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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28화 (28/197)
  • 028 아수라, 나락으로 가다(2)

    청룡방 총본부 ‘청금타워’ 옥상.

    휘이이잉……!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옥상에 선 백선이 물었다.

    “……아수라가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고?”

    “마이너스 코어 3천 개를 공매로 사들인 후에 1만 개를 선매도 주문을 넣었는데, 그 매도 주문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백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마이너스 코어는 결국 아수라 길드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정태하라는 청년이 마이너스 코어 제작 방법을 손에 거머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제작 방법이라…….”

    “그나저나 이제 그 청년, 거물급 인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아수라 길드가 사들인 마이너스 코어 가격만 수십 조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이해관계 청산하고 정부에서 부채 규모를 줄인다고 해도 결국 수조 원은 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돈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

    결국, 코어 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도 돈 때문이다.

    백선은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타락시킬 수도, 반대로 미완의 인간을 완성시킬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두고 보자고. 거물이 될지, 좀생이가 될지.”

    “아무튼, 우리 쪽에서 보수를 지급해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지급할까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줄 건 줘야지. 우리 제2 훈련장을 넘겨주고 그 안에 딸린 것들 모두 지급해 주게.”

    “……그걸 다 말입니까?”

    “왜, 아깝다고 생각하나?”

    “거긴 어르신의 제자들에게도 물려주지 않은 곳 아닙니까?”

    “허허, 약속한 건 줘야지. 그게 제자들과 무슨 상관인가?”

    “한라에서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

    “이유요……?”

    “그런 이유가 있다네.”

    백선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허나 그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서류 정리해서 구청에 제출하겠습니다.”

    백선은 비서진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내려 주었다.

    “아수라 길드 산하의 회사들이 다수 경매에 넘어갈 것일세. 차라리 그럴 바엔 우리가 그 회사를 인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데.”

    “법원 쪽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특히나 비상장 계열사 쪽으로 잘 알아보시게. 연구소나 훈련소 같은 곳 말일세.”

    “아수라 생명연구소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런 회사들은 반드시 우리가 먼저 차지해야 하네.”

    “예, 어르신!”

    ***

    3 대 500도 1kg부터 아니던가.

    태하는 근육으로 레전드를 찍기 위해 꾸준히 던전을 올랐다.

    이른 아침, 태하는 문자를 보냈다.

    이제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용기와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벨탑 30층으로 가는 길.

    촤라라락!

    검은색 화살들이 45개 갈래로 갈라져 발사되었다.

    화살은 마법으로 만들어져, 몬스터들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크웨에에엑!

    무려 던전의 끝에서 끝까지 날아가는 엄청난 관통력.

    이 화살들은 용팔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스킬인데, 이건.”

    “진짜 29층 돌파 보상으로 받은 게 이렇게 화끈할 줄은 몰랐네요!”

    직접 보고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허나 용팔의 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오오오오!

    “골렘이 달려듭니다!”

    “가이드 샷을 실험해 볼 차례로군요.”

    용팔에게 주어진 스킬은 총 2개다.

    하나는 멀티 애로우, 다른 하나는 가이드 샷.

    [스킬: 가이드 샷]

    [관통력: 351%]

    [스킬 대미지는 힘과 근육량에 비례합니다]

    용팔이 가이드 샷을 쏘자, 마치 쐐기가 날아가듯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쐐에에에엥!

    퍼걱!

    몬스터를 그대로 관통해버린 가이드 샷은 그야말로 사기에 가까운 스킬이었다.

    “……뭐야, 이건 또?”

    “이게 어떻게 F등급이라고 하겠어요? 솔직히 29층까지 솔플로 돌아도 되겠는데요.”

    어지간한 궁딜은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스킬이 채 5%도 해금되지 않은 상태였다.

    “스킬의 개수가 30개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죠?”

    “네, 그랬던 것 같아요.”

    “30개라……. 초급 스킬이 이 정도인데 도대체 고급 스킬은 어떻다는 거지?”

    진심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능력이다.

    딩동!

