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근딜 + 서포터 = 헬창?(1)
[메인 스킬: 증폭]
[특성 스킬: 성장형 - ???]
[특징: 서포터 전용]
순간, 일동이 고개를 동시에 갸웃거린다.
특히 한나는 너무나도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서포터가 길이 3m짜리 도끼를 휘두른다고요?”
“보시는 그대로입니다만. 게다가 서포터 계열에 증폭이면 사실 돈 주고도 못 구해요. 다만 이 경우엔 참 애매한 장비에 부여되었다는 게 문제겠네요.”
“허 참, 뭐 이런 경우가…….”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전용 아이템은 상당히 귀한 물건이거든요.”
의문의 아이템이다.
사람이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일단 전용 아이템은 그만큼 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리다.
태하와 용팔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한나 씨, 이거 드릴게요!”
“……네?”
“사양하지 말고 쓰세요! 전용 아이템이라잖아요!”
“내가 못 살아! 이걸 사람이 어떻게 써요?!”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이 아이템이 앞으로 한나의 인생을 바꿔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할 수 있어요.”
“족히 80kg은 될 텐데, 이걸…….”
“중력 마법이요.”
“중력……?”
이 무식한 걸 인간이 휘두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만약 이걸 휘두를 수만 있다면, 적어도 이걸 끌고만 다닐 수 있어도 이득이 된다.
“증폭 마법이에요. 지금보다 족히 몇 배는 뛰어난 힘을 얻게 될 거라고요.”
“……뛰어난 힘?”
“서포터에 근딜까지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어요.”
한나의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능력의 성장이란 언제나 스스로에게 숙제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나도 강해지고 싶죠. 하지만 나는 두 사람처럼 타고난 재능 따위는 없어요.”
“재능?”
“당신들, 최소 A급 헌터들이잖아요. 아니에요?”
태하와 용팔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었다.
두 사람은 한나의 어깨를 한쪽씩 잡았다.
“근육 안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근육 안에 길이 있다?”
“맞습니다. 모든 길은 근육 안에 있습니다.”
“……뭔가 심오하네요.”
“어때요? 근육을 키워 볼 생각이 있습니까?”
한나는 강해질 이유가 얼마든지 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의 길인지 헬창의 길인지, 한번 가 볼게요!”
***
두둑한 주머니를 안고 나온 여의도 거래소.
주머니가 빵빵하니 마음마저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세 사람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전투, 잘 감상했어요.”
“누구……?”
“청룡방의 유시연이라고 해요.”
잘빠진 미녀, 고혹적인 눈매의 그녀에게 태하는 금방이라도 매료될 것만 같았다.
꼬리가 9개 달린 여우와 같은 느낌이랄까.
제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한 번쯤은 시선이 돌아갈 정도였다.
그녀는 태하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헌터길드 청룡방]
“제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청룡방?”
“당신, 우리 청룡방과 계약할 마음 없어요? 청룡방의 백선 어르신께서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
청룡방의 백선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허나 그는 전설적인 탱커이며 시너지 딜러로서 바벨탑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을 써 내려간 리빙 레전드로 통한다.
“아니, 백선께서 왜 저를…….”
“그건 그분만이 아실 테죠. 이번 기회, 당신과 파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확실히 보통의 기회는 아니었다.
허나 태하는 청룡방이라는 거대 세력에게 픽업 제안을 받았다는 것보다도 그들이 왜 접근한 것인지가 더 중요했다.
“계약의 내용이 뭔지 궁금한데요.”
“29층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묘하게 겹치는 숫자 29.
‘도대체 29층에 뭐가 있다는 거지?’
탑의 수호자도 29층 돌파를 퀘스트로 주었다.
백선과 탑의 수호자가 같은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9층에는 보통 사람은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야……? 뭔데 다들 그렇게 29층에 집착하는 거지?’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태하에게 말했다.
“29층을 돌파하세요. 그럼 당신에게 국가 공인 헌터의 자격과 함께 길드의 아지트를 제공하겠습니다. 그것도 대치동 인근에요.”
“좋은 조건이네요. 그런데 왜 하필 29층이죠? 거기 도대체 뭐가 있는데요?”
