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7화 (17/197)

017 헬창과 친구들(1)

바벨탑 17층에 오른 태하와 동료들.

[특성 스킬: 증폭]

한나가 거대 돌도끼를 망치처럼 휘둘러 적을 내리쳤다.

부우웅!

묵직한 파공성은 마치 거대한 천둥을 몰고 다니는 신화 속 ‘묠니르’를 연상케 했다.

[근력 185 x 스킬 2 x 증폭 2]

콰아앙!

이 정도의 근딜이면 어지간한 전문 근접 딜러의 풀스윙보다 강력한 수준이다.

그것을 서포터인 한나가 낸다는 것은 근접 딜러 직군의 헌터들 밥그릇을 빼앗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이스 샷!”

“후후, 별말씀을!”

정말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사냥을 당하는 가고일.

이른바 ‘뽀록샷’이라고 부르는 크리티컬 대미지가 들어간다고 해도 이 단단한 돌덩이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나는 이제 서포터에서 시너지 딜러로 전직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클리어 타임 - 3:12]

한나 덕분에 클리어 타임은 거의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수준까지 올라왔다.

“17층까지 클리어 타임이 불과 세 시간 남짓이라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태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정도면 20층 돌파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레이트하네요! 드디어 20층에 입성하게 되는 건가요?”

“이대로라면 19층까지는 사실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20층의 보스 와이번이 문제인 거죠.”

“와이번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오우거 웨이브를 못 뚫어서 전전긍긍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꿈에서나 보았던 와이번과 마주할 때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적으로 놈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때였다.

“와이번은 드레이크와 함께 용족 몬스터로 분류된다고 하던데, 대체 얼마나 강할까요? 그놈들에 대한 수치 정보는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잖아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전투력은 드레이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편이라고 해요. 같은 용족임에도 가죽이 얇고 브레스를 쓸 수 없어요. 게다가 덩치도 작고요. 하지만 덩치가 작아도 일단 용족은 다른 몬스터와는 아예 태생부터가 달라요.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닐 겁니다.”

“흐음…….”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태하.

그러다가 태하는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뭔가를 잡아냈다.

“용팔 씨!”

“넵!”

“용팔 씨가 이번 전술의 중심입니다.”

“저는 궁수인데, 궁수와 연관이 있나 보죠?”

“네, 맞아요!”

“으음!”

“일단 18층으로 올라가요. 거기서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일행들은 18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17층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가고일이 보인다.

-끼에에에엑!

“잘 보세요!”

태하는 스트랩을 뻗어서 가고일의 날개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퍼억!

그러자 가고일이 마치 실에 매달린 연처럼 속박되고 말았다.

“……잡았다!”

“허어, 홀딩?!”

“몬스터는 보통 스트랩에 꿰뚫리면 뒤로 물러서는 성질이 있더군요! 그걸 이용하는 거죠!”

만약 스트랩에 감겨도 몬스터가 앞으로 돌진하면 큰일이다.

허나 지금까지 태하가 상대해 온 몬스터들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스트랩에 저항해 도망치는 쪽을 택했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에게도 이제 홀딩기가 하나 생겼다는 건 틀림이 없어요.”

지금까지 태하는 스트랩을 단순히 벽을 타고 다니는 밧줄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최근에서야 섭취가 가능한 수단으로 인식했으나, 이것을 가지고 뭔가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허나 생각의 전환은 곧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

“내가 홀딩을 걸어 주면 용팔 씨가 몹의 대가리를 꿰뚫을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을 꽂아 넣는 거죠.”

“그럼 이건 어때요? 중력을 제어하는 시너지 딜러인 제게 태하 씨가 일종의 강화 버프를 걸어 주는 거죠. 그리고 저는 그 힘을 용팔 씨에게 다시 전달하는 거고요.”

“오오! 시너지 증폭!”

