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22화 (22/197)

022 노브레이크 헬창인생(2)

불현듯 눈을 뜬 태하.

“허억!”

익숙한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태산병원이었다.

그는 일단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걱정부터 했다.

“……동료들!”

“동료들은 무사합니다. 누워 계세요.”

“아아!”

주치의 정만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몬스터랑 싸우다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PK로 실려 오시네요. 정말…… 제가 의사 생활 10년 만에 정태하 환자 같은 사람은 처음 봅니다.”

“그래도 치료는 해 주셨네요. 저번에는 다신 치료 따위 안 해 주실 것처럼 굴더니만.”

정만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그럼 뭐 어쩌겠어요? 사람이 실려 왔는데.”

“역시! 히포크라테스의 후예!”

“그래도 검사 결과가 상당히 좋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일전에 실려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장기에 대한 타격도 없고, 뇌에 가해졌던 손상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요.”

“오호, 그래요?”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걸핏하면 병원 신세를 졌다간 아마 제명에 못 살 겁니다. 그럼 하루 정도 경과를 좀 지켜봅시다.”

이윽고 병실로 용팔과 한나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덕지덕지 밴드를 붙이고 있었지만 컨디션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모양이었다.

“헌터님!”

“용팔 씨, 한나 씨!”

“이겼어요! 우리가 그 빌어먹을 아수라 놈들을 이겼다고요!”

“……아수라요?”

“싸움에서 사망한 사람은 대략 30명쯤 되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다들 아수라 길드의 예비 헌터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비각성자 중에서도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혹은 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은 길드의 4군인 예비 헌터로 남는다.

일종의 길드 예비역들인데, 이들도 경력이 쌓이면 3군으로 올라가게 된다.

단, 그전까지는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리기 때문에 길드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살인이라도 불사하곤 한다.

“무려 300명이었어요. 우리는 거의 2개 중대 병력과 싸운 거라고요.”

“……미친놈들,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일까요?”

“경찰들이 그러더라고요. 예비 헌터가 코어의 주가조작에 투입되었었는데, 주가조작 타이밍이 지나고 나니까 300명을 폐기할 생각이었던 거죠.”

“허어! PK는 범죄니, 감옥에 보내려던 건가요?”

“그런 셈이죠.”

사람을 장기판의 말보다도 못하게 생각하는 아수라 길드의 끝은 도대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우리를 습격한 이유는 뭐래요?”

“거기까진 몰라요. 그런데 웃긴 건, 저 사람들이 누워 있던 자리에는 곡괭이와 삽자루가 놓여 있었다는 거죠.”

“던전에서 웬 삽질을……?”

“어리바리한 몇몇 놈들을 살살 회유해 봤는데, 29층에서 무슨 작업을 한다고 했대요.”

“작업이요? 던전에서 작업을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데?”

던전에서 땅 팔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쉘터를 구축할 게 아니라면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땅을 판다는 건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긴 했다.

허나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아수라 길드도 29층을 노리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29층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건 확실해졌네요.”

“……그래요. 가서 그 새끼들 아주 엿을 먹여 주자고요!”

“그것도 아주 빅엿이요!”

“아니, 그런데 그러자면 마이너스 코어를 엄청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아요? 아무리 레벨업을 해도 그게 잘 되려나 모르겠는데.”

용팔은 역시 걱정이 많다.

허나 그런 걱정이 있었기에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해답은 한나에게 있었다.

“증폭이요. 내가 증폭을 걸어 주면 200마리씩만 뽑을 수 있어도 최소 400~500마리는 나올 거예요. 그럼 그렇게 일주일만 소환해도 지금 시장을 돌아다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얻을 수 있죠.”

“오호, 완전 그레이트해! 한나 씨도 생각보다 머리 좋다!”

“……그거 칭찬이죠? 어쩐지 욕 같은데. 느낌 탓인가?”

“아무튼, 그럼 엿을 먹이더라도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태하는 용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는 천천히 준비를 해 놓고 있던 참이었다.

“코어 시장에도 선물, 공매도 시스템이 있다면서요?”

“음, 그래요. 그런 게 있기는 했죠.”

“우리가 마이너스 코어를 왕창 만들어 가지고 아수라 길드의 코를 확 꿰는 겁니다.”

“……아하! 그래요. 선물이랑 공매도가 있었죠!”

선물(先物),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선(先)매매, 후(後)물건 인수의 개념이다.

돈을 먼저 치러 놓고 물건을 나중에 낸 만큼만 받는 것이다.

단, 지금 100원어치가 막상 물건을 살 때는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선물은 국가에서 허락한 도박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마이너스 코어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려놓았는데 아수라 길드가 그걸 산다면?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그 가격을 아예 똥값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오오옷!”

“우선은 29층으로 올라갑시다. 그리고 거기서 레벨업하고 내려와서 아수라를 엿 먹여 주는 거죠. 어때요?”

“예압, 베이비!”

***

헌터협회에서 수임 정산을 하는 태하.

“……진짜로 가져왔네? 와이번의 가죽, 어떻게 구하셨어요?”

“잡았습니다. 흠씬 두들겨 패 줬죠.”

“허어, 그걸 진짜로 잡으셨다고요?! 3인 파티였다고 안 했어요?”

“고생 좀 했지만, 그럭저럭 잡을 만했어요.”

“이야, 이건 뭐…… 할 말이 없습니다. 진짜 대단한 분들이시네요.!”

“제 동료들이 원래 좀 합니다.”

“앞으로는 수임 등급을 올려 드릴게요! 정산 수수료도 낮아질 거고요.”

잔뜩 흥분하는 헌터협회.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랭커로 불린 사람들도 돌파에 실패했었으니 말이다.

