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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21화 (21/197)

021 노브레이크 헬창인생(1)

그야말로 상식을 파괴하는 파티 구성에 아수라 길드의 암살자 맥스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이게?! 뭐 이렇게 무식한 서포터가 다 있어?!’

설마하니 170cm도 안 되는 여자가 돌도끼를 휘두를 수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맥스는 서포터를 공격하려다가 되레 한 대 얻어맞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는 없었다.

헌데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둔해져서 자신의 장점인 기동성을 살리지 못했다.

‘게다가 스턴이라니! 마법까지 사용하는 건가?!’

그저 서울깍쟁이 아가씨인 줄 알았더니 헤라클레스 여동생 뺨치는 힘을 가졌다.

게다가 스턴 마법까지.

맥스는 오늘 임자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파트너 암살자인 렉시에게 바통을 넘기는 맥스.

“렉시! 뒤통수를 갈겨!”

“알겠어! 아무리 강해 봤자 뼈와 살로 이뤄진 인간일 뿐이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원앙월을 들고 달려드는 렉시.

그녀는 이 한 방에 암살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다.

허나 정말 너무나 허무하게도 그녀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았다.

까앙!

“……가, 갑옷?”

“갑옷이라면 갑옷이지. 근육 갑옷!”

“그, 근육이라고?”

“광배근 몰라, 광배근?”

한나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렉시의 턱을 후려쳤다.

콰아앙!

순간, 방심하고 있었던 렉시는 그대로 쭉 날아가 던전 벽에 쑤셔 박히고 말았다.

“끄윽…….”

마치 방앗간 시루떡처럼 축 늘어진 렉시.

맥스는 그녀의 생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일단 자기 자신부터 내빼고 봤다.

“……괴물이야. 저년은 괴물이라고!”

아무래도 서포터는 힘들 것 같으니 활을 쓰는 원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원딜도 돌격계 공격에는 취약한 편이다. 게다가 맷집도 별로 좋은 편에는 속하지 않으니 원딜을 치고 빈틈을 만들어 도망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 이쪽이다!”

쉬익!

점멸 대시와 비슷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격.

무려 방향을 두 번이나 꺾어서 쇄도하는 맥스의 러시 A급 탱커들도 당황하곤 하는 공격 방식이었다.

‘잡았다!’

원딜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느라 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성공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부웅!

허나 어처구니없게도 공격은 엉뚱한 곳에서 무마되고 말았다.

팅!

“……어라? 검이 부러져?”

근육에 부딪힌 검이 부러진 것이다.

당황을 넘어서 경악으로 바뀌는 맥스의 표정.

“……미친, 이게 사람이냐?!”

“사람이지, 그럼 괴물이겠냐?”

용팔은 무릎으로 맥스의 명치를 찍었다.

빠각!

“쿨럭, 우웨에에엑!”

“근육 불패!”

곧바로 이어지는 용팔의 어퍼컷에 맥스는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쿠우웅……!

마치 떡메로 얼굴을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처참하게 구겨진 맥스의 안면.

아마 이제 그는 곧 죽거나 평생 앞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한편.

이제 남은 암살자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어쩌죠?”

“어쩐지, 300명씩이나 되는 예비 헌터들을 보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도망칠까요?”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밀어붙여!”

***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하는 암살자들.

그들은 모두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뭐야, 아까 봤던 그 엄청난 숫자의 헌터들이 그럼 암살자였다는 소리야?!”

“……이 정도면 암살이 아니라 그냥 다구리 아니에요?”

대군에게 병법은 필요 없다, 나폴레옹이 했던 말이다.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다구리는 최고의 전술이었고 ‘란체스터 법칙’의 프레데릭 란체스터도 다구리엔 장사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태하가 아무리 강해졌어도 몰매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현재 출입 인원: 70명]

[19층 현재 인원: 12명]

……

[19층 현재 인원: 21명]

[19층 현재 인원: 25명]

[19층 현재 인원: 31명]

……

암살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이 숫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작정했나 본데요?”

