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대장의 그녀(1)
이른 아침이었다.
구로공단 인근 뒷골목에서 다량의 혈흔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여덟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들은 마치 퍼즐 조각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그 조각을 다 모아 보니 8명의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구로경찰서 강력 2팀장 주진욱 경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쳤군. 마치 인간을 정육 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잖아?”
주진욱은 범인이 사이코패스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이렇게까지 오체분시를 해 놓았다는 것은 정상인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학수사대에서는 아주 예리한 무언가로 이뤄진 폭발물에 의해 살해되었다는군요.”
“예리한 무언가라니?”
“왜, 수류탄이 터질 때 말입니다. 직접 폭발보다는 파편에 의한 피해를 노리고 수류탄을 던지잖습니까? 그런 것처럼 뭔가 예리한 물체로 이뤄진 폭발물이 터지면서 파편 효과에 의해 사람들이 조각나서 죽었다는 거죠.”
“얼마나 원한에 사무쳤으면 그런 짓을…….”
“오히려 살해 그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았을까요? 원한이나 유희에 의한 살인이 아니고요.”
“으음…….”
사람을 가장 빠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터뜨려 죽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죽이는 것에만 몰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목적인 살인이라…….’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은 아무것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목격자는 좀 찾았어?”
“아니요. 증거는커녕 CCTV 화면도 엉망이랍니다.”
주진욱의 눈두덩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CCTV 화면이 갑자기 왜 엉망이 되었어? 여긴 우범 지역이라서 비교적 최근에 CCTV가 교체되었을 텐데.”
“뭔가 전파방해 같은 게 있었다는 모양인데, 사실 전문가들도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답니다.”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주진욱은 보통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고민에 빠진 주진욱을 누군가 불렀다.
“주 경감님!”
“뭐야, 장필순 경사. 강남서에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강남서의 강력계 에이스 장필순 경사가 땀을 뻘뻘 흘린 채 서 있었다.
장 경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입니다!”
“다짜고짜 몬스터라니?”
“지금 몬스터가 이곳으로 도주 중이랍니다. 놈이 워낙 위험하니 주변의 인원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랍니다!”
“뭐?!”
살인 사건 수사 현장은 순식간에 몬스터의 출몰 예상 지역으로 변하고 말았다.
주진욱 경감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장필순에게 물었다.
“아 참! 스마트워치로 긴급재난 문자가 가지 않나?”
“지금은 잠깐 먹통이랍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지금?”
“아무튼, 우리 경찰이 시민들을 지켜야 합니다. 군부대에서 출동하기 전까지 권총으로 놈들을 상대하랍니다.”
쿠웅!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묵직한 진동이 울려온다.
쿵, 쿵, 쿵!
진동은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드러난 놈의 정체에 주진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게?!”
***
이제 막 정오로 향하는 시간.
을지로의 피부과 ‘박 피부과’로 예약 환자들이 밀려든다.
“……정민수 님! 처방전 받아 가세요!”
“41번 환자! 대기 번호 41번이요!”
박 피부과의 간호사들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지이이잉!
희란은 스마트워치의 진동을 느끼곤 메시지의 발신자를 확인했다.
‘……대장인가?!’
얼마 전에 태하는 희란에게 연락을 해 왔다.
꽤 오래전부터 태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전화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긴장된 표정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해버렸다.
-유민석: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에 와인 어떠세요?
기다리던 메시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굳이 답장은 하지 않았다.
이제 예약 환자들이 제법 들어가서 여유가 생겼음에도 답장은 하지 않는다.
동료 간호사들이 물었다.
“왜 답장을 안 하세요?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하던데. 생긴 것도 잘생겼다면서요?”
“……바쁘잖아요.”
“별로 안 바쁜데. 에이, 희란 쌤 어장 관리하시는구나?”
“아닌데요.”
“에이, 맞는 것 같은데! 하긴, 그 얼굴에 그 몸매에 집안까지 빵빵한데, 어장 관리 좀 해도 상관없죠.”
“……아니라고요.”
유민석은 분명 희란이 싫다고 의사 표현을 했음에도 질척거리며 들러붙는 중이다.
그는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고 믿는 치토스 같은 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사코 싫다는데도 연거푸 날려 대는 성희롱까지.
‘그딴 쓰레기가 뭐가 좋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스트레스가 올랐다.
잠시 후, 정오가 되어 브레이크 타임을 갖게 되었다.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팔짱을 끼고 병원을 나선다.
“희란 쌤, 원장님이랑 같이 드시죠? 그럼 저희는 가 볼게요!”
“쿡쿡, 유정 쌤! 카페 알바랑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아, 그거? 원나잇이지, 뭐.”
“어머……!”
자기들끼리 연신 키득거리며 시답잖은 농담이나 늘어놓는 꼴이 정말 우습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희란의 형부 박한진이 가운을 벗고 나왔다.
“어이, 처제! 오늘 수육 죽이는 집 예약했는데. 가볍게 모주 한 잔 어때?”
“저 약속 있어요.”
“약속?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있어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아니, 처제! 잠깐 얘기 좀 해! 장모님이 오늘…….”
“먼저 갈게요!”
“……처제! 혹시 남자 생긴 건 아니지?! 그럼 제일 먼저 얘기해 줘! 나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박찬중은 다 좋은데 처가에 너무 휘둘린다는 게 흠이었다.
가문에서는 어떻게든 희란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기 위해서 아주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형부를 따라가 봤자 잔소리만 듣다가 끝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홀로 지하철 샌드위치 집으로 향하는 바로 그때였다.
지이잉!
-우리 대장: 오고 있어? 지하철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앗, 벌써?!”
희란은 길을 서둘렀다.
