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헬스장의 대사형(1)
다시 오른 던전.
바벨탑 입구 출입 인원 카운터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현재 출입 인원: 1,820명]
[1층 인원: 1,814명]
와글와글…….
엄청난 인파다.
특이한 건 저마다 곡괭이며 삽을 한 자루씩 들고 있다는 것.
“……저 사람들이 헬스하운드야?”
“세긴 센가 보네. 덩치 좀 봐.”
“벌써 부담되는데, 이거?”
사람들이 태하 일행을 보며 웅성거렸다.
벌써 유명세를 타는 것일까?
그 인파들 사이를 지나 곧바로 등반을 시작하는 헬스하운드.
메타가 쌓이니 공략을 했던 층까지 도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태하는 오늘도 홀딩기를 연습했다.
날개를 붙잡힌 가고일이 격렬하게 반항한다.
-끼에에에엑!
“잡았다! 쏴 버려요!”
“오케이!”
단순 스트랩이 아니라 와이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나니 전투의 질 자체가 바뀌었다.
스트랩을 뻗어서 몬스터의 복부를 꿰뚫거나 목이나 몸통을 옭아매서 발을 묶을 수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홀딩기도 없었다.
거기에 한나의 중력, 용팔의 화살까지 어우러지면 사냥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끼이잉!
퍼억!
“우와! 그 공간 뭐시긴가 하는 거, 그레이트한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태하는 한나와 스트랩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녀에게 강화 버프를 전달하여 두 사람은 자유자재로 능력을 공유할 수 있었다.
허나 그 능력은 평소와는 아예 결이 달랐다.
공간 조율의 버프 때문인 것 같았다.
“화이트홀 효과라는 거,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글쎄요. 몬스터가 강해진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사람이 강해지는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심지어는 19층에서 두런두런 얘기도 하면서 소일거리 하듯 몬스터를 잡아 대는 세 사람.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니 이제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윽고 19층의 마지막 가고일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퍼억!
-끼엑…….
“가고일을 정리했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피해는 없죠?”
“네, 딱히.”
지금까지 태하의 파티가 입은 피해는 탱커의 경상 약간이 끝이었다.
허나 그것도 금세 치료가 되었다.
[스킬: 포식]
[먹이를 섭취합니다]
[상처를 치료합니다]
[근육이 성장합니다]
태하는 스트랩을 뻗어서 동료들에게도 양분을 나눠 주었다.
“상처 치료 끝! 자, 올라갑시다!”
“오오, 근 성장 되는 느낌! 그레이트한데요?!”
“레츠 고!”
한껏 성장한 파티가 20층에 올라섰다.
헌데 던전이 한산하다.
병풍처럼 서 있는 기암 지대에 덩그러니 검은색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을 뿐, 몬스터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용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야, 몹이 아주 씨가 말랐네?”
“……아니요. 포식자에게 쓸려 버린 거죠.”
한나는 나름대로 금성탑에서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해 주었다.
금성탑에서는 다수의 레이드마스터를 육성하였는데, 그 노하우가 탑의 구성원 전원에게도 설파되었던 것이다.
“몬스터끼리는 잡아먹지 않는 거 아니었어요?”
“하층에서는 그렇죠. 하지만 상층부는 몬스터에게도 약육강식이 적용된다고도 해요. 때로는 서로 포식하며 성장하기도 하니 조심하세요.”
바벨탑은 알면 알수록 불가사의한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튼, 미상의 포식자에 의해 20층은 아주 깔끔해진 상황이었다.
바위산을 에둘러서 보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가려던 헬스하운드.
바로 그때, 바위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그그그……!
“지, 지진?”
“아니요! 저놈이 와이번인 모양인데요?!”
“……저거 바위산 아니었어요?!”
놀랍게도 기암 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것은 바위산이 아니라 와이번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몬스터가 어지간한 동네 뒷동산보다 크다는 소리였다.
-크르르릉…….
헬스하운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황스럽지만 태하가 알던 와이번과는 너무나도 딴판이다.
벌크업의 정석을 꼽으라면 딱 지금이 아닐까 싶었다.
“……용족치고는 작은 편이라고 방금 들은 것 같은데.”