수임 정산 창구에서는 태하에게 동으로 만들어진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은 스컬, 브론즈,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 유니콘 등급으로 나뉘는데, 스컬은 사실상 영양가는 거의 없는 수임을 맡는다.

브론즈부터는 제대로 된 수임을 받아 간다고 볼 수 있었다.

이 명함에 각인을 해서 나가면 앞으로는 더욱 높은 등급의 수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헌터협회에서는 명함에 각인을 해 주고 높은 등급의 수임을 주었다.

“특별히 드리는 건데, 가격이 꽤나 비싸요.”

“가격이요?”

“마계화의 이파리라고, 마계화의 씨앗이랑 같이 드롭된다고 하네요. 장당 3억, 꽤 비싸죠?”

“허어, 그러게요!”

“이번 건 완수하면 실버 심사를 넣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정산을 받아 체육관으로 돌아간 태하는 오늘도 변함없이 헬스장을 쓸고 닦고, 회원들을 받았다.

마치 습격이란 있지도 않았다는 듯 말이다.

비록 고요했지만, 복수의 칼날은 이미 갈고 있었다.

다만, 그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3인 그룹 PT 회원을 받는 날이다.

벤치프레스부터 가르치는 태하.

“……열, 열하나, 열둘!”

“어후, 좋다!”

연신 가슴을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웃는 PT 회원.

그는 요즘 몸 키우는 데 재미를 붙인 ‘주작단’의 택티션 신유성과 그의 동료들이다.

신유성과 그의 동료들은 요즘 ‘헌터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10층과 19층의 공략 실패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곳 덕림헬스를 알게 되었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협회에서 공인 트레이닝 센터로 지정한다고 하던데, 역시 다르긴 다르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어때요? 동작은 괜찮아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동작도 중요하지만 느낌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느낌을 받으려면 제대로 된 동작을 할 수밖에는 없고요.”

“역시, 말씀도 잘하시네요!”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우튜브에서 아주 난리던데요?”

“하하, 그랬습니까? 감사합니다.”

“듣자 하니 19층도 돌파하신 것 같던데, 이제 곧 마계화 잡으러 가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마계화 이파리 수임도 받았고요.”

“흠……. 그런데 3인으로 파티를 클리어할 수 있겠어요? 솔직히 헬스하운드 전투력이면 못 뚫을 것도 없습니다만, 마계화는 30인 파티가 가도 빽도 찍는 경우가 허다해서 말이죠.”

“그렇게 어려워요?”

“어렵다기보다는…… 뭐랄까, 던전 자체가 괴랄해요.”

던전이 괴상망측하다는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

허나 신유성은 그 얘기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이해시켜 주었다.

“숲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던전 전체가 하나의 몬스터라고 보시면 돼요.”

“그렇군요…….”

“괜찮다면 제가 막공 한번 뛰어 드려요? 마침 꽤 괜찮은 원딜이나 힐러도 있는데요.”

“어엇,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원래 공격대 편성에서 막공 편성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다.

신뢰성 문제도 있고, 분배비율 등 골치 아픈 문제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있으니 이 부분도 아주 뚝딱이었다.

“어이, 자네들! 갈 거지?”

신유성의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 그럼! 오브콜스여! 막공 하면 우리가 또 빠질 수 없지!”

“그럼 준비해서 3일 후에 뵙겠습니다!”

“어이!”

***

이른 아침의 여의도.

아침부터 쌀밥에 참치를 비벼 먹고 있는 태하.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선엽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 몸이면 탄수화물은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의외입니다.”

“밴딩과 로딩이라고, 이를테면 지구력을 높여 주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밴딩은 탄수화물을 고갈시켜 신체가 글리코겐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과정이고, 로딩은 고갈된 글리코겐을 채워 넣음으로써 신체가 지니게 되는 글리코겐을 더욱 많이 저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헬스하운드는 비록 마라톤이나 파워리프팅 같은 경기를 뛰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던전에서의 폭발력과 지구력을 보유하자면 이런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밥을 다 먹어 치운 태하는 조선엽의 앞에 각종 서류를 올려놓았다.

“제가 알아보니까 변호사를 통해서 코어 투자를 일임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위임장만 있으면 투자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서로 변호사를 통해 전속 공증을 받아서 전속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전속이요?”

코어 업계에는 전속 계약이라는 제도가 있다.

공인 헌터가 가져오는 물량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취급하도록 하는 것이 전속 계약인데, 법적인 분쟁이 일어난다거나 매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함께 불이익을 나눠 갖는다.

다만, 이익이 발생하면 그것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것이 바로 이 전속 계약이다.

한마디로 작은 펀드의 개념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헌터는 최대한 많은 물량을 가져와야 하고 딜러는 어떻게든 코어를 비싸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매각해야 한다.

“어때요? 전속 계약을 맺는 것이.”

“하, 하지만 전속을 맺으면 수수료가 대폭 상향될 텐데요? 왜 저 같은 무명 딜러에게…….”

“무명이니까 유명으로 키워서 같이 가려는 겁니다.”

“아아……!”

“이번에 3천 개 물량을 당신에게 맡기기로 했죠? 그 이후에도 물량은 계속해서 풀 겁니다. 될 수 있는 한 많이요.”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해요.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찾았거든요.”

“……!”

그저 놀랄 수밖에 없는 조선엽.

태하는 그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아수라 길드의 재산, 선물로 한 방에 털어 버립시다.”

“네……?! 하지만 아수라 길드가 가진 코어 물량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괜찮아요. 마이너스 코어를 내가 싹 다 털어 버릴 거니까요.”

“……턴다고요?”

“시장에 있는 마이너스 코어, 내가 다 먹어 치울 겁니다. 그러면 아수라 길드는 닭 쫓던 개 신세 되겠죠.”

“허어!”

“억만장자. 그까짓 거, 나도 한번 해 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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