병원을 나온 희란은 을지로역을 찾아서 바삐 걸었다.
쿠우웅……!
바로 그때, 희란의 눈썹이 절로 일그러졌다.
“……이거 익숙한 진동인데?”
던전에서 많이 느끼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의 비명이 들린다.
“꺄아아아악!”
“미, 미친! 트롤이다!”
“……뭐, 트롤?!”
“20마리나 되잖아!”
던전 밖에서 몬스터가 발견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2층 이상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하물며 10층에 사는 트롤이라니, 그것도 20마리나 되는 무리가 출몰한 것은 처음이었다.
희란은 일단 엄폐할 곳을 찾았다.
허나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응애, 응애!”
“안 돼! 우리 아기!”
유모차의 손잡이를 놓친 엄마는 진동에 의해 굴러가는 유모차를 잡기 위해 달렸다.
허나 유모차는 트롤의 발을 툭 건드리고 말았다.
-트오?
“꺄아아아악!”
-트오오오오오!
아이 엄마가 트롤을 자극하는 바람에 놈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몬스터들이 도끼를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제가 갈게요!”
희란은 전직 헌터답게 유모차를 향해 날렵하게 몸을 던졌다.
턱!
“잡았다!”
허나, 문제는 아이의 엄마였다.
부웅!
날카로운 도끼날이 아이 엄마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안 돼!”
쐐에에엥!
순간, 어디선가 검은 그림자와 같은 신영이 날아들었다.
까앙!
“이런 개양아치 새끼들을 보았나?”
-트오?
“도끼 치워라. 대가리 터지기 전에.”
“대장!”
태하는 희란을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여어!”
***
도시에서 맞닥뜨린 트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질감 그 자체였다.
허나 태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똥개에 불과했다.
부웅!
트롤이 도끼를 휘두르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스킬: 집중 고립]
순간, 주먹의 강도가 100배 이상 상승했다.
태하는 주먹으로 도끼를 후려쳤다.
파각!
트롤의 조악한 도끼는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트오오오?
“그러게 내가 누누이 말했지. 몸을 키우라고. 그딴 도끼는 믿을 게 못 돼!”
태하는 허리를 비틀어서 장력을 준 후, 주먹을 뻗어 펀치를 만들었다.
[둔근, 광배근, 승모근이 강화됩니다]
[체력 / 민첩 / 힘: ±10 이내]
[타격치 보정]
이제는 스킬을 쓸 때 집중 고립을 통해 생기는 플러스 수치와 마이너스 수치를 잘 조합해서 사용해야 할 때가 왔다.
태하는 스스로 판단했을 때 조합이 가장 좋은 근육을 통해서 공격의 최고 성능을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의 모양대로 결이 갈라지며 날아가는 펀치.
그야말로 바람을 가르며 트롤의 안면에 적중했다.
콰아아앙!
사방으로 후폭풍이 불며 트롤의 몸이 갈가리 찢겼다.
-트웨에에엑!
이윽고 바닥에는 코어가 뒹굴었다.
태하는 그것을 잡아서 희란에게 던져 주었다.
“이것 좀 부탁해!”
“……알겠어요!”
“자, 그럼 나머지도 좀 사냥해 볼까?”
우람한 근육질을 뽐내며 어기적어기적 걸어가는 태하를 바라보며 트롤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도끼를 들었다.
스릉!
-트오오오!
“트오? 트오오!”
순간, 트롤이 흠칫했다.
설마하니 트롤어를 구사하는 인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태하의 말은 만나서 반가워, 여긴 어떻게 왔냐는 질문이었다.
-트오오…….
뭔가 말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이다.
‘무슨 사정 같은 게 있는 건가?’
순진하게도 태하의 질문에 고뇌를 하는 트롤.
덕분에 놈들에게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이때가 바로 기회였다.
태하는 스트랩을 뻗은 후, 그것을 보도블록에 꽂아 당겼다.
휘리리릭!
-트오오?!
“미안하지만 나는 트롤이 아니라서 말이야!”
엄청난 속도로 도약한 태하는 첫 번째 트롤의 턱을 날려 버렸다.
콰아앙!
일격에 넝마가 되어 버린 트롤이 나가떨어졌다.
태하는 곧바로 그 반동을 이용하여 빠르게 회전하였다.
그러면서 꺼내 든 바벨 원판.
쐐에에에엥!
고속 절단기처럼 돌아가는 태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촤라라라락!
트롤 18마리가 순식간에 다짐육이 되어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 놈을 남겨놓은 순간, 태하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팟!
“너는 내게 기억을 좀 줘야겠는데?”
-트오?
태하는 놈의 심장에 촉수를 꽂았다.
퍼억!
그러자 약탈당하기 시작하는 트롤의 모든 것.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5]
[Lv.5를 달성하셨으므로 두뇌까지 흡수합니다]
[두뇌의 영상은 추후에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스킬이 아니던가.
태하는 그제야 몸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젠장, 땡땡이 만난다고 맞춤으로 한 벌 뽑은 건데. 쩝, 어쩔 수 없지.”
“우와아아아!”
“헌터다!”
사람들은 죽은 트롤 사이에서 옷을 털고 있는 태하에게 박수갈채를 쏟아 냈다.
짝짝짝짝!
엄청난 덩치의 태하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그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닌데.”
“혹시 헬창 헌터 아니세요?”
“맞습니다만.”
“오오, 헬창 헌터! 사인 좀 해 주세요! 팬입니다!”
“저도요!”
순식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UCC며 SNS를 뜨겁게 달구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으니 말이다.
“아수라 길드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예요?”
“그건 나중에 신문을 통해 밝히겠습니다.”
“오오!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