“방어진을 단단히 꾸립시다!”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난전은 곤란하다.

최대한 좁은 공간에서 최소한의 적과 마주하여 각개격파를 해야지만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생길 것이었다.

태하는 그런 최적의 공간을 알고 있었다.

“19층의 출구까지만 달립시다! 거기서 끝장을 보자고요!”

“그럼 일단 출구를 뚫고 나오는 놈들부터 밀어 버릴까요?”

“네, 힘껏 밀어 버려요!”

그나마 아직까지는 40명도 채 안 되는 병력이라 일단 완력으로 밀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하는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이내 있는 힘껏 입구를 힘으로 뚫고 들어갔다.

“간다!”

콰아앙!

굉음이 들렸고 암살자들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경악하는 암살자들.

“크아악!”

“……이, 이게 사람의 숄더 태클인가?!”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태하는 후방의 입구부터 막아 버렸다.

앞뒤가 꽉 막혔는데 샌드위치 포위를 당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허어어업!”

쿵쿵쿵쿵……!

수십 번의 주먹질에 동굴의 입구는 바윗덩어리들로 막혀 버렸다.

이제 이 뒤쪽으로는 적이 들이치지 않을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헬창 헌터만 남기고 모두 다 죽여라!”

“예……!”

애초에 저들은 태하를 노리고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헬스하운드는 저놈들 마음대로 놀아나 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척!

방패를 고쳐 잡은 태하는 심기일전했다.

“차분하게, 하지만 스테로이드 마인드로 갑시다.”

“예압!”

보현 관장에게 빙의된 헬스하운드의 기세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암살자들은 그 기세에 약간 움츠러들었으나,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공포심이나 호승심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하나, 목적의식만으로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쳐라!”

파바바밧!

방금 던전에서 보았던 수준의 도약보다는 질이 상당히 떨어졌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 위, 측면, 심지어 바닥에서 들어오는 다방면의 공격은 막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태하는 바벨을 스트랩에 묶어서 던지는 한편, 방패로 정면으로 들어오는 놈들을 쳐 냈다.

빠박!

동시에 2명을 처치하자, 뒤에서는 쉬지 않고 화살이 발사되어 암살자들의 숫자를 줄여 냈다.

허나 그럼에도 자잘하게 들어오는 타격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걱!

“……젠장! 긴장이 약간 풀린 찰나의 순간을 노리다니.”

태하의 몸이 타격 저항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복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것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격렬한 사냥을 이제 막 끝낸 참이 아니던가.

아무리 코어를 흡입해서 체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정신력이나 스태미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핑핑핑!

“젠장!”

방패로 화살을 막아 냈다.

허나 이번에는 화살비를 타고 돌격하는 미치광이 암살자들의 단도가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서걱!

“크윽!”

“헌터님!”

“……괜찮아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태하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10분만 지나도 태하는 과다 출혈로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허나 태하는 멈추지 않는다.

아예 스트랩으로 상처를 칭칭 감아 놓고 싸움에 나섰다.

“죽인다, 개자식들아!”

빠가각!

태하는 이제 거의 마구잡이식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암살자들이 쇄도해 들어왔기 때문에 얻어걸리는 주먹에 비명횡사하는 비율이 80%였다.

허나 그 20%가 태하에게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핑핑핑!

“크윽!”

이번에는 화살이 팔에 박히고 말았다.

삼두근에 힘이 약간 풀린 틈을 타서 삼각근과 삼두 사이의 골짜기로 화살이 뚫고 들어온 것이다.

이 부분은 근육이 갈라지는 부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곳이기도 했다.

“뼈에 화살촉이 닿았겠는데요?!”

“……괜찮아요. 안 죽습니다!”

“못 살아, 내가 다치지 말라고 했죠?!”

한나는 누가 다치는 꼴은 절대로 못 본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런 그녀에게 태하가 말했다.

“그 분노, 저놈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세요.”

