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4화 (14/197)

014 가장 강력한 갑옷, 갑빠(2)

덩그러니 가죽만 남은 만티코어.

‘……그분의 눈은 틀리지 않았었네.’

바벨탑 10층과 11층 사이의 통로에서 태하의 사냥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마인드헌터’ 유시연.

유시연은 청룡방의 수장 ‘백선’의 지시에 따라 F급 헌터 정태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처음엔 F등급 따위에게 무슨 관심인가 싶었다.

허나 이제 보니 절대 F등급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등급은 F등급이 분명한데, 전투력은 상위 10% 이내. 아니, 사실상 탑클래스라고 해야겠어.’

그녀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다.

심지어는 헌터의 능력과 수치까지도 읽을 수 있기에 마인드헌터라는 명성을 얻은 헤드헌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F골드]

[전투력 예상: 20,000 이상]

[예상 특성: 타격 저항]

‘……타격 저항이라.’

물론 유시연도 태하의 실질적인 능력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격에 대한 저항을 갖는 특성이라는 것만으로도 태하를 충분히 높게 평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능력을 기반으로 성과를 올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재는 인재네요. 3인으로 11층까지?”

“……위험해 보여요.”

“원래 던전은 그런 곳이잖아요.”

가뜩이나 잔뜩 상기된 하희란의 표정이 더욱 굳어져 버렸다.

유시연은 그녀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가 한창인 11층 중앙으로 향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

태하는 이곳에서 진정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다.

-크하아아아!

“브레스……!”

키메라의 브레스가 태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십중팔구 사망이었을 것이다.

“대장……!”

“쉿, 괜찮아요.”

“괜찮다니요?! 저렇게 옆구리가…….”

“좀 더 두고 봐요.”

유시연을 따라온 하희란의 입에서 비명이 절로 나올 뻔했다.

허나 유시연은 그녀를 만류하며 태하를 가리켰다.

놀랍게도 태하는 브레스를 맞고도 멀쩡하기만 했다.

옆구리에 묻은 브레스의 자국을 툭툭 털어낸 태하가 짜증을 냈다.

“젠장, 이거 비싼 옷인데.”

-크엉……?

“옷값은 네 죽빵으로 받아 낸다!”

일약의 도움닫기로 공중으로 붕 떠오른 태하가 그대로 체중을 실어 키메라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가격당한 용 대가리가 맥없이 옆으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크허어어…….

유시현은 순간 말문을 잃었다. 일격에 키메라 대가리를 부수다니. 이는 일반적인 탱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탑 클래스 딜러도 쉽지 않다.

‘……단순한 탱커가 아니라 강력한 근딜까지, 저게 가능하다고?!’

각 층의 보스는 설령 A급 헌터라고 해도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다.

보통은 4~5인, 혹은 그 이상의 인원이 달려들어도 아무런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수라 길드가 처음 11층의 보스 키메라를 사냥했을 때 S급 헌터 6명이 달려들었던가? 실로 엄청나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돌파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탱커가 혼자서 날뛰는 동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 2명의 딜러는 과연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오우거 웨이브를……?’

유시현은 서둘러 딜러 쪽을 살폈다.

[비각성자]

[예상 전투력: 3,000]

[예상 특성: 없음]

‘흠, 별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

빠각!

-크헐!

“이걸로 열두 놈!”

유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활을 사용하던 원딜이 갑자기 만티코어를 맨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처맞은 만티코어도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이시현은 눈을 비볐다.

[비각성자]

[예상 전투력: 9,000]

[예상 특성: 파괴, 집중]

‘……이 전투력은 뭐야? 비각성인데 전투력이 1만에 가깝다고?! 저런 능력으로 왜 활 따위를 쏘는 건데?’

이쯤 되면 활이 봉인구나 다름없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던 서포터에게 눈을 돌렸다.

[A등급]

[예상 전투력: 1,251]

[예상 특성: 빛, 중력]

‘금성탑……?’

유시연은 이게 도대체 무슨 조합인가 싶었다.

