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심안의 헬창(1)
찌르르르…….
사방에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적막하기만 한 정글, 그곳에 첫발을 내디뎠다.
-꺄하하하!
어디선가 꽃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 꽃이 웃는다니……?
허나 이곳에서는 꽃이든 나무든 동물처럼 살아서 움직였다.
심지어는 그것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소름이 끼치는데.”
“그래도 꽃은 좀 나은 편입니다. 아름드리나무가 괴기하게 웃는 모습은 정말 봐주기 힘들 정도죠.”
신유성은 마계화 공략 지도를 보유한 이 세계에 몇 안 되는 정글 특화형 근접 딜러이며 상당히 풍부한 던전 경험이 있었다.
그는 차근차근 이곳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저 작은 꽃에 한 번 잘못 스치면 독으로 사망합니다. 나무 넝쿨에 끌려가서 목인의 밥이 될 수도 있고요.”
“……쉽지 않은 던전이네요.”
“뿐만 아니라 수인들이나 거대 벌레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죠. 강력함 자체는 19층보다 못한데, 여기저기 함정처럼 몬스터가 분포되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덥고 습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숲이 살아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은 신경쇠약에 걸리게 만들기 딱 좋은 일이었다.
임시 파티의 원 딜러 ‘마탄사수’ 임혁수가 꽃의 목을 꺾어 버렸다.
-깩……!
꽃을 꺾어 버리자, 웃음소리가 멈추었다.
“군대에서 배운 유격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울 것 없어!”
“저는 여자라서 못 배웠는데요?”
“그럼 오늘부터 배워~. 그럼 되잖여!”
충청도 아저씨 임혁수는 뭐든 물 흐르듯 그렇게 넘어가곤 한다.
이제 21층의 초입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끝이 어디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덥고 습하고 사람을 끝도 없이 괴롭혀 대는 정글에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위이이잉……!
“으윽! 모기 플러스 깔따구가 또 물었어요!”
곤충이 자꾸 물어 대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임시 파티의 팀 닥터 이주현이 피부약을 건네며 말했다.
“……초장부터 왜 이런다니. 이곳의 곤충들은 오만 가지 독을 다 품고 있어요. 언제 어디서 픽 쓰러져 죽을지 모른다고요.”
자잘하지만 계속해서 독이 주입되기 때문에 그것이 점점 타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모기에 물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우그그그극!
“……넝쿨이 움직이는디?!”
“한나 씨, 피해요!”
휘릭!
“꺄아아아악!!”
순식간의 일이었다.
한나는 넝쿨에 발이 감기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쭉 끌려가기 시작했다.
임혁수가 총을 꺼내 들었다.
철컥!
던전은 화약을 들고 들어올 수 없기에 화기는 통하지 않는다.
허나 임혁수는 각종 속성이 부여된 탄환을 쏠 것에 실어서 날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화약 없는 총잡이라는 뜻이었다.
“잠깐! 쏘지 마!”
“……뭐여?”
“지금 잘못 쏘면 독에 중독될 수도 있어!”
태하는 재빨리 몸을 던져 한나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잡을게요!”
바로 그 순간, 바닥에서 넝쿨이 자라나더니 태하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우드드득!
“……허억!”
“끊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넝쿨이 태하의 입과 코로 파고들려 하기까지 했다.
태하는 넝쿨을 씹어버렸다.
우적, 우적!
“……생각보다 달짝지근하네?”
“어……? 그걸 먹는다고요?”
그러자 태하의 몸에 새로운 힘이 솟는다.
[스킬: 포식]
[먹이를 섭취합니다]
[스킬: 포식 - 흡수]
[피식자를 흡수합니다]
[근육 내 수분이 빠르게 보충됩니다. 미토콘드리아에 새 힘이 솟습니다]
안 그래도 덥고 습한데 잘되었다 싶었다.
태하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을 감고 있던 넝쿨을 우걱우걱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쩝쩝……!”
“허어! 넝쿨 괴물을 먹어 치우고 있어!”
