을 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발대에 대한 예우는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산의 중턱을 넘어 이제 7부 능선쯤에 도달했을 때였다.
전방에서 뭔가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쿠웅!
“뭐야, 누가 북을 치나?”
“아, 아닙니다! 이블아이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뭐라고?!”
망원경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은 현영태는 구타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였다.
-으헥, 으헥……!
“뭐야, 혼자서 이블아이를 개 패듯 패고 있잖아?!”
심지어 이블아이는 얼마 있지 않아 죽어 버렸다.
한마디로 달랑 인간 한 명의 주먹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저 친구, 이름이 뭐야?”
“헬스하운드, 기억하십니까?”
“아아, 그 수색대 지원자 말인가?”
“그 헬스하운드의 리더이자 탱커라고 합니다.”
“탱커라. 흠, 능력이 출중한…….”
순간, 그는 뭔가 좀 이상함을 느꼈다.
탱커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딜링 펀치를 날린다고?
“……잠깐, 그 친구는 탱커라면서?”
“그렇긴 한데, 좀 특별합니다.”
“허어!”
보통의 인재가 아니다.
어쩌면 한라에서 반드시 영입해야 할 1순위 헌터가 아닌가 싶었다.
“……레이드 끝나고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해봐.”
지금 레이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초신성이 떠오른 것이었다.
***
정상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지이잉!
파앗!
순간, 검은 잔상이 몇 번인가 산등성이를 타고 번쩍였다.
그리고 이내 시작되는 살육의 향연.
푸하아악!
“크허어억!”
“뭐야, 이거!”
-쿠오오오!
무려 4m 크기의 거대한 몸집의 악마형 몬스터.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데스워리어!”
“……데스워리어라면 90층 보스의 하수인 아닌가요?! 그게 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건데요?!”
지독하게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데스워리어는 단거리 점멸이라는, 정말이지 독특한 능력을 지닌 몬스터이다.
그 외에도 유황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가속마법을 사용하기에 대검이 가지는 페널티는 대부분 상쇄한 채 어드밴티지를 극대화하는 까다로운 몬스터다.
한마디로 인간이 쉽사리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점멸이 시작될 때쯤, 태하는 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멈춰!”
-쿠옥?!
단거리 점멸을 하던 데스워리어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태하의 캔슬레이션 패시브가 고주파 스킬에 섞여 날아간 것이었다.
[스킬: 고주파]
[상대가 경직되었습니다]
이제 데스워리어는 태하의 앞에선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허나, 놈은 검을 휘두르는 완력이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부웅!
“허엇!”
태하는 놈의 검을 피할 수 없었기에 방패로 검을 막아 내려 했다.
바로 그때, 놈이 방향을 꺾었다.
퍼억!
“크허억!”
“영수 씨!”
태하의 옆에 있던 영수가 피를 토하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윽고 하늘에서는 체인 라이트닝이 떨어져 내렸다.
치지지지직!
퍼엉!
순간, 태하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커헉!”
누군가의 도움일까?
“전격 마법……?”
“아니요, 버프입니다!”
“……버프?!”
라이트닝 쇼크를 맞은 데스워리어는 노란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검을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사사사삿!
100m를 무려 2초에 돌파하는 말도 안 되는 몸놀림.
그 엄청난 움직임에 육중한 대검의 가속도까지 붙으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번에는 한나가 앞으로 나섰다.
[스킬: 중력 제어]
[대상: 데스워리어]
[+600%의 중력을 가합니다]
쿠우웅!
중력이 가해지자, 데스워리어의 발이 바닥에 푹 박혀 버렸다.
허나 놈은 여전히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러곤 영수의 앞에 착지했다.
-쿠흐흐흐!
놈은 영수를 비웃듯 그의 목을 조르더니 등에 있던 환두대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곤 그것을 부러뜨렸다.
“안 돼!”
쨍그랑!
그렇게 절망을 안긴 데스워리어가 영수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슈우웅…….