도대체 금성탑에서 파견된 전투사제가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신기한 팀이네.’

조합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허나 이 팀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걸론 부족해.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달까?’

축 늘어졌던 키메라의 대가리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대가리가 뻗어 나왔다.

우드드드득!

-크아아아앙!

‘어차피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층에선 반드시 무너져. 탑은 그런 곳이니까.’

유시연은 태하가 여기서 무너질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태하는 반전을 만들어 내는 사나이였다.

“한 방 더!”

콰아아앙!

***

아수라 길드의 본부.

콰앙!

이용광의 분노가 폭발했다.

“……몇 개?”

“3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대가리가 아주 뭉텅 잘려 버렸다……?”

“……면목 없습니다.”

콰앙!

주먹질 한 방에 책상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용광의 분노에 모두가 흠칫거린다.

“……사람 꼴 아주 우습게 되어버렸네.”

“죄송합니다!”

“사죄한다고 상황 안 끝난다.”

“……면목 없습니다.”

“도대체 그 코어를 중간에서 뽀려 간 놈이 누군데?”

“바벨탑 출입 대장을 가로채서 알아봤더니, 용산에 사는 정태하라는 사람이더군요.”

“……정태하? 그게 누군데? 신인 네임드인가?”

“우리가 예전에 10층 길라잡이로 썼던 블랙하운드라고 기억하십니까?”

“블랙하운드? 전혀 모르겠군.”

“아무튼, 우리 하청 헌터였던 블랙하운드의 탱커가 정태하입니다. 그가 아마 각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등급은?”

“모릅니다. 직접 신경삭을 연결해 보지 않는 이상에야…….”

“……우리 하청이나 뛰던 놈이 A급으로 올라왔다고?”

“이것 좀 보십시오.”

그녀가 건넨 기사 안에는 온통 미스터리 헌터에 대한 내용들뿐이었다.

-……바벨탑 언데드 사태 종식, 그 주인공을 찾아라!

-탑의 수호자 S급 헌터는 과연 누구?

-언데드 파괴자 ‘신인 S급 헌터’의 등장! 헌터협회 ‘100억대 인출 있었다’ 주장.

-추정 몸값만 수백억? 대박 헌터의 정체는?

“……이놈이 그놈이었어?”

“네, 그렇습니다.”

“S급의 등장이라니. 탱커 쪽에선 상당히 귀한 인재인데. 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던전에 오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잠깐 내려가긴 했는데, 이내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흠, 그래?”

“그런데 그놈, 희망 층수를 29층으로 적었다고 하더군요.”

이용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필이면 29층이라고?”

“백선이 중간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고개를 가로젓는 이용광이 괴성을 질렀다.

“이놈의 할배가 아주 노망이 나셨네!”

“어떻게 할까요? PK라도 해야 할까요? 지금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이용광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치아라. 어차피 죽는다.”

“어째서…….”

“우리가 키운 괴물들, 기억 안 나나? 특수 장비 파밍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게다가 우리가 특식까지 공수해다가 먹였잖아. 벌써 잊었어?”

“아아! 그랬었지요! 그 바람에 화이트홀 여느라 돈도 꽤나 들었고요.”

“B급, 아니 A급 파티도 힘든 것이 그 괴물들이다. 물론, 그 전에 오우거 웨이브에서 사망하겠지만.”

***

던전의 입구에 선 태하가 동료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간이 의자에 축 늘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연료 바닥, 완전 방전됐다고요오오오오.”

“일단 의뢰는 완성했고, 실험에 필요한 물량은 이 정도면 되나요?”

한나는 태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럼 일단 실험에 필요한 물량 제외하고 나머지는 팔아서 생활비로 씁시다. 의뢰 물품도 전달하고요.”

사실 3인 파티로 11층을 돌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다.

허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용팔은 이제 팀워크를 맞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나 씨는 우리와 언제까지 함께할 건가요?”

“일단은 사령술사를 찾아내고 마이너스 코어 실험을 완수해 내야겠죠.”

“그럼 최소한 그때까지만이라도 한 팀으로 그레이트하게 움직이도록 해요! 진짜 팀처럼 말이에요!”

