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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12화 (12/197)

012 강해지고 싶거든 목숨을 걸어라(2)

태하는 스트랩을 여미며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 공사판이라 이거야!’

지금까지 오우거와는 지겹도록 싸워 봤다.

그리고 태하는 일대일 승부에 최적화된 근딜형 탱커였다.

물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단련한 득근의 길을 믿었다.

그렇기에 일대일에 승부를 걸어 보기로 했다.

-쿠오오오오!

괴성 한 번 지르면 땅이 진동할 정도로 거대한 그레이트 오우거.

용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레이트하게 맞짱 뜨세요! 뒤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태하는 자신의 결심을 용팔에게 전했고, 용팔이 그런 그의 결심을 받아 준 것이었다.

“역시 용팔 씨밖에 없네. 고마워요!”

“대신 꼭 이기세요! 그레이트하게!”

용팔은 주변의 오우거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며 어그로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태하는 그레이트 오우거와 일대일 구도가 되었다.

“우리, 똑같이 차 떼고 포 뗐잖아. 져도 울기 없기야?”

이젠 진짜로 일대일 대결이었다.

-크오오!

“……자, 간다!”

그레이트 오우거는 태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도끼를 휘둘렀다.

부웅!

태하는 공격을 피해 곧바로 스트랩을 뻗어 동굴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 후 힘차게 도움닫기를 했다.

쉬이이익!

“황천길로 보내 주마!”

마치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 나가는 태하.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쇄도한 태하는 그대로 풀스윙 펀치를 휘둘렀다.

“허업!”

콰아아앙!

태하의 펀치는 정확하게 오우거의 턱에 꽂혔다.

-크아앙!

허나 그레이트 오우거도 만만치는 않았다.

놈은 펀치를 맞으면서도 그와 거의 동시에 도끼를 휘둘렀다.

쿠웅!

거의 컨테이너만 한 도끼가 태하의 몸통을 후리자,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커헉!”

더군다나 마침 체력 페널티가 걸려서 한 대만 더 맞아도 황천길로 직행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쿨럭!”

피가 한 움큼 튀어나왔다.

쉽지 않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체력 페널티라니!’

오우거는 머리를 한 번 흔들더니 이내 태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대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쿠웅, 쿠웅, 쿠웅!

태하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그러곤 생각에 잠기는 태하.

“……가만. 내가 스턴에 맞은 건 처음이었지, 아마?”

***

용팔은 물밀듯이 밀려드는 오우거와 트롤을 해치웠다.

피융!

퍽!

-……으헤엑!

한 놈이 쓰러지면 그 시체를 밟고 다른 한 놈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심지어 트롤의 경우는 재생되어 다시 대열에 끼어들기까지 했다.

“젠장, 너무 많아!”

“내가 못 살아! 이대로는 모두 다 죽겠어요!”

“……빌어먹을!”

원딜 두 명으로 틀어막기에는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전열을 막아주는 탱커가 없으니 프리딜을 할 기회를 잡지 못해 화력이 분산되며 점점 궁지로 몰렸다.

“용팔 씨! 이제 곧 막다른 골목이에요!”

“끝인가……?”

“퇴로를 찾아봐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요!”

용팔과 하나는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나마 오우거와 트롤들을 태하에게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틀렸어. 혼자라면 몰라도 한나 씨까지 지켜야 한다는 게 문제야. 그동안 헌터님은 어떻게 이 엄청난 싸움을 계속해 온 거지? 불과 10m도 안 되는 거리의 풍경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새삼 탱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최전방이 이렇게 치열한 곳인 줄 오늘 처음 깨닫게 되었다.

부웅!

결국, 오우거의 망치질이 한나를 덮쳐 왔다.

“허엇……!”

눈을 질끈 감는 한나.

본능적인 공포, 그리고 전에 없던 약해진 모습.

용팔은 그런 그녀를 보자마자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살려 주세요!’

언데드에게 학살당했던 캠프의 광경이 떠올랐다.

과거에 비겁했던 자신이 생각났다.

울컥 눈물이 차오른 용팔이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도망 안 쳐!”

용팔은 한나의 앞을 막아섰다.

이런다고 과연 한나를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용팔이 쓰러지면 더 어이없게 유린당할 수도 있다.

용팔 스스로도 이것이 무모한 짓임을 잘 알고 있다.

허나 용팔은 태하에게서 중요한 것을 한가지 배웠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란 없다는 교훈이다!

“비겁자로 살 바엔 차라리 죽고 만다!”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끼이이이잉!

궁신이 빛을 발한다.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용팔의 근성에 바벨의 흑막이 미소를 짓습니다]

터억!

황당하게도 용팔의 손에 의해 오우거의 공격이 막혔다.

그것도 맨손으로 망치를 잡아냈다.

“어라?”

-크울?

공격한 오우거도 놀랐고 그걸 막아 낸 용팔도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용팔은 지금까지 갈고닦은 스쿼트 능력을 십분 발휘해 냈다.

“나도 할 수 있다……!”

파앗!

단숨에 오우거의 눈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깡마른 스켈레톤처럼 비실대던 용팔이 하체 힘만으로 이뤄낸 위업이다!

“……예압, 베이비! 스콰아아아앗!”