어디선가 들리는 아득한 파공성.
이내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태하의 펀치였다.
쿠아아앙!
-끄웨엑……!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7]
[데스워리어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데스워리어의 패시브를 흡수합니다]
[데스워리어의 특성과 특수 능력을 흡수합니다]
[데스워리어의 특성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일부 페널티: 흡수 대상의 레벨이 높아서 ‘점멸’은 흡수되지 못했습니다]
[특성 무기의 50%만 흡수됩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태하가 데스워리어를 처리했다.
허나 고영수는 충격에 빠져 넋을 놓고 말았다.
“…….”
***
500명의 헌터들이 남산의 레이드 포인트에 모였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려 2/3의 병력이 사라졌고, 이제 남은 것은 A급과 S급 이상의 헌터들뿐이었다.
고오오오!
“……아니, 저건 또 뭐야?”
“스펙터 마스터가 왜 여기에 나타난 겁니까?”
인포코리얼 계열의 언데드 몬스터, 그런 스펙터 중에서도 보스급 몬스터가 바로 스펙터 마스터 ‘에저드 호른’이다.
에저드 호른은 물리 공격에 대해선 슈퍼아머 상태이기 때문에 근딜이나 원딜 모두 마법 공격이 아니고선 공격이 먹히지도 않는다.
주로 90층 이상의 보스들과 함께 나타나는 준보스로 등장하는데, 닿기만 해도 드레인 마법에 의해 인간은 순식간에 해골이 되어 버린다.
현영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에저드 호른과 싸워서 이긴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메피스토가 있는 한 말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인원을 나누는 것이 우선이겠지. 이 근방에는 분명 뱀파이어도 있을 것이 아닌가.”
에저드 호른보다 어쩌면 더 문제가 뱀파이어다.
뱀파이어는 마이너스 계열 공격을 퍼붓는데, 날이 밝기 전까지는 사실상 죽일 수가 없다.
비록 에저드 호른보다 낮은 등급으로 분류가 된다지만, 막상 붙어 보면 그 등급은 밤에만 활동할 수 있다는 한정 때문에 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인원을 나누세.”
“조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현영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연 눈에 띄는 곳을 점찍은 그가 말했다.
“에저드 호른은 헬스하운드에서 맡도록 한다.”
“아하, 그 ‘원펀치 마스터’가 속해 있으니 말입니까?”
이미 공격대 사이에서 태하는 원펀치에 몬스터를 골로 보낸다고 해서 원펀치 마스터라고 불리고 있었다.
“……대단한 청년이지. 그 한계가 궁금해졌어.”
영웅의 탄생, 그것을 목도하고 싶은 현영태의 욕심이 발한 것이다.
그는 태하를 불러들였다.
태하는 현영태에게 측면 준보스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네는 대단한 헌터야. 좋은 자질을 가졌지. 아마 소수의 인원으로 에저드 호른을 묶을 수 있을 거야.”
“잡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가 메피스토를 공격할 때까지 놈의 시선을 끌면 되는 거야.”
60층 이상의 던전으로 올라가면 보스는 혼자서 다니지 않는다.
준보스, 혹은 챔피언 몬스터 다수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레이드의 인원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영태는 약간의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자네가 죽을 수도 있어.”
“죽지 않습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중하게 결정해.”
“전 언제나 신중합니다.”
“흠, 그래?”
현영태는 태하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태하에게 자신의 목걸이를 주었다.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일세. 하지만 자네가 임무를 완수해준다면 내 반드시 보상을 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고맙네!”
***
이제 에저드 호른과의 싸움은 헬스하운드에게로 넘어왔다.
-끼에에에.
인간의 것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동물의 목소리도 아닌 요상한 비명이 흘러나오는 에저드 호른.
태하는 그런 에저드 호른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스릉!
“조금만 버티자고요. 다들 힘냅시다!”
“오오……!”
여전히 힘이 넘치는 헬스하운드.