“그, 그러게요. 생각보다 훨씬 큰데요?”
아파트 10층 높이의 몸길이, 탄탄한 갑옷과 같은 비늘에 날카로운 이빨까지.
마치 그레이트 오우거가 날개를 단 것 같은 위용이었다.
-쿠오오오오!
그제야 태하는 현무단 2군이 공략에 실패했다는 것에 공감이 갔다.
“빌어먹을, 이러니 코어 가격이 올라가지!”
“말도 안 돼! 저걸 인간이 잡을 수나 있어요……?”
그야말로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인간이 아파트 10층만 한 몸집을 가진 저 공룡 같은 놈을 사냥할 수 있을지 절로 의문이 든다.
허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약간 큰…… 아니, 조금 많이 큰 박쥐라고 생각하지 뭐.”
“……진짜 사냥하시려고요?”
“수임해 왔으니 해 보는 수밖에요!”
“못 살아, 진짜!”
새빨간 와이번의 눈동자는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태하의 집념은 그러한 공포를 뛰어넘었다.
[강화: ‘수호자의 방패 세트 - 스트랩’을 강화시킵니다]
[신체의 강도와 비례하여 스트랩이 강화됩니다]
휘리리릭!
뾰족한 촉을 달고 날아가는 스트랩. 그 강도는 이미 티타늄 합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퍼억!
스트랩이 와이번의 날개에 들어가 박혔다.
용팔이 뛸 듯이 기뻐했다.
“명중이다! 성공인 건가?!”
“아니요, 아직입니다! 스트랩을 최소한 4개는 꽂아야 할 거예요!”
“4개……? 한쪽 날개당 4개씩이요?”
“상부 끝, 하단 끝, 내측 위, 내측 아래, 이렇게 4개요!”
“그럼 힘이 분산될 텐데?!”
“……별수 없죠! 일단 해 보는 수밖에!”
스트랩을 하루 종일 쓰다 보니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상대를 고정시킬 수 있는지 감이 왔다.
태하의 생각에는 날개만 고정하는 데 8개의 스트랩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머리를 고정시킬 것까지 감안한다면 최소 12개의 스트랩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태하는 일단 스트랩을 만들어서 놈의 날개부터 홀딩시켰다.
퍼억!
-크아아앙!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이번.
용팔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작전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힘으로 저 용가리랑 정면 승부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요!”
“……그래야 하나?!”
공간 조율 버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버겁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 거대한 용가리가 작은 몸부림만 쳐도 사람이 죽을 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끼이잉, 팟!
“……어?”
분명 뭔가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현상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힘이 강해진 것이다.
-크으으응……!
심지어 인간을 상대로 악을 쓰는 와이번. 이제는 힘의 균형이 제법 맞아떨어진다.
“……느낌 죽이네, 이거?”
이제야 저 용가리와의 힘 싸움이 할 만해졌다.
***
보현 관장은 거대한 덩치의 사내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대회를 준비하고 싶다?”
“수업료는 충분히 지불하겠습니다.”
태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보디빌더들이 그의 사부인 보현 관장에게 PT 수업을 문의했던 것이다.
점진적 과부하로 인해 나날이 커지는 태하의 몸집은 이제 지역 대회에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오래도록 파워리프팅과 맨몸 운동으로 프레임을 키워 와서 약점이라는 것도 없었다.
“흔히 광부 알바 한다는 사람들이랑 자네들은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지?”
“물론입니다. 그래서 더욱 관장님께 배우고 싶은 겁니다. 듣자 하니 여기서 배우는 사람들은 다른 체육관에서는 운동을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태하는 운동을 가르칠 때 특수 능력을 사용한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트레이닝을 받는다면 그 엄청난 자극과 운동 수행 능력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보현 관장은 일파창시라는 엄청난 시너지 스킬을 사용하는 육성자다.
“흠……. 하긴, 자네들의 말도 맞는 말이긴 해. 다른 체육관에서는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지.”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든 말든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자네들을 제자로 받아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각자 약점인 부위들을 말하게.”
보디빌더들은 백 마디 말보다도 한 번의 보디체크로 말을 대신했다.
그야말로 터질 듯한 근육이었다.
