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헬창, 유명세를 타다!(1)
서울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의 공간이었던 남산이 순식간에 위험 지대로 변해 버렸다.
총 1,250명의 헌터들이 모였고, 군대와 경찰까지 남산 일대를 둘러쌌다.
이번 공격대장은 한라의 수장 현영태였다.
현영태는 최전방에서 공격대를 진두지휘하는 근접 딜러다.
금색 건틀릿을 착용한 현영태가 남산 정상을 노려보았다.
“준보스는?”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남산 중턱까지 거대한 나무 넝쿨이 뻗어 올라간 것으로 보아 레벨 5 이상의 메피스토가 소환하는 몬스터들은 전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제기랄. 난이도가 상당하겠는데?”
메피스토는 죽음의 지대에 일종의 던전을 짓고 사는데, 이 던전 곳곳에 적의 유격 병력이 숨어 있다가 기습을 가한다.
“레인저가 필수적이다. 얼마나 모집했지?”
“6명이 모였습니다.”
“……흠.”
“요즘 탱커와 힐러의 수요가 많은 데다 대량 살상 계통으로 진로가 몰리다 보니, 레인저에 특화된 스킬을 얻어도 그쪽으로는 아예 발도 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레인저는 적의 매복이나 기습을 파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대규모 레이드가 아니면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비인기 직종이다.
허나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레이드에서 그들이 없다면 죽음을 불사해야 할 수도 있다.
“적당한 길라잡이가 없겠는가?”
“마침 적당한 지원팀이 있기는 합니다.”
“레인저들인가?”
“그건 아니고요. 탱커 1명에 근딜 1명, 궁딜 1명, 시너지 딜러 1명, 그리고 힐러 1명입니다.”
“그건 그냥 일반 파티 아니야?”
“그래도 일단 수색에 자신이 있다고 하니 한번 믿어 보시죠.”
잠시 고민하던 현영태는 별수 없이 돌파를 결정했다.
“시간이 없어. 일단 실력 좋은 탱커 라인과 함께 지원자들을 섞어서 전방으로 보내도록 하지.”
메피스토는 광범위 마법을 사용하는 데다 자유자재로 소환술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서울 시내 하나가 날아가는 것으로 안 끝날 수도 있었다.
현영태는 출격 전에 지원팀의 이름을 물었다.
이번 작전에서 희생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자 팀의 이름은?”
“헬스하운드입니다.”
“이름이 특이하군.”
“그럼 출발할까요?”
“가지.”
대규모 공격대의 선두 열에 출발 신호가 전해진다.
치익!
-여기는 지휘부, 지금부터 선두 열이 돌격을 시작한다. 무전 용어는 특별히 없고 최대한 간결하게 핵심 내용만 전달한다.
-알겠다!
-카피!
선두 열의 수색대가 출발하자, 하늘에 까마귀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까악, 까악!
“……재수 없게 까마귀라니?”
“허억! 까마귀가 인간의 형태로 뭉쳐집니다!”
까마귀는 하나로 똘똘 뭉쳐지더니, 이내 3m가 넘는 장신의 인간형 몬스터로 변했다.
바로 뱀파이어였다.
-……아라흐 흐러시어하!
“고대 언어를 사용합니다! 59층의 보스이자 60층의 준보스 뱀파이어가 분명합니다!”
“아주 골고루 나오는군.”
“……마나의 흐름이 빨라집니다!”
삐비비빅!
던전의 이상 현상을 감지하는 기계는 마나의 흐름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감지기의 수치가 춤을 추고 있었다.
“어서 빨리! 뭔가 벌어지려고 한다!”
수색대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남산을 올랐다.
시간이 없음을 절감한 것이었다.
***
헬스하운드는 선두 열 수색대에 합류했다.
쉬지 않고 산비탈을 달려 올라갔다.
“헌터님, 방금 누군가 고대어를 읊조린 것 같아요!”
“메피스토의 가디언인가?”
부르르르……!
고영수의 환두대도에 진동이 느껴진다.