허나, 어쩐지 고영수는 얼굴에 그늘이 진 것 같은 모습이다.
‘충격이 컸나 보군.’
환두대도를 잃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이 헌터의 숙명이다.
“자, 갑시다!”
헬스하운드가 진형을 갖추었다.
그러자 에저드 호른이 웃으며 말했다.
-……@$%$#%^&$%#^#$. 켈켈켈!
순간, 동료들이 잠시 멈추었다.
저놈이 지껄이는 말이 어쩌면 작금의 사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하 씨, 뭐래요?”
“……문이 열린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 죽을 거라는데요?”
“아니, 그게 무슨 뜻이지?”
“흠, 잠시만요.”
태하는 놈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미친놈아, 무슨 문이 열린다는 거야?”
-그분께서 오신다! 어둠의 황제 카이튼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운명의 서판으로……. 아니, 잠깐! 인간이 우리의 말을 하다니?!
“이 새끼가 왜 말을 하다가 말아? 계속해. 뭐가 어쩌고 저째?”
아마도 지금까지 몬스터의 말을 이해하는 인간은 처음이었기에 에저드 호른도 적지 않게 당황했던 모양이다.
허나, 그는 오히려 자기의 말을 알아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
-켈켈켈! 그렇다면 알려 주지! 우리의 황제 카이튼께서 지상으로 올라오시면 너희들은 모두 죽는다!
“카이튼이 누구인데?”
-켈켈, 인간! 무식하구나! 카이튼은…….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
-이런 멍청한 먼짓덩어리. 적에게 서판에 대해 지껄이다니!
-배, 뱀파이어 남작!
메피스토의 하수인이라 알려진 뱀파이어 남작.
허나, 헬스하운드는 이놈이 보통의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보통의 뱀파이어가 아닌 것 같아요.”
뱀파이어 남작이라는 놈은 다짜고짜 공격을 시작했다.
-흐아아!
박쥐로 변해 버린 뱀파이어는 이내 빠르게 이동하더니 곧바로 태하를 둘러쌌다.
그리고 시작되는 흡혈.
츠츠츠츱!
‘……딜에서 내가 밀린다!’
압도적인 흡입력이었다.
게다가 캔슬레이션도 통하지 않았다.
[캔슬레이션 실패: 레벨이 낮습니다]
[상대의 레벨이 당신보다 높습니다]
순간, 태하의 신영이 바닥을 향해 쓰러져 내렸다.
쿠웅!
“……태하 씨!”
-크하하하! 이런 하찮은 인간 따위가!
한편, 에저드 호른도 남은 동료들을 향해 소름 끼치는 이를 드러냈다.
소용돌이치는 드레인 체인지가 발동되었다.
-크아아아아!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는 유령.
잘못하면 이대로 놈의 먹이가 될 수도 있었다.
핑핑!
화살을 날려 보았지만 먹히지 않는다.
“원딜이 안 먹혀요! 근딜이 필요한데……!”
환두대도를 잃어서 무기가 없어진 고영수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다니!”
바로 그때, 에저드 호른의 옆구리에서 팔이 뻗어 나와 한나를 공격했다.
퍼억!
“으흐윽!”
“한나 씨!”
희란은 곧장 순백의 신성과 힐링 마법을 시전했다.
허나, 그것은 에저드 호른에게 금방 흡입 당하고 말았다.
스스스스……!
-꺼억! 아이고, 맛 좋다!
“……내 마법이?!”
-진짜 식사를 시작해 볼까?!
에저드 호른은 이마로 주먹 모양을 만들더니, 그것으로 희란을 공격했다.
빠각!
“꺄악!!”
그저 한 방의 공격으로 희란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으윽! 파티를 지켜야 하는데!”
“희란 씨는 우리가 지킵니다!”
영수와 용팔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이제 태하는 전투 불능이 되었으니 별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끼이이잉……!
뱀파이어의 몸이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슬그머니 일어서는 태하.
“……굿모닝, 이 씨부랄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