“알겠어요! 죽었어, 이것들아!”

스스스스!

한나의 몸에서 퍼져 나간 중력 제어 스킬의 오러가 태하의 바로 앞에 엄청난 중력 구간을 만들어 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제 바닥에서 발이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용팔은 발이 묶인 적들의 이마에 화살을 박아 주었다.

피융!

“꿱……!”

이제는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이나 살인에 대한 어떤 감흥마저도 사라졌다.

그저 죽고 죽이는 상잔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

무려 30분이나 이어진 치열한 전투.

“허억, 허억!”

“……질긴 새끼들!”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족히 300명은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머리에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오면 치고 때리고 화살을 박아 주는 것 말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아직도 암살 시도는 계속되었다.

“죽어라!”

“……이런 제길!”

태하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주먹에 맞은 암살자가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허나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이 빠져 버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이놈들, 힘이 빠졌구나! 지금이 기회다! 쓸어버려!”

더 이상 주먹을 쥘 힘도 없었다.

그래도 태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덤벼라, 다 죽여 버린다!”

이제는 물주먹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태하는 주먹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헬창의 길이다’]

순간, 태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힘이 돌아왔다!”

쿠아아앙!

그의 주먹에 맞은 놈들은 피를 토하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단 일격에 사람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것이었다.

‘평소보다 강하다……!’

마치 전투용 해머로 맞은 것처럼 볼썽사납게 일그러진 동료들을 보며 암살자들은 기겁했다.

“미, 미친놈! 저게 사람이냐?!”

“허억, 허억! 덤벼라!”

힘은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숨은 계속 찼다.

[체력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단, 체력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어쩐지 숨이 너무 가빠서 폐가 찢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허나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었다.

“……덤벼! 왜 안 덤벼?!”

이쯤 되니 놈들도 주춤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피로 물든 태하의 모습이 악마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

바벨탑 관리기구 제네시스의 기동타격대 ‘아킬레스’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던전 관리인의 신고로 PK를 중재하기 위해서 소집된 것이었다.

평균 능력 B급 이상, 아수라 길드와도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집단, 아킬레스는 PK를 중재하고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바벨탑의 경찰인 셈이다.

“우리는 헬창 헌터와 그 일행들을 보호해야 한다.”

“적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모른다. 하지만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많다? 그것 말고는 정보가 없는 겁니까?”

“대규모 기습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엄청난 인원을 갈아 넣은 암살은 경험한 적조차 없다.”

도대체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킬레스는 바벨탑 앞에 멈추어 섰다.

그들은 일단 바벨탑에 ‘출입금지’ 푯말을 세워 놓고 폴리스 라인을 쳤다.

“지금부터 이곳은 사건 현장입니다. 던전으로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

“……사건?!”

광부 알바를 뛰러 왔던 사람들은 출입을 통제당하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윽고 던전 안에서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대기소에 잠시 억류되었다.

“잠시 이곳에 계세요! 용의자를 색출할 겁니다.”

“용의자……?”

“살인 사건입니다.”

“허어! PK가 벌어졌나 봐!”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버린 바벨탑 입구.

아킬레스의 기동 2중대와 3중대는 입구를 통제하는 한편, 돌입을 준비했다.

방어구를 착용하고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자, 간다!”

“넵!”

중대의 첨병대가 앞장서서 입구로 들어갔다.

1층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2층의 입구에서는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피로 만든 계곡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1층 현재 인원: 4명]

“……이미 늦은 건가?!”

황급히 2층 입구로 향하는 기동대.

허나 그들은 중간에 우뚝 멈추어 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여전히 주먹질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다!”

빠각!

“크허억!”

“이, 이겼다…….”

거대한 덩치의 청년은 암살자로 보이는 사람을 때려눕히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쿠우웅!

이윽고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화살을 당기던 자세, 무기를 휘두르던 모습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뭐야, 선 채로 기절한 거야?”

“엄청난 집념이로군.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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