“맞아요. 태하 씨의 강화가 제게 들어와서 2배, 아이템의 시너지를 받아서 다시 2배, 그리고 강력해진 저의 신체 능력에 버프를 받아서 다시 2배, 그걸 용팔 씨에게 전달한다면?”

“……29층은 뚫고도 남겠는데요?”

“우오오!”

벌써 던전을 돌파한 것같이 기뻐하는 용팔과 태하.

한나는 그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이젠 슬슬 때가 된 것 같아요.”

“때가 되다니요?”

“실험이요. 우리가 던전에 오른 또 다른 목적은 다름 아닌 마이너스 코어 제작이잖아요?”

“그래요, 그랬었죠. 이제는 조건이 제법 갖춰진 것 같아요?”

“네, 그런 것 같아요.”

태하의 눈동자에 안광이 번쩍이는 느낌이 든다.

그런 태하에게 한나가 물었다.

“그런데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복수를 하려고요?”

“뭐, 완전히 놈들을 깔아뭉개는 게 아니고요. 복수의 서막을 연다는 느낌?”

“서막?”

“놈들을 아주 개털로 만들 겁니다.”

***

바벨탑 관리기구 ‘제네시스’ 산하의 수사기관 ‘귀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릉, 스릉!

굳은 표정으로 환두대도의 날을 세우고 있는 귀영의 수장 고영수.

활시위를 점검하던 차수 엄설란이 말했다.

“굳이 대장까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놈의 시신은 내가 거둬 줘야 한다. 안 그러면 그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

얼마 전, 쉘터에 파견되었던 귀영의 대원 한상욱이 언데드 웨이브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다.

귀영은 주로 잠입 수사를 하기 때문에 사망을 한다고 해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는데, 그동안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언데드 웨이브 수사를 공식적으로 인가받아 수습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천리안에서 수많은 정보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보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 정신 바짝 차려라.”

“넵!”

귀신이 그려진 부츠의 끈을 질끈 동여매던 고영수의 발에 뭔가 진동이 느껴진다.

쿠우웅…….

발밑의 진동과 함께 환두대도가 살며시 떨려 온다.

드르르륵.

순간, 귀영의 일원들이 일제히 고영수를 바라보았다.

“대장님.”

“……그래, 나도 느꼈다. 바벨탑에서 느껴지는 진동 같은데.”

“귀영의 환두대도가 흔들렸다는 건 심각한 위험이 아닙니까?”

“음.”

아무래도 던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고영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바벨탑의 입구에는 대치동 바벨탑 출입관리소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바벨탑 연구소와 업무 제휴까지 진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귀영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죠?”

“연이어 진동이 느껴진다는 제보가 있어서요.”

“진동이라.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죠.”

“리히터 규모 3.4 정도의 진동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데, 외부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바벨탑 연구소를 초빙했습니다.”

“그 밖에 다른 특이 사항은요?”

“음, 그게…….”

난감해 보이는 관리소 관계자의 표정.

고영수는 은근슬쩍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말씀하세요. 우리 귀영은 던전에 관해선 조사 권한까지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아니요, 뭔가 숨기려는 게 아니고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언데드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어요.”

“으음?”

“그런데 제보에 의하면 그 몬스터가 던전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네요?”

“……뚫고 나온다니요?”

“뭐라더라, 쉘터 인근을 배회하다가 이따금 보호벽에 머리를 박는다든지, 되지도 않는 칼질을 해 댄다든지, 뭐 그런 이상행동을 한다네요. 게다가 곳곳에 화이트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요.”

제보를 종합해 보면 이러했다.

일반인은 잘 느끼지 못하는 진동이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언데드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화이트홀 현상이 일어나 던전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바벨탑 연구소의 연구진들은 ‘바벨탑 이상 수치 관리기’를 건네주었다.

[이상 수치: 위험]

“이상 방사능 수치라든지, 그런 것들을 종합해서 수치로 나타내 주는 기계입니다. 보시다시피 위험 수준에 이르고 있죠.”