[패시브: 점진적 과부하 - 멸치로 살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고통과 실패,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자에게는 비로소 보상이 뒤따릅니다]

[용팔의 노력에 탑의 수호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콰아아앙!

도저히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열심히 활을 당기던 궁수가 오우거에게 죽빵을 날렸다!

게다가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쿠웩, 쿠웩…….

펀치 한 방에 턱에 금이 가 버린 오우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폼은 어설프지만, 용팔은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덤벼! 덤비라고!”

-쿠오오오오!

과거에 용팔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이얍!”

돌도끼를 휘두르는 오우거의 공격을 막아 낸 용팔이 곧장 놈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찍었다.

그 순간, 활이 어두운 은하수가 반짝이듯 광을 냈다.

빠각!

마치 로우킥을 맞은 사람처럼 오우거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쿠에엑!

“한 놈!”

폼도 어설펐고, 동작도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허나 그 일격을 오우거는 버텨내질 못했다.

한나가 뒤에서 용팔의 움직임에 맞춰 중력마법을 걸었다.

어이없고 황당했지만,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뭐야, 이 사람들.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 거야?’

물론, 그렇다고 솟아나는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

한편, 동굴 구석에 처박힌 태하가 그레이트 오우거의 노란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쿠오오오오!

놈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쿠웅!

도끼가 태하를 깔아뭉개 버렸다.

‘KO’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허나 바로 그때, 바위 더미에 쑤셔 박힌 태하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파생 스킬: 점진적 과부하 - 좀비의 맷집]

[신체 손상률이 60%를 넘어서면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우드드득!

부서졌던 신체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인지 트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흑막의 보너스: 5분간 신경 물질의 활성화를 통해 오감, 그리고 육감이 발달합니다]

[흑막의 보너스 - 남은 시간: 04:59……]

태하가 노림수가 바로 이거였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타격을 받으면 그만큼 성장한다는, 그야말로 좀비의 맷집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스킬: 점진적 과부하]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듯, 강인함의 그릇도 시련에 의해 강해집니다]

[신체에 지속적인 타격이 가해짐으로 타격에 대한 점진적 과부하가 적용되었습니다]

신체가 업그레이드되었다.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후후, 두들겨 패 줘서 고마워. 나중에 술 한잔 살게.”

-크오……?

“……지옥에서 헬 에이드로!”

-크오오오오!

그레이트 오우거가 어이없다는 듯 주먹으로 태하를 내리쳤다.

부웅!

태하는 그걸 굳이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휘두르며 맞섰다.

순간, 엄청나게 단단해진 근육이 수축했다.

“머스으으을업!!”

콰아앙!

크기만 보자면 학교 담벼락에 붙은 껌딱지 급이다.

하지만 위력은 대전차포 수준이었다.

우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앙!

그레이트 오우거의 주먹이 부러지면서 손목과 팔, 팔꿈치에 이르기까지 팔 전체가 아작이 나버렸다.

태하는 스트랩을 날려 놈의 목에 감았다.

“끝이다아아아아아!!”

스트랩이 당겨지며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쐐에에에엑!

그레이트 오우거의 눈에는 찰나의 회한 같은 것이 스치는듯했다.

-쿠오…….

허나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다.

쿠우웅!

강력한 힘을 담은 펀치가 그레이트 오우거의 안면에 적중했다.

완전히 박살이 난 그레이트 오우거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우오오오…….

쿠우웅!

마치 건물이 무너지듯 강력한 먼지바람이 태하를 덮쳐 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태하.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 카운터: 250]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35 -> Lv.40]

태하는 쓰러진 그레이트 오우거를 발로 툭툭 차 보았다.

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털썩.

“……돌파했어? 10층을?”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맨손으로 거대 보스를 제압한 것이었다.

너무 기뻐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드디어 돌파했어! 내가 죽기 전에 10층을 돌파하다니! 근육아, 고맙다! 앞으로는 좋은 보충제 사 줄게! 아이고, 조상님! 앞으로도 봉 무게 들어 주시고, 헬스 신님, 득근하게 도와주세요!”

딩동!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포식]

[당신은 던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파생 스킬: 흡수]

[어떤 형태로든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양 성취 시의 흡수율을 높여 줍니다]

이번 스킬은 좀 특별했다.

흡수율을 높여 주는 패시브 역할을 해 주면서도 영양분을 취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영양분의 흡수율을 높이는 건 이해가 되는데, 흡수는 뭐지?”

스킬이 좋기는 한데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허나 그걸 이해하는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아 참, 용팔 씨랑 한나 씨!”

태하는 코너에 몰려 있는 용팔과 한나를 구하기 위해서 쏜살같이 달려갔다.

“용팔 씨! 이제 거의 다 됐어요! 제가 몸빵 할 테니까…….”

“죽어라!”

“……어라?”

태하는 용팔을 걱정하는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왔건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버린 오우거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허어……!”

“헌터님, 제가 오우거를 때려죽였어요!”

“……엄청난데, 이거?”

어처구니없지만 원딜이었던 용팔이 근딜로 전직한 순간이었다.

위기의 순간, 두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해 낸 것이었다.

“……이겼어!”

“용팔 씨, 정말 고마워요!”

“아니, 이게 다 헌터님 덕분이죠!”

“아니, 근육 덕분이죠!”

얼싸안으며 승리를 자축하는 태하와 용팔.

허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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