“귀영의 환두대도는 강력한 위협이나 위협적인 존재의 등장을 알려 줍니다. 이거, 범상치 않은 진동인 것 같군요.”
“그럼 마법이라도 한 방 떨어진다는 것일까요?”
“아마도…….”
만약 던전에서 마법이 떨어진다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벨탑은 외부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홍수가 나든 유성우가 떨어지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이곳은 민가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중심가다.
“메피스토의 범위 공격의 반경이 얼마나 될까요?”
“최소가 1,600m 정도? 마력이 강해지면 최대 2.5km까지 반경에 들어와요. 물론, 드문드문 유효타가 뜨겠지만요.”
“……젠장, 민가가 범위 내에 들어오네요?”
메피스토의 마법 공격이 단 한 방만 히트해도 서울 시내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다.
수색대 50명이 빠르게 비탈을 올라가는 도중에 뭔가 묵직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어쩐지 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옵니다!”
고영수의 외침이 채 터지기도 전에 전방의 헌터 12명이 그대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끄아아악!”
으드드드득!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그들.
태하는 이 공격의 출처가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끄에에에엑!
“젠장, 웅골리안트?!”
메피스토의 던전을 지키는 가디언 중 하나인 웅골리안트는 몸길이가 무려 15m나 되는 괴물 거미다.
주로 독침을 사용하며 신출귀몰하기가 그야말로 귀신과도 같았다.
수색대장 도연준은 난색을 표했다.
“젠장! 반드시 최전방으로 가야 합니다! 강행돌파를 감행합시다!”
“하지만 웅골리안트는 버프를 받은 딜러가 최소 30명은 있어야지 잡습니다! 이대로는 우리 모두 다 죽어요!”
70층의 준보스를 50명의 수색대가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쿠그그극!
진동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이었다.
“별수 없지. 우리가 갑시다.”
“……헬창 헌터?”
태하의 헌터 등급은 아직 실버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헬창 헌터의 명성은 오히려 골드보다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실버 등급이잖아요?”
“……죽을 텐데.”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태하는 괘념치 않는다.
헬스하운드의 전략은 간단하다.
모두가 태하와 연결되어 서로 힘을 주고받으면서 전진한다.
그리고 빈틈이 보이면 언제든 태하가 상대방의 코어를 먹어 치워 싸움을 끝내는 것이다.
-끄에에에에!
“옵니다!”
“산개!”
스트랩을 잠시 끊고 양쪽으로 갈라진 헬스하운드.
이곳에 오기 전에 잠깐 합을 맞춰 보았는데, 새로운 멤버들도 하던 가락이 있어서 실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한나는 딜러 용팔을 밀어주었다.
“용팔 씨, 가속이요!”
[스킬: 중력 제어]
[대상 ‘용팔’에게 -200%의 중력 제어를 버프합니다]
“……오옷!”
가속 버프를 받은 용팔은 그대로 가이드 샷을 날렸다.
[스킬: 가이드 샷]
[현재 옵션: 추적, 가속, 관통]
마치 지대지미사일라도 날아가는 듯, 후폭풍까지 강하게 일었다.
쐐에에엥!
웅골리안트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끄, 끄에에……?
놈의 한마디는 태하의 귀에 인간의 언어로 번역되어 들려온다.
“놈이 쫄았습니다! 이게 뭐냐는데요?”
“후후, 뭐긴, 네 제삿밥이다!”
웅골리안트는 빠르기가 가히 개미와 같은 놈이다.
샤샤샤샤샥!
무려 100m를 3.2초에 달리는 웅골리안트를 잡을 수 있는 생명체는 그리 많지 않다.
허나 놀랍게도 용팔의 가이드 샷은 그것을 가볍게 따라잡았다.
[옵션: 가속이 부여됩니다]
심지어 방향을 꺾어도 따라붙었다.
파앗!
좌로 꺾으면 좌로, 우로 꺾으면 우로 따라붙는 화살.
[추적]
피융, 퍼어억!
웅골리안트의 다리가 가이드 샷에 맞아서 휘청거렸다.
