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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32화 (32/197)
  • 032 남산 레이드(2)

    사상 초유로 바벨탑 밖에서의 레이드가 잡혔다.

    태하는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전했다.

    동료들은 곧바로 대치동의 헬스하운드 아지트에 모였다.

    3,000평 규모의 이 건물은 폭격이나 자연재해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건물 한쪽 벽면이 S급 장비로 가득 차 있었고, 여러 가지 전술 장비까지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군사시설이 따로 없었다.

    동료들은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60층의 예습이 되겠군요!”

    “그나저나 아직 근거리 딜러는 못 구했는데 파티는 어떻게 짜죠?”

    태하와 용팔의 걱정에 한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구했어요!”

    “구했어요? 누구인데요?”

    “음, 이제 곧 올 때가 되었는데.”

    한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지트의 입구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똑똑.

    원격으로 문을 열어 주자, 보이는 실루엣.

    “……환두대도?”

    “SNS로 연락이 왔어요. 귀영의 고영수 씨가 겸임으로 헬스하운드로 들어오고 싶다고요.”

    귀영의 수장 고영수는 바벨탑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암살 계열 검사다.

    어떤 이들은 고영수를 검귀라고도 불렀는데, 그만큼 신묘한 스킬을 많이 사용한다.

    고영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고영수입니다.”

    “귀영의 수장께서 입단을 하신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얼마 전부터 쭉 정태하 씨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 번쯤은 함께 사냥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본부장님께서 겸임 입단을 허락하셔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흐음!”

    “본부장님께서는 헬스하운드와의 계약을 통해 의뢰를 맡기고 싶다는 뜻도 밝히셨습니다. 만약 저를 받아 주신다면 함께 임무도 수행하시는 겁니다.”

    고영수를 받아 주는 것은 강력한 근딜을 확보함과 동시에 고정 의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기도 했다.

    태하와 동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저는 좋아요.”

    “나도 찬성!”

    “그럼 고영수 씨를 근딜로 영입하는 것으로 합시다.”

    고영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만, 고영수 씨. 우리 근딜로 들어오면 평생 못 나갑니다. 몇 가지 조건도 붙을 거고요.”

    “괜찮습니다.”

    태하는 창고에서 엄청난 크기의 대검을 가져다가 내려놓았다.

    쿠웅!

    “이걸 꼭 써 주셔야 하는데요?”

    “……대검?”

    “쓸 수 있겠어요?”

    굳이 이걸 왜 써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고영수는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검을 들더니 자신의 등에 둘러맸다.

    “무기야 많으면 좋죠.”

    근딜이 갖춰졌으니 사냥의 질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동료 등록: 고영수]

    [인연의 사슬 - 원 플러스 원]

    [동료3 ‘고영수’가 원 플러스 원의 효과를 받습니다]

    동료 등록이 끝난 후.

    고영수는 약간 놀란 눈이 되었다.

    딩동!

    [퀘스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도감 작성]

    “퀘, 퀘스트……?”

    “아하! 그거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우리 파티에 들어온 이상, 신기한 경험을 아주 많이 하게 될 겁니다.”

    크게 놀라는 고영수. 허나 이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태하는 그에게 무기 사용에 관해 설명했다.

    “무기가 요구하는 스텟이 있을 겁니다.”

    “힘 412, 체력 215, 민첩 112……?”

    “네, 아마도 지금은 그 스텟에 못 미칠 겁니다.”

    “……절반도 채 안 됩니다.”

    태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근육 안에 길이 있습니다.”

    “……근육?”

    고영수의 표정이 약간 복잡해지는 듯했다.

    이윽고 한나는 힐러에 관해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힐러는 언제쯤 도착해요?”

    “지금 우리 집에 짐을 풀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혹시 같이 살아요?”

    “그렇게 됐습니다.”

    “……진심이에요?”

    바로 그때, 아지트의 문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똑똑.

    “열렸어!”

    문으로 들어선 그녀.

    희란을 보며 동료들이 경탄을 쏟아 낸다.

    “……엄청난 미인이네?”

    “처, 천사인가?”

    당사자인 희란은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하희란이라고 해요. 간호사관학교에서 힐, 순백의 신성을 배웠고 레벨 1의 치유 마법을 쓸 수 있어요.”

    “……간호사관학교? 뭐야, 그럼 엘리트 아니에요? 이야, 그레이트하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튼, 잘 부탁드려요.”

    자연스럽게 태하의 곁으로 다가와 서는 그녀.

    용팔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우와, 그럼 우리도 이제 힐러를 보유하게 된 건가요?! 이야,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제 던전에서 누울 일은 없겠네!”

    “부끄럽네요. 저는 아직 각성도 못 했고, 그저 힐링 마법을 배웠을 뿐인데요.”

    “간호사관학교에서 힐링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1%도 채 안 되잖아요! 그럼 엘리트지!”

    인간은 각자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있는데, 희란은 그중에서도 이타적인 성향으로 각성 없이 힐링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특이체질이었다.

    다만, 이런 특이체질은 각성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태하는 희란에게 전용 무기를 건네주었다.

    “꽤 무거워. 입단 조건이었는데, 괜찮겠어?”

    “……악바리 근성으로 해내야지! 우리에겐 목표가 있잖아요?”

    희란은 근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간호학교에서 운동을 했었고, 헌터 생활을 하면서 태하와 운동 파트너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런 희란에게도 구원자 스태프는 버거울 정도의 무게였다.