“어찌 보면 던전의 최상위 포식자이니 이상한 광경도 아니죠.”
태하는 근육이 커지면서 식욕도 엄청나졌는데, 지속적인 근 성장을 이루자면 최소 6,000~7,000칼로리가 필요했다.
그것도 단백질이 대량으로 함유된 식단으로 말이다.
[스킬: 포식 - 흡수]
[몬스터를 흡수합니다]
[근육 내 수분 함량이 증가하며 섬유질이 풍부해져 가동 가능한 섬유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먹는 족족 근육에 영양분을 저장하는 태하. 그런 태하에게 먹혀드는 괴물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휘리리릭……!
“넝쿨 괴물이 도망친다!”
“추격하면 적어도 이 근방의 위험은 제거할 수 있어요!”
태하는 놈이 도망치자, 따라가면서 넝쿨을 먹어 치웠다.
어느새 넝쿨은 다 사라졌고 놈의 본체가 보인다.
-우오오오오……!
“……역시 목인이었네.”
“불로 태워 죽이면 간단혀!”
목인, 앤트, 혹은 덴드로이드라고 불리는 이 몬스터는 칼이나 도끼 따위의 날붙이로는 죽이기도 어려울뿐더러 공격 패턴이 워낙 다양해서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허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태하는 바벨 원판을 꺼내 들었다.
“옛말에 나무 수액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말이 있었는데 말이죠. 과연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요.”
“허어, 설마……?”
“오늘은 비상식량으로 수액을 좀 받아 가야겠어요.”
태하는 상식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앤트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
저놈의 수액을 뽑아서 동료들에게 먹이면 힘이 불끈 솟아날 것만 같았다.
자칭 수호자의 방패라고 하는 바벨 원판을 들고 태하는 돌격했다.
넝쿨이 태하를 노리고 다시 날아들었지만, 바벨 원판에 의해 허무하게 잘려 나갔다.
서걱, 서걱!
바벨 원판의 왼쪽 날은 울퉁불퉁하게 생겨서 수목을 치는 데엔 아주 제격이었다.
허나 주변에는 목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르르릉!
“라이칸스로프?”
이른바 수인으로 불리는 라이칸스로프 무리가 태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덩치가 성인 남성의 3배나 되는 라이칸스로프가 무려 6마리나 달려드니 전투에 집중이 안 되었다.
허나 동료는 태하에게도 있었다.
피융, 퍼억!
-크헤엑……?!
“정 코치! 우리가 서포터 할 테니께, 걍 달려!”
“고마워요!”
그 뒤로도 수인이 더 달려들었다.
그러나 임혁수의 마탄에 맞으면 영락없이 골로 가 버렸다.
타앙!
꽈드드드득!
“……얼었어?”
“머리 뜨거워서 대머리 되게 생겼는디, 열기나 좀 식히고 가자고!”
동료들이 수인을 처리하는 동안 태하는 손으로 넝쿨을 헤치고 목인을 향해 나아갔다.
우드득, 우드득!
거의 탱크처럼 직진으로 밀고 나가, 결국에는 놈의 옆구리를 바벨로 찍는 데 성공했다.
퍽!
-우오오……!
“역시, 수액!”
껍질이 벗겨진 곳에 촉촉하게 수액이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태하는 그 사이로 스트랩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태하의 섬유 다발이 목인에게 연결되면서 순식간에 수액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스킬: 포식]
[피식자를 포식했습니다]
빠르게 말라 가는 목인.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선 태하가 압승을 거둔 것 같았다.
이윽고 시작되는 태하의 포식 행위가 코어에까지 닿았다.
[스킬: 포식 - 흡수]
[???급 코어를 포식했습니다]
바로 그때, 태하의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인간은 나쁘다.
“허억?!”
목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포효가 들리기는 했으나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태하는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인간은 죽어야 한다!
‘뭐……?’
바로 그때, 태하의 몸에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컥!”
“태하 씨!”