-끼, 끼에……?
“뒈져라!”
이어지는 추가타.
[스킬: 멀티 애로우]
[화살 숫자: 45개]
[특성 옵션: 관통]
부채꼴로 퍼진 화살이 웅골리안트의 눈에 박혔다.
파바바박!
-쿨럭!
가이드 샷은 놈이 피를 토할 때를 맞춰서 몸통 사방팔방을 쑤시고 다니며 관통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는 없었다.
“허어! 저게 뭐야?!”
“어지간한 SS급 궁딜도 흉내조차 못 낼 공격이잖아?!”
“헬스하운드, 진짜 다크호스로구나!”
“쟤네들이 왜 아직도 B급이야? 협회 미친 거 아냐?”
그동안 귀영의 고영수가 왜 헬스하운드에 가입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업계에 남아 있었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이 한 방으로 종식되었다.
태하는 고영수와 희란에게 외쳤다.
“고영수 씨!”
“그냥 영수라고 부르세요.”
“네, 영수 씨! 같이 마무리합시다!”
“오케이!”
“땡땡이는 순백의 신성 한 방 쏴 줘!”
고영수가 태하와 함께 돌격할 때, 희란은 그들의 몸에 ‘순백의 신성’을 걸어 주었다.
[스킬: 순백의 신성]
[독성 마법 및 디버프 효과 제거]
[지속 시간: 15분]
희란은 거는 김에 주변 동료들과 자신에게도 한 방씩 순백의 신성을 걸었다.
어차피 마력 소모도 얼마 안 되는 데다 중첩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태하는 도움닫기와 함께 스트랩을 뻗어서 웅골리안트의 대가리를 붙잡았다.
“간다!”
쐐에에엥!
빠르게 날아간 태하는 웅골리안트의 독침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돌진했다.
-타헤엑!
“그따위 타액 공격은 안 통한다!”
태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미의 발밑을 지나가며 환두대도를 뽑는 고영수.
스릉……!
[스킬: 헤이스트]
[공격 속도 및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1.8배 빨라진 고영수는 웅골리안트의 옆구리를 칼로 그었다.
서걱!
그러자 흘러나오는 녹색 혈액들.
-끼에에엑!
“지금입니다!”
태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스킬: 집중 고립]
[상상에 따라 고립, 강화됩니다]
이제 태하는 생각만으로 근육이 고립되어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해머 미들 로우 머신!”
가만히 밥을 먹다가도 가슴근육을 누른다거나 운동 자세를 취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헬창일 가능성이 크다.
태하에게 있어도 그런 헬창스러운 행동은 일종의 운기조식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알아서 강화된 근육, 그리고 주먹을 거침없이 뻗는다.
콰아아앙!
이 한 방으로 웅골리안트의 두개골에 금이 가 버렸다.
빠가각……!
웅골리안트는 휘청거렸다.
“……스턴이야!”
“인간이 웅골리안트를 때려눕힐 수 있다고?!”
너무 강한 타격을 받아 물리스턴이 걸린 것이었다.
태하는 스트랩을 뻗어 웅골리안트의 몸통 안에 집어넣었다.
우드드득!
그는 웅골리안트의 거대한 육신을 마음껏 약탈했다.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6]
[웅골리안트의 스킬을 약탈합니다]
[두뇌와 특성을 약탈합니다]
이제는 특성까지 약탈할 수 있게 된 태하.
그는 웅골리안트의 몸을 스트랩으로 돌돌 감아서 나무 위에 매달아 두었다.
“나중에 먹어야지.”
이제 원한다면 아예 식용으로 놈을 섭취할 수도 있었다.
태하는 동료들과 짧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짜악!
“오케이, 헬스하운드!”
“고립, 고립, 고립!”
“우리 대장, 진짜 많이 세졌네! 든든해, 정말! 멋있어!”
한편 이를 지켜보던 수색대는 이 엄청난 공격에 할 말을 잃었다.
더 할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괴물이다! 저 사람들은 진짜 괴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