허나 보현 관장은 그들의 빈 곳이 어딘지 단번에 알아챘다.
“후면 삼각근, 종아리, 이두……. 다들 키우기 힘든 부위들이 약점이로군.”
“종아리는 지근이라 키우기 힘들고 후면 삼각근이나 이두는 원체 키우기가 힘들더라고요.”
태하가 던전에서 강력한 것은 속근,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내기 좋은 근육에 특화된 특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디빌딩에서도 적용된다.
“지근을 키우는 건 쉽지 않아.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럼 종아리가 타고나지 않아도 키울 수 있다는 겁니까?”
“물론이지.”
보현 관장은 보디빌더들을 카프 레이즈 머신 위로 올려보냈다.
이윽고 시작되는 트레이닝.
“통제, 종아리를 통제하면서 동작을 해.”
“후우욱……!”
지금까지 정체기에 멈춰 있었던 보디빌더들의 가자미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사형의 오러]
[보현파의 일원이 된 제자들이 득근을 하였습니다]
[득근 수치가 대사형에게 전달됩니다]
제자들이 늘어나면 대사형의 오러도 강해진다.
허나 강해지는 것은 대사형의 오러 자체만이 아니었다.
[스킬: 대사형의 오러 - 내리사랑]
[사랑은 자고로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스킬: 내리사랑의 효과로 ‘점진적 과부하’의 효과를 일부 공유하게 됩니다]
[대사형의 점진적 과부하의 1/35에 달하는 효과를 공유합니다]
비록 35분의 1에 불과한 스킬이다.
허나 그것은 만분의 일을 겨루는 프로 무대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오오……! 벌써 펌핑이 다른데?!”
“괜찮아? 이제 좀 오나?”
“……존경합니다, 사부님! 이제부터는 사부님으로 깍듯하게 모시겠습니다!”
***
힘이 분산되어 스트랩의 강도가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겉보기엔 몬스터가 너무 커서 이걸 어떻게 고정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허나 막상 힘 대결을 해 보니 용가리 통뼈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할 만해요!”
“허어, 정말이네?”
와이번은 홀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힘껏 날갯짓을 했다.
그럴 때마다 태하의 몸이 요동치긴 했다.
-크아아아아!
“크윽!”
마치 태풍이 부는 출렁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와이번의 날갯짓에 따라서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태하.
그러나 여전히 태하는 그 자리에 못을 박은 듯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으읏!”
“……그레이트해! 와이번과 힘으로 자웅을 겨루다니!”
아파트 10층 크기의 와이번을 순수 완력으로만 감당하는 사람이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3인 파티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었지만, 그건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나가 태하에게 외쳤다.
“태하 씨! 제게 스트랩 하나만 뻗어 줘요! 중력 강화를 걸어 줄게요!”
“오호, 좋지요!”
태하는 손가락 하나를 뻗어서 한나에게 스트랩을 연결해 주었다.
[부여: 대상의 스킬을 강화시킵니다]
끼이이잉!
순간, 빛이 나는 한나의 몸에서 중력 마법이 전이되어 태하의 발로 옮겨 갔다.
그러자 그의 발이 묵직해지더니 땅을 파고 5cm 정도 들어갔다.
쿠우웅!
“됐어요!”
“……발에 무슨 모래주머니를 달아 놓은 것 같네!”
하체에 힘이 잡히니 스트랩을 당기는 힘이 강해졌다. 게다가 바닥으로 힘이 분산되니 여유마저 생기는 기분이었다.
태하는 와이번의 목에 스트랩을 걸었다.
피융!
-크르르릉……!
“……괜히 스트랩 착용을 권장하는 게 아니지!”
스트랩을 잡아당기자, 이번에는 와이번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고 말았다.
아직 와이번을 낚아챌 정도의 힘은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태하가 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다만, 아직 결정타를 날리기엔 뭔가 좀 부족했다.
“더 강하게 고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젠장, 치명타를 날리기가 어렵네, 이거.”
딜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싸움을 끝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태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역린을 노리는 것.
그는 끊어진 오른쪽 손의 스트랩을 회수해 버렸다.
“한쪽은 거둘게요!”
“……허억! 뭘 어쩌시려고요?”
“놈의 심장을 뚫어 버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