    태하와 용팔에게 동시에 알람이 울렸다.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퀘스트 - 나무지기]

    [생명은 귀중합니다.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씨앗들을 발아시켜 육묘하세요]

    [퀘스트 내용: 신목의 씨앗, 마계화의 씨앗을 발아시켜 아름드리나무로 키우세요]

    [보상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무의 레벨에 비례하여 근육량과 경험치가 영구히 증가합니다]

    [동료 슬롯 +1]

    이윽고 태하의 시야에 변화가 생겼다.

    왼쪽 아래에 씨앗의 발아 상태를 체크하는 탭이 생긴 것이었다.

    “……뭐야, 이거? 홀로그램 같은 것이 생겼네요.”

    “아, 저도 마찬가지인데!”

    “용팔 씨는 뭐래요?”

    “도감을 작성하라는데요?”

    “도감이요?”

    “도감의 숫자만큼 근육량과 경험치가 상승한대요!”

    “허어, 사기퀘! 그레이트하네요!”

    “제 생각도 그래요.”

    알람이 다시 한번 울렸다.

    딩동!

    이번에는 태하에게 퀘스트가 전해졌다.

    [퀘스트 - 수호자의 시련(2)]

    [새로운 동료들과 시련을 완수하세요]

    [퀘스트 내용: 동료와 함께 주어진 아이템을 착용하여 바벨탑 40층의 보스를 처치하세요]

    [보상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경험치 포인트 1,123,133,342 지급]

    [동료 슬롯 +3]

    [지원 사항: 아이템 ‘대천사의 구원자 스태프’, ‘파멸자의 그림자 대검’]

    태하는 이 내용을 용팔과 한나에게 전해 주었다.

    한나는 태하의 스마트워치를 통해 스킬 레벨을 확인했다.

    “인연의 고리가 이제 딱 동료 1명을 더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보너스로 한 자리가 더 생겼으니까 2명을 구하면 딱 맞겠네요.”

    “그럼 힐러와 근딜을 구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누가 좋을까요?”

    태하는 힐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1명 있기는 했다.

    허나, 과연 그녀가 태하를 따를지는 의문이었다.

    “뭐, 이제 슬슬 내려갈까요?”

    “그러자고요.”

    오늘은 30층까지 정복했다.

    지이이잉!

    세 사람이 던전을 내려가려는데 태하의 스마트워치에 진동이 울렸다.

    -부동산등기 이전 사항

    -증여인: 청룡방

    -증여 목록: 대치동 특수 훈련 목적 건물 외 3개

    태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했다.

    “……대치동에 아지트가 생긴 것 같은데요?”

    “우와, 진짜요?! 그럼 이제 헬스장에서 꾸역꾸역 장비 챙겨서 다닐 일은 없겠네요!”

    “그렇죠!”

    “그럼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가 갈까요?”

    “그럴까요?!”

    ***

    대치동 바벨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

    제법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휘이잉……!

    고층 아파트와 학원가가 밀집했던 대치동은 원래 아파트 가격의 바로미터라고 불렸지만, 바벨탑이 들어선 이후에는 그야말로 슬럼가가 되어 버렸다.

    과거의 고층 아파트들은 이제 노숙자들이나 범죄자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고, 상가라고 해 봤자 뒷골목 장물아비들이나 마약 상인들이 전부다.

    허나 그런 슬럼가의 중간에 떡하니 자리 잡은 철옹성.

    [청룡담]

    바벨탑의 전설로 불리는 백선이 처음 80층을 돌파하고 세운 곳이 바로 이곳 청룡담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청룡방의 정수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룡담을 찾아가니 시큐리티 가드 4명이 태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아세요?”

    “헬스하운드가 청룡담을 인수하였으므로 이제 헬스하운드의 등기도 청룡담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제가 모시는 분들의 성함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지요.”

    강철로 만들어진 요새.

    이곳을 지키는 시큐리티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A급 이상의 전투력을 가졌다는 말이 있었다.

    청룡담의 보안 총괄 황문식은 태하 일행을 이끌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황문식은 청룡담 제1동 ‘청룡무고’의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문에 무려 4중으로 둘러싸인 청룡무고는 350평 규모의 거대한 창고 형태였다.

    사면이 전부 각종 무기와 갑옷 등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지금까지 백선 어르신께서 던전을 돌면서 모으신 아이템들입니다. 평균 희귀 등급 이상의 아이템들만 모아 놓으셨지요.”