“음…….”

“헬스하운드, 어때요? 팀 이름이 참 그레이트하지 않아요?”

“저는 금성탑의 사람이고 언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금성탑으로 돌아가면 같이 막공이나 뛰죠, 뭐.”

태하는 한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정말요?”

“물론이죠. 앞으로 잘해 봅시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나를 믿어 줘서!”

“와하하! 그럼 이제 우리는 헬스하운드인 건가요?! 내가 생각해도 팀 이름 한번 그레이트하게 지었네!”

“용팔 씨도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

세 사람은 필요에 의해 만났으나, 점점 전우애가 쌓여 가고 있었다.

태하는 한나를 동료로 등록했다.

[‘한나’를 동료로 등록합니다]

[앞으로 ‘점진적 과부하’를 적용받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여의도의 코어 거래소.

태하가 가방을 스캐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딜러 조선엽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C플러스급 코어가 3개나 되시는군요. C스탠더드도 100개 이상 되고요. 요즘 통 코어 거래가 뜸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숨통이 트이네요.”

“뜸하다니요?”

“모르셨어요? 얼마 전부터 10층 이상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잖아요.”

“네임드 공격대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레이트 오우거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법을 쓰는 바람에 11층 진입도 어려운 데다 19층 보스의 난이도가 그야말로 극악무도하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는 현무단 3군이 11층 진입에 실패했고, 그다음 날에는 현무단 2군이 20층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3군이라고 해도 현무단 소속이면 B와 A급 헌터들 아닙니까?”

“그렇죠. B등급군에서는 랭커들만 모여 있는 것이 현무단 3군입니다.”

아무리 3군이라도 국내 랭킹 4위면 무시할 순위가 못 된다.

현무단 3군이 실패했을 정도면 아무리 대한민국 30위권 내의 각성 헌터길드라도 10층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코어값이 올랐던 것이로군요.”

“누군가는 아수라 길드의 농간이라고 하던데,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요.”

“음, 역시.”

아마 코어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다.

고층 진입에 실패한다면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아무튼, 오늘은 돈이 제법 되겠습니다. 저번처럼 계좌로 쏴 드리면 되나요?”

“네, 그래 주시죠.”

“그럼 C스탠더드 121개 해서 180,000,000원 그리고 C플러스가 45,000,000원이네요?”

순식간에 2억이 넘는 돈을 거머쥐었다.

그만큼 코어 가격이 올랐다는 소리다.

그걸 보자 태하는 머릿속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데드 웨이브, 몬스터의 강화, 이것들은 코어 공급을 줄이고 마이너스 코어를 수급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끼들을 단죄할 방법이 있겠는데?’

아수라 길드가 마이너스 코어를 포함해 코어 시장 전체를 주무르려 했던 것이라면 태하에게는 그들을 엿 먹여 줄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3천 개의 마이너스 코어.

잠시 후, 아이템 감정까지 이어졌다.

“만티코어의 이빨, 키메라의 뿔……. 으음, 그리고…….”

만티코어의 이빨과 키메라의 뿔은 도장 첨가제로 사용되는 고급 재료이기 때문에 가격이 제법 나간다.

이것만 해도 제법 괜찮은 가격을 받을 것이다.

허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도끼……. 아니, 돌도끼가 하나 있네요?”

“돌도끼요?”

“크기가 3m나 되네요. 몬스터의 혈흔이 묻어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전투 시에 파밍 된 것 같습니다만.”

“허어, 그래요?”

“특성 스킬이 부여되어 있네요! 축하드려요, B랭크 이계 장비를 습득하셨습니다.”

샌드타워에서 발견되곤 하는 이계 장비는 특수한 능력이 부여된 경우가 많았다.

아주 가끔은 바벨탑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 B급 이상은 1% 이하의 확률로 파밍 되곤 한다.

“특성 스킬이…….”

“특성 스킬이 뭔데요?”

“직접 보시죠.”

태하 일행이 스캐너에 있는 특성 스킬명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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