“아수라에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한 것 같아요. 정확하게 그게 뭔지는 우리도 잘 몰라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바벨탑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아수라 길드가 사고를 친 건가요?”
“거의 그럴 뻔했죠. 하지만 그 직전에 마이너스 코어를 잘라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곤란해하고 있죠.”
“마이너스 코어요? 그건 전데요.”
“맞아요. 당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29층에 오르면 아수라 길드의 흑심이 무엇이든 다 깨부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거죠.”
“아하……!”
“어떻게, 계약 맺으실래요?”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야 할 목적을 달성하면 덤을 얹어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럽시다! 상세한 조건을 들어볼까요?”
***
이른 아침부터 샐러드로 아침을 해결하고 있는 태하,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앉은 조선엽이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얼마 전에 조선엽은 태하에게 마이너스 코어 이슈를 계속 전달해 주기로 했었다.
오늘 그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자회사요?”
“길드도 법인 등록을 해야 하고 펀드에서 투자도 받잖아요. 그래서 영리법인으로서 기업을 굴리곤 하는데, 아수라 길드 같은 곳은 규모가 대기업 수준입니다. 그래서 여러 자회사가 있죠.”
“그러니까, 아수라 길드 자회사가 마이너스 코어를 상용화시키고 각종 연구소까지 차렸다는 건가요?”
“연구소 설립에 대한 건은 카더라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꽤 신뢰할 만한 찌라시이고요.”
“허어……!”
아수라 길드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태하는 그에 걸맞은 복수를 해 줘야 한다.
“제가 만약 마이너스 코어 3천 개를 시장에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려고 들겠죠.”
“아수라 길드도요?”
“때에 따라선 다르겠습니다만, 그들이 가진 물량이 별로 없다거나 시장 지배를 이룰 정도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사들이겠죠. 예전에도 아수라 길드는 이따금 코어 시세를 조작했었습니다. 심지어는 공매도와 선물 투자를 이용하기도 했죠.”
“이 바닥에도 선물이 있어요?”
“그럼요! 공매도도 있고 선물, 옵션도 있어요.”
유시연은 아수라 길드가 마이너스 코어를 잃고 아주 곤란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그들도 가진 물량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에 잠긴 태하, 그런 그에게 조선엽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무튼, 마이너스 코어, 저희 쪽으로 판매 진행해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오오오옷!”
“다만,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해 주세요!”
“공매도건 선물 투자를 이용해 아수라를 아예 확 담가 버릴 수 있나요?”
“……아수라 길드와는 아예 손절을 해 달라는 겁니까?”
“필요하다면요.”
“으음…….”
조금은 고민이 되는 듯한 조선엽.
허나 그는 이내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시죠!”
이윽고 두 사람은 식사를 끝내고 일어났다.
조선엽은 일어나면서 태하에게 핸드폰을 하나 건네주었다.
“앞으로는 이걸로 통화하시죠. 직통으로 연결될 것이고 추적도 당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운명 공동체가 된 셈이다.
그날 오후.
언제나처럼 헬스장을 찾은 태하.
그런데 오늘따라 헬스장 입구부터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태하와 용팔의 얼굴로 헬스장이 도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어! 이게 다 뭐예요?”
“요, 베이비, 요! 뭐긴, 내가 돈 주고 만들었어. 사람들이 그러더라. 헬창 헌터라니, 대박이라고 말이야!”
“네? 헬창 헌터라니요?”
헬스장 입구는 물론이고 사방팔방에 태하와 용팔의 상반신 탈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포스터에는 ‘헬창 헌터!’라는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헬스에 인생을 갈아 넣는 사람들은 많아. 남자라면 우람한 근육과 식스팩이 딱딱 박힌 복근을 동경하기 마련 아니던가?”
“뭐, 그렇기는 한데.”
“자네들한테 보충제와 식단을 대 주는 헬스 매거진에서 원하는 기획이야. 비록 연봉 대신이지만 한 달에 들어가는 보충제, 도시락값만 해도 사실 엄청나긴 하잖아?”