    “이, 이걸 전부 다 저희에게 증여하신 건가요?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던데…….”

    “청룡담은 국가에서 지정한 국가안전재단 사업물입니다. 아시다시피 미술관이나 사회복지사업 등 공공 영리의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은 재산 공개의 의무가 없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앞으로 헬스하운드는 국가안전재단 청룡담의 이사장으로 등록될 겁니다.”

    태하와 동료들은 이사장이라는 직함에 대해선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허나 이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기도 했다.

    재산 공개의 의무가 없다는 건, 한마디로 어떠한 암흑의 단체라도 능히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우와! 장비 그레이트하다! 이 정도면 평생 장비 걱정할 필요 없겠는데요?!”

    “용도에 따라서 쓰시면 됩니다. 안내서도 동봉되어 있으니 잘 읽어 보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비에는 마법이 부여되어 있었는데, 그 등급이 A급 이상 희귀 등급이었다.

    흔히 ‘레어 아이템’이라 불리는 이 장비들은 사실상 시장에선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는 세계에 딱 3개밖에 없는 장비들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청룡담이라는 곳은 정말 엄청난 곳이로구나.”

    “하지만 청룡담의 진가는 다른 곳에 있지요.”

    “백선 어르신께서 또 뭔가를 숨겨 놓으셨다는 뜻인가요?”

    “따라오시겠습니까?”

    무기에 정신을 팔렸던 세 사람은 황문식을 따라나섰다.

    제1동에서 2동으로 넘어가자, 그곳에는 1,500평 규모의 거대한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온갖 이상한 글자들로 이뤄진 문서들이 가득했다.

    그동안 룬어를 공부했던 한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글자들이었다.

    “……이게 다 뭔가요? 룬어도 아니고 이계어도 아닌 것 같은데.”

    “이계어는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샌드타워에서 발견된 블루샌드 문서가 아닌 제3의 차원에서 건너온 물건들이겠지요.”

    “제3의 차원이요? 그런 차원이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블루샌드가 쏟아져 나오는, 가칭 ‘제2의 차원’만 있다고 생각되었다.

    바벨탑의 일부분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제2의 차원과 교류하는 지구의 과학은 아주 빠르게 발전하였고, 제2의 차원 역시 상당한 발전을 거듭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허나 백선은 던전에서 제3의 차원이라 예상할 만한 곳을 찾아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백선 어르신께서는 인간으로선 최초로 99층을 보고 온 존재이십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백선 어르신께서는 아직 인류에게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경험들을 하고 오셨지요. 제3의 차원이라는 것도 그때 발견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

    “당연합니다. 백선 어르신 말고 80층 이상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아직 없으니까요.”

    만약 제3의 차원에 대한 얘기가 공론화되었다면 아마 상당히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80층에 올라가는 것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공격대원이 필요한 데다, 애초에 A급 헌터 이하는 70층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부 다 죽기 때문이다.

    “백선 어르신께선 인류가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할 것 같았기에 제3의 차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에 대한 예의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네, 물론이죠.”

    “그럼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물건들이니 편하게 둘러보시지요.”

    태하와 동료들은 황문식의 말처럼 차근차근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서책이나 두루마리, 더러는 낱장의 양피지 따위도 있었다.

    태하는 그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치지지직!

    놀랍게도 푸른색의 포털이 열렸다.

    [안락한 나의 집]

    [이곳을 집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엉?”

    “귀환포털 마법?! 이거 마법 스크롤인가 봐요!”

    “그게 뭔데요?”

    “초희귀 아이템이요. 마법 능력 없이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줘요!”

    “허어, 그런데 이게 왜?”

    “다른 걸 집어 봐요!”

    용팔과 한나는 흥분해서 스크롤이나 책을 집어 보았다.

    허나, 효과가 없었다.

    다만, 태하가 잡았을 때는 달랐다.

    [중력은 극복하는 것]

    [레비테이션 에어]

    순간, 태하의 몸이 공중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부우웅……!

    “어, 어어……?!”

    이로써 명확해졌다.

    이곳에 있는 제3의 언어들은 태하에게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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