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31화 (31/197)

031 남산 레이드(1)

늦은 밤.

서울태산병원으로 구급차 여덟 대가 달려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박태수는 구급대원들과 함께 환자를 데리고 달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8명 모두 중상, 지금은 의식도 불분명합니다!”

박태수는 환자들의 환부를 살폈다.

“……몬스터?”

환부에 이빨 자국이 선명했고, 온몸이 발톱에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던전에서 온 건가요? 몇 층에서 구해 왔습니까?”

“서울 시내 한복판입니다.”

순간, 박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요?”

“골목에서 누가 사람이 죽어간다고 신고를 해서 출동해 봤더니 이 상태였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이거, 몬스터에 의한 것이라고요!”

구급대원들은 설마하니 몬스터가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출몰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건 박태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선생님, 어레스트입니다!”

“……뭐라고?!”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응급실.

박태수는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심장마사지를 했다.

허나 결과는 사망.

삐이-.

“……심장, 정지했습니다!”

“빌어먹을!”

바로 그때였다.

“……!”

다시 눈을 번쩍 뜨는 환자.

“어, 어어……?!”

“……여기가 어디입니까?”

“태산병원이요! 정신이 좀 드세요?!”

환자는 이내 자신의 몸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뱉는 한마디.

“……젠장, 서판이 없어?!”

“왜 그러세요?”

“전화 좀 쓸 수 있습니까? 긴급 상황이라서 그럽니다.”

***

서울태산병원으로 태하는 차를 몰았다.

끼기기긱!

드리프트를 하며 응급실 앞에 멈추어 섰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운전대를 놓고 나온 태하는 응급실 안으로 달려갔다.

“사람, 사람이 다쳤어요!”

“상태는요?!”

의사가 달려 나와 물었지만, 태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강력한 폭발이 있었고, 보현 관장은 폭발과 함께 튕겨 나가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보현을 데리고 태하는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보현 관장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며 의사가 태하를 상대로 문진을 했다.

“폭발이 있었다고 했나요?”

“네! 그랬었지요.”

“그로 인해 두뇌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가벼운 뇌진탕 때문에 아직 깨어나지 못하시는 겁니다.”

태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사의 말대로 곧 보현 관장이 눈을 떴다.

“으음…….”

“관장님!”

의사는 눈을 뜬 보현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안광… 보입니다.”

“손발 움직여 보세요.”

다행히도 움직임에는 이상이 없었다.

몇 가지 반응을 확인한 의사는 웃으며 터치 패드에 ‘퇴원’을 클릭했다.

“나갈 때 수납하시고, 며칠은 집에서 쉬세요.”

“감사합니다!”

태하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관장을 부축했다.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며 아리따운 여성이 달려왔다.

“관장님!”

“……희란이? 아이고, 우리 진또 희란이!”

“관장님, 진또가 뭐예요! 아이참,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나저나 희란이 네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냐?”

“대장한테 들었어요. 많이 다치셨다면서요!”

“하하, 많이는 무슨. 그냥 뚝배기에 스크래치 하나 난 거지, 뭐.”

태하와 함께 운동을 했었던 희란을 보현이 모를 리가 없다.

보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하다. 내 꼴이 이래서 원…….”

“아니요, 괜찮아요. 이 정도로 끝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재회한 두 사람에게 태하가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관장님,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손님이 있다고 했었죠? 바로 희란이였어요.”

“……오, 그래?”

관장의 눈이 반짝 빛난다.

그녀의 별명이 진또인 이유.

태하가 미치광이라면, 그녀는 ‘진짜 또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운동에 미쳤었다는 소리다.

“그럼 이제 우리 체육관으로 다시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오호, 그래! 그렇단 말이지?”

태하만큼이나 탐나는 인재다.

희란이 왔다는 소식에 보현 관장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수납을 하고 나가는 길에서 보현 관장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 참! 형사들은?!”

“형사들은 경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네. 그나저나 그 꼬마, 뭐지?”

“아까 그 헬스장에서 본 꼬마요?”

“그 폭발, 꼬마가 만든 거야. 옆에 있던 아이 아빠가 손쓰지 않았으면 우리는 지금쯤 살아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몰라.”

“……그랬나요?”

“난 바로 옆에 있어서 볼 수 있었거든. 내가 보니까 아이가 갑자기 정신을 잃는 것처럼 보였어. 그러더니 이내 손으로 공중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군.”

“그림을 그려요?”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하는 느낌이랄까?”

“으음……!”

“그러더니 갑자기 날개 달린 천사가 떡하니 나타나지 뭐야?”

“……천사가 나타나요? 설마하니 그 아이가 그린 그림이 바로 천사였던 것일까요?”

“그런 것 같아. 아이가 중간에 ‘하늘나라 천사님’이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했거든.”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꼬마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 걸까?

“뭐지……? 그럼 그 꼬마가 살인 용의자라는 건가요?”

“그런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람을 죽일 만한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아무튼, 헬스장은 당분간 고립관만 운영해야 할 것 같아. 본관은 아마 못 쓸 거야.”

“헬스장이야 다시 지으면 되죠. 중요한 건 관장님 건강이지.”

“하하! 나, 보현이다! 내가 쓰러질 것 같아?”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걱정이죠. 한 며칠 푹 쉬세요. 어차피 헬스장 개장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러다 회원이 빠지면…….”

“그럴 일 없도록 할게요. 저만 믿으세요.”