“그건 그렇죠. 보디빌딩 선수가 되는 것이 힘든 이유가 보충제나 식단에 들어가는 돈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후후, 그래! 이젠 돈 걱정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앞으로 자네들은 우리 ‘덕림헬스’ 소속인 거야. 알겠지?”
“넵.”
“그럼 계약서 좀 쓸까?”
“계약서요?”
“모델 계약해야지!”
“음, 그렇다면야.”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보현 관장이 설명을 이었다.
“서포터즈를 서주면 우리 체육관에 수수료도 준다네. 그걸 자네들에게 줄 테니까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헛! 그렇게 되면 관장님은 뭐가 남아요?”
“괜찮아! 난 체육관 수익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UCC도 할 거야.”
“우튜브요?”
“그래! 그거. 대신 영상 좀 찍어서 올리게 자네들이 도와줘.”
“그야 어렵지 않죠.”
보현 관장은 무엇을 하든 간에 열정적이고 태하와 용팔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런 그를 위해서라면 영상 몇 개 찍는 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보현 관장은 두 사람을 데리고 헬스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마치 펀치 머신처럼 생긴 기계와 헌터협회 관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딜링 측정 머신?”
“잡지사에서 그러더라고. 헬창 헌터 기획의 핵심은 강력한 능력이라고. 자네의 그 근육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보고 싶다더군.”
사실, 태하는 탱커이기에 딜링을 측정하는 머신보다는 방어력을 측정하는 ‘디펜딩 측정 머신’을 쓰는 것이 옳다.
허나 태하는 뭐가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냥 치기만 하면 되나요?”
“내가 영상을 찍을 테니까 때리기만 하면 될 거야.”
오늘의 측정을 위해서 인맥을 총동원해 헌터협회 관계자까지 데려온 보현은 제대로 인증까지 받으려는 생각이었다.
헌터협회 측정 기술자는 태하에게 신호를 주었다.
“하나, 둘, 셋! 치세요!”
태하는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치지직!
[수치: 측정 불가]
“기계가 고장인가?”
자기가 치고도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측정 기술자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장은 무슨. 당신 주먹이 심각하게 강한 거라고요!”
“아, 예……. 미안합니다.”
“괴물인가? 무슨 사람이 저렇게 세?”
안절부절못하는 태하를 보며 보현 관장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정도면 뭐, 괜찮은 홍보 영상 아니겠어?’
***
대한민국 코어 거래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희비가 엇갈린다.
투자자들은 코어라는 상품으로 거래를 하기에 그 가격에 울고 웃고, 헌터들은 현물을 가져다 팔기 때문에 그 가격에 울고 웃을 수밖에는 없다.
여기, 오늘도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코어 거래소의 투자회사였다.
“300개나 되는 공인 헌터 자격증이 발급돼……?”
“마이너스 코어 찌라시가 돌기 딱 3개월 전부터 코어 시장에서 엄청난 규모의 코어가 매입되었다가 매각되기를 반복했는데, 300명의 공인 헌터가 떡하니 생겨나고부터는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릅니다. 중간에서 현물로 물량을 싹 쓸어 담았다는 얘기도 있고요.”
코어 거래소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공급은 오로지 공인 헌터, 그리고 공인된 투자업체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인 헌터는 각성자, 혹은 상위 10% 안에 드는 비각성 헌터길드에 제한적으로 발급된다.
허나 그에는 한 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그건 바로 랭킹 10위 안에 드는 초대형 길드의 요청이 있을 시, 총원의 10%에 한하여 임시 면허가 발급된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딴 짓을?!”
“아수라 길드요.”
“아수라?!”
“최근에 예외 발급으로 면허를 엄청나게 받아 갔다고 하더군요.”
“아니, 우리는 왜 그걸 몰랐지?”
“아수라 길드의 뒷배가 대단하다는 소리 못 들어보셨어요?”
“……설마하니 그 뒷배가 행정부와 헌터협회에까지 마수를 뻗쳤다는 거야?”
“수뇌부일 수도 있고요.”
“젠장.”
“아무튼, 아수라 길드를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그럼 별수 있어? 그놈들이 팔 때 팔고 살 때 사자고.”
이 시장에서 아수라 길드라는 이름은 이제 ‘강력한 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