눈이 새빨개지고 온몸이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혈맥 하나하나를 일일이 떼어 내서 물에 씻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으으으으윽!”
“……알레르기?!”
“혈액독인 것 같은데요?!”
순식간에 태하의 온몸이 초콜릿색으로 변하더니 헤모글로빈이 유리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태하는 죽고 말 것이었다.
이주현은 일단 알레르기 처치약을 태하의 대퇴부에 찔러 넣었다.
퍼억!
바로 그때였다.
[파생 스킬: 점진적 과부하 - 좀비의 맷집]
[신체 손상률이 60%를 넘어서면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흐어어어!”
순식간에 혈액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이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스킬: 점진적 과부하]
[중독에 노출되어 점진적 과부하가 적용되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면역’을 습득합니다]
[새로운 스킬 ‘해독’을 습득합니다]
한숨 돌린 이주현.
“오늘 일진 정말 왜 이런다니……. 어휴, 하마터면 깜빡 죽는 줄 알았네.”
“고맙습니다.”
“아니요. 당신의 해독 능력이 대단한 거죠. 아무리 약을 맞아도 죽을 사람은 죽어요.”
“아무튼…… 말로만 들었지, 정말 지긋지긋한 곳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헬스하운드.
그런 그들에게 너무나도 뜻밖의 것이 찾아왔다.
[특성 스킬: 성장형 - 심안]
“……어라?! 무기에 스킬이 붙었어요!”
“아아, 그 물음표 스킬이요?”
한나가 가진 무기의 특성 스킬은 대단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심안: 기억이나 사념의 파편을 모아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이코메트리? 그런 능력 같은데요?”
“우와! 그럼 이젠 적의 공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그런가 봐요!”
태하와 등을 대고 앉아 있던 한나의 뇌리에 불현듯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끼잉!
그녀는 별안간 깜짝 놀라서 태하에게 물었다.
“……혹시,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요?”
“아, 그게…….”
“허어! 설마하니 몬스터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람이 존재할 줄은 몰랐는데.”
“……맞아요.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화도 가능하죠.”
순간, 동료들이 놀라서 태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았어요?”
“미친놈이라고 생각할까 봐요. 사실, 나도 약간은 미쳤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도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하.
허나 한나는 이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아니요, 안 미쳤어요. 나는 읽을 수 있다고요.”
“……다행이네요. 미치지 않았다니.”
신유성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새로운 공략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정 코치가 몬스터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앞으로는 메타 자체가 바뀌게 될 거예요. 아니, 어쩌면 레이드의 패러다임 자체가 깨질 수도 있겠죠.”
“신메타……?”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
여의도 코어 시장에 정태하라는 이름 세 글자가 전광판에 떴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코어를 3천 개나 매각한다고?”
“아니, 잠깐. 그나저나 정태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의문의 인물, 정태하라는 사람은 순식간에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 순간, 정태하라는 이름을 곱씹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수라 길드의 부길드장 최연화.
“정태하……. 기어이 사고를 치는 것인가.”
“부길드장님, 어쩌면 좋습니까? 아직 마이너스 코어는 회수도 못 했는데요.”
그녀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저번 500인의 대대적인 암살 사건이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아수라 길드는 PK 페널티를 받아 던전의 입장이 전면 금지되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다 죽었으면 간단했을 텐데.”
“방법이 없습니다. 돈으로라도 회수를 하는 수밖에는요.”
“흠, 돈이라…….”
돈이라면 아수라 길드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다만, 최근 연구소 발족 및 코어회사 매각 등으로 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
“하지만 차선책으로라도 매각은 염두에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제기랄, 우리 부채비율이 얼마인 줄 알고는 있어? 벌써 300%가 넘었어. 만약 여기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코어를 사게 되면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는 뜻이야.”
“……300%의 수치는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밍은 한 번뿐이지 않습니까.”
“끄응…….”
지금 아수라 길드에 다른 길은 없다.
한마디로 그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뜻이었다.
“일단…… 마스터께 보고드리자.”
그녀는 불안했다.
이용광의 성격상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