보현 관장은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이었다.

“……고맙다, 태하야!”

“별말씀을.”

관장을 태우고 병원을 나가려는데 저 멀리 한 무리의 남자들이 보인다.

형사들이 보현 관장에게 얘기를 들으려 찾아온 것일까?

허나 그들은 태하에게 뜻밖의 것을 내밀었다.

-헌터길드 한라

“정태하 씨,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습니까?”

“……한라?”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통의 사태가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관장님 좀 모셔 드리고 와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보현은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태하에게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모양이다.

“아니, 난 괜찮아. 그러니…….”

“아니요, 관장님. 같이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밖은 상당히 위험한 상태거든요.”

“위험하다니?”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태하와 희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괴물이요?”

“메피스토라고, 아시죠?”

“……!”

권능의 메피스토펠레스, 줄여서 ‘메피스토’라 불리는 악마형 몬스터이다.

한라의 레이드 마스터 한동윤은 그 메피스토가 남산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태하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심에서 몬스터와 싸운 적이 있으시죠?”

“네, 바로 어제요.”

“그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흐음…….”

“헌터협회에서는 상위 랭커 100위에 드는 이들은 물론이고, 최근 한창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생 길드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습니다. 헬스하운드도 참가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혹시 우리 관장님이 쓰러지신 것과도 관련이 있나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메피스토를 막지 못하면 서울시는 초토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메피스토는 원래 60층 보스다.

수많은 모험가를 죽음으로 보내 버린 메피스토가 서울 시내를 휘젓고 다닌다면?

“좋습니다. 동료들이랑 상의한 후, 참가하는 것으로 하죠.”

“공격대 편성은 새벽 3시에 있을 겁니다. 남산에서 뵙겠습니다.”

***

서울 동부의 비상대피소로 보현 관장을 피신시켜 놓은 태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차에는 짐 가방 하나가 실려 있었다.

“정말 이것만 가지고 괜찮겠어?”

“나머지는 지내면서 차근차근 마련할게요.”

희란은 본가에서 살다가 이번에 헬스하운드 합류를 위해 급히 집을 나왔다.

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 것이었다.

태하는 그런 희란이 걱정되었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도착한 태하의 집.

희란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50평이 넘는 복층 아파트에, 있는 것이라곤 몇 개 없었기 때문이다.

“……집이 너무 휑한 거 아니야?”

“남자 혼자 사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냉장고 하나, 전자레인지 하나, 그리고 옷장 하나가 끝이었다.

도대체 집에서 뭘 먹고 사는 것인지, 그 흔한 라면 하나 없었다.

희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으로 채워 줄 게 많겠어. 각오해요. 대장의 그 지갑을 내가 탈탈 털어 줄 테니까.”

“……벌써 긴장되는데, 이거.”

“하여간, 이래서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해. 앞으로는 좀 꾸며 놓고 살자고요. 알겠죠?”

당분간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함께 지내기로 했는데, 태하는 괜한 잔소리꾼을 집에 들였나 걱정이 들었다.

“일단 짐부터 풀게요. 어디에 놓으면 돼요?”

“그냥 편한 곳에 놔. 어차피 방이라고 해 봤자 이불 한 채뿐이야. 어딜 골라도 다 똑같아.”

“……방에 이불 한 채가 끝이라고요?”

“아 참, 더 있긴 해.”

태하는 자랑스럽게 자기 방을 보여 주었다.

이 집에서 가장 넓은 방에는 헬스 기구가 가득했다.

“짜잔!”

“이, 이게 다 뭐야? 집에다가 헬스장이라도 차렸어요?”

“3대 운동은 물론이고 고립 운동까지 가능해! 이야, 세상 참 좋아지지 않았냐?!”

“아니, 어차피 운동은 헬스장에서 하지 않아요?”

“레이드 끝나곤 헬스장 가기 힘들잖아. 아무리 거기가 직장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래서 집에서 씻고 헬스 하려고 만들었어! 어때? 죽이지!”

태하는 인생이 헬스다.

눈을 떠서 잠드는 그 순간까지 그는 쇠질을 끊지 않는다.

심지어는 던전에서 사냥을 하는 순간에도 원판으로 몬스터를 때려죽이지 않던가.

희란은 실소했다.

“참, 대장답다. 그래, 이래야 대장이지.”

“그래! 너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어!”

태하가 포용을 잘하는 성격이라면, 희란은 이해를 잘해 주는 성격이다.

아마 그녀는 태하가 몬스터를 생으로 잡아먹는다고 해도 이해해 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자, 그럼 공격대에 합류하기 전에 뭐라도 먹고 갈까요? 냉장고에 뭐 있어?”

“냉장고는 꽉 차 있어! 그건 내가 장담하지.”

“오호, 진짜? 진심이야, 대장?”

희란은 웃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삭막한 광경.

닭가슴살과 오징어, 그리고 명태살, 야채만이 가득했다.

“프로틴과 섬유질! 어때, 죽이지!”

“이걸 요리해서 먹는 거야?”

“이미 요리가 되어 있잖아. 야채랑 먹는 거지.”

“……조미료도 없이?”

“응! 넘기기 힘들면 갈아서 먹으면 되고! 어때, 죽이지!”

“아니, 이렇게 먹어서 어떻게 싸워요?”

태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따가 보면 알아. 헬스 신께선 깔끔한 식단을 좋아하거든.”

“……헬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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