    “당장은 그걸 사용할 수 없을 거야. 그렇지?”

    “힘이 168, 민첩 211, 체력이 1,112라는데? 인간이 이걸 들 수 있긴 한 거야?”

    “해야만 해. 그래야 100층까지 올라가.”

    “……그럼 죽더라도 해내야지!”

    태하는 희란을 동료로 등록했다.

    [동료 등록: 하희란]

    [인연의 사슬 - 원 플러스 원]

    [동료4 ‘하희란’이 원 플러스 원의 효과를 받습니다]

    여기까지는 희란도 다른 동료들과 같았다.

    허나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인연의 사슬 -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를 되찾으셨습니다]

    [탑의 수호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보냅니다]

    [소울메이트와의 상호작용이 발전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

    늦은 밤.

    아지트에 홀로 남은 태하가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도대체 도심에 메피스토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태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얼마 전에 먹었던 트롤의 코어 속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끼이이잉!

    [트롤의 기억을 투영시킵니다]

    [주마등을 획득하셨습니다]

    트롤의 기억이 마치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치기 시작한다.

    아직 스킬 레벨이 부족해서 기억에 동반되는 사운드나 색감 등은 재현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래도 트롤의 기억은 분명히 태하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트롤의 기억은 의외로 인간의 것이었다.

    -……돌격!

    -와아아아아!

    마치 중세의 전쟁을 보는 듯한 장면.

    허나 그 중간중간에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니 보통의 전쟁은 아닌 것 같았다.

    ‘뭐야, 트롤도 꿈을 꾸나? 아니면 게임 같은 걸 했었나? 아님, 전생의 기억?!’

    전생의 기억이라든지, 심어진 기억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현실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파앗!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밝은색으로 통일된 방이 보인다.

    마치 실험 시설, 혹은 연구실과 같은 느낌이랄까.

    손발이 묶여 있었고, 전신은 세탁기에 넣고 빨래질을 해 버린 듯 엉망이었다.

    “크으으윽!”

    기억은 그 고통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색깔은 구별되지 않았지만, 그 감각은 그대로였다.

    끼이이이잉!

    흐릿한 의식 너머로 밝은 빛이 보인다.

    ‘……허엇! 이것은?!’

    아까 헬스장에서 보았던 그 불빛이 분명했다.

    그리고 스치듯이 보이는 얼굴.

    파앗!

    기억은 여기서 끊어졌다.

    더 이상의 기억은 없었지만, 마지막에 본 그 얼굴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 꼬마, 뭐야?”

    빛을 일으킨 사람은 꼬마가 분명했다.

    헌데 그 꼬마가 정체불명의 실험실에는 왜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아마도 남산에 있을 것이다.

    “남산을 돌파한다!”

    ***

    청금타워 옥상에 오른 백선이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알싸한 수제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어르신, 명령하신 아수라의 회사들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고생 많았네.”

    “하지만 몇몇 회사는 도저히 회수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워낙 출자 구조를 복잡하게 꼬아 놔서 말입니다. 채권을 일거에 회수한다면 몰라도요.”

    “……흑막의 힘이 대단한 모양이로군.”

    “그런데 어르신, 아수라 이놈들 말입니다. 재미있는 실험을 했지 뭡니까?”

    “재미있는 실험이라니?”

    백선의 오른팔인 김동수가 몇 장의 사진을 백선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은 백선의 눈매가 일순간 사나워진다.

    “……입자가속기?”

    “초기 화이트홀 연구를 진행했던 인물들을 깡그리 잡아다가 연구소를 세우고 사설 입자가속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최근에 꾸준히 가동되어 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화이트홀을 연구해 왔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신형 입자가속기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는 마이너스 코어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30회 실험마다 하나씩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헌데 말입니다…….”

    김동수는 마이너스 코어가 운반되었던 기록이 담긴 운송장을 백선에게 보여 주었다.

    “아수라의 자회사 중 하나인 특별운송업체의 기록을 발췌한 것입니다.”

    “운송장에 마이너스 코어를 옮긴 기록이 있군.”

    “예, 그렇습니다. 던전 관리국에 협조를 구해서 던전 기록을 살펴보니 불안정 진동을 보였던 그때와 기록이 일치했습니다.”

    “……화이트홀을 뚫어서 몬스터를 소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강화와 소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작금의 남산 사태 역시……?”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백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져 간다.

    “몬스터의 출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대낮에 트롤이 나타나서 시민을 공격했고, 이블아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던전에서 잡아 온 것인가?”

    이를테면 던전에 구멍을 뚫었다든가?

    백선은 이대로 둔다면 필경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아수라 길드의 계열사들을 인수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접선하게. 한시가 급하네.”

    “예, 어르신!”

    바로 그때였다.

    파앗!

    공중에서 한 신영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는 백선의 측근 남궁인이었다.

    “어르신!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던 회사들을 모두 경쟁입찰로 전환하겠다고 합니다.”

    “……뭐? 갑자기?”

    “입자가속 연구소와 코어 관련 설비업체들의 지분은 벌써 40%나 빠졌다고 합니다.”

    “공격적 인수합병을 준비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잠시 생각해 보는 백선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태하 군. 그 친구, 아직 청산 절차 마무리 안 되었지?”

    “네, 그렇습니다. 워낙 금액이 커서요.”

    “……여러모로 그 친구를 등용할 때가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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