“가지고 가도 됩니까?”

“가지고 가서 쉘터에 설치해 주시겠어요?”

“그러죠.”

고영수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수라 이 새끼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겠어…….”

***

분노를 폭발시키는 이용광.

쾅!

“……실패?”

“설마하니 오우거를 때려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째 이리도 재수가 없나……?”

“솔직히 이제는 A급의 수준도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아수라 길드는 여의도의 코어 매입 회사 규모 5순위의 ‘천경’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만약 천경을 매입하고 마이너스 코어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아수라 길드는 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마이너스 코어 3천 개가 아직 수중에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

“초전도체 발표는?”

“한 달 후에 이뤄집니다.”

“마이너스 코어 회수가 급선무다.”

이들은 최근에 마이너스 코어와 관련하여 이슈가 된 초전도체 이슈와 함께 마이너스 코어의 ‘압축 에너지 이론’에 시선을 고정했었다.

마이너스 코어는 고농축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으나 그것을 제어하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때문에 이를 안정화해서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실험이 이어졌었고, 마침내는 그것을 압축시켜 안정화하는 이론이 완성되었다.

이 이론을 완성한 쪽이 바로 아수라 길드였던 것이다.

“일반 코어 시장은 어때?”

“가격 자체가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1층부터 3층까지 이른바 ‘광산’ 지역으로 불리는 곳의 출입이 사실상 통제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미국과 일본에서 코어 가격이 강세라고 합니다.”

코어는 스탠더드, 레어, 메가, 테라 등급으로 나뉘게 된다.

스탠더드 코어는 F등급부터 C등급을 일컫는 말이고 B등급이 레어, A등급이 메가, S등급부터는 테라로 친다.

스탠더드 등급의 코어는 대부분 동력원으로 쓰이기 때문에 가장 흔하지만, 또한 가장 수요가 많다.

때문에 스탠더드 코어의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 가격을 올린 것도 모두 아수라 길드의 작품이었다.

“……계획은 착착 잘 진행되는데 엄한 놈이 앞에서 자꾸 대가리를 치네 마.”

“문제가 아주 큽니다. 안 그래도 예외 발급 300명분이나 받아 뒀는데 작전마저 실패하면 우리는 300명의 짐짝을 떠안아야 할 판입니다.”

“발급 취소가 안 되는 거가?”

“취소도 불가능합니다만, 공인 헌터는 마음대로 자를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일거에 승급이라도 신청하는 날엔…….”

시름이 깊어지는 이용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최후의 방책을 꺼내 들었다.

“대인 공격대, 준비시켜.”

“PK로 해결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단, 랭커와 A급은 제외한다.”

“……A급을 넘어섰는데 사냥꾼으로 A급을 제외하면 그놈은 어떻게 잡습니까?”

“그럼, 이제 던전 장악이 얼마 안 남았는데 A급들을 죄다 출입 정지 먹이나?”

“아아……!”

“생각들 좀 해라.”

“죄송합니다!”

던전에서의 PK가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완전히 은폐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 용의선상에 오르기라도 하는 날에는 던전 출입이 금지되고, 아수라길드 자체에 타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설령 걸리더라도 꼬리를 잘라낼 수 있는 잔챙이들로 담그려는 것이다.

“잔챙이들은 다 죽이고 글마는 살려 와라.”

“헬창 헌터 말입니까? 왜 죽이지 않고…….”

“배때기를 쑤시든 회를 뜨든 코어는 받아야 할 거 아이가? 가는 김에 구조조정도 좀 하고.”

“구조조정이요?”

“300명, 출입 정지 대상이 되면 면허 박탈 아이가?”

“잘못 꼬이면 골치 아파질 수 있겠습니다만…….”

이용광은 피식 웃었다.

“허 참, 쓰레기 버리는 데 살인멸구